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키12 - 베뢰아에서 기차로 데살로니키에 돌아와 해변으로 가다!
5월 5일 데살로니키 Thessaloniki 에서 성채와 아야 소피아 Hagia Sophia 성당을
보고는 데살로니키역 Thessaloniki central railway station 에
도착해 12시 15분 기차를 타고 한시간을 달려서 베뢰아 Veria (ΒΕΡΟΙΑ) 에 내립니다.
10여분을 걸어서 로터리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Saint Paul's Bema(바울강단) 에 도착하는데,
베리아(Veria) 는 테살로니키에서 전도를 하던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몰려서
피난한 곳으로 전도에 성공해 소바더등의 협력으로 초대교회를 세우는 중심이 된 도시입니다.
그러고는 유대인 회당 시나고그에 가는데 기도할 수 있는 큰 홀이 있고, 토라 연구 또는 사무실로 쓰기
위한 작은 방들이 있는데, 보통 안식일(토요일) 오전에 예배를 드리며, 해당 날짜와 절기에 맞춰
토라를 봉독하는데 사도 바울이 A.D. 51년과 57년에 베뢰아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설교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30분 가량 시가지를 걸어서 3거리에 도착해 어느집 정원에 남자에게 기차역 가는 길을 물으니
오늘이 부활절 휴일이라 차가 없는줄 알고 자기 차로 기차역까지 태워주어 오후 4시 기차를 탑니다.
기차는 완행이라 포도밭이 늘어선 들판을 천천히 달리면서 작은 역에 여러번 서니 그때마다 사람들이 많이
올라타는데.... 부활절을 고양에 가서 보내고는 이제 다시 데살로니키로 돌아오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한시간 만에 데살로니키역에 도착해서는.... 기차역에서 우리 호텔은 1km 거리이니 어제처럼 오늘도
20여분을 걸어서 돌아오는데 중국집을 지나 호텔 못미쳐 오른쪽 길로 내려가 해변을 찾아갑니다.
다시 10여분을 걸어 아리스토텔레스 광장 인근에 있는 해변에 도착해 바닷가에
바로 붙어 있는 해변 레스토랑으로 들어가서는..... 맥주와 안주를 시킵니다.
여기 해변에는 오늘이 부활절 휴일인 탓인지 가족 단위로 놀러나온 사람들이
엄청 많은지라...... 여기 바닷가에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모습을 봅니다.
바다를 보며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고는 일어나 10유로를 내고는 나와 시내 거리를
걸어서 10여분 만에 우리 호텔로 돌아와서는 샤워를 하고는 텔레비전을 켭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니 캄캄한 밤에 부활절 전야제를 맞아 그리스 정교에서 거행하는
행사도 있고 또 지상과 배 위에서 불을 쏘아 올리는 각종 불꽃 놀이가
펼쳐지는데 저건 현재 상황상황은 아니고 어제밤에 일어났던 상황들인가 봅니다.
부활절 (復活節) 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자 최대 축일이며.....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힌 금요일로 부터 모레가 되는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니 서구권에서는 최대 명절이자 휴일입니다.
부활절은 매년 날짜는 달라도 일요일에 하기 때문에 영어로 “이스터 선데이(Easter Sunday)” 라 불리며
'파스카' 라고도 하니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유대인의 축일을 일컫는 말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이스라엘인의 이집트 탈출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수용하여 부활절을 '파스카' 라 부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 요한의 복음서 11장 25~26절 ,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편지 15장 17절
서양에서는 부활절이 국가적으로 최대 명절 중 하나이니... 서방교회의 시발점
이자 가톨릭 신자율이 높은 유럽에서는 부활절을 1년 중 최대
명절로 기념하며 아메리카도 그러하니 부활절 전 성금요일은 법정 휴일 입니다.
파스카 성야에 울려퍼지는 파스카 찬송에서도, 그리스도론적으로 재해석된 이스라엘
인들의 이집트 탈출이 부활절에 불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Qui pro nobis ætérno Patri Adæ débitum solvit, et véteris piáculi cautiónem pio cruóre detérsit.
외아드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영원하신 아버지께 아담의 빚을 갚으시고 거룩한 피로 옛 죄를 씻으셨나이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거룩한 부활절에 대한 니케아 공의회 교령 (Santi concilii in
urbe Nicaea derectum de sancto Paschate)으로 부활절 날자를 통일햇지만
이후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는 계산 방법이 다른지라 서수에서 부활절은 2024년의
경우 3월 31일인데 비해 동방교회인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오늘 5월 5일로 서로 다릅니다.
부활절 날짜를 언제로 정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2세기부터 니케아 공의회 이전까지 로마 +
알렉산드리아 교회와 일부 동방교회가 서로 격렬하게 논쟁하였는데, 일부 동방 교회
에서는 예수 부활 이후 히브리 전통 달력으로 요일을 신경 쓰지 않고 니산(Nisan)달
14일, 즉 유대인들이 파스카(유월절) 축제를 지내는 날을 부활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무조건 부활절은 춘분후 만월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이어야 한다고 주장
하며 봄의 첫 번째 보름달 후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렸으니.... 즉 일부 동방교회는 부활절 날짜의 기준
으로 닛산월 14일인 유월절과 15일인 무교절을, 로마 및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춘분을 중요시한 것 입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인 교부 스미르나의 성 폴리카르포 (Polycarpus) 는 부활절 날짜 논쟁 때문에
155년에 몸소 스미르나 (smyrna) 에서 로마 까지 여행하여 당시 교황 성 아니체토와 만나
논의하였는데....서로의 입장을 좁히지는 못하고 각자 전통을 존중하자는 선에서 그치고 맙니다.
