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이 오십이 넘으면
잘생긴 놈이나 못생긴놈이나 똑같고
육십을 넘으면
똑똑한 놈이나 바보나 똑같고
칠십을 넘기면
가진놈이나 없는 놈이나 똑같고
팔십을 넘기면
산놈이나 죽은 놈이나 똑같다는
그나잇줄에 들었으니
그저 재미로운 기억 하나가 된 이야기이지만,
삶에 고통이야 없을 수 없으리라 마는
내게 유난히 고통스러웠던 기억이라면
내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는 것과
잘 생기지 못했다는 것 이었다.
개구리 운동장 -다른 고통도 있었지요....
방을 하나 쓰는 가난한 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는다는 건
지독한 사치이고
가족 모두의 편안한 잠자리를 훼방하는
끔찍히 이기적 행동인 것이다.
근데 아주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그것은 전구가 달린 줄을 길게 해서
이불 속으로 전구를 끌고 들어가 책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방안은 깜깜해서
다른 식구들은 잘 자고
난 재밋는 책을 볼 수 있는 걸 테였다.
거의 생생한데 그즈음 내가 본 책은
'프란다스의 개' 였던 것 같다.
그책을 보다가 네로의 슬픈 역경들에
나는 너무너무 울었고
그 눈물로 인해 축축해진 이불 속에서
반댓쪽으로 자던 형의 발을 적셔
그가 전기에 감전되는 일이 일어났었다.
형은 아무것도 못하는 아우가
그저 책보는 거 좋아해 벌어진 일이어서
문제 삼지 않았지만
얼마간은 그 형이 절름거리며 다니는 걸 봐야했다.
그후론 그 좋은 방법은 폐기되었다.
헌데도 나의 최루는 없어지지 않았다.....
'말세리노' 영화를 보다가 터져나오는 오열로
누나가 다신 너 데리고 영화 안간다고 해
안우는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누나나 형은 날 영화를 하나 보여주려도
그들은 십릿길의 학교를 한달쯤 걸어다니고
차비를 아껴 내게 영화를 보게 해 준 것이다.
한데 그들을 수치스럽게 할 순 없어.
이것이 내가 그 고통의 수련을 한 이유였다.
저건 영화야 그냥 이야기니까 울지 않아도 되!
난 쟤가 그렇게 보고싶은 엄마가 있으니까 울 필요 없어!
난 가난해도 고아는 아냐!
난 폐병에 걸린 건 아니잖아!
난 감옥간 형제는 없어!
내가 울지 말아야 할 것은 너무도 많았다.
맨날 아프고 가난했지만 왜 나만 이리 행복할꼬......
정말 이즘은 지천인 책이고 티비연속극이지만
가끔 이야기 한 '현해탄은 알고있다.' 라디오 극을 들으려도
조금은 여유있는 앞집 마당에 모여
동네 사람이 모두 밤 열시에 하는 그 연속극을 들었다.
그러던 시절,
'의중아 아로운이 한국에 오는날이야 빨리가자.'
'영철엄마 안가우?'
'재철이 아빠 이제 들어오셨어, 밥드리고 빨리 갈께.'
이것이 저녁마다 우리동네서 볼수 있는 광경이었다.
해도 동생에게 좋은 영화는 보여 주고 싶다는
착한 누나와 형이 있었어서
우리집 형편에 비해 난 꽤나 영화도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본다는 건
그 행사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그때 본 영화들은 정말 감동의 물결이어서
난 나의 감정을 추스리는 일을 놓치곤 놓치곤 했다.
그리 연습했어도 내용에 빠져들면 번번히 울곤했다.
해도 큰 사건없이 극장가를 이용하곤 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자 학교서 가는 단체영화를 보는 정도로
나의 영화보는 일은 축소되었고,
그당시 본 영화들이
대장 부리바
벤허
스파르타커스
바이킹
정도 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지금은 금지에서 풀려난 청년들이
어떤 걸 할지 모르지만
우린 이젠 어떤 영화든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다고
첫번째 한 일이 영화보러 가는 거였다.
