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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언덕

답변 감사합니다.

작성자그린|작성시간08.10.14|조회수38 목록 댓글 0

안녕하세요. 갓맨님 답변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가 믿는 기독교에 정말 구원이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여러 종교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는 평소 교회나 집에서 예배나 기도를 하면서, 마음에 평안과 기쁨,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는 위로를 느끼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지금 나를 간섭하고 도와주시는 거구나'라는 마음이 들었고 그런 감정적 힘이 저의 신앙생활의 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즉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나 우리가 예배하거나 기도할 때 분명 경험하게 되는 '실재'로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의 느낌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실적 증거가 되었던 셈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종교인들도 충분히 도덕적인 삶을 살며 평안함과 우애 가운데서 사는 게 분명해 보이자, 저는 더 이상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는 제가 아는 교회 다니는 친구(목사님의 딸)에게 이 문제를 물어봤습니다. 그 친구도 그런 고민을 했는데 자기는 중학교 때 방언을 처음 받은 날을 잊을 수가 없다는 군요. "저항할 수 없는" 뭔가를 느끼면서 방언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가끔 방언을 하면서는 어느 정도 의식 있는 방언을 하는 듯하나, 그래도 맨 처음의 방언은 전적으로 외부적인 요인이었다고 말하네요. 그 친구는 방언이란 개인적 체험이 제 질문의 답변이었습니다.

 

친구가 덧붙여서 다른 종교들은 짝사랑이고 기독교는 성숙한 사랑이라고 믿는다고 합니다. 다른 종교는 인간의 노력으로 신을 향해 다가가는 데 반해, 기독교는 신의 자기 계시 즉 '은혜'가 있기 때문에 양방향의 성숙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던군요.

 

아쉽게도 저는 방언을 해본 적이 없고 그 어떤 영적 체험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군요. 그러나 이제 새롭게 깨닫고 제 태도가 바뀐 부분 3가지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의 평안을 주노라 약속했던 사람들은 예수를 약 3년간 쫓아다닌 11명의 어부였습니다. 바로 이점입니다. 저는 한번도 제자들처럼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산 적이 없습니다. 즉 저는 주제 넘게도 3년간 예수님과 동행했던 사도들의 평안을 왜 나는 느낄 수 없냐고 불안해하며 의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한 평안(the peace of the Holy Spirit)을 제자들이 받게 되면서 초기 기독교가 태동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을 통해 어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는지 사도행전에 잘 나와 있습니다. 저는 성서의 기록을 토대로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종교적인 영성을 가진 존재로서 모든 인간이 종교를 통해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느낄 수 있지만, 성서가 약속하고 있는 그것은 실재적이며 객관적인 것(그것을 경험하면 반드시 명확한 변화와 차이가 드러나는)이라고요.

 

2.

저는 이제 저 자신의 감정과 제가 다니는 교회의 분위기를 통해 '영성'을 판단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만일 저와 저의 교회가 경험한 그런 정서적 체험 '전부'가 정말 하나님의 임재였다면 제 삶과 우리 교회, 나아가 한국교회는 진작에 변화되었어야 마땅합니다(물론 상당 부분 놀라운 성과도 있지만). 왜냐하면 바울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으며 또 반드시 그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고린도전 4:20). 저는 이제 우리가 상상적으로 구성해낸 하나님과 거룩함에 대한 이미지와 하나님 그 분을 더 엄격하게 구분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도하고 예배할 때마다 제 감정을 객관하라려다 보니 아무래도 '흥'이 떨어지고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통해 신앙의 겸손을 배우고 경솔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3.

저는 의심이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저의 의심들은 상당 부분 감정적인 의심입니다. 마치 수술 받기 전 환자가 두려워 하는 마음 처럼요. 이제 부터는 저의 믿음을 감정이 아닌 '2,000년 전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두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저의 기분 상태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팩트에 저의 믿음의 기반을 두고자 노력할 생각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믿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도들이 그것을 증거하며 죽음도 피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기다림과 인내를 배워 볼 마음입니다. 성서를 보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조상도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것이 일생에서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불확실하나... 그렇기에 우리는 이것을 '믿음'이라 부르며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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