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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본 글,2

[스크랩] 폐 시 상18 어머니-인생은 아름다워....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 박은옥 , 정태춘

작성자古今|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내가 전에 '물감장사'라는 시 소개하며 모성을 그리며도

감사나 그 비슷한  서정을 느껴내지 못하도록 자신만 들여다 보는 시였어도

그조차 이해되고 마음간다고 소개 했었지요?

어째 난 그리도 시인의 속내를 살필 수 있었을까요?

내가 세밀토록 시를 감상해 낼 재주가 있나요?

아뇨 아뇨 바로 내가 그리 살았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얼추 이 못난이의 얼개를 아실만 하시지요?

가난뱅이에 공부도 못하고 장애있고

그래도 세상없는 대접받고 산 나!!!

그속엔 내 어머니의 집념과 사랑이 있었지요.

이눔이 남에게 손가락질 안받고 살게하겠노라는....

 

난 제정신 나면 그 생각을 했고

내가 이리 마음을 곱게하고

글쓰기를 게을리 않으면 언젠간 내 어머니 얘기를 쓸테야.

하고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헌데 이제 유한 책임으로 내 삶이 제한되었고

그런데도 내 글은  내 어머니를 담기엔 여태도 너무 지저분한 거얘요.

내가 담을 수 없었어요.

해서  마음 아파 지내던중 생각해 낸 거 얘요.

꼭 장편을 싸야되는 것도 아니잖니

 아직도 남은 생 동안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죽는 날까지 네 마음을 글에 담는 연습을 하자꾸나

 꼭 쓸 수 있기위해서라기보다도 

이도 아니면 무슨 의미로 나머지 인생은 살아가겠니?

또 그러노라면 언젠간 어머니에 대한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잖니

마음이 그리 돌아가 돌이켜보니

하나님이 감사하게도 천형이라는 치매는 내게 주시지 않은 것 같았다..

해서 이 '폐시상'으로 주저리 주저리 글을 쓰고 있는거죠.

이전에 내가 이십오년간 쓴 글들의 도움도 받아가면서요.

 

예전에 바그너의'니벨룽겐 반지'를 듣는데 아니 그걸 수십년에 걸쳐 썼다는 거얘요.

로시니 같은경우엔 10일 남짓에 작곡 하기도 했다는데 말이죠.

아마 '폐 시 상'을 말하면 이다음에 25년여에 걸쳐 썼다고 하려나요?

그러도록 좋은 글이 됬으면 도 싶네요.

저처럼 주저리 주저리 쓴 글은 그럴 일 없다고요?

저기 여러분 혹시  주요한이란 분 아세요?

네에 '아네모네 마담'이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글 썼던 주요섭의 형이요.

맞아요. 주요한 이니는 '불놀이'란 시도 썼어요.

그분 글중엔 '봉천식당' 이란 글 있어요.

그분은 중얼중얼 혼잣말 하듯이 썼어요.

언제 한번 읽어보세요.

제가 지독히 좋아하는 알퐁스 도오데도 그런 경향이 있죠?

 

내 어머니는 14살 때 외할아버지 댁에서 일하던 머슴과 도망쳐서

산 분이다.

당시 왜정시대였고 어머니는 일본 분 이셨죠.

외할아버지는 일본 시모노세끼 건너편 모지에서 과일가게를 하던 분이셨는데

그곳과 서울그리고 만주의 봉천(지금의 신양)에 가게를 내시곤

서울에서 세곳으로 물건을 보내고 관리하시고

어머니와 여동생(내게는 이모)과 남동생(외삼촌)만 모지집에서 학교를 다니게 하셨대요.

방학때면  서울에 와 외할아버지 가게에 있곤 했는데

당시 서울을 아시는 분이면 남대문시장과 신세계백화점 사이의 곳에

일본인들의 과일상이 있던 시장을 아시리라

어머니 말씀엔 그 시장 골목엔 일본사람이 하는 과일가게가 다섯개 있었다했다.

거기서 외할아버지는 한국사람을 몇명 데리고 과일가게를 하셨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일본 집으로 가기 싫으셔

외할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한국사람을 쫒아 봉천으로 도망치신 거였다.

