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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엔트로피[negative entropy] (=네겐트로피, 네트로피)

작성자사악너부리|작성시간10.03.09|조회수1,828 목록 댓글 0

네거티브 엔트로피[negative entropy] (=네겐트로피, 네트로피)

 

엔트로피와 반대의 경향을 말하며

네겐트로피가 증대되면 체계 속에서 질서와 법칙성이 유지되며

정보를 보다 많이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


 

참고자료1

 

'네트로피'를 '엔트로피'의 반대 부호를 가진 양으로 정의한다면 고립된 계 내에서 이것은 항상 감소만 있을 뿐 증가할 수는 없는 매우 소중한 양이 된다.

 

특히 이 네트로피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금세기의 뛰어난 물리학자 슈레딩거의 말 한 마디로 충분하리라고 생각된다. 슈레딩거는 그의 유명한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물이란 결국 네트로피를 먹고 사는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 이 네트로피를 증가시킬 방법은 없을까?

 

네트로피는 엔트로피의 반대 의미를 가지므로 계가 지닌 질서의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만일 어떤 귀신 같은 요물이 하나 있어서 이 계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운동 하나하나를 감지할 수 있다면, 이것이 단순히 분자 세계에서 적절한 교통 정리만 해 줌으로써 그 '질서'를 향상시킬 수 있고, 따라서 계의 네트로피를 증가시킬 수 있다.

 

 

이 요물은 흔히 '맥스웰의 요물'이라 불리는데, 이 요물이 이러한 작업을 해내기 위해서는 오직 분자들의 운동에 대한 '정보'와 '네트로피' 사이에는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1948년에 미국의 통신 공학자 새논(Claude Shannon)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정보의 양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다가 정보라는 것이 바로 네트로피와 똑같은 수학적 표현을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이 발견은 객관적 사물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되는 '질서'라는 개념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속하는 '정보'라는 개념이 사실상 동일한 하나의 개념일지도 모른다고 하는 의미 심장한 내용을 지닌다.

 

우리는 이제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하여 내일의 문명에 대한 하나의 암시를 얻게 된다.

 

우리가 만일 오늘의 문명을 '에너지 문명'이라고 부른다면

내일의 문명은 마땅히 '네트로피 문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힘과 변화를 상징하는 '에너지 문명'이 오늘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혜와 조화를 상징하는 '네트로피 문명'은 분명히 좀더 밝은 내일을 우리에게 약속해 준다.

   

 

 

참고자료 2

 

1877년 볼츠만에 의해 증명됐듯이, 엔트로피 법칙은 확률적 법칙이다. '맥스웰의 도깨비'를 등장시킨 사고실험(思考實驗)에서 추론됐던 것처럼, 이 법칙에 위배되는 과정이 일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이란 '한 떼의 원숭이들이 타자기 위로 멋대로 돌아다닐 때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모든 책을 찍어낼 수 있는' 가능성보다 못한 것이다.

 

슈뢰딩거가 생명현상에 도입한 네겐트로피 즉 옴의 엔트로피 개념은 부분계에 국한되는 것일 뿐,

어떤 이론이나 기술에 의해서도 계 전체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 김명자 / 숙명여대 교수, 화학과 

 

<용어정리>

네트로피: 네거티브 엔트로피(negative entropy)라는 용어의 준말. 엔트로피가 어떤 대상 계(系)가 가지는 '무질서의 정도'라고 정의한다면, 네트로피는 엔트로피의 반대 의미를 가지는 '계(系)가 지닌 질서의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엔트로피가 고립된 계 내에서는 항상 증가만 하는 속성을 지녔다면 네트로피는 고립된 계(系) 내에서는 항상 감소만 할 수 있을 뿐 증가는 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진다. 미국의 공학자 세논은 정보와 네트로피가 똑같은 수학적 표현을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객관적 사물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질서'라는 개념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속하는 '정보'라는 개념이 사실상 동일한 개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사실은 네트로피라는 개념이 연구되는 물리학이 지식 자체를 연구하는 정보이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새로운 학문의 차원이 열리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하여 네트로피 개념은 한층 심오한 새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 엔트로피

 

 

네트로피(negative entropy) 학습법을 알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 가슴 떨리는 만남

 

인간은 일정한 삶을 산다. 태어나고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죽음을 일반적으로 망각한다. 그리고 죽음이 전제되지 않은 삶을 산다.

