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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언덕

새 예루살렘 - 최종 완성 (1)

작성자Jason|작성시간08.09.08|조회수169 목록 댓글 2

창조와 건축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를 얻으려면 성경 전체가 필요하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말한다. 또한 성경의 끝에서 우리는 거룩한 성(城)을 보게 된다. 시작에는 창조가 있고 끝에는 성이 있다. 창조에서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롬 4:17) 부르셨다. 그러나 성(城)은 그 이상의 것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성은 건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륜에서 그분은 먼저 창조하셨다. 창조에 이어 그분은 건축을 시작하셨다.

 

건축에 대한 사상은 신약 전체에 계속된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바로 그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후에, 주님은 그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마태복음 16장에 건축에 대한 사상이 있다.

 

사실상 건축에 대한 사상은 훨씬 전에 나타났다. 하나님의 생각에서 건축은 구약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주님은 유대 나라를 상징하는 포도원의 비유를 사용하셨다. 그 비유의 끝에서 주님은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열매가 없기 때문에, 포도원의 주인이 포도원을 다른 민족(즉 교회)에게 돌리겠다고 말씀하셨다(33절-43절). 주님은 그들에게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42절)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건축자들이며 그분은 모퉁이 돌인데, 유대의 지도자들인 그들이 거절했다고 말씀하고 계셨다. 이 거절당한 돌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건물의 모퉁이돌이 되었다.

 

모퉁이돌인 그리스도는 복음의 기초이다. 많은 전파자들이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 즉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를 인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행전 4장 12절이 11절에 기초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11절에서는 거절당한 돌인 그리스도가 모퉁이돌이 되셨다고 말한다. 이 모퉁이돌이 12절에 있는 바로 그 구원자이다. 그리스도가 구원자가 되신 것은 그분이 구약의 경륜 안에서 건축자들이 거절한 모퉁이돌임에 근거한다. 그때까지 유대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눈에는 건축자들이었다. 거절당한 돌이 모퉁이돌이 되는 것은 시편 118편 22절에 있는 예언이다. 그때 하나님의 눈에는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 모두가 그분의 건축기간이 었다.

 

그분은 창조한 직후에 건축을 시작하셨다. 그분의 창조는 그분의 건축을 위한 건축 자재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성을 건축할 목적으로 우주와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조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은 창조된 것의 건축이다. 하나님은 두 가지 역사를 하신다. 첫째는 창조의 역사이고, 둘째는 건축의 역사이다. 새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건축인 성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의 결론이다.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건축 재료

 

하나님의 건축을 위하여 그분의 창조의 중심인 사람은 거듭나야 한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건축 재료가 된다.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의 어느 항목에도 자신을 분배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옛창조에서 하나님은 사람 속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셨으나(창 2:7), 그 호흡은 그분의 본질이나 본성의 어떤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그분의 호홉이었을 뿐이다. 그 생명의 호흡, 네샤마(neshamah)는 사람의 영이 되었다. 잠언 20장 27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람의 영(neshamah)은 여호와의 등불』이다. 신약 시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본질의 어떤 것도 사람 속에 분배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자신에 속한 어떤 것을 나눠주실 뿐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으로 거듭나고(요 3:5) 그분에게서 태어나도록(요 1:12-13) 사람 안에 자신을 나누어주기 위해 오셨다.

 

우리가 땅에 속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을 때 우리에게는 아버지의 본질과 본성이 우리에게 분배되었다. 우리는 지금 거듭난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는 양아버지에게로 입적된 양아들이 아니라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이다.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난 자들이다. 아버지의 모든 것은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분배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분의 유일한 것은 그분의 신격이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태어났지만 그분의 신격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분의 신격을 갖는다는 의미로 신격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우리는 그분을 경배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어떤 사람의 경배의 대상이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것은 신성모독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할렐루야 ! 나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고(골 3:4, 요일 5:12), 하나님의 본성이있다(벧후 1:4). 나는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과 똑같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고, 그분의 본성이 우리의 본성이다.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뛰어난 자녀들이다(롬 8:16, 요일 3:1). 우리의 한 찬송가의 마지막 구절은 『우리는 하나님과 생명에 있어서 조금도 다르지 않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창조 중 천연적인 재료는 그분의 건축 재료로 쓰일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본질의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만을 그분의 건축에 사용하신다.

