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주도 꽃 타령; 15.소철 /Andrew Lloyd Webber-Any Dream Will Do/Jason Donovan
작성자古今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새벽같이 밭에 나가며,
근사한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밭에 도착했을 때도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두운 밭에 내 차의 헤드라이트가 사물들을 다른 모습으로 비칩니다.
이게 뭔지 아시겟습니까?
이건 내 옆밭의 소철입니다.
재작년 7월 내가 제주도로 내려오자 내 임야가 폭이 좁아진 것 같았습니다.
해서 측량을 시청에다 부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르랴,
내 임야까지 침범해 옆밭주인이 사용한 것입니다.
반년쯤 지나서, 그양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내 땅이 도용되고 있으니 작물을 치워달라고 했습니다.
그 작물이 소철이었습니다.
37-38년 전부터 자신은 소철 금이 좋아서 길렀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금도 좋지않고, 인기도 떨어져 잘 안나간답니다.
그래도 내 땅 것은 치워달라니 먼저 내 땅에 있는 것들을 팔테니 1-2년만 기다려 달랍니다.
내땅을 내가 사용하려는 용도로 손을 봐야지 그런 시간을 그냥 사용하시면 되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소철을 사가라는 겁니다.
난 그걸 사서 뭘하겠냐고 했습니다.
결국은 밭을 개간하는 결에 다듬으려니 쓸일 없는 소철을 50만원에 팔아주어야 했습니다.
100만원 달라는 걸 50만원에 30개정도의 소철을 사서 내 땅 여기저기에 소철을 옮겼습니다.
금액이 안나가자 잘 거름도 안하고 거의 버려두다시피 해서 햇수는 오래됐대도
다른 곳에서 본 소철들보다 작습니다.
요즘 소철의 새잎들이 나는 때입니다.
소철은 잎이 새로 오르면 암수의 꽃도 함께 피기시작합니다.
새잎이 오르고 있는걸 헤드라이트 조명아래서 찍은 겁니다.
새벽에 가면 아주 근사해 보입니다.
날이 밝으면 풀 숲사이에 지저분하게 심겨있는데 멋져보이지요.
새벽이란 시간이 내게 보여준 아름다움은 또 많습니다.
새벽 안개가 흐르는 걸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안개도 강물처럼 흐름이 있습니다.
앞이 다 컴컴해지도록 짙은 농무도 옅은 안개도 흐름이 있습니다.
도도한 강물 아니더라도 흐름이란 멋집니다.
그들은 활동사진처럼 여러가지 생각마저 같이 흐르게 합니다.
헷세의 시에 '안갯속에서' 란 시 있지요.
함께 한 번 읽을까요?
안개 속에서/헤르만 헤세
.
.
.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나의 삶이 아직 환했을 때
내게 사방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가 내려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을 떨칠 수 없게 조용히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
어둠을 모르는 자
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외로이 있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
.
.
안갯속이 참이상하단게 무슨 기괴한 은유인가요?
참 이상하단 그저 이 시간 안갯속에 있다보면 ,
시인의 시가 하나도 힘들지 않게 가슴에 들어옵니다.
있지요?
안갯속 운전도 참 기괴합니다.
제주도는 운전할 때 하이빔을 켜지않으면 칠흑같은 어둠이 시야를 위협하지요.
해서 대개의 길에선 하이빔으로 다니다가,
앞에서 차가 오거나 사거리나 로타리를 지날 때는 잠시 하이빔을 내립니다.
그런데 안갯속에선 하이빔을 켜면 앞이 아주 안보입니다.
안개의 물방울들이 빛을 난반사해서 환하게 다른 사물들을 못보게 가려버립니다.
특히 모구리오름과 독자봉사이는 아주 자주 짙은 안개가 흐르고 허면
거긴 엉금엉금기듯이 지나야 합니다.
앞이 안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게 하는지,
아아 이래서 사람들이 안보인다는 것이나 앞을 모른다는 것을 싫어했구나 알 것 같아집니다.
무지의 겸손을 깨닫게 해주고,
어리석은 자신마저 곱게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해 줍니다.
관광지로 개발된 것 말고 진짜 올레란 차가 다니기 어려운 행길서 집까지의 길입니다.
내가 다니는 곳에 진짜 올레가 있습니다.
그건 무슨 관광사업처럼 만든 올랫길 말고 진정 순수한 올랫길이죠.
그게 삼달리와 신풍리 사이에 있는데,
'어멍아방 밭담 길'이라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것도 재밋습니다.
제주도는 모든 '일'이란 이름의 어려움은 여인들에게 집중되 있습니다.
진정 일하고 힘든 이들은 페미니즘을 주장않습니다.
해도 누구도 우리 어멍의 그 고마움을 모르지않습니다.
오히려 속빈 여성들이 어멍의 수고를 모르는 채 자기 몫의 대접을 내세웁니다.
아니 전혀 그런 생각조차 안하고 우리를 지켜준 분이 어멍 아니던가요?
그냥 두면 언제나 어멍이 어느 가치보다 소중히 간직되고,
세상 무엇보다 우리에게 감동 주니 아방 보다 앞섭니다.