죽음을 고려하지 않는 삶이 낙천적인 삶은 아니다. 죽음을 염두해 두지 않는 삶은 삶 자체가 목표의식이 없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생을 누리듯이 인생을 허비해도 되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분명 그 끝이 있는 게임이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20-30년을 더 살고 덜 살고는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장수한다. 라는 개념은 모든 사람에게 축복일까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동물적 삶의 연장을 장수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수란 돼지우리에서 자라는 도살장 죽음을 망각한 돼지와 동일한 삶이다.

 

필자의 네트로피 학습법의 시작은 죽음을 인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죽음을 인식하고 죽음을 전제에 깔고 있어야 내 삶의 제한선(일종의 데드라인/마감일)이 생기고 그 제한선이 생겨야 인생의 목표가 생긴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우리인생을 인간답게 혹은 의미 있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기억하라. 우리는 시한부 인생이다. 결국 인간은 죽음 앞에서는 너무도 무기력하다. 미래 어느 날 죽음이라는 물리적한계선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해결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온전하게 보존하지는 못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새로운 나를 만나는 첫 단계이다.

 

이제 죽음이라는 거룩한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제한선을 인식했다면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엔트로피는 과학적 용어이다. 필자는 이 용어를 과학적인 용어로 활용하지 않고 우리 인간의 심리적 부분의 무질서정도를 나타내는 단어로 활용할 예정이다.

 

엔트로피란 무질서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자연계의 물질은 시간이 흐르거나 외부적 작용이 없으면 보다 무질서한 상태로 빠져 들어간다. 이것이 엔트로피의 기본개념이다.

무질서란 무엇인가. 인간의 뇌는 자연상태에서는 엔트로피,무질서상태이다.

편안하게 쉬고 있거나.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엔트로피 상태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결국 무질서의 극단에 까지 다가가게 된다.

 

무질서한 엔트로피적인 인간의 뇌구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물리적 노력이다. 물리적 노력을 극대화하면 할수록 인간의 뇌에서 무질서는 점차 질서상태로 돌아간다.

하지만 물리적 노력이 멈추어지는 순간 다시 우리 뇌는 무질서 상태로 돌아간다. 끊임없이 외부적 물리적 노력이 가해지지 않으면 우리 뇌는 언제나 무질서상태인 엔트로피를 경험하게 된다.

 

네트로피란 무엇인가. 네가티브 엔트로피( negative entropy )를 줄여서 나타내는 말이다.

결국 네트로피란 엔트로피의 반대되는 개념 즉 질서가 잡혀있는 상태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이, 혹은 봄은 자연의 법칙으로 언제나 오듯이 인간은 상태는 엔트로피 상태가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엔트로피상태에서 살다가 엔트로피상태로 죽어간다.

하지만 자신의 뇌상태가 무질서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고치려는 물리적 행위(노력)를 행하는 소수자는 그 시대의 리더가 되고 인류사를 이끌어가는 위대한 인물이 된다.

 

인간의 뇌는 모두 자연상태에서 엔트로피적 무질서 상태이다. 이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정확하게 자신의 뇌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엔트로피상태에서 늙어가고 죽어간다.

하지만 인간이 동경하는 삶은 누구나 네트로피 상태이다. 그래서 우리는 네트로피 즉 질서가 잡힌 상태의 사람이나, 상태를 희망한다.

 

국회의원을 뽑을 때도 네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질서 잡힌 사람을 뽑고 싶어하고, 집을 고를 때도 엔트로피적 혼란하고 무질서 상태의 집보다는 네트로피적 질서상태에 있는 집을 가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순된 것은 자신의 현재 뇌 상태가 깊은 무질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뇌는 자연상태에서는 엔트로피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이 상태가 방치될 경우 더욱 엔트로피 상태는 깊어져 간다.

 

흔히 엔트로피적 사고 상태에서는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간다.