 

정금산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는 먼지에 의해 괴로움을 당한다. 나는 텍사스를 좋아하지만 한 가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바람이 너무 세다는것이다. 많은 바람은 먼지를 가져온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 있을 때, 거기에는 먼지가 없을 것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정금으로 된 산이다(계 21:18). 이 산은 높이가 약 1,350마일로서, 거의 뉴욕에서 달라스까지의 거리가 된다. 새 예루살렘은 높이가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다(계 21:16). 1 스타디온은 600피트와 같다. 여러분은 그렇게 높은 산을 본적이 있는가? 만일 여러분이 하루에 27마일을 걸을 수 있다면, 걸어서 그곳에 올라가는 데 오십일이 걸릴 것이다.

 

금과 보석과 진주들

 

그 성의 벽은 열 두 가지 다른 보석의 기초 위에 벽옥으로 만들어졌다(계 21:18-20). 보석은 먼저 창조된 후에 압력과 열로 변화된 것이다. 그것들은 천연적일 뿐만 아니라, 창조된 후에 변화된 것이다. 신약에는 변화에 대한 강한 사상이 있다(고후 3:18). 열 두 대문은 열두 진주이다(21:21). 진주도 또한 과정을 거친 것이다. 진주는 죽음의 물 속에서 굴에 의하여 생산되는 것이다. 굴이 어떤 모래 입자에 의해 상처를 받았을 때, 그것은 모래 주위에 생명의 즙을 분비하여 그 모래를 귀한 진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진주를 낳기 위한 사망과 죽이는 것과 생명의 즙의 분비를 볼 수 있다.

온 성(城)은 .금과 보석들과 진주들로 건축되어 있다. 거기에서는 마루를 닦을 필요가 없다. 거기에는 먼지가 없다. 창조된 모든 것들이 변화되 었다.

 

변화된 인성을 가진 거룩한 건축

 

바울은 고린도 전서 3장에서, 유일한 기초가 세워졌는데 우리가 그 위에 어떻게 건축할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두 가지 범주의 재료로 건축할 수가 있다. 그것은 금과 은과 보석이든지, 나무나 풀이나 짚이다(3:10-12). 나무나 풀이나 짚은 모두 불에 탄 후에는 먼지가 되나, 금과 은과 보석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바울의 관념에는 창조된 천연적인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짚이다.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은 금과 은과 보석이다. 베드로가 주 예수께 나왔을 때, 그는 「흙의」 사람, 즉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이었다(창 3:19). 왜냐하면, 그는 아담 족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베드로는 흙의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그를 게바 (헬라어로 베드로), 즉 돌이라는 뜻으로(요 1:42) 부르셨다. 주예수께서 시몬이라는 이름을 베드로라 바꾸신 것은 베드로가 변화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베드로가 이 관념에 있어서, 특히 그의 첫번째 서신서에서 매우 강했던 이유이다. 그는 주 예수님이 산 돌 (벧전 2:4)이시며, 이 산돌에게 나아을 때 우리 모두가 영적인 집으로 건축될 산 돌들이 되리라고 말했다(2:5). 영적인 집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건축되지 않는다.것은 변화된 재료로 건축된다. 우리의 머리가 윤리나 철학이나 도덕과 같은 타고난 생각으로 완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신약에서 이 문제를 간과하게 된다. 그러나 신약 전체는 변화된 인성의 거룩한 건축이라는 이러한 관념으로 적셔져 있다. 성경의 결론은 금과 진주들과 보석들로 구성된 거룩한 성이다.

