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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언덕

참 하나

작성자Jason|작성시간08.09.01|조회수97 목록 댓글 0

「내가 저희 안에」- 이것은 아들이 우리 안에 살아 움직임을 의미한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 안에 살아 움직임을 의미한다.

이 두 방면의 살아 있는 움직임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된다.

최근에 아나하임에 있었던 한 집회에서 성도들은 생각을 새롭게하는 것에 대해 기도하고 교통을 나누었다. 우리의 생각이 새롭게 되려면, 우리의 관념과 의견들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 안에서는 우리의 의견들을 버리기가 어렵다. 우리가 우리의 의견들을 버리려고 노력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의견들을 갖게 된다. 실제로 모든 생각은 하나의 의견이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도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심지어 잠 속에서도 생각한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조차도 의견들을 갖고 있다.

 

아들이 그의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아버지와 함께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우리는 의견들로부터 구출되어 온전케 된다 참된 하나는 가르침을 받거나 어떤 교리적인 관념들을 붙잡는 데서 오지 않는다 참 하나는 아들 안에 살아 움직이는 아버지가 계시는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는 아들로부터 온다. 이러한 두 방면의 살아 움직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되고 아버지를 표현한다.

하나를 잃음

아들이 있는 곳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타락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아버지 안에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 자신 안에 있다. 그들은 아버지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의 표현 안에 있지 않다. 반면에 그들은 세상적인 것과 야심과 자기를 높임과 관념과 의견들 안에 있다. 앞의 메시지에서 우리는 세상이 단순히 유행이나 오락 같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야심과 자기를 높임과 관념들로 짜여져 있음을 지적했다. 타락된 사람들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과 세상 안에 있다. 어느 의미에서는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들까지도 실제로 다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적인 것과 자기를 높임과 야심과 관념들을 표현하는 자신들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가 우리 자신의 기질 안에 짜여져 있다. 심지어 주님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아버지 안과 아버지의 영광 안에 살고 있지 않다. 그 결과로 참 하나가 상실된다.

우리는 모두 하나에 대한 합당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함께 모이면서도 여전히 참 하나 안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아버지 안과 그의 영광 안에 삶으로써만 참 하나를 갖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참으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하나에 대해 말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것이 또한 우리의 상황일지 모른다.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하나는 모이는 것이나 연합이나 조직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서의 하나는 아버지 안에서와 아버지의 영광 안에 사는 것이다. 그러한 삶이 우리를 세상적인 것과 야심과 자기를 높임과 관념들로부터 구출한다.

우리는 자주 무의식적으로 심지어 우리의 말하는 방식에 의해서 조차도 하나를 깨뜨린다. 우리의 말은 세상적이며 야심과 자기를 높임과 관념들로 충만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할 때 아버지의 표현 안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아버지의 영광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것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이들은 그들 자신들 안에서와 세상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나가 없다. 대신 그들은 바벨. 즉 분열이 있는 혼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포함한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또한 바벨 안에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정확한 용어를 갖고 있고 주의 회복이 참 하나의 회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이 하나를 갖고 있지 않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아버지의 표현 안에 있지 않고 여전히 우리 자신 안에 있다면 하나는 손상된다.

 

내주하는 그리스도가 그의 안에 살아 움직이는 아버지와 함께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우리는 우리의 야심과 자기 높임과 관념들로부터 구출된다. 때때로 나는 인도자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이 너무 성급하게 그들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결정을 내린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만일 우리가 온전케 되었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견들을 표현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담대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내주하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한을 받거나 우리가 말하려 하는 것이 그리스도께 속한 것인지 자아에 속한 것인지를 점검할 것이다. 이것이 온전케 함이다. 만일 모든 인도자들이 이와같이 온전케 된다면 그들 가운데는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다.
(위트니스 리, 진리 메시지, 1978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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