일의 우선순위가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 원초적으로 급한 것부터 해결해 나간다. 예를 들어 현재 배가 고프면 그냥 밥을 먹는다. 혹은 지금 심심하면 그냥 게임을 한다. 이런 상태가 엔트로피적 사고상태이다. 생각의 질서가 없이 급한것, 지금 당장 아쉬운것만 해결해나가고 현실의 고민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엔트로피 무질서를 늘려나간다.

엔트로피적 사고상태에서는 자신이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만약 지금 현재 자신의 뇌상태가 엔트로피적 사고속에 있다고 인식할수만 있다면 이 책의 임무는 끝난 것이다.

 

자신의 두뇌가 현재 엔트로피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그 상태를 극복하려고 작은 노력이라도 하게 될 것이고, 그 상태를 벗어나고자하는 일반적인 노력은 곧 질서를 부여하려는 노력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다. 자신의 현재 머릿속은 무질서 상태이며 그러한 무질서상태에서 사고하는 모든 사고체계는 모두 즉흥적이고 무의미한 죽음을 망각한 무질서상태의 연장이라는 점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그 모든 무질서상태를 잡아줄 수 있는 의미 있는 것을 향해 진정으로 노력하라는 것이다. 그 무질서상태를 잡아낼수 있는 핵심은 집중이며 집중할수 있는 힘을 길러 주려면 인간 본연의 상태인 엔트로피를 벗어나야 한다. 마치 어지러워진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노력을 하듯이 우리 뇌 역시 질서를 잡아야 한다.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엔트로피적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인생이란 결국 무질서한 우리의 뇌 상태에 끊임없이 질서를 부여하는 일련의 행위라는 점이다. 우리 뇌는 무질서상태에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지금 나의 뇌가 극한의 무질서상태에 있다면 우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순간,순간의 일들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버스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나를 얄밉게 쳐다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리고 외면하려해도 그 기분나쁜 기억은 다시 과거의 기분 나쁜 기억을 불러와서 현재의 내 기분을 더욱 나쁘게 한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무질서상태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엔트로피 상태이다.

 

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엔트로피 상태에 싸인 사람들인 엔트로피적 해결방안(즉흥적,임기응변적)을 강구한다.

여성의 경우 미니스커트를 입거나 화장을 진하게 함으로써, 이 엔트로피적 질서에서 엔트로피적 해결방안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남자의 경우는 호탕한척 하거나, 혹은 연극배우처럼 대담한척 혹은 즐거운척 하므로써 자신의 엔트로피적 상태를 벗어나려고 한다.

물론 이와같은 일련의 행동들이 일시적으로 엔트로피적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는 해줄 수 있지만 영원한 질서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즉 엔트로피적 상태에서 엔트로피적 해결방안을 찾는 일반적 행위는 결국 완전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므로써 더욱 큰 무질서상태로 인간을 내몬다.

 

필자는 학원에서 10여년간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끊임없이 수업과 상담을 하면서 고민을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학생스스로 공부를 하게 할수 있을까.

학생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정말 가치 있게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그 방법은 정말 위대한 방법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결국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엔트로피라는 무질서상태를 본인 스스로 인식하고 이 상태를 극복해야 하겠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케 되었다.

 

인간이 엔트로피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므로 엔트로피 상태를 벗어난다는 것은 물리적 노력이 필요하므로 힘들고 외로운 싸움일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엔트로피상태를 벗어난 소수의 위대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을 선구자 혹은 성공한 사람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책은 읽는 독자 모두는 분명 위대한 소수자 혹은 선구자가 될 수 있다. 진정으로 현재의 부정적 엔트로피 상태를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우선 자신의 현재 상태가 엔트로피 상태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엔트로피 상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현상들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고쳐나가려는 의지를 만들어야 한다.

 

자신이 엔트로피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노력은 결국 엔트로피적 사고로 회기하는 무의미한 돌팔매질이다.

 

엔트로피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방식을 구분해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이성,동성 친구관계

 

엔트로피적 사고란 무질서적인 사고이다. 그러므로 엔트로피적 무질서 정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혼란하고 즉흥적인 친구관계를 유지한다.