 

서로를 반영(反映)하는 성경의 두 끝

 

이 거룩한 성을 이루는 모든 재료는 창세기의 처음 두 장에서 발견된다. 창세기 2장에는 생명나무가 있다. 그 나무 옆에는 강이 있다. 강이 흐르는 곳에는 금이 있고, 「그 땅의 금은 정금」이다. 거기에는 식물의 생명에 의하여 생산되는 진주인 베델리엄이 있으며, 호마노도 있다(창 2:9-12). 이 뒤에 그 장의 끝에는 아담을 위한 신부가 있다(2:21-23).

 

계시록 21장과 22장에는 신부와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건축된 성이 있다. 그 성 안에는 강이 있으며, 강에는 생명나무가 있다. 이 여섯 가지 항목-신부, 금, 진주, 보석, 생명나무, 강-은 모두 창세기의 처음 두장에서 발견된다. 차이점은 창세기에서는 그 성이 아직 건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 가지 재료가 있었으나 성으로 건축되지 않았다. 약 육 천 년 후에, 하나님의 건축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모든 재료들은 성으로 건축되어간다. 여러분은 성경의 이 두 끝이 어떻게 서로를 반영하는지 보았는가 ?

 

1963년에 나는 텍사스의 타일러 (Tyler)에 가서 한 형제의 집에 머물렀다. 한 집회 후에 그의 친구 중 한 명인 순회 목사가 그의 집에서 수화기를 들고 텍사스의 플레인뷰 (Plainview)에 있는 자기 친구 제임스 바버 (James Barber)를 불렀다. 그는 제임스에게 어떤 대가가 들더라도 와서 내 말을 들으라고 했다. 다음 날 저녁에 제임스 바버는 그 집회에 왔다. 그날 저녁에 나는 성경의 두 끝이 서로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메시지를 전했다 이 제임스 바버라는 사람은 사로잡혔다. 집회 후에는 자기가 이 길을 택하는 데 매우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이것이 텍사스에서의 교회생활의 시초였다. 나는 성경의 시작과 끝이 서로를 반영하고 있다는 그러한 영광스러운 인상을 우리도 가질 수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그분의 재료가 되기 위해 변화된 피조물들로 그분의 영원한 거처를 건축하는 것-이다.

 

출애굽기에서의 하나님의 건축

 

이스라엘 자녀들이 시내 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분의 장막의 식양을 계시했고, 그들은 그것을 건축했다. 그것은 하나의 예표였다. 장막 안에 있는 지성소 안에 보이는 것은 오직 금뿐이었다. 판자에 금을 씌웠고 천장 위에도 금실을 볼 수 있었다. 제사장에게도 열 두보석으로 채워진 금으로 된 흉패가 있었다. 흉패에 있는 열 두 보석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있었다(출 28:15-21). 이것은 우림과 둠밈으로 그분의 자녀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알파벳」이었다(출 28:3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건축에대한 사상, 즉 보석을 사용하는 것을 출애굽기에서도 볼 수 있다.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건축

 

신약에서 우리는 건축하는 데 조심해야 된다는 명령을 받았다(고전3:10-12). 나무나 풀이나 짚, 즉 여러분의 타고난 사람을 사용하지 말라. 교회는 타고난 사람으로는 건축되지 않는다. 교회는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으로 건축된다. 여러분이 타고난 생명을 교회로 가져올 때 교회는 더이상 교회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 사역자들까지도 거듭나고 변화된 방법이 아닌 타고난 방법,육체적인 방법, 인간의 방법으로 교회를 교회 아닌것으로 만들고 있다.

