탈렌트 이창훈씨가 호텔에서 본 신명(神明)
1995년 늦은 봄, MBC 드라마 "전쟁과 사랑" 촬영차 국내 연기자들이 필리핀에 체류할 때다. 당시 주인공 역을 맡았던 이창훈씨는 유독 많은 대사를 외우기 위해 현지에서 독방을 썼다. 도착 이틀째 되던 날, 낮잠을 자던 이창훈씨는 이상한소리에 눈을 떴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 웃으며 얘길 나누는 두 소녀가 눈에 띄었다. 순간 그들을 도둑으로 생각한 이창훈씨는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지갑 속의 돈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돈을 셀 때마다 한 장씩 없어지는가 하면, 놀라서 지갑을 떨어뜨리자, 지갑이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소녀들은 잠겨진 방문을 열지도 않고서 그냥 통과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밤이면 밤마다 소녀들의 혼령은 어김없이 출몰하여 이창훈씨를 괴롭혔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서 목덜미에 불어대는 뜨거운 입김과 목소리만으로 그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러던 차에, 로비에 모인 연기자들도 귀신얘기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탤런트 '전현'씨도 낮잠을 자다가 귀신을 보았다는 것. 잠을 자고 있는데 가위에 눌린 듯 숨을 쉴 수가 없어 눈을 떠보니, 웬 남자가 자신의 목을 마구 조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호텔 주인장에 따르면, 앞서 이 호텔 3층에서 웬 아버지와 딸이 묵었다가 어느 날 모두 비명횡사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들 혼령을 봤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한다. 출처: MBC 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 중에서
[공포ssul화] 배우들의 귀신 목격담?! 드라마 촬영 중 일어난 일!|#공포ssul화 MBC961108방송 - YouTube
[차길진법사의 영혼수첩]
과거 뉴저지 후암정사에서 올렸던 구명시식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의 한 유력 가문 며느리가 죽은 남편 영가를 천도하는 자리였다. 남편 영가가 오셨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 영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죽은 다음에 내가 시아버지에게 얼마나 괄시를 받았는지 알아?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그렇게 일찍 가면 어떡해?"
그러자 남편영가는 기가 차다는 듯 "아니, 그렇게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구명시식 3일 전에 다른 남자와 자고 와? 이런 자리에 올 때는 몸가짐을 좀 깨끗하게 해야 하는 거잖아." 참 전하기 민망한 말이지만 영가의 요청대로 그대로 적어서 부인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아내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당신은 나 몰래 바람 많이 피웠잖아? 나는 당신 죽은 다음이고, 당신은 나 살아있을 때 바람 폈으니까, 쌤쌤으로 칩시다." 나는 이쪽편도 저쪽편도 들어줄 수 없어 그냥 웃고 말았는데.구명시식에서 얻는 웃음의 힘. 이런 일이 있기에 아마도 구명시식을 계속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구명시식을 하다가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숙한 자리라 속으로 웃음을 참다가 어떤 때는 배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돌아가신 영가님을 초혼하는 자리라 마냥 슬플 것 같지만 이렇게 희로애락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의식이 구명시식이다.
15년 전의 일이다. 시부모님 영가 구명시식을 올리는데, 의식이 시작되자마자 다짜고짜 며느리가 시부모님 영가에게 따졌다. "어떻게 저희에게 이러실 수 있어요? 저희한테 재산 한 푼 남겨주신 것도 없으시잖아요! 시부모님 때문에 우리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구요. 아세요?"
아마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경제적으로 섭섭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약속 위반이었다. 애초에 시부모 영가를 좋은 곳으로 천도해 드린다고 해놓고 속사포처럼 영가님들을 공격하다니. 며느리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시부모 영가의 안색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부른다기에 힘들게 구명시식 자리까지 왔건만 오자마자 망신을 준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영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며느리는 계속해서 인신공격을 했다. "입이 있으면 말씀을 해보세요. 자식들을 이렇게 힘들게 살게 해놓고 어쩌실 거예요!"
그때였다. 갑자기 영단에서 큼지막한 사과 하나가 공중에 붕 떠오르더니, 며느리 이마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딱!'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은 기겁했다. 멀쩡한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며느리 이마를 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약한 것, 어디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너 같은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집안이 잘 될 리가 없지!" 참다못한 시부모 영가가 집어 던진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입 다물고 죄송하다며 바닥에 엎드렸을 텐데 이 며느리는 한술 더 떴다. "뭘 잘했다고 저를 때리세요? 아예 저기 있는 사과를 다 집어 던지시죠?"