엔트로피적으로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좋은친구와 나쁜친구의 개념을 자신의 현재 기분에 따라 달리 구분한다. 그러므로 서로 무질서정도가 비슷한 친구를 사귀거나 애인을 만난다. 우리가 흔히 끼리끼리 만난다는 이야기는 이와같은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무질서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그 무질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친구나 애인을 만나다. 그리고 빨리 즉흥적으로 별 노력없이 엔트로피상태를 벗어나고자 한다.

엔트로피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친구혹은 애인을 만나면 우선 보다 자극적인 것을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대화도 좀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어야 하고, 스킨쉽도 보다 자극적이고 싶어 한다. 담배와 술역시 나의 엔트로피정도를 낮추고자 취하는 것들이다.

 

엔트로피정도가 높으므로 친구를 만나면 무조건 그 엔트로피정도를 낮추기위해 담배를 피거나 우선 술을 마시면서 일시적인 엔트로피 상태를 벗어나고자 한다.

 

내기 골프,혹은 내기당구, 경마, 도박역시 엔트로피 정도를 일시에 해결하고자하는 욕구에서 친구를 만나 행하게 되는 일반적 행위이다. 결국 이러한 행위가 일반적으로 엔트로피상태를 줄여 줄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결국 더 큰 엔트로피적 무질서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면서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중독 상태라고 부른다.

 

그래서 어른들은 친구나 애인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모두 이러한 비밀을 담고 있는 말이다.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가족생활

 

엔트로피적 무질서 상태가 높은 사람이면 일수록 tv,게임중독성이 강하고, 쉽게 포기하며 화를 잘내고 쉽게 웃고, 쉽게 슬퍼한다.

엔트로피적 가족환경의 무질서 정도는 tv,인터넷등을 통해 더욱 심화된다.

엔트로피적 아버지는 매일 돈 벌어 오는 고생을 가족에서 보상받고 싶어 한다. 무질서정도가 높은 아버지일수록 쉽게 화내고, 자신만을 생각하며, 권위적이다. 또한, 말수가 적으며 매사에 피곤해 한다.

무질서 정도가 높은 어머니는 매사에 부정적 말만을 되풀이한다. 무질서상태를 벗어나고 싶다는 처절한 몸부림이지만 결국 가족전체를 더욱 더 큰 무질서상태로 빠뜨리고 만다.

엔트로피적 환경속에 자라는 자녀는 청소년기에 심한 갈등을 경험한다.

성격의 기복이 심하며 심하게 자아를 상실한체 무질서상태에서 무질서한 꿈을 꾸게 된다.

일반적으로 무질서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미래희망은 매일매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 tv에서 연예인이 멋있다고 느껴지면 무질서상태에서 막연하게 tv스타를 동경하게 된다. 혹은 영화에서 킬러를 멋있게 봤다면 무질서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그 킬러를 동경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몇일 못가서 이 꿈들은 다른 자극에 의해서 다른 형태로 표출되어진다.

무질서한 집안에서 나타나는 행동들은 결국 상호간 감정의 극한대립 또는 동물적 화해의 연속으로 이루어 진다.

 

아버지는 공부하라고 짜증을 내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아들,딸들의 비행을 고자질하고 아이들은 무질서상태를 극복하기위해서 또다시 거짓말과 분노,짜증을 연속적으로 분출한다.

 

결국 이러한 무질서상태의 연속은 학생 및 집안 전체가 극단의 무질서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행위자 본인들은 무질서상태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자신의 행위가 매우 정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돈을 열심히 벌어온 아버지 입장에서는 무질서의 극단으로 가고 있는 우리가정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렇게 된 모든 원인을 아내와 자식에게 돌린다. 그리고 틈만 나면 무질서상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녀와 부인에게 자신의 현재 사회생활의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그 말의 진위는 바깥 사회생활역시 무질서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머니,자녀 역시 가정 무질서상태의 지속적 악화의 원인이 본인에게 있지 않다고 발뺌한다.