그 영화가 중앙극장의 '물망초'였다.
물망초/ 古今
.
.
.
1.
이젠 젊은이들이 고등학교 졸업식은 어쩌려는지?
1960년대 당시 졸업식은 정겨운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보다 많은 규제들서 벗어나는 행복감도 있었다.
세상적으로도 군사독재라고 일컷는 시대 초기였다.
허나 난 당시보다 경제적 부흥이 있던 우리나라의시기를 아지 못한다.
지나고 보면, 많은 것이 해소된 어느 시기보다 중고등학교시절이 가장 지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완성되었던 것을 이실직고 할 수 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고교시절의 규제들에 고개를 젓는 친구들도 있다.
빡빡이,검은 교복, 술담배의 기호,영화관 출입 등등 제한된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졸업식 이후는 그것이 풀어지는 것이다.
졸업식엔 보통 식구들이 와서 서러운 이별들의 감정도 추스려주고
학교서 주어졌던 규제들서 해제되었음을 한 집안서도 인정해 주는 시기였다.
허나 그런 집안의 행사보다는 친구들과 허락된 일탈을 꿈꾸는 것이 좋았다.
거개가 모두들 집안에서 총출동된 졸업식 행사에
바쁜데 오시지 말라고 효자 흉내를 내었지만 이도 앞서 말한 것 같은
가슴설레는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그 호크도 좀 풀려므나.'
'아직 좀 추워서 그래'
'추워도 멋이 없잖아.
추워 얼어죽겠냐?'
P는 졸업식 후 학교앞 빵집에서 이젠 성인이라며 나의 소심을 비웃었다.
그는 추운 겨울에도 호크뿐 아니라 앞단추 하나는 풀고 있었었다.
그는 다시 내년에 고삼을 해야했다.
내 졸업식을 위해 왔던 것이다.
그는 병때문에 휴학을 했었었다.
'뭘 할까?'
그는 일탈중 무얼로 해방감을 만끽 하려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난 영화를 보고싶었다.
그러나 그가 아직 졸업생이 아닌 것이 걸렸다.
'웃겨, 오늘은 안걸려.
가보면 알겠지만 아마 영화관 거개가 졸업생들 일텐데, 걸리겠냐?
그래 뭘 볼껀데?'
'내가 어찌 아냐, 우리 종삼서 명동 입구까지 걸어 가보자,
그럼 영화관 일곱개는 뭘하는지 알 꺼 아니냐.'
나도 호크를 끄르고 빵집을 나섰다.
정말 극장들은 모두 인산인해였다.
마지막 중앙극장까지 가도록 표가 거의 없었다.
낙망하고 있을 때 암표장사가 다가 왔다.
표가 두장 있다는 거였다.
본래는 3배씩 돈을 받았는데 지금막 시작했으니 들어가면
대한뉴우스를 하고 있을 꺼라고 반값만 더내고 사라는 거였다.
다만 자리가 좀 따로따로 라는 거였다.
일탈의 확인을 포기하던지 그 암표상 말을 따라야 했다.
따르기로 했다.
정말 들어가니 뉴우스가 거의 끝나고 있었다.
먼저 찾은 뒷자리에 그를 앉히고 난 앞으로 나아갔다.
내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영화가 시작됬다.
내 옆자리가 아직 둘이나 비어있었다.
난 이후 한동안 오페라 얘기를 하면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누가 잘 부르나를 말하면
아니 테너 가수라면 누가 최고냐고 물으면
탈리아비니라고 말했었다.
기껏 파바로티나 도밍고, 카레라스만 아는 이가 대부분 아니 기껏 나가봤자
마리오란쟈 나 델 모나코 스티파노 정도 였던 사람들은 잘 몰랐던 사람이어서
나까지 공연히 조금 오페라에 조예가 있는 듯 해졌었지만
탈리아비니도 정말 대가 이지만
난 그의 노래는 몇십년 들은 건 물망초의 주제가와
남몰래 흘리는 눈물 뿐이었던 것이다.
물망초란 영화를 대개 아시려나?
