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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본 글,2

[스크랩] 폐 시 상10 기독교-성장2, 성장1...Que sera sera/Doris Day

작성자古今|작성시간26.06.19|조회수1 목록 댓글 0

난 훌륭한 또 성실한 교인은 아니다. 

내가 책도  음악도 정말 갈망하고   원해서 구하지 않았듯이  

기독교도 내 멋진 신앙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름이 아니었다.

 

 서울서 난 전쟁통에 경안으로 피난 가던 중

가래톳으로 의원서 배농하다  생긴 고관절염으로 앉은뱅이가 된 아이였다. 

내가 걸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셨던 할머니와 어머니게 

마침 앉은뱅이도 걷게한 교회를 다니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가 목회자도 아니고 친척의 누구도 아니었던 것 같은게 

그런 말을 해 준 이에 대해 여러번 두분께 여쭤 보았어도

듣긴 한 것 같은데 특별한 사람으로의 기억은 두분 다 갖고 계시지 않았다.

 

전 후 먹을 것도 부족한 때 

밥짓는 것에서 한공기씩 빼어 성미를 갖고

날 업고 청량리 밖까지 박장로 교회를 다니셨다.

예배시간에  꽹가리를 치면 저 뙈놈들이 쳐들어오던 생각이 난다고 

기겁하시며도 계속 다니셨다..

그게 내가 교회를 다닌 첫걸음이었다,

 

어머니가 날 공부시키고싶다고 하자 할머니는

집안 살림을 자신이 도울 테니 업고 다니라셨다.

그후 절름 거려도 걷게 되자  할머니와 어머니의 교회생활은 끝났는데

나는 부활절과 성탄절날만 교회를 갔었다.

 

내가 수술후 돌아왔을 때 내 친구들은 모두 오학년이 되었는데 나는 이학년 반에 갔었다.

그러나 난 먼저도 말했듯  책만 읽으며 이년여를 지냈으니

국민 학교 이학년 아이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로 오학년으로 월반을 시켜줬는데

이로 난 구구단도 모르는 오학년이되었다.

그런데도 다리에 힘을 길러야 된다고 

학교가는 날 보단 놀러다니는 날이 더 많았다..

 

중학교를 가야하는데

내성적 정도로 갈 수 있는 중학교는 거의 없었어서 경신중학교엘 들어갔다.

그곳은 미션스쿨이었다.

교과목에 성경공부도 있었지만 주일마다 교회에 간 도장을 받아와야 했다.

이로 다시 교회를 다녔다.

  

내가 중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그때 아무리 구차해도 울지않으시던 어머니가 날 붙들고 우셨다.

형은 대학을 나와 군대에 갔고 누이는 고3이었고

국민학교 사학년 남동생

그리고 학교도 안다니던 막내동생.

아버님 돌아가시고 두달 후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그제서야 어떻게 살아야 하나란 생각을 처음해 보았다.

학교서도 뒤서부터 세는게 편한 나,

나는 어떻게 사나?

난  바로 밑 동생의 교과서 부터 다시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 일학년 이학년 책을 혼자 다시 보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거 말곤 또 할 줄 아는게 없었으니...

 

가만 생각해보면  난 벼랑끝만 걸으며 산 거 같다.

 

정말 책보는 거 밖엔 할 게 없어 잭만 봤고

내가 어찌 살아야 할까 생각할 땐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건 공부 뿐이었다. 

내가 반에서 중상의 성적을 계속하자, 담임 선생은 나만 따로 교무실서

시험을 보게 했다,

그러자 다른 선생님들도 날 부정한 학생 취급을 했다.

헌데 그랬어도 성적이 더 좋게 나오자 담임선생님은 교무실로 다시 불러서

자신이 열심히 공부한 나를 의심했었노라고 얘는 그런 애가 아니라고

선생님들 다 계신 곳에서 사과하셨다.

중학교 마칠 때쯤은 반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이됬다.

그러나 고등학교도 다시 낙방하자 경신 고등학교를 다시 다녔다.

 

난 나를 의심했던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그분은 내게 사과하시기 전에 눈을 감고 기도 하셨었다.

그리곤 모든 선생님 앞에서 자신의 잘 못을 사과 하셨다.

난 내가 전교서 꼴등이며도 학교를 다니게 해준 내 모교를 사랑한다.

만일 내가 미션스쿨이 아니고 다른 학교갔더라면

날 의심도 안했을 게고 

공부못하던 학생인 내게

하나님앞에 용서를 구하고 내게 까지 사과할

그런 선생은 아마 없었을 껄로 생각한다.

그랬더라면 아마 난 공부에 관심을 가졌던 그 결심마져 해이해져 버렸을 꺼다.

그러나 모든 선생님들이 교인이었고

특히나 그분은 자신의 의심을 가슴저리게 후회하셔서

내게 그런 사과를 해주셔서

내 결심이 무뎌질 틈조차 허락 안하셨던 거라고 믿는다.

 

이후로는 성적은 쉬이 올랐다.

그건 내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다.

선생님이 인정해 준 모범생이 된거다.

반에서 저 뒷쪽의 학생이.

지금도 자신의 과오를 그 선생님처럼

통렬히 돌이킬 수 있는 어른은 그리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일차 고등학교는 떨어졌지만 

고등학교와선 반에서 일이등을 다투는 정도의 학생이 되었다.

이 당시를 난 내가 번민하고 고민 할 때마다

무던히  당시를 돌아보고 어려움들을 이겨나갔다.

 

오십이 됬을 때 이 중학교 때 일을 생각하며 내번민을 이겨냈다고 생각하며

그때 나 중학생 때 일을 추억하며 쓴 시가 있다.