아방은 그 뒤를 받쳐는 주지만 앞서지 못합니다.
서로를 다독이는 길일 올레에서 조차 누구의 눈에도 두분의 걸음이 눈에 띄어도 어멍이 먼저 보입니다.
조그맣고 힘없어 보이는 어멍이 먼저요.
해서 아방어멍 밭담길 아닌 어멍아방 밭담길입니다.
그 순서조차 그저 순리같아 더욱 편안히 다가옵니다..
안개낀 새벽에 그길을 천천이 통과하노라면,
그 전날밤 어느집 아빠 엄마가 생활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던 장면이 떠 올라
나는 새벽에 너무 늦게 일어나서 해뜨기 전 빨리 밭에 가야하는 때가 아니라면 그 길로 밭을 갑니다.
그러면 내 아내의 말소리도 살아납니다.
' 여보, 당신이 허락해주어 난 대만에 와 있지만 당신이 어떻게 지낼지 뻔히 그려져 맘이 너무 편찮구료.'
아내가 하고 있을 맘고생을 알겠습니다.
나도 입술도 움직이지 않고 말합니다.
' 나 하나도 안 힘들어.
우리가 조금만 불편을 기쁜 마음으로 감수한다면 우리 큰 딸이 좀 편하지않겠오?
그리고 우리가 어려움을 마다않고 우리 딸을 생각한다면,
사위도 어렵게 우리 딸을 대해 주리니, 내 염려는 말고 당신이 좀 힘들어도 한치도 내색말고 도와주구료.
자식은 말로 가르치는 거 아니라고 알고있오.
우리가 살아가고, 참 가치를 헤아려 행동하는 것을 보여주면,
그것이 그애들의 삶에 큰 배움으로 다가갈게요.'
이런 속내도 얘기할 수 있는 이길을 지나는 시간이
내게는 어느 아름다움보다 더 감동스레 다가들곤 한다.
내꿈은 무얼 내가 이루고 싶다는 거 아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않다는 거다.
그저 세상을 떠나는 날 그게 흔한 산보가 아니었고,
내 한걸음 한 발자욱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움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향유하고 싶다.
그런 안개속 운전하는 새벽길과 시인이 된 헤세의 외로움, 안보임, 어둠을 모르는 무지함
이게 무슨 딴 소리더냐고 외쳐보고 싶다.
또한
요셉의 이 노래처럼 이루어질 수 있는 것 이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꿈을 꾸고 여인들은 그 꿈을 현실로 바꿔준다.
거기에 필요할 생명과 힘은 바로 여성들에게 있는 것이다.
해서 요셉과 총천연색 꿈의 외투라는 뮤지칼을 함께 들으며,
어떻게 해서 요셉은 꿈을 꿈이 아닌 현실로 끌어냈던가를 조목조목 나눴었다.
바로 새벽이란 꿈이 현실이 되는 시간이고 여성적인,
저 페미니스트가 목청껏 소리치는 주장같은 여성말고 속이 꽉차서 미어져나오는,
꿈을 현실로 바꾸어주는 어멍같은 모성의 시간인거다.
그래야 난 안심되고 아늑함을 아무 댓가 없이 선물받는 아방같은 남자가 되는 것이다.
제주도의 골목길 하나에서도,
새벽 이른 풍경에서도
흐르는 덧없는 안개속도 세상을 관통하고 있는 아름다움으로 보이는 것이고,
저 날 번거롭게 했던 소철조차 멋져 보이는거다.
바로 저 흔해 빠지고 허무할 수도 있을 육지의 안개 말고,
시인의 안개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으신 분들은
제주도를 오시라
그냥 희안 번쩍이는 관광상품 말고,
우리 아내 남편의 푸근 묵직한 정을 배우고 싶다면,
신풍리 어멍아방 밭담길을 새벽에 지나보시라.
거기 저 기괴해 보이는 소럴 밭이조연으로 출연해 주면 더욱 좋으리라....
내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꿈은 이뤄진다는 노랠 틀어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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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rew Lloyd Webber- Any Dream Will Do / Jason Donovan
Joseph
I closed my eyes, drew back the curtain
To see for certain what I thought I knew
Far far away, someone was weeping
But the world was sleeping
Any dream will do
Joseph & Children
I wore my coat, with golden lining
Bright colours shining, wonderful and new
And in the east, the dawn was breaking
And the world was waking
Any dream will do
Joseph
A crash of drums, a flash of light
My golden coat flew out of sight
The colours faded into darkness I was left alone
Joseph & Children
May I return to the beginning
The light is dimming, and the dream is too
The world and I, we are still waiting
Still hesitating
Any dream will do
Joseph
A crash of drums, a flash of light
My golden coat flew out of sight
The colours faded into darkness I was left alone
Joseph & Children
May I return to the beginning
The light is dimming, and the dream is too
The world and I, we are still waiting
Still hesitating
Any dream will do
커튼을 치고 눈을 감네 내가 생각했던 걸
확실히 보기 위해서
멀리 저 멀리서 누군가 울고 있네
하지만 세상은 잠들고 모든 꿈은 이루어질 거야
황금 안감을 댄 옷을 입었지
놀랍고도 새롭게 반짝이며 빛나는 색상
동쪽에는 어스름 새벽이 밝아오고
세상이 깨고 있었네
모든 꿈은 이루어질 거야
빛이 번뜩이더니 꿈은 무너지고
사라져버린 내 황금 옷
점 점 어두워져 가고
난 홀로 남겨졌네
날 돌아가게 하소서 처음으로
빛은 희미하고 꿈도 그러하네
세상과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지
여전히 머뭇거리는 동안에
모든 꿈은 이루어질 거야
빛이 번뜩이더니 꿈은 무너지고
사라져버린 내 황금 옷
점점 어두워져 가고
난 홀로 남겨졌네
날 돌아가게 하소서 처음으로
빛은 희미하고 꿈도 그러하네
세상과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지
여전히 머뭇거리는 동안에
모든 꿈은 이루어질 거야
.