대충 줄거리를 말하자면
아내와 사별한 애가 딸린 홀애비 가수가 실연한 여자와 사랑하게되는 이야기이다.
사랑얘기처럼 줄거리만 말하면 아무 감흥 없는 게 세상엔 없다.
헌데 당시 난 그 영화 내내 탈수가 될 지경으로 울었다.
2.
'아휴 이제 겨우 들어왔네.
저기 시작한지 얼마나 됬어요?'
난 곁에 내 또래의 관람객이 맘에 안들었다.
보면 알지 그걸 왜물어? 싶었는데,
다시 소근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시작한 영화를 두배나 받다니
그 암표상 도둑이다,그치?'
우린 일점 오배 줬었는데 두배라구? 에구 이 바보들.
저렇게 입으로 떠들며 생각하니 바보일밖에...
그나 저나 끝까지 저럴래나?
에이 아까 먼젓자리에 내가 앉고,P를 들여보낼 껄.
후회하며 영화에 빠져들어갔다.
가수와 딸은 그녀에게 좀 더 알고픈 마음이 시작됬다.
허나 여인은 아직도 실연한 연인만 생각하며 마음을 못 연다.
아아 나도 그런 적 있었어.
학교 앞 그 빨간 빵덕 모자의 S 여고생 말야.
난 걔때문에 3년간이나 매일을 일찍 등교길에 올라 그녀를 마주치려 애썼었는데
3년이나 마주치고도 내 존재조차 몰라줬었지..
지도 학생이니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만 했건만...
그러며 내 눈물이 시작되었는데,
그 가수에게 그여인이 맘을 열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아 그 S 여고생도 저렇게 알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었을까?
이젠 졸업했으니 그 학생을 마주칠 일도 없잖아.
난 눈물이 영화때문이었는지 내 신세 타령이었는지 구별 못하도록 쉼없이 흘렸다.
'어머 또 운다,얘.
쟤 손수건이나 있을까?'
'니꺼 빌려주려므나.
설마 정말 울려고 극장 온 건 아니겠지?'
손수건이 내밀어 졌다.
'고흐 마흐 워흑 요.'
여인의 이별한 남자에게서 다시 사귀자고 연락이 왔다.
어어 저럼 안되는데 이 가수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걸 몰라준담,
그런걸 왜 고민해?
빨리 그남자 확 짤라버려.
한번 버린 놈이 두번은 안그러겠어?
또 이쁜 여자 나타나면 널 버릴거야.
안되 안되 넌 저 딸 애도 이뻐했잖아.
가수는 그 사실을 알게되지만 여인은 아가씨인데, 자긴 애까지 딸린
홀애비여서 아는 척 조차 못한다.
에구 나도 가난 하고 몸도 약해서 그 S 여고생한테 내색도 못했었는데
이젠 만날 길도 없어졌잖아요.
용기를 내요.
그렇게 약해지면 안되요.
그럼 그 나쁜 놈에게 가서
당신이 사랑하는 이 여인이 고생의 구렁텅이에 빠지면 좋겠어요?
나는 거의 흐느끼고 있었다.
'얘, 너무 운다.'
'감성이 좋은 사람인가보다, 너 사귀어보려므나.'
가수는 잡혀있는 공연티켓을 여인에게 준다.
그날이 그 나쁜놈이 자신에게 돌아오라는 날이다.
여인은 갈등한다.
가수는 공연하는데 여인이 안보인다.
나는 이젠 우는 것도 아니다.
오열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곡이다.
그게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다.
가수가 울며 노래한다.
나도 울며 본다.
공연장 문이 열리며 여인이 들어온다.
가수는 더욱 운다.
나도 우는 사이사이 숨도 못쉬겠다.
영화가 끝나며 극장불이 들어 왔다.
옆여자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난 운 얼굴이 부끄러 고개를 돌렸다.
'얘 별로다,가자'
'니 손수건.'
'그건 버린 셈 칠래, 얘'
난 계속 울고 있었다.
일어나지도 못했다.
P가 다가와 가자고했다.