 

도망치시던  한 에피소드를 말씀하시곤 했는데

기차를 타고 가던중 일본 순사에게 검문을 당했고

우리 아버지는 벌벌 떨고 있었는데 중2학생이던 어머니가

아버지 심부름으로 봉천가는 길이라고 하도 뻔뻔히 말해서 놓여났다는 거 였다.

 

사변후 내가 걷게 된 후

여쭈면 그장면은 때마다 조금 달랐는데,

너무 힘든 시기면 그때 잡혀서 돌아왔으면 이고생 안했을텐데라는 신세 한탄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전체의 대강은 그랬더라면 너희들도 못낳았을 테니 그건 싫다셨다.

 국민학교도 안다닌 아버지가 뭐가 좋아 따라갔냐면 

 느이 아버지가 키가 크잖니 라 셨다.

 우리 아버지는 학교 문턱도 안간 분이 언어는 굉장하셔 당시 일본말도 잘했는데

 봉천 살 때는 중국어도 잘 했다고했다.

그게 참말인 게 아버지랑 중국집 가면 중국얘기를 좀하시면

그 돈엔 지독하다는 중국인 주인에게 서어비스 음식을 얻어먹곤 했다.

 내가 아버지가 뭐랬냐고 하면 자신도  그양반 고향 가차이서 오래 살았다고 하면

그들이 서어비스를 준다는 거였다.

 

봉천에 있을 땐 어머니가 일본사람이어서 쌀배급소를 했다고 했다.

그땐  돈을 말로 벌었다고 했다.

그러다 외할아버지 가게가 봉천에도 있으니 붙들렸는데 그땐 이미 형을 낳은 후 여서

외할아버지도 어쩌지 못했단다.

어머니가 1920년 생이시니 1943년 내지~ 4년됬을 때는 세상이 하 수상하다고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돌아갈 준비들을 했더란다.

 

바나나는 후숙과일이다.

외할아버지는 일본으로 돌아가셔야 하니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불러

가게를 물려주며  가게는 잃어도 좋지만

바나나 후숙시키는 기술은 남시키지말고 니네가 꼭 직접해라

그러면 절대 배곯진 않을 꺼 라고 했단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무언진 아는가?

산수?

영어?

돈 벌기?

아니다 번 돈 지키는 게 제일 힘들다.

세상에서 제일 냄새나는 게 뭔지는 아는가?

그건 돈이다.

 

나도 이젠 살만큼 살았으니 말하는데

내게 돈이 있으면 내가 거절 못할 이들이

꾸던지 빌리던지 달라던지 집어가던지 하는 일이 생긴다.

허니 정말 웬만치 독하지않으면 지키기 어렵다.

용케도 그들은 내게 있는 돈냄새를 잘 맡는다.

 

전후 내가 걷게 된 후 생활비를 받어 오라시면 가게까지 심부름도 다녔다.

가게에 가면 어버지는 놀음방에 계시든 했고

바나나 후숙은 우리집 종업원이 했으며

그들은 후숙에 들어갈 카바이트와 얼음량을 익히면 다른 가게로 스카우트되어갔다.

모르긴해도 바나나 후숙은 우리 아버지 가게가 온 남대문 시장에 일러 줬을 게다.

 

우리 어머니께 세상은 돈짝 만했다.

고생이란 모르니 자신이 맘만 먹으면 뭐든 해낼 수 있었다.

헌데 내가 걷기 시작하며는 고생 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1964년  동경올림픽이 열렸고 

이 해 초에 내 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께 가서 그 많은 돈을 다잃었고 가게도 날렸고 남편까지 잃었느냐고

이제부터는 애들을 직장에 보내라셨다고들었단다.

 

아버지만 그렇게 기르세요.

난 애들이 공부하고싶다면 끝까지 시킬 거 라 하곤

다신 아버지 안볼 꺼라고  뒤도 안보고 돌아오셔

날 붙들고 뒤란서 우셨다.

그게 내 어머니 우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눈물이다.

동경서 돌아오며 어머니가 배워온 노래가 '스끼야끼' 란 곡 이었다.

 

일본은 동양서 가장 처음 올림픽을 개최하게되어

자국민중 외국에 사는 자기네 교민은 모두 초대했다.