 

결국 가족 무질서상태가 극대화 되면 될수록 불신과 불안감은 증폭되며 대화는 단절되고, 여러 가지 신체적,정신적 병리적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심리상태

 

엔트로피 상태가 높으면 높을수록 자기 자신을 빨리 엔트로피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어 한다. 즉 매우 조급하다. 자신이 엔트로피상태에 있으므로 늘 고통 받고 있는 상태이다. 마음이 불안한 상태이다. 정도와 상태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는 있지만 모두 엔트로피적 고민에 휩싸여서 불행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보다 자극적인 즉흥적인 행위 속에 자신을 몰아 넣어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공부 따위는 지겹고, 두려운 것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말초신경을 자극시켜줄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 해맨다. 멋진 이성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더 멋진 차 혹은 유명한 메이커의 옷을 사기를 원한다. 이렇게 소비하다 보면 분명히 나의 엔트로피 상태는 진정되리라고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결국 엔트로피 무질서상태가 극한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열등하고 불우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소수의 몇몇 사람들과 교제를 유지해나가며 겉으로 보았을때 멋진 이성이 아니면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가치관이나 생각 같은 것은 염두해 둘 필요성을 못 느낀다. 오로지 현재의 엔트로적사고를 해결해줄 그 무엇인가 말초적 내 정신세계를 해결해줄 무엇인가만을 갈망한다. 먹는것,입는것,소유하는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리거나, 소유하지 못하면 불같은 화를 내거나 걱정,혹은 고민한다. 이 모든 행위는 엔트로피적 무질서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엔트로피적 해결방안이다. 즉 엔트로피적 해결방안은 더욱 인간을 엔트로피적 상태로 끌어들인다.

결국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하거나, 혹은 자아 정체성을 상실해서 균형감 있는 대인관계를 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보다 윗사람(돈많은 사람, 이성적으로 멋있는 사람,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급격히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자신과 동급 혹은 아랫사람이라고 인식되는 사람(부모,형제,돈없는 사람,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이성이나 동성친구,나이 어린사람)에게는 안아무인으로 대접한다. 이 모든 행위는 자신의 머릿속 무질서상태에서 즉흥적인 위기모면용 혹은 쾌락추구를 위해 이루어지는 행동양식들이다.

 

또한 엔트로피적 사고에 휩싸인 사람들은 쉽게 분노하고 쉽게 좌절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회피한다. 엔트로피적 사고를 해결하는데 가장 위대한 치료약은 집중이지만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이 집중을 회피한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집중을 회피한다. 이유는 당연하다 네트로피 상태를 충분히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집중자체를 지겨운것, 귀찮은것, 하찮은 것으로 취급한다.

 

결국 엔트로피적 사고의 극단에 있는 사람일수록 책읽기를 싫어하고, 이성적 대화를 회피하며 복잡한 이성적문제를 싫어한다. 그러므로 어려운 문제에 부딧치면 다른 길을 택하려고 한다.

결국 내 잠재능력은 충분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내 엔트로피적 마인드가. 나를 병들게 하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버럭 화를 내거나, 회피하려고 하고 두렵다는 엔트로피적 발상이 먼저 들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좋은 기회를 스스로가 포기하고 난 뒤에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다. 혹은 나는 아무 가치도 없는 머리 나쁜 사람이다 라고 자신을 다시 한번 엔트로피상태로 빠뜨린다.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교우관계에서 나타난다, 표피적이고 피상적인 만남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양한 부류의 사람과 만남을 가지지 못한다. 나보다 배울것이 많은 사람과의 만남은 껄끄럽고 복잡한 만남이기에 회피하고, 어려운 친척과의 만남은 예절이라는 집중이 필요하므로 회피한다.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만남은 또래친구에 국한된다. 만났던 친구를 만나고 또 만난다. 아무 의미없는 만남을 지속하다가 결국 엔트로피적 대화를 연결해 나간다.

성적욕망, 혹은 편법,불법적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동안 결국 두 사람은 더욱 엔트로피적 사고로 깊이 빠져 들어간다.

 

이러한 엔트로피적 사고와 만남은 결국 자신주변이 가치없게 여겨지는 순간까지 도달하게 된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무지하고 가치없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부모와 형제 심지어 친구까지도 가치없게 여겨진다. 결국 tv나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을 찾아 엔트로피적 방황을 시작한다.

이러한 정신적 상태는 결국 우울증 혹은, 열등감, 조울증과 같은 병리적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상태는 신체이상을 가져 온다. 척추측만증,난독증,신경성 대장증상,폭력적행위등이 해당된다.