난 금새 일어날 수 없었다.
P는 영화가 그리 슬펐냐고 물었고, 난 대답할 수 없었다.
뭐가 슬픈 건지 모르겠었다.
3.
물망초는 이 해설같은 영화다.
헌데 클라이막스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
이건 슬퍼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오페라 내에서 네모리노가 자기 마음을 알아준 아디나의 마음을 알게되어
행복해 우는 내용인 것이다.
해서 난 이 노래는 여러 가수의 노랠 들을 때,
누구의 노래가 설레어 나오는 눈물을 감추는 연기가
훌륭한 가로 순위를 둔다.
물론 어느가수 건 한번 그 곡을 연주하려면 무진무진 노력할 것이다.
허니 그에 순위를 둠은 언어도단이고 야비한 것이다.
그치만 조금쯤 음악을 즐기는 것에 사치를 떨어봄도
아마추어 오페라 애호가의 권리라고 말 하고 싶다.
여인이 모두 무시못할 존재 이유를 가졌다고
모든 여자를 다 사랑하진 않는다.
첨언하면
그런 느낌을 못 살릴 목소리도 있다.
난 파바로티 것을 듣기 전엔
이니목소린 이노래 부르긴 어려울 꺼라 생각했었다.
헌데 사랑의 묘약 전곡을 들으며 내 생각의 오류를 인정해야 했다.
아아 대가란 이런 것이구나....
파바로티가 이런 고백을 한 적 있단다.
어느날 공연중 앞에 탈리아비니가 그의 노래를 들으러 왔더란다.
그걸 본순간 어찌 떨었는지 눈앞이 캄캄했더라나?
자기가 존경하는 선배가 오셔서...
난 목소리로 가장 자신감있는 장부의 목소리라면 파바로티일 것같다.
물론 성량으로 그보다 더 큰 성량을 가진 사람도 있다.
물론 그보다 높은 음을 낼 수 있는 가수도 있다.
달콤한 테너 라면 도밍고도 비요링도 좋다.
그러나 감성을 맛갈나게 내는 테너라면 탈리아비니를 주저 없이 꼽겠다.
베르디의 가장 무도회에서의 장난끼 있는 장부의 노랜 소름이 돋는다.
전곡은 못들었지만 칠레아의 아를르여인에서의 노래
엘 라 솔리다 스토리아는 레파토리가 좁은 가수라고 폄하되지만 그가 최고다.
마치 우리 영어 선생님께서 '석양의 붉은 돛배' 란 곡은
루이 암스트롱의 것이 최고라셨듯이....
나의 영화 물망초 이야긴 여기까지다.
근데 이글을 쓰다보니 우수운 망상이 떠오른다.
물론 인생에 가정은 아무 의미없다.
인생이란 그 자체가 한때 한순간의 선택들의 연속이므로
가지않은 길에대한 미련은 정말 미련곰퉁이 같은 일일 뿐이지만
내게 떠오른 망상은 내가 다행스런 선택의 순간을 잘 지낸 안도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영화관의 불이 켜지는 순간
마치 탈리아비니 만큼이나 잘 생긴 사람이었더라면 어떻게 됬을까?
난 경솔하고 감정조차 메마른 여인과 살게되었었다면?
어휴 끔찍하다.
난 내 못생겼음이 기막히게 고맙다.
링컨이 못생겼다지 않은가?
그래서 한 독지가 소녀의 수염을 기르면 좀 더 멋질꺼란 말에
수염을 길렀다지,아마?
아니 부인 매리는 악처 반열에 올라 있는데, 그녀는 함께 산책하기도 꺼렸었다나?
그래 그래
내 옆자리 그녀가 백번 참고 그냥 나와 맺어 졌더라면
그녀도 악처반열까진 아니어도 악명은 아낌없이 남겼으리라.
자신의 아내를 악처로 만들고 맘 편할 남편 있을까?
음악가들중엔 자신의 못생김으로 아름다운 곡들을 쓴 이가 많고도 많다.
허나 그건 얘기하기싫다.