 

베드로는 갓난 아기인 우리가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는 보석으로 변화되기 위하여 말씀의 젖을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벧전 2:2-5). 요한의 글은 특히 이 변화의 문제를 강조한다. 그의 복음서 첫장에는 하나님의 장막이신 성육신된 그리스도가 있다(1:14). 또한 요한의 계시록의 마지막 두 장에는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분을 믿는이들까지를 포함한 확장된 장막이 있다. 왜냐하면 이때에 와서는 그들이 거듭나고 변화되어 함께 하나의 실체로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새 예루살렘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 계시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어 그분의 건축으로 결론지어진다. 이 건축은 거듭나고 변화된 실체이다. 진주는 거듭남을 가리킨다. 이 때문에 모든 출입문은 진주이다. 거듭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요 3:5). 진주 대문으로 완전히 상징된 것처럼 거듭남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보석은 변화를 상징한다. 진주 대문을 통하여 이 왕국에 들어간 후에 우리는 점차로 건축을 위해 변화된다.

 

하나님의 장막

 

새 예루살렘은 영원히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장막이 될 것이다. 계시록에 있는 장막은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출애굽기 25장부터 40장에서 완전히 계시되고 묘사되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고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장막이셨다. 성경의 마지막 두 장에는 영원한 장막이 있다. 계시록의 마지막 두 장을 이해하려면 출애굽기 25장부터 40장까지와 요한복음 1장 14절로 돌아가 연구해야 한다.

 

모든 등대의 집합체

 

정금산에 있는 거룩한 성은 모든 등대의 집합체이다. 그 은성에는 하나의 길이 있는데 (21:21, 22:2), 이 하나의 길이 열 두 대문 모두에 도달한다. 어떻게 한 길이 열 두 대문에 닿을 수 있는가? 또 한벽은 높이가 일백 사십 사 규빗이고(21:17), 그 성 자체는 높이가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다(21:16). 이러한 사실은 그 성이 분명 산이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 산꼭대기에는 보좌가 있고, 거기에서부터 길이 바닥까지나 선형으로 내려와 열 두 대문에 이른다. 그것은 분명히 나선형 길로서 산 밑으로 내려와 열 두 대문 거의 모두를 돈다. 꼭대기에서 바닥에까지 내려오는 하나의 길이 열 두 대문 모두에 이른다. 이 정금산 꼭대기에는 중심인 보좌가 있다. 보좌 위에는 그 안에 하나님이 있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있다(22:1). 이 어린양은 그 안에 빛으로 하나님을 가진 등불이다(21:23, 22:5). 이것은 빛이 둥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어린양 안에 있음을 가리킨다.

이 높은 정금산이 하나의 등대이다. 이 등대 위에 등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금 등대이다. 그것은 등이신 그리스도와 그 안에 영원히 빛을 내는 빛이신 하나님이 있는 정금 등대이다. 그러므로 정금산 위에 있는 거룩한 성은 모든 등대의 집합체요, 오늘날의 모든 등대의 총체로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성과 그 길

 

그 성과 그 길은 맑은 유리같이 순수한 정금이다(21:18下, 21下). 맑은 금은 하나님의 본성을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성경 교사들은 예표에 있어서 금이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본질을 상징한다는 데 동의한다.

 

열 두 기초와 열 두 대문

 

열 두 가지 다른 보석들로 된 열 두 기초에는 열 두 사도들의 이름이 있는데 이것은 열 두 사도로 대표되는 신약의 모든 성도들을 상징한다(21:14, 19-20). 새 예루살렘은 신약과 구약의 속받은 모든 성도들의 구성체이다. 열 두 사도들은 신약의 성도들을 대표하고 있는 반면, 열 두 대문에 있는 열 두 지파의 이름은 구약의 성도들을 대표한다(21:12-13, 21上) .

진주는 성육신되어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산출된 성도들을 상징한다. 그분의 성육신 안에서 그분은 죽음의 물속에 있는 살아 있는 굴과 같았다. 다음에 그분은 작은 모래 입자들인 우리에 의하여 상처를 입었다. 이 상처는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 주위에 그분의 생명의 즙을 분비하게 하여 우리를 진주로 만들었다. 여기에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이 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 모래알들은 귀한 진주로 만들어진다.

 

보 석

 

보석으로 건축되는 기초와 벽은 거룩케 하는 영에 의해 변화된 성도들을 상징한다(21:19-20, 18上, 11下).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돌로 거듭나고, 보석으로 변화되었다. 흙은 돌로 거듭나고 보석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건축 재료로 사용될 자격이 있다.