때마춰 사마모토 큐의 노래가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는데 제목을

세상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해서 제목을 누구나 쉽게 알게 스키야끼라는 일본 유명 고기 요리로 했다.

 

외할아버지 돌어가셨다고 연락왔을 때도 안가셨다.

우리식구끼리 좀 더 노력하며 살자 시기만 했다.

그러면 뭐든 이룰 수 있다 셨다.

 자신은 믿지도 못하면서 그리말 한 게 아니셨다.

 언제나 그리 생각하셨고 그분껜 낙망이란 없었다.

 돈짝 만한 세상을 사신 분

그러니 꼴등 아들도 언젠간 잘 할꺼라 믿어주었고

 앉은뱅이도 언젠간 걸을 꺼라 의심없으셨다.

 

                                                             

위를 보고 걷자/사까모토 큐

 

위를 보고 걷자.눈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기억하는 봄날 혼자 밤 위를 보고 걷자.

뾰족한 별을 들고 기억하는 여름날 혼자 밤

행복은 구름 위에 행복은 하늘 위에

위를 보고 걷자.눈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울면서 걷는 혼자 밤 기억하는 가을의 날 혼자 밤

슬픔은 별 덕분에 슬픔은 달에

위를 보고 걷자.눈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울면서 걷는 혼자 밤 혼자 의 밤

   

 

인생은 아름다워

2011 . 6. 7.

.

.

.

어머니는 오늘도 못주무셨다.

난 내가 저지른 일상을 입도 뻥끗 못했다.

돈도 잘 벌고 아무 염려없는듯 용돈도 드리고

흰소릴 쳤다.

일 잘 해서 휴가를 줘서 잠시 엄마보러 왔노라고....

 

동생과 마눌의 조용조용한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질금질금 우는 마음이 됬다.

이런 어머니께 난 불효한 놈이다.

거짓말이나 하고.....

어머니는 머리를 쓰다듬고 나가셨다.

 

 

아내는 낙담한 표정으로 내가 이 며칠 저지른 일들을 말하며 내 동생을 쳐다보고 있었다.

십년이나 어린 동생이다.

헌데 어젠 마눌의 언니같았다.

 

언니 0서방에게 알아보라고 했어요.

회사 의무실들 알아보라고...

남자들은 너무 불쌍하잖우.

해서 언제나 큰소리치구

언제나 행동이 크지만 그게 다 겁이 많아서잖우?

울 짝은 오빤 좀 덜한 편이라구 생각했더니

오빠도 별 수 없이 남자지 뭘 그러우?

 

-어휴 근데도 지 옳다구 언제나 화만 내구...

 

내 이야기 좀 들어보실라우?

얼마전인데 회사서 늦게 들어와 샤워하구 있는데 전화가 오더라구요.

해서 내가 핸폰을 받았잖겠수?

했더니 회장이래요.

그래 목욕실을 노크했더니

나 목욕하는데  기달리라지 왜 그래!

하구 벽력같이 소리치는거야.

해서 입을 가리며 회장 회장 이라구 했더니

화들짝 문을 열고 닫을 생각도 못하고

네 0이삽니다. 하더라구.

그리고 그 회장 전화에 온 신경써서 대답하느라구

욕실문도 안닫고 네네 대답하더라구요.

자기 장모님도 계신데 자기 아들들두 있는데 털렁털렁하며

온 신경은 전화에만 쓰고 있는데

난 어찌나 남편이 안됬는지

에구 저렇게 식구들을 벌어먹이려구 애쓰나 하니깐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게 남자들인데

무슨 조그만 죄로 죄인취급하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그 사람이 못나서라고 생각하구.

아마 오빠도 못견딜만 했을꺼유.

알아 보랬으니 급살로 알아 볼 꺼얘요.

 

 

형님 며칠 쉬시다 가세요.

오늘은 늦을꺼야, 저녁도 먹구 들어올꺼야.

 

-그래, 자네두 몸조심하고....

 

점심먹고 동생은 여기 커피전문점이 아주 맛있는 집이 있다고 커피 마시자고

나와 어머니 그리고 마누라까지 데리고 나갔다.

저 어머니는 무슨 낌새를 눈치채셨나?

벌써 내게 이것저것 여쭈셨을 꺼 같은데 아무 말씀 없으셨다.