그 아름다운 곡들이 못난이들의 -그들만의 리그- 였다면
호감이 가려다 싫어지면 어쩌겠나?
아니 펑펑 운 남자가 그래도 멋진 남자가 어딧겠는가?
나도 그리 흉물스럽게 생기진 않았는데...
내 눈물 많은 나약함이 고맙다.
살아오며 그 한순간이었겠는가?
내 젊어서의 가난이, 내 병약함이 내 눈물처럼 날 지켜줬으리라...
어려 가난처럼 좋은 스승은 없다고들 어른들은 말해 주었다.
병약함은 그만큼 자기 몸을 좀더 약해지지 않게 노력하는 습관을 몸에 부쳐준다.
골골 팔십이라지 않던가?
그 말도 골골 하는이가 조심해서 더 오래 산다는 뜻이다.
이렇듯 삶은 어느 것이든 양면이 있다.
절대적인 호오는 없다.
그 선택의 어려움에 조심조심 살아갈 따름이다.
살얼음의 개울을 건너듯
모르는 길을 갈 때 온 신경을 바싹 세우듯...
오페라를 듣노라면 언제나 나는 탈리아비니가 떠오르고
물망초 영화가 생각난다.
그럼 난 기분이 좋아져 비그륵 웃는다.
이런 기분이 날 오페라로 이끄는지도 모르겠다.
졸업식이라는 조금쯤 들뜨는 시기도 나처럼 여러가지 배울 수있고,
내 기호까지 결정되게 하는 한 순간일 수 있다.
졸업식 이니까, 라고 넋잃는 순간 아니길 바란다.
아니 졸업식만 아닌 인생의 어느때도 조심조심 살피며
현명한 순간의 선택들이 이어진 삶을 살아야 하리라....
.
.
.
그래 그래 난 그런 조심성을
시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유행가든 명작 오페라든 모두 말한다.
'그대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게 그림이어서
시여서
음악이어서 다른 걸 말하겠는가?
바로 자신의 사랑앞에서 작아지는 걸
나름 나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난 내가 못나서
브람스의 곡을 좋아하고
파가니니의 화려함을 받아드릴 수 있으며
베토벤의 의지를 읽을 수 있고
슈벨트의 눈물을 공감할 수 있으며
구르몽의 시를 잘 이해하고
아뽈리네르의 상징이 현실이 되며
고흐의 그림들을 가슴으로 감상하고
안델센의 동화의 진실들을 안다.
그들은 못생긴 예술가들이었다.
동병상련처럼 그들의 아픔을 그저 아무 설명없이
따듯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못남은 못남으로 가만 있지 않고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향해 움직이는 동기였던 것이다.
여인들이여 못난 남자도 사랑하라.
그들은 잘 나지 못한 대신 아름다움을 향한
타는듯한 정열로 그것들을 향유하는 종족인 것이다.
古今이의 오늘의 금언^^*
Ferruccio Tagliavini / Non Ti Scordar Di Me
Non ti scordar di me Partirono le rondini dal mio paese freddo e senza sole, Cercando primavere di viole nidi d’amore e di felicita. La mia piccola rondine parti senza lasciarmi un bacio, senza un addio parti. Non ti scordar di me: la vita mia legata e a te. Io t’amo sempre piu, nel sogno mio rimani tu. Non ti scordar di me: la vita mia legata e a te. C’e sempre un nido nel mio cor per te. Non ti scordar di me! Non ti scordar di me! | & 날 잊지 말아줘 제비들 떠나갔지 춥고 햇볕 들지 않는 곳으로부터 제비꽃 봄철을 찾아 사랑과 행복의 둥지로 나의 작은 제비도 떠났지 키스도 없이 떠났어 작별 인사도 없이 날 잊지 말아줘 내 삶 네게 묶여 있어 나 너를 사랑해, 늘 더더욱 내 꿈속에 남아있는 너 날 잊지 말아줘 내 삶 네게 묶여 있어 언제나 둥지 하나 있지, 내 맘속에 너를 위한 날 잊지 말아줘 날 잊지 말아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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