 

결국 엔트로피적 사고 속에 있는 사람들은 늘 전화나 메신저를 기다리거나 혹은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 이 엔트로피적 시간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것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괴로워한다.

 

엔트로피적 상태에서 나타나는 실패하는 공부형태

 

엔트로피적 무질서 상태에서 극단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것이 공부이다.

악마가 십자가를 본것처럼 공부라고 하면 무조건 엄두가 안 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공부는 엔트로피적 무질서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말이기도 하다.

 

무질서상태가 심한 사람들은 집중을 해야 하는 일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막연하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엔트로피적 해결법을 찾는다. 예를들어 게임이나, tv를 보는 행위는 일시적으로 무질서상태를 아주 손쉽게 막아주는 도구이므로 엔트로피상태가 심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집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를 공황상태에 빠지게 한다. 머리가 텅비어있는 상태 이 상태는 고도의 초월적 상태가 아니라 심한 악취가 나는 동물적 공황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이 공황상태가 장기화 되면 될수록 집중력은 떨어지고 우리가 바라는 네트로피 상태로의 진입은 요원하게 된다.

 

하지만 손쉽게 접근 가능한 도구인 tv와 게임, 인터넷서핑과 같은 수단은 우리의 무질서상태를 일시적으로 진정시켜 줄 수 있으므로 끊임없이 접근하게 된다. 일종의 새로운 질서를 머리에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질서의 지향점은 불행하게도 끊임없이 더 심한 엔트로피상태로 항해하고 있다.

네트로피 상태로 향하는 새로운 질서가 아니라 보다 심한 메가 엔트로피 상태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행동은 일반적으로 tv의 영향으로 조울증적 증상을 보이게 된다.

쉽게 결심하고 쉽게 포기하며 쉽게 말하고 쉽게 지친다. 기분이 좋았다가 쉽게 나빠지며 부모와의 관계역시 좋을수가 없다.

 

엔트로피적 혼란상태에서는 공부를 제대로 할수없는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엔트로피적 상태에서 탈출할수있는 유일한 길은 머릿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무질서한 생각중에서 우선순위를 집중으로 가져가는 길 밖에는 없다.

 

엔트로피 상태를 뛰어넘어라

 

자신의 엔트로피 상태를 뛰어넘기 위해서 가장 유용한 도구는 집중이다. 엔트로피상태에서 질서를 잡기위해서는 우선 집중할 줄 알아야한다.

하지만 엔트로피상태를 자신이 정확하게 엔트로피 무질서상태라고 인지하지 못한다면 집중자체가 불가능하다.

집중을 할 수 있는 상태로 가려면 우선 자신이 하루 일과중 엔트로피적 무질서상태에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친구들과 할 일없이 웃고 떠들고 있거나, 이유없이 tv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틀림없이 엔트로피적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선 자신이 엔트로피 상태에 빠져있다고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각하지 않으면 엔트로피 상태라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집중자체가 불가능하다.

 

우선 하루 중 엔트로피 상태에 깊게 빠지는 순간이 어느 시간인지를 집중적으로 체크하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라.

엄밀히 말하면 엔트로피적 상태에서의 삶은 자신이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한 다른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때의 삶을 감정적인 삶이라고 규정하자.

연인에게 실연을 당하고 상당히 우울해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울한 상태에서 삶은 죽어있는 삶이다. 즉 무질서한 상태이다. 이 무질서한 상태에서의 삶은 삶 자체가 괴로움이며 혼란이다.즉 엔트로피상태이다. 이 상태에서는 자아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정이 들어와 삶을 살아가는 상태이다.

다른 예로 별다른 노력 없이 극단적 즐거움이 계속되는 삶도 엔트로피적 삶이다. 친구들과의 의미 없는 대화, 혹은 끊임없는 소비성행위를 하는 자신이 행복하고 즐겁다고 느껴진다면 그 상태는 진정한 즐거움의 상태라고 말하기 보다는 자아를 상실한 상태에서 느끼는 말초적 즐거움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극단적 즐거움이나. 극단적 슬픔등은 엔트로피적 삶이므로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최근에 있었던 고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며 그 고민들은 다시 다른 고민으로 전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사실이 왜곡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지금 쇼파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쉰다면 오랜시간 엔트로피 무질서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사소한 고민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어제 쇼핑을 하고 불친절한 점원을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사실은 불친절한 점원을 만난 것 자체이지만(fact)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새로운 생각을 하기시작한다.