.
.
꿈이라면 무슨 생각 나세요?
희망이요?
꿈이 희망이 된 건 언제 부터일까요?
우리 조상들도 꿈이라고 하면 희망을 말씀하시던 것 이었을까요?
난 궁금하더라구요.
다만 나의 가슴 속에 꿈이란 건 두가지 의미인데,
하나는 비현실적이고 절대의 가치가 없는 허무하다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이고 이루고자 하는 집념의 잔상으로의 의미이지요.
두개의 뜻은 꽤나 상충되는 의미같죠?
헌데 어떻게 하나의 단어안에 그 두가지 뜻으로 내안에 들어와 있을까요?
나의 게으름이 시키는대로 그 이유를 찾아보려 않고 혼자 상상해보면,
우리에게의 꿈이란 전자의 의미였는데 기독교적 생각이 들어오며 후자의 생각이 가미된거나 아닐까?
꿈을 희망으로 하나님의 게시로까지 발전시킨 분이 요셉이다.
그이야기를 하는 거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 명제가 진짜라면 누가 꿈을 이루려 발버둥 칠까보냐?
다 잠들어 꿈으로 나의 이루어질 미래를 보면되지...
아니란 걸 누구나 알지요.
근데도 그말은 누구에게나 틀렸다고 따질일 아닌 통용되고 받아들여 진다.
이때의 꿈은 동기란 뜻이다.
내가 노력하고 애쓰는 근본적 동기.
요셉은 그 동기들을 어떻게 이루게 되었는가?
하나님이 은혜로 주어진 부분은 내게는 관심밖이다.
그건 하나님의 섭리이니 그분이 하시겠지만 나는 어때야 될까?
어때야 나의 꿈 나의 동기들을 이룰까?
난 마치 종교가 하나님께 비위 맞추기를 권하는듯 한 게 싫다.
하나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할 게 아니라 그분에게 나의 진정이 흡족하시기를 바라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내가 억지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할 게 아니라 ,
자연스런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그분의 마음과 닿아있으려 할 일 아니겠는가?
자신이 생각한 의로움으로 하나님과 독대할 게 아니라,
하나님이 너는 의롭다고 해주시기를 바라는 게 옳다고 바울이 이미 2000년 전에 말씀하셨다.
이말은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라는 뜻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의 그자체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거 아닐까?
그래야 나의 꿈 나의 동기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컴에 들어와 이노래가 여러분들의 관심을 끌 때 난 폭탄 선언을 했다.
이곡은 여성적이고 여자가 불러야 더 멋지다.
이곡의 유래를 알고 있으며 이곡을 여자가 부른 걸 들은 적 없는 분들은 그런게 있으면 들려달라고 야단이었다.
이건 남자인 요셉의 노래인데 그런게 어딧느냐고....
지금 여기 계시는 분들도 이곡을 여자가수가 부른 걸 들은 적 있으시려나?
있다.
하지만 누가 불렀는지는 말 안하련다.
들어보시라 더 잘 어울린다.
내가 성질 못되서 안가르쳐 준다고?
아니 난 그 가수가 맘에 안들게 된 후론 그녀의 노랠 들은 적 없다.
그러나 이노래 참 여성의 목소리에 잘 어울린다.
여기서 내가 이말을 하는 이유는 꿈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방법의 고찰로서,
그건 여성적 행위란 말을 하고픈 거다.
웨버가 그런말 한 걸 어디서 읽었냐고?
어느 목사가 한 말이냐고?
아니다.
세상에 휘둘리지도 세상위에 군림하지도 않고 힘을 향한 이동보다는,
사랑이나 정따위의 감정으로 움직여라.
당신이 여성적이어야 꿈을 이뤄낼 수 있을 가능성은 커진다.
꿈이 이루어지는 방법을 전해 드리고픈 첫번째 메세지는 여성같아야 한다. 는 말이다.
내가 생각했다고 마시라 이 뮤지칼을 감상하며 생각 난 거니
앤드류가 그렇게 일러줬대도 다름아니다.
요셉은 남자로의 고통도 받았건만 그는 여성스럽다란게 나의 느낌이다.
하여튼 안갯속 새벽길은 참 이상하다.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내 음악 감상조차,
이토록 확연한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