다른 참관자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며느리는 사과를 다 집어 던지라고 난리를 치고, 또 화가 난 시부모 영가는 다른 영가들에게 원조를 요청하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구명시식을 정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는 말은 옳다. 서리는 물론 눈이 펑펑 내릴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여인의 한이다. 한 만큼 사람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업 만큼 큰 것도 없을 듯하다. 자신도 모르게 남을 한 맺히게 만들 경우, 그 업보가 자신 또는 자손에게 대대로 이어져 무고한 후손이 엉뚱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당사자(후손)는 아무 죄도 짓지 않고 살아가는데 그런 일을 당하면 생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약사인 Y씨가 바로 그랬다.
약대 졸업 후 서울 근교에서 10여 년간 자신의 약국을 운영해온 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 성실한 그에게 선도 숱하게 들어왔지만 마음이 끌리는 자리가 없었다. 이젠 그나마 간간이 들어오던 맞선자리마저 끊어진 지 오래였다. Y씨는 ‘인연이 조금 늦게 나타나려나보다’고 마음을 느긋이 먹은 터였다.
오로지 열심히 일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을 분이었다. 교회에도 열심히 나갔다. 그런 그에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교회에서 얼굴을 익힌 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무려 2억원이었다.
누구에게 얘기도 못한 채 끙끙 앓던 그는 그저 죽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필자의 책을 잃게 됐고 자기 집안에 자살, 사고사, 비명횡사한 친척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구명시식을 청한 것이다. 구명시식 현장에서 Y씨 집안 애증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라도 갑부로 풍류를 즐기던 한량이었다. 풍류를 찾아 전국을 유람하던 할아버지는 삼례 근방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됐고 그녀와 함께 춤과 노래와 사랑에 취해 몇 달을 지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를 삼례 여인이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무슨 피치 못할 사연이 있었는지 할아버지는 그녀를 문전 박대했다.
피눈물을 흘리고 돌아선 그녀는 거리를 떠돌다 할아버지 집안을 저주하면서 굶어 죽었다. 물론 9개월 된 태아도 함께 죽었다. 바로 그 삼례 여인이 원혼이 돼, 할아버지 집안을 떠돌며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급기야 집안의 마지막 남은 남자인 Y씨까지도 자살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애증의 한이 모두 밝혀질 즈음 한 점 바람도 없는데 갑자기 구명시식 제단 위의 촛불이 꺼졌다. 몇 대를 거쳐 한을 뿌린 여인이 구명시식 영단에까지 와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몇 명을 죽음으로 이끌고 몇 억원을 사기 당하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집안의 대마저 끊으려 드는 여인의 무서운 집념.
그러나 후손 Y씨의 지극정성 천도제는 그녀의 한을 녹일 수 있었다. 후손의 정성이 선대의 악업을 푼 것이다. Y씨는 일생을 모은 거액을 떼었지만 밝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안 악연이 고리를 매듭지을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세조에게 내린 현덕왕후의 저주
문종의 비(妃)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1418∼1441)는 1541년 단종을 출생하고 사흘만에 죽는다. 세조 즉위 후 단종의 생모라는 이유로 종묘에서 신주가 철폐되고 능은 파헤쳐져 물가로 옮겨지는 수난을 당한다. 그후 1513년(중종8년)에 복위되어 현릉 동쪽 언덕에 천장되고 신주가 종묘에 봉안된다. 이렇듯 현덕왕후는 살아있을 때보다 사후에 더 기구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1457년(세조12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세조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나타났다. 현덕왕후는 얼굴에 분노의 빛을 띠고 세조를 향하여 꾸짖었다. “너는 참으로 악독하고 표독하구나. 내 아들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도 그래도 부족하여 벽지인 영월로 내쫓더니, 이제는 목숨까지 끊으려 하는구나.
네가 나와 무슨 원한이 그리 심하기에 이처럼 악착스러우냐. 이제 내가 네 자식을 살려두지 않겠다.” 그러면서 눈을 부릅뜨고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세조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한참 만에야 겨우 현덕왕후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다. “지독한 놈! 그래도 살고는 싶은 게로구나!” 그러면서 현덕왕후는 세조의 몸에 침을 뱉고 사라졌다.