즉 무질서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들을 잡념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생각들의 이면에는 엔트로피적 무질서를 확대하려는 본능이 작용하고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 상태에서는 "그 점원이 왜 그랬을까" 라는 잡념부터 시작해서 "그가 나를 왜 싫어했을까" "혹시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나의 과거를 알수있을꺼야" "그를 어떻게 혼내주지", 이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결국 내 머릿속은 엔트로피의 극단으로 다가가고 있으며 이런 생각들은 다른 새로운 사소한 고민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된다.

 

물론 엔트로피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도 극단적인 위험한 상황에서는 머릿속 질서를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폭력배를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이 상황에서는 그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모든 나의 뇌세포가 그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 상태가 결국은 질서라는 상태로 나타나게 된다.

 

위기 상황을 생각해보라. 오직 그 사건만을 해결하기 위해 나의 모든 신경세포들이 한곳을 향해 응시해 본적이 있다면 이미 집중을 경험한 것이고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영감을 경험한 것이다.

 

엔트로피 상태를 자각하고 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질서를 잡아나가는 집중을 부여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우리 삶 전체에 주인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엔트로피 상태를 뛰어넘고 머릿속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라

 

머릿속에 무질서 상태를 자각했다면 이제 머릿속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자.

우리 머릿속은 아주 단순하고 아기같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또한 늘 엔트로피 상태로 회기하려는 본능을 가진 아기와 같다. 그러므로 우선 우리 뇌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음을 친절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새로운 목표는 너무 엄청난 것을 목표로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 뇌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우리 뇌속에 주입하면 우리 뇌는 변덕쟁이처럼 그 일을 거부한다. 우리 뇌를 속이기 위해 내일하루 혹은 일주일분량의 목표만을 제시해 주어라. 그리고 매일 매일 그 명령을 우리 뇌에게 주입하면서 성취감이라는 열매를 우리 뇌에게 공급해 주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 뇌에게 1년치 목표 명령어를 내리면 과부하가 걸려서 수행을 거부한다. 지금 엔트로피 상태에 있는 우리 뇌에게 내일 하루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명령하자. 천천히 조금씩 실천 가능한 목표를 부여하고 거기서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뇌를 훈련시키자.

 

엔트로피 상태에 있는 우리 뇌를 구출하기 위해서 집중력이 필요하며 그 집중력 중에서 가장 강력한 행위가 공부이다.

공부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 뇌의 엔트로피 상태를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이다.

 

공부를 하도록 명령을 내릴 때에는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명령을 내려야 하며 시행 가능한 명령만을 내려야 한다.

 

일단 엔트로피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시행을 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엔트로피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네트로피 상태로 가기위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내 머릿속에 너저분하게 흩어져있는 일의 우선순위를 우선 공부로 세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내 머릿속에 공부를 우선순위로 세우기 위해서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다.

이때 반드시 내 자신에게 고도의 긍정적 암시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행위는 내 머리의 엔트로피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 놓기 위함이며 이 모든 집중은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하다.라고 끊임없이 암시할 필요가 있다.

 

질서있는 상태 즉 네트로피 상태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내 뇌가 네트로피 상태로 전환되려면 사실 많은 긍정적 노력이 필요하다.

네트로피 상태로 전환되면 인생자체가 의미있게 되며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네트로피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이성적으로 변화되어있는 상태이므로, 더 많은 긍정적 노력을 하게 되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게 된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응대하며 리더쉽과 프리젠테이션 능력 또한 향상을 가져오게 된다.

 

즉 엔트로피 상태에서 네트로피 상태로의 전환은 인생의 극적 반전을 의미하며 이것을 경험한 학생들은 긍정적 변화의 체험을 경험한 것이 사실이다.