그걸 아래 실으며 그시도 내게 어떻게 찾아왔을까 생각 해보면

난 참 인복도 많았었음을 고백한다.

어쩜 저리도 시인같은 선생님들이 다가 왔었는지....

 

난 'RED SAILS IN THE SUNSET'이란 팝송을 통해

우리에게 삶의 목표를 어떻게 쫒아야 되는지 일러주셨던 

영어 선생님 이야기를 쓴 적 있다.

그리고 세상 무서울 것없는 '중 이'라는 시절을

곱게 지켜낼 수 있게 도움이 필요하던 때

날 도와준 신앙과 그믿음안의 은사님들...

그때의 나를 그려둔 걸 들려드릴 테다.

그러면 믿음과 그 믿음을 도왔던 스승님들이 그려지실게다.

 

성장2/ 古今

 

2002.04.26. 11:32

 

주일 아침이면
동네 어귀에서 친구들은 두패로 갈려
교회갈 친구들이 한데 모이고
안다니는 친구들이 따로 모였다.

안다니는 친구들은 모여
삼송리를 가자,뚝섬을 가자커니
버스비를 모으고,용돈을 마련할 때
호주머니를 들여다 볼 것도 없지만
만지작거리던 빈손으로
어쩔 수 없이 교회가는 켠에 서선
에덴 화원집 아이와
예배시간에 쓸 화분을 들고 교회로 가고.

잠깐 다른 동네 아이들의 얼굴을 만나곤
예배에 들어가면 예배시간 내내
염보돈 없음에 신경쓰다,
예의 그 긴 막대끝의 염보주머니가 내 앞에 오면
빈손을 그안에 넣으며 짧지만 간절한 기도를 했다.
주님 나도 염보돈울 갖고 손이 부끄럽잖게 해주세요!

친구들 손이 들어갔다 나올 때면
동전소리가 짤랑거렸는데
내가 손을 넣었다 뺄 땐 소리가 안난 걸
누가 눈치 챌까봐 염려했고
하나님은 다 아시는데 하나님은 두려워 않고
주위의 누가 눈치챌까만 두려워하는 걸
깊이 깊이 회개했었다.
이 회개는 언제나 내 일생중의 내용이었고
내 믿음, 내 삶의 푯대였다.

 

그래 하나님께 죄스럽지 않다면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게다.
주일마다의 일에 내 마음은 자랐고
어쩌다 염보돈이 마련되어 교회에 가면
귀에 쏙쏙 들어오던 목사님 말씀.
그리고 떳떳하던 기도 내용.

주여 ,
과부의 두 렙돈이 가장 크면
그녀의 아들도 찢어지게 가난하오니,
그의 두 렙돈도 가장 크게 받아주옵소서. 

 

성장1

1999.04.25 10:02

 

창신동 언덕배기 시작녁의
파란대문집 마당에 있던 우물에선
한참을 싱갱이하던 양철 두레박안에
추억의 꼬마가 길어올리기 벅찬
삶의 무거운 짐이 달려 올라 옵니다.

숨차게 세개의 두레박질로 채운
양동이를 어깨지게로 메면
다리는 후들거리고
가슴은 두방망이질 치건만
그렇게 다섯번을 바라며
엄마의 애처로워하던 얼굴에
씨익 웃어주고 나온 자존심으로
언덕길을 쉬어보지 못하고 오릅니다.

다섯번을 그렇게 오르내려도
견딜수 있음은 저녁 밥상맡에서
우리 아들 다컸다는 엄마의 칭찬 한마디.
저녁밥 먹고 나와 장독곁 화단에 있던
뽕뽕 다알리아와 슬쩍 키를 견주어보고
키큰 해바라기를 슬쩍 넘보며
넌 키만 멀때같이 크군 이라고
자기 자신의 자리매김을 생활속에 지으며,
알게 모르게 자라가는 것.
그밤 어두움속의 별들을 바라보며
내가 세상속에선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다짐하고 새기며 기도했었더랬다.

하나님 아버지 나 착한 일하고 살께,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세요.
물지게 지는 만큼의 힘듦은
나도 이젠 견딜 수 있걸랑요,
그만큼의 어려움 이상은
제 사는 동안엔 없도록 해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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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 sera sera/Doris Day

When I was just a little girl

I asked my mother what will I be?

Will I be pretty? Will I be rich?

Here's what she said to me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What will be, will be

When I grew up and fell in love

I asked my sweetheart what lies ahead?

Will we have rainbows day after day?

Here's what my sweetheart said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What will be, will be

Now I have children of my own

They ask their mother what will I be

Will I be handsome? Will I be rich?

I tell them tenderly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What will be, will be

Que sera, sera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무엇이 될 것인지 물었습니다.

내가 예뻐질까? 나는 부자가 될 것인가?

그녀가 나에게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케 세라, 세라

무엇이든지 될 것이다.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케 세라, 세라

무엇이 될 것인가, 될 것인가

내가 자라서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내 연인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물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지개를 볼 것인가?

내 연인이 이렇게 말했어요

케 세라, 세라

무엇이든지 될 것이다.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케 세라, 세라

무엇이 될 것인가, 될 것인가

이제 나에겐 나만의 아이들이 생겼다

그들은 엄마에게 내가 무엇이 될지 묻습니다.

내가 잘생겨질까? 나는 부자가 될 것인가?

나는 그들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케 세라, 세라

무엇이든지 될 것이다.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케 세라, 세라

무엇이 될 것인가, 될 것인가

케 세라, 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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