 

그 성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

 

 성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는 마치 구약의 지성소가 정육면체인 것처럼 동일하다(왕상 6:20). 그것의 핏수는 길이가 이십 규빗, 넓이가 이십 규빗, 높이가 이십 규빗이다. 이것이 성전의 예표에 있는 지성소이다. 장막의 지성소는 십 규빗 곱하기 십 규빗 곱하기 십 규빗이다(출26:2-8). 이 두 경우에 있어서 세 차원은 동일하다. 그 원칙은 세 가지 동일한 차원의 건축물인,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지성소를 상징한다(계21:16). 그러므로 온 성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그런 곳이다.

 

성전이 없음

 

요한은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1:22)고 말한다. 이것은 온 성이 성전임을 가리킨다. 먼저 출애굽기에 장막이 있다. 그리고 좋은 땅에 들어간 후에 이스라엘은 성전을 세웠는데 그것이 장막을 대치했다. 성전이 세워지기 전, 사무엘 상 3장 3절에서 조차 장막이 성전이라고 불리웠다. 이것은 장막과 성전이 사실상 한 가지를 가리킨다는 뜻이다. 전자(前者)는 광야에서 헐 수도 있고 이곳 저곳으로 옮길 수도 있었다. 후자는 좋은땅에서 보다 영구한 건축물로 정착되었다.

 

그 거룩한 성은 장막이라 불리운다. 구약에서 성전은 예루살렘이라는성 안에 있었으나, 계시록 21장과 22장에는 온 성이 장막이요 성전이다. 이 성전은 하나님의 거처요 또한 그분을 섬기는 자들의 거처이다. 그때에 모든 성도들은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가진 제사장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분을 섬길 것이다(22 : 3). 그때에 우리의 거처도 성전이 될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그분의 구속받은 자들이 함께 거처하는 큰 성 전이다.

 

빛이신 하나님의 영광과 등이신 어린양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계 21:23).『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22:5). 빛이신 하나님의 영광과 등이신 어린양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영원히 새 예루살렘의 빛이심을 상징한다. 그 새로운 성에서는 자연의 빛인 태양이나 사람이 만든 어떤 등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빛이 되시고 그리스도가 등이 되시어 온 성을 자히도록하나님을 나타내싶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새 예루살렘에서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는 그 성(城)의 행정의 중심이다. 거기에서부터 길 가운데로 생명의 강이 흘러나오고 강의 양쪽을 따라 자라나는 포도나무인 생명나무가 있다(22:1-2). 그 길은 나선형이고 그 강은 길가운데 있다. 생명나무가 강의 양쪽을 따라 자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틀림없이 포도나무이다. 서서 자라는 나무는 양쪽으로 자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길을 따라 나선형으로 자라는 포도나무이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포도나무에 대하여 말한다(1절). 예수님은 생명의 나무인 포도나무이시다.

 

어떤 라디오 방송에서 한 성경 교사가 생명나무에 대해 질문을 받자 그는 생명나무는 끝났다고 말했다. 이것은 옳지 않다. 생명나무는 오늘도 있고 영원히 있을 것이다. 계시록 2장 7절에서 주 예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이 약속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생명나무는 예수이시다(요 6:57). 또 한편, 주 예수께서는 자신을 만나로 상징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6:48). 그리고 또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분이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고, 14장 6절에서는 그분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포도나무이고 생명이시므로 생명의 나무이시다. 창세기 2장 9절에서 생명나무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14장과 15장에서 그분은 실제로 오셨다. 그분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여전히 먹을 수 있는 생명나무시다.