세조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 뒤였다. 세조는 반정 이후에 밤마다 꿈자리가 좋지 않아 걱정하던 차에, 이런 꿈을 꾸고서 마음이 섬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마 후 동궁 내시가 달려와서 황급히 아뢰었다. “전하, 동궁의 최내관이옵니다.
방금 전에 세자 마마께서 잠을 주무시다가 가위에 눌리셔서 매우 위중하시나이다.” 이 말을 듣고 난 세조가 급히 동궁에 행차해 보니 이미 세자는 목숨이 끊어져 있었다. 실로 약 한 첩 써볼 겨를도 없는 급변이었다. 세조는 맏아들의 죽음이 형수인 현덕왕후의 저주 때문이라고 여기고, 관리를 보내 현덕왕후의 능을 파헤쳐 평민의 무덤(墓)으로 만들라고 했다.
그러나 세조의 명을 받은 신하가 현덕왕후의 능을 파고 관을 꺼내려 했지만 웬일인지 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지어 제사를 지냈더니 그제야 관이 움직였다. 능에서 꺼내진 관은 34일 동안이나 그대로 방치당했다가 물가로 옮겨져 매장되었다.
한편, 그 이후 세조에게는 또 하나의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속에서 현덕왕후가 뱉은 침을 맞은 곳에서 흉칙한 종기가 돋기 시작한 것이다. 종기는 차츰 온몸으로 퍼지더니 고름이 나면서 점점 악화되었다.
세조는 전국 방방곡곡의 명의를 불러모아 치료를 받아보았으나 신통치 않았고, 그 어떤 신약을 써 보아도 별 효험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려보기도 하지만 효험이 없었고, 결국 죽는 날까지 이 악성 피부병에 시달려야 했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와 둘째아들 예종은 발이 썩는 질병으로 각각 20세에 요절한다(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도 못한 채 급사하고, 예종은 왕위에 오른 지 1년 2개월 만에 사망). 세조의 손자인 성종 역시 소갈증을 심하게 앓다가 38세로 붕어한다.
세조의 맏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1438∼1457)는 단종이 붕어하기 한달 전인 1457년 9월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혼령의 살(殺)을 맞아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횡사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죽기 전에 늘 현덕왕후의 혼령에 시달렸으며, 그 때문에 병상에 누워 있을 때 21명의 승려가 경회루에서 공작재(孔雀齋)를 베풀기도 했다고 한다.
수도修道의 궁극의 목적은 세속적인 말로 도통道通이다.
불교의 도법은, 오로지 견성見性을 하려고, 부모형제도 세상도 다 등진다. 도통을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수행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명칭이야 참선이라 하든, 수도,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다 一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수도를 하다 보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면서 水氣가 척추를 통해 올라온다. 그러면서 이 얼굴에서 만의회집지상(萬蟻會集之像)이 일어난다. 만의회집지상이란 일만 마리의 개미가 모여드는 현상을 말한다.
만의회집지상이 되면 개미가 얼굴에 기어다니는 것처럼 섬섬대서 못 배긴다. 그런데 이건 피부 밖에서 그러는 게 아니고 피부 속에서, 살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가려워서 도저히 못 배긴다. 그게 바로 水氣가 순환하느라고 그런 것이다.
만의회집지상은 아주 미세한 세포에까지 수기가 올라오면서 기혈이 작용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그게 얼마 지나면 완전히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 개선이 된다. 그 경지에 가면 그런 현상이 다 없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아주 피부도 말쑥해지고, 눈도 유리알보다 더 반질반질하니 광채가 난다.
수도하는 사람은 눈을 보면 안다. 또 한편으로는 인당印堂이 얼음을 갖다 얹은 것 모양 시원하다. 육체적으로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이 완전히 변화되면, 청명한 맑은 기운이 하늘까지 꽨다. 체질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변화한다.
그런데 무형인 정신은 ‘망형망재(忘形忘在)’가 된다. 자연하고 내가 합치되어 하나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광명(光明)이 어느 정도까지 열리게 되느냐 하면, 저 십 리 밖의 소나무에 송충이가 솔잎 갉아먹는 것까지 환하게 보인다. 그렇게까지 광명이 열린다. 그러면서 자꾸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다른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까지 간다.
그런데 수도 공부를 하려고 보면, 쉽게 얘기해서 무슨 마魔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자꾸 낀다. 간혹 수행공부하는 사람들 중엔 공부도 못 하고, 입 삐뚤어지고 눈 삐뚤어지는 구안와사口眼?斜 같은 병이 걸리는 사람이 있다. 또 여러 백 대 내려오면서 조상에서 남에게 원한을 맺게 해서 보복하려는 그런 크고 작은 척신들이 있다.
