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글/생명강가(2009.9.28)
월요일 아침, 서둘러 광주에서 열리는
목회자 세미나 봉사를 위해 집을 나서는데
아들도 광주에 볼일이 있다며 따라 나선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아들과 나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아들에게 회복의 참된 진리도 배울 겸
전 시간 훈련에 들어갈 마음은 없느냐고 물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들은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기에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더니 어려서는
부모의 강요로 마지못해 교회생활을 하였지만
이제 자신의 인생까지 구속받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들은 대학2년, 군복무2년 동안 친구 따라서
몇 번 기독교 모임에도 참석해 보았는데,
오히려 청년들을 향한 시스템은 그곳에 더
좋은 점이 많더란다. 그리고서 심통이 나는지
회복이 특별히 그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따지듯 되묻는다.
나는 그런 아들을 대하기 힘들고 부끄럽다.
그렇다고 해서 한 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수원 원천동의 한 신학대학원에 가 보면
정말 명문대를 졸업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는데 그들의 학문과
인품이 뛰어남을 나도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이 회복의 길을
왜 가야만 하는지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아들이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는 서문할아버지,
즉 지금은 음성교회에서 봉사하시는 형제님께서
지금의 내 나이 때쯤 교회에서 한창 봉사하던 시절,
수원교회 형제님들과 어떤 일로 심히 다투게 되어
따로 형제님 댁에서 모이고 있을 때였는데
나는 그곳에 이사를 했다가 형제님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었다.
“아니!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서문할아버지가
교회에서 다투고 따로 모였단 말이 사실이에요?”
아들은 평소 아버지가 존경하는 서문할아버지가
교회 안에서 다투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던지
의외라며 관심을 보였다.
그 당시 나는 지금 아들을 낳았을 무렵인데,
말씀을 배우던 중, 성경에서 떡 떼는 것을 발견하고
형제님께 왜 우리는 모일 때 떡을 떼지 않느냐고
여쭈었더니 형제님께서 매우 난처해하시더니
마지못해 대답하시길..
“형제여, 우리가 비록 사정상 수원교회 형제들과
지금은 함께 모일 수 없지만, 그러나 그 형제들이
떼고 있는 한 떡을 양심상 따로 뗄 수는 없습니다.”
라고 하시었는데 그 때 나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회복은 기독교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인격을 사는 생활이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참된 믿는 이들로서, 그 후 나는 형제님과 함께
회복되어서 주님을 영접한지 3년 만에야 비로소 수원
교회에서 떡을 뗄 수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 이야기는 영광스러운 회복의 작은 단면이지만
성경보다는 무협지 소설을 많이 읽었을 아들은
“우와! 아버지도 상당한 내공이 있으신데
서문할아버지는 완전히 ‘은닉기인’이시네요?
회복도 다투기는 하지만 몸의 하나를 위해서
양심은 지키는군요?”
아들은 감동스럽다는 듯이 내 손을 끌어다
연거푸 입을 맞춘다.
그래, 회복은 서문할아버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이 시대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를 지킴으로 인하여
삼일하나님과 사람의 영원한 합병체인 새 예루살렘을
이루고자 이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아들과 충분히 교통을 나누게 되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아들을 내려주고
나는 세미나 장소로 이동하는데 움직이는 차를
향하여 아들은 순복한다는 뜻으로 장난스럽게
큰소리로 거수경례를 하며 존경을 표한다.
그런 아들이 밉지 않고 여전히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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