두 사람은 부활절 날짜 결정 이외에도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부활절 논쟁 때문에 교회 간
일치에 금이 가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니, 논쟁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덮어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계속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어 교황 성 빅토르 1세
( 189~199) 는 로마 교회의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파문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부활절 날짜를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뜬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결정하였으니 로마 및 알렉산드리아 측 주장을 받아들였고
이 결정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 전세계의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들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한 대로 춘분후 만월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에 부활절을 지킵니다.
니케아 공의회가 내린 결정에는 유태인 달력에 의존하는 상황을 끊겠다는 의도도 있었으니 니산달
14일이 언제인지 확인하려면 유태인들이 자기네 달력을 확정하여 발표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지라 그리스도교인이 최대의 축제일을 정하는데 유태인에 의존하는게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로마 및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는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는 율리우스력을 이용해 부활절 날짜를
정하기로 하였으니, 히브리력은 태음력을 기반으로 한 태음태양력 체계를 따르므로 니산월은
중국식 음력의 3월에 해당하니..... 따라서 파스카 축제일인 니산월 14일은 음력 3월 망일 입니다.
로마 교회에서는 여기에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일요일을 강조하여 유월절 당일이 아닌
유월절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지내자고 한 데에서 차이가 발생하였으니 일요일을 매주
마다 '작은 부활절' 로 지내므로 당연히 부활절도 일요일에 지냄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서방교회는 춘분 날짜는 3월 21일로 고정하였고 보름달 날짜는 달의 평균 삭망주기를 맞춘 가상의 달을
상정하여 계산하였지만 율리우스력의 한계로 128년마다 하루씩 오차가 쌓이면서 달력상 춘분과
천문학적 춘분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자 16세기 말에는 천문학적 춘분이 3월 11일에 오는 지경에 처합니다.
결국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1598년에 그레고리력을 제정하였고, 그후 서방교회에서는 그레고리력
3월 21일을 춘분으로 삼아 부활절 날짜를 정했지만..... 동방교회에서는 여전히
율리우스력 3월 21일을 기준으로 부활절을 헤아리므로 양 교회간 날짜에 차이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서방교회식 계산법에서 부활절은 가장 이를 때 3월 22일, 가장 늦을 때 4월 25일이
되니 1818년과 2285년의 부활절은 3월 22일이고, 1943년과 2038년 부활절은
4월 25일이며 동방교회는 같은 날짜를 율리우스력으로 계산해 부활절을
기념하는데.... 이것을 그레고리력 상에 표시하면 4월 4일에서 5월 8일 사이가 됩니다.
옛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며 데오도시우스 황제
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할때까지만 해도 같은 기독교 였는데 종가의
자리를 두고 콘스탄티노플과 로마가 사로 대립하면서 기톨릭과 동방 정교회로 갈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이 탄생하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등 중용한 행사의 날자가 서로 달라진 것인데....
아무리 서로 갈라서도 예수님 탄생하신 날자 크리스마스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이해가 안됩니다.
예수님이 언제 탄생했는지는 지금도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에도 전혀 언급이 없고 옛날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며 누가등 어떤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 말에도 예수님의 탄생하신 날자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자 중세에 로마 가톨릭에서 어느 교황이 이교도들의 축제를 막을려고 무지하게
노력을 했으나 도저히 금지할 수가 없자 기발한 묘안을 냈으니 저 이교도
들의 축제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선포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태양의 신생(新生) 을 축하하는 로마인의 동지제일 (冬至祭日) 로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는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이니 '정복되지 않는 태양' 이라는 뜻의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로도
불렸는데 솔 인빅투스, 즉 미트라는 274년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에 의해 황제의 수호신으로
간주되었으니 그는 그해 로마에 솔 인빅투스를 위한 신전을 짓고 12월 25일을 태양절로 선포했습니다.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한 것은 4세기의 일이니 354년 로마
감독 (교황) 리베리우스 시대에 로마 교회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교회의 절기로 지키기 시작합니다.
필로칼루스의 달력이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데,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336년부터
였고 354년에는 교회 공식적인 절기가 되었다는 설명도 있으니, 교회사에 따르면, 고대 로마에는 12월에
세가지 축제가 있었으니사투르날리아(Saturnalia), 시길라리아(Sigillaria), 브루말리아(Brumalia) 축제입니다.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는 고대 로마에서 숭배하는 새턴(Saturn), 라틴어로는 사투르누스(Saturnus)
라는 농경신의 제사 기간에 벌인 축제로 12월 초부터 하순까지이니, 이 기간에는 노예도 주인처럼
행세하는등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환락에 취했고, 상록수를 집 안에 들여와 장식하거나 선물을 교환합니다.
시길라리아(Sigillaria) 는 12월 하순의 축제로, 신상(神像) 을 주고받으며 어린이들에게는 인형을 주어
즐기게 했고, 브루말리아(Brumalia) 는 동지제로 태양의 떠오름을 축하하는 절기였으니
낮의 길이가 짧은 동짓날로 부터 해가 다시 길어지므로 태양의 힘이 커진다고 믿어 축제를 벌였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탄생하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겨울인 12월 25일은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때 양치기 소년들이 나오고 동방박사들 얘기도 나오는데.....
한겨울에는 양들이 풀을 뜯으려 밖으로 나오는게 아니고 집안 축사에서
가을에 거둔 마른 풀을 먹기 때문 입니다. 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