하나 예를 들어 수 년 전, 일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공부도 시키고 했는데 박선경이라는 사람이 한 5일쯤 돼서 초통이 됐는데 공부하다 말고 “왁!”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왜 그랬냐?” 하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한다. 그의 큰아버지 얘기다. 강원도 산골짝에 갈 것 같으면 나무뙈기로 얽은 삽짝문(사립문)이 있어서 밤에는 그냥 닫아두고 낮에는 열어 놓는다. 거기는 도적도 없다.
하루는 그 큰아버지가 볼일을 본다고 어디를 갔다. 그 일정이 거리로도 그렇고 한 사흘 걸려야 일을 마치고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그날은 얼마 가다가 아는 사람도 만나고 해서 술 몇 잔 먹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가고,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밤중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가 제 집에 돌아와 보니까 토방에 자기 마누라 신발하고 알 만한 동네 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있다.
그걸보고 그 사람이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그래서 욱 하는 생각에 헛간으로 달려가 도끼를 들고 연놈을 찍어 죽인다고 뛰어 들어갔다. 하니까 벌써 그 마누라는 뒷문으로 도망가고 동네 사람만 그 도끼에 찍혀 죽어 버렸다.
이유야 어떻든지 그의 큰아버지는 사람을 죽였으니 철창엘 간 사실이 있었는데, 그때 박선경이 도통을 하려고 하니까 그 죽은 신명이 도끼를 가지고 찍으러 달려붙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가 유부녀 보다가 도끼 맞아죽었으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다. 제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죽었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고 한다. 신명세상도 그렇고 인간 세상도 저 잘못한 것은 전혀 생각을 안 한다. 그런 것이 척(隻)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새벽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4.24 어릴때부터 귀신이 보인다는 크리스쳔
https://www.youtube.com/watch?v=j-rZqBXHIic 동영상 -
답댓글 작성자새벽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4.25
과거 우리 대한민국의 선조들이 인간의 사후세계에 대해 말씀한 내용들입니다.
♣ 사람들끼리 싸우면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귀정(歸正)되느니라.
♣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 “이 세상을 살면서는 죄를 지어도 남 모르게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아도
죄진 사람은 천상에 가면 모든 게 다 드러난다.
죽으면 편할 줄 알고 ‘죽어, 죽어.’ 하지만 천상에 가면 모든 것이 다 무섭다.
믿으면서 지은 죄는 사하지도 못하느니라.
♣ 죽으면 아주 죽느냐? 매미가 허물 벗듯이 옷 벗어 놓는 이치니라.”
♣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자손을 둔 신은 황천신(黃泉神)이니 삼신(三神)이 되어 하늘로부터 자손을 타 내리고 자손을 두지 못한 신은 중천신(中天神)이니 -
답댓글 작성자새벽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4.25 새벽하늘 ♣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이 정성 들여 쓸 자손 하나 잘 타내면 좋아서 춤을 추느니라.
♣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 명부에서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또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서 -
답댓글 작성자새벽하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4.25 새벽하늘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 전쟁사(戰爭史)를 읽지 말라. 전쟁에서 승리한 자의 신명은 춤을 추되
패한 자의 신명은 이를 가나니 도가(道家)에서 글 읽는 소리에 신명이 응하는 까닭이니라.
♣ “사람마다 그 닦은 바와 기국(器局)에 따라서 그 임무를 감당할 만한 신명이 호위하여 있나니
만일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여 제 일에 게으른 마음을 품으면 신명들이 그에게로 옮겨 가느니라.
못났다고 자포자기하지 말라. 보호신도 떠나느니라.
♣ 제삿상 찬수는 깨끗하고 맛있는 것이 좋은 것이요, 그 놓여 있는 위치로 인하여 귀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신(神)은 사람 먹는 데 따라서 흠향(歆饗)하느니라
♣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거늘 정작 제사 받는 신명은 마당을 겉돌고 다른 신명이 들어가 제사상을 받고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그 신명을 부르시어 “저 사람의 날인데 어찌 네가 먹느냐?” 하시니 그가 답하기를 “저 사람이 살아생전에 저의 재산을 모두 탕진시킨 채 갚지 못하였는데
죽어서도 그 은혜를 갚지 아니하니 오늘은 비록 자기 날이라고 하나 저의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하니라
출처: 도의 원전, 도전道典
이미지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