 

강의 양쪽에 자라는 포도나무인 생명나무는 어린양 안에 있는 하나님이 새 예루살렘의 중심이며, 그곳을 만족시키고자 양분을 주기 위하여 그분의 거룩한 생명으로 그곳에 공급하시는 것을 상징한다. 가운데에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그 길은 산꼭대기로부터 나선형으로 내려와서 교통 (fellowship)을 위하여 그 성의 네 면에 있는 열 두 대문 모두에 이른다(22 : 1-2). 그 길은 왕래를 위한 것이며, 왕래는 교통을 위한 것이다. 요한 일서 1장 1절과 3절은 이 거룩한 생명으로부터 거룩한 교통이 나옴을 보여 준다. 길과 강과 생명의 나무는 교통을 위한것이다. 오늘날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흐르는 강과 자라나는 나무가 있는 그 길을 따른 이 교통 안에 있다.

 

신부, 어린양의 아내

 

최종의 완성은 신부, 즉 어린양의 아내이다 (21 : 2,9). 거룩한 성 전체가 신부이다. 요한의 복음서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를 시기할 때 요한은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라고 말했다(요 3:26-29). 신랑의 친구인 요한은 그를 따르던 자들이 그를 떠나 예수에게 갔을 때 기뻐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신랑이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에서의 거듭남은 신부의 산출을 위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영원히 단체적인 여성일 것이다(계 21:2). 영원히 유일한 남성은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구속자, 우리의 주님이시다. 우리는 그분과 결혼할 단체적인 여성일 것이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의 이중 역사-창조와 건축-로부터 나오는 것은 한 쌍의 부부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결혼하고 사람은 하나님과 결혼한다. 성경 육십 육 권의 결론에 계시록 22장 17절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이라고 말한다. 성경의 결론은 한 쌍이 말하는 것이다.

 

그 영과 결혼하는 신부가 구속받고 거듭나고 변화되고 영광을 얻은 세 부분으로 된 모든 사람들의 최종 완성이다.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최종 완성인, 만유를 포함한 영이다. 그 영은 우리에게 도달한 삼일 하나님이시므로 도달한 이 분이 완성이다. 그분은 성육신과 인생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과정을 통과하셨다.

 

오늘 우리의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으며, 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성육신은 하나의 과정이다. 성육신된 이 분이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이 땅을 사셨다. 삼십 삼 년 반 후에 그분은 도살하는 자에게 어린양처럼 끌려가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이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다. 그분은 음부로 들어가셨고(행 2:27, 엡 4:9), 부활 안으로 들어가셨다. 이것 또한 과정이다. 분명히 이 모든 단계가 그분이 거치신 과정이다. 오늘날 우리의 하나님은 성육신되기 전의 그분과 같을 수 없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성육신되기 전의 하나님과 같다고 믿는가?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한다. 여러분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래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다고 말하면 나는 여러분에게 동의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구절이 예수가 성육신되기 전에도 사실이라고 한다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분은 육신이 되기 전에는 육신이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구속주가 되셨고, 구원자가 되셨고, 우리의 생명이 되셨다. 그분은 오늘 우리 안에 있는 풍성하고 넘치는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그러므로 성경의 결론에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완성이 있으며, 한편 그 아내는 구속받고 거듭나고 변화되고 영광을 얻은 세 부분으로 된 모든 사람들의 집합체이자 완성이다. 할렐루야 ! 삼일 하나님이 세 부분으로 된 사람과 결흔한다. 여기에 영원히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는 영원한 한 쌍이 있다.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은 영원 가운데서 이풍성한 삼일 하나님을 누릴 것이다.

 

우리는 선택받고, 예정을 입고, 부르심을 받고, 구원받았으며, 거듭났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고 그분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 위해 귀한 재료들로 변화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목표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집과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몸으로 건축되기 위하여 변화되어 간다.

(위트니스 리, 성경의 기본 계시, 제 8 장 새 예루살렘 - 최종 완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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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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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Eunice | 작성시간 08.09.08 아~멘! 으로 화답합니다. 그런데 제목에 오타가 있네요^^*
  • 답댓글 작성자Jaso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09.09 지적 감사합니다. 어찌 그런 실수를 범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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