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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잡기

최후의 보루가 최고의 선물로~

작성자이이(e.e)|작성시간26.06.21|조회수33 목록 댓글 0

밖에 비는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소리에 귀가 열리고 빗줄기에 눈이 맑아진다.
이게 무슨 복인가 싶다.
주룩비를 감각하며 내 인생은 꽉 차고
더 이상의 욕심도 욕망도 없이 저 숲속 동물과 친해진 느낌이다.
삶의 평화가 이런 것인가.
내가 선택한 집이 가져다 준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평화를 누구나 갖는 건 아닐테지.
걸맞는 취향과 기질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내가 이걸 누리게 된 건 일반적 개념의 좋은 집이라서가 아니고
순전히 집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배치때문이다.
누군가는 결코 설득되지 않을 조건일테지만 말이다.
아니, 줘도 '안가져'할지도 모른다.
오늘 같은 비요일엔 발코니에 앉아 얼음된다.
시선 의식 필요 없이 내 앞 자연과 분위기만 누리면 된다.
망우석인 내게 딱인 집에 살게 된 지 거의 두달 째다.

기대가 없었고 오히려 궁지에 몰려 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신의 한수가 되었다고나 할까.
나같은 부류는, 돈문제가 아니어도, 집찾기 정말 힘들다.
나같은 취향의 싱글들에겐 입에 맞는 떡이 거의 없다.
기회 자체가 봉쇄된 것처럼도 보인다.
싱글 맞춤형 면적은 거의 보물찾기.
단촐 미니멀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서럽다.
나도 깔끔한 신축에서 살고 싶은데 소형은 짓질 않는다.       
이 나라는 모든 상품들이 돈 되는 쪽으로 특화되어 있고
소수자나 약자는 거의 고려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약간의 건축법이 아니라면 다 움막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석열씨가 계속 집권했더라면 가속화 되었을지도..)

이번에도 집찾느라 멘탈이 너덜거렸다.
선택의 폭은 병목이고 계약 만료에 밀려 겨우 제 1 조건 하나 맞는 집을 막판에 장바구니서 꺼내 계약해야 했다.
두 달 거주후는 (내겐)반전 매력이었던거고.

나의 자연에의 감각과 느낌을 잃지 않게 해 준 이 집은, 사실상,
몇 가지 점에서 일반적 취향을 충족할 집은 아니니,
장바구니에서 1~2달을 버틸 수 있었다.
2~3번째 조건도 잡기 위해 그사이 열심히 뒤졌지만 도로 이집.

나의 첫째 조건은 집의 크기였다.
작을수록 ok. 최소 13평 이하.
(그러나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패쓰)
이후 후보가 여럿 있다면
방향, 위 아래 좌우 끝집 제외 그리고 창호 순서 정도로 결정할 판이었다.
지역이야, 아침 먹고 느긋하게 차 마시다 오늘은 서울 미술관이나 다녀올까, 하며
즉흥적 결정도 가능한 곳이면 되는 거고,
우선 순위별로 하나씩 검토만 하면 되는데, 아예 검토할 물건이 없다는 것.
국민임대나 공공임대에 난 해당 사항 없고 요즘 신축들은 모두 면적이 크니 구축에서나 찾아야 하는데
30년 전후 노후 건물들이면서도 것도 몇 군데 안되니...

어디든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구축인들 어떠하랴.
물 나올테고 도시니깐 도시가스 들어와 있을테고 다 고만고만하지 않겠는가.
도배장판, 싱크와 욕실 리모델링?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고..
따라서 답사가 필요없다.
그냥 전용 13평이하만 맞으면 바로 낚기.
그렇게 일찌감치 탐았던 물건을 자포자기 심정으로 선택했건만
이렇게 행복 비스므리 안정감이 찾아올 줄이야.

이 집이 속한 동은 남동향, 남향이라면 백점이지만 하늘에 별따기,이고
발코니 앞으로는 다른 동 등 아무런 건물도 없다.
앞에 도로 그 뒤로 낮은 구릉 그 뒤로 조금 높은 산이 있을 뿐.
거실에서 벌거벗고 활개치는 날 자연만이 훔쳐본다.
발코니창 열었을 때 교통소음 있지만, 기찻길옆 오막살이에 잘 자는 아기처럼,
배경소음으로 크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근까, 조금 걸어가면 논과 밭을 볼 수 있는 도시 외곽지역 아파트다.
주변에 편의 시설이라곤 그야말로 편의점 한 개.
누가 이런 아파트에 와서 살까.
작고 외곽이고 편의시설 없고..........
그러니 장바구니에 최후의 보루였던 것.

결과적으로 다행스런 선택이었고
얼마남지 않았을 내 삶의 안식처이자 영혼의 치유처가 되었다.
난 불로소득이라거나 뜻밖의 행운 이런 거 없이, 내가 한 만큼만 얻어지는 유형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예 운이 없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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