여동생만 어색함을 깨 부수려는듯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다.

자기네 회사 기사양반 얘기며,

자기 친구 이야기

자기네 아이들  이야기......

 

언니 여기 에스프레쏘 꼼빠니아 맛있어 그거 해봐요.

오빤 그냥 카페라떼 드셔요.

여기 라떼도 맛이 좋다우...

엄마와 나도 에스프레쏘 먹자구요.

그리고 우리 케익보단 허니브레드를 먹어요.

먹으며도 자리는 무거웠다.

그러자 동생은 오빤 마음이 힘들면 조금도 못 참는다며

흉을 보더니 남자가 얼마나 맹꽁이들인지 강의를 할 태세였다.

 

그때 내 핸폰이 울었다.

난 자리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전화였다.

네에 소아과장 古今입니다.

동생은 저봐저봐 자기가 소아과장이란다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난 동생 눈에 0서방같이 비칠까봐 밖으로 나갔다.

 

간략히 얘기하자

자기는 00병원 총무이사란다.

자기 후배가 내가 근무한 그병원에 있었는데

자기네 병원에 소아과장이 그만 두었다니 날 소개했단다.

나도 그병원을 알고있다.

자기네 병원서 일해주실 생각있냐고....

난 내일 찾아뵙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동생은 남자가 얼마나 바보들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던 걸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들어가자 아내는 무슨 전화였는가 물었다.

내일 면접보러 오라네?

당신이 어디 알아보기나 했우?

아니?

근데 어떻게 알았대요?

난 전화이야길 했다.

 

아내눈이 벌겋게 젖어갔다.

동생눈도 그랬다.

얘들은 재수없이 좋은 일에 왜우니?

엄마, 엄마두 알았수?

몰랐지만 평일에 내려오구

XX 가 니 아내하구 수근대는데

뭔 일이 있다는 것두 모르겠니?

내가 알면 걱정할 일이구나... 했지...

 

남의 어머니들께선 치매로 고생하니 뭐니 하는데 난 어쩌면 저런 어머니를 가질까?

우리어머니는 아흔셋인거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음속으로 뇌이고 뇌이고 또 되뇌이고 있었다.

 

동생 전화가 울었다.

으응, 그래애..여보 수고했어요

근데 오빠 취직된거같아요.

당신도 내 말 들어줘서 고마와요.

오빠네 지금 당장 올라가야된데요.

 

동생은 전화를 바꿔주었다.

-날쎄 미안허이,

잘되었어요.

zz케미칼에서 의무실장 뽑을 예정이라는데

거기 전임은 왜 그만두었냐니 일이 너무 없어 심심해서 그만두었대서

XX에게 이렇다는데 형님은 어떠실까? 했더니

이런 좋은 소식듣게 됬네요.

조금 더 계시면 좋은데 오늘은 직원들 회식에 가야되네요.

-아냐아냐 난 나잇값도 못하고 미안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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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 박은옥 , 정태춘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마
막차는 생각보다 일찍 오니
눈물같은 빗줄기가 어깨 위에
모든 걸 잃은 나의 발길 위에
사이렌 소리로 구급차 달려가고
비에 젖은 전단들이
차도에 한 번 더 나부낀다
막차는 질주하듯 멀리서 달려오고
너는 아직 내 젖은 시야에 안 보이고
무너져 나 오늘 여기 무너지더라도
비참한 내 운명에 무릎 꿇더라도
너 어느 길모퉁이 돌아나오려나
졸린 승객들도 모두 막차로 떠나고

 

 

그 해 이후
내게 봄은 오래 오지 않고
긴긴 어둠 속에서 나 깊이 잠들었고
가끔씩 꿈으로 그 정류장을 배회하고
나의 체온 그 냄새까지
모두 기억하고
다시 올 봄에
화사한 첫차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내 영혼
비에 젖어 뒤척였고
뒤척여 내가 오늘 다시 눈을 뜨면
너는 햇살 가득한 그 봄날 언덕길로
십자가 높은 성당 큰 종소리에
거기 계단 위를
하나씩 오르고 있겠니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마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오니
어둠 그쳐 깨는
새벽길 모퉁이를 돌아
내가 다시 그 정류장으로 나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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