 

실전적으로 우리 뇌를 네트로피적 상태로 바꾸기 위한 공부 트레이닝 기법을 4단계에 나누어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내 뇌를 공부 잘하는 네트로피 상태로 바꾸기 위한 위대한 공부 법칙

 

첫 번째 책을 읽어라. 끊임없이 읽고 또 읽어라.

 

책을 읽는 것은 내 뇌에게 가장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방법이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우선 공부를 하지 말고 책을 읽어라. 책을 집중적으로 읽어야 엔트로피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책을 읽는 행위는 바이러스로 감염된 나의 엔피로피적 머리에 긍정적 백신을 투입하는 것과 같다. 만화책이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보다는 학문적인 책을 읽어야 한다.

읽기 싫어도 네트로피 학습법을 적용하는 첫 번째 주는 반드시 하루에 3-4시간 집중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을때는 내 뇌를 개조하여 엔트로피상태를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으로 읽어야 한다. 하루 4시간 집중적 글 읽기를 시도하라. 문학서적보다는 비문학서적을 읽는 것이 공부에 더욱 도움이 된다.

책을 읽을때는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책 페이지 하단에 자신의 느낌을 서술하거나 줄거리를 요약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의 적극적 글 읽기 방법을 다 쏟아 부어서 읽어나가야 한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시험은 문자로 출제되며 문자로 구성된다. 문자에 익숙한 사람은 성공하고 문자에 익숙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문자를 내 머릿속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네트로피 학습법의 첫 단계 이다.

읽고 또 읽어라 이해가 되건 안 되건 무조건 읽어라. 읽으면 된다. 몰라도 읽어야 한다. 이해가 될 때까지 쭉 읽어라.

 

두 번째 단계는 최종 목표세우기이다.

 

엔트로피상태에서 나타나는 최종 목표 세우기의 형태는 엔트로피적인 즉흥적인 선택을 전제한다.

엔트로피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즉흥적 목표설정은 끊임없는 목표의 혼란만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엔트로피 무질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무질서한 목표설정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

네트로피 상태에서 진정으로 심사숙고해서 마음내부에서 인생 최종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 원대한 목표가 설정되지 않으면 앞으로 해야 할 공부 자체가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귀찮음으로 다가온다.

네트로피적 상태로 가기위해서는 원대한 비젼을 가진 미래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즉 내 욕망이 어느쪽으로 가고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막연히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을 가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그 목표를 이루었을때, 심하게 좌절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원하는 욕망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엔트로피적 발상으로 내 욕망은 무시한체 남과 비교해서 선택한 길이므로 그 목표자체가 허상이고 혼란스럽다.

정확한 미래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욕망,의지가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를 정확히 관찰해야 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엔트로피상태라면 정확한 미래 꿈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선 책읽기를 통한 네트로피 상태로 진입한 후에 미래 꿈을 설계해 보도록 하자.

 

이 원대한 미래 목표가 세워졌다면 이제 일주일단위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현실적으로 성취 가능한 영역부터 천천히 계획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나가는 동안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이 엔트로피상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결국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긴장시켜야 한다.

일주일단위 혹은 일주일 단위의 세부계획 즉 일일 계획을 세우는 동안 계속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엔트로피 상태 인지 아닌지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엔트로피 상태로 회귀하려는 증후가 보이면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생활패턴의 수정이다.

 

인간은 자연상태에서는 무조건 엔트로피 상태로 돌아간다. 집을 치우지 않고 15일을 방치하면 먼지가 쌓이고 더러워지듯이, 인간의 두뇌역시 방치해두면 엔트로피적 자연상태로 회귀한다.

공부를 잘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법칙에 도전하여 엔트로피 상태를 극복해야 한다.

머릿속에 늘 생활하면서 내가 지금하고 있는 행동이 엔트로피적 상태인지 아닌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엔트로피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생활 요령중 가장 중요한 것이 화를 내거나 분노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화를 내거나 분노하면 내 뇌의 부정적 노폐물이 일시적으로 과다 분비되어 엔트로피 상태로 돌아간다.

또한 즉흥적인 유흥 계획 되지않은 방황,의미없는 만남, 부모,친구와의 말다툼 역시 엔트로피상태로의 회귀를 촉진한다.

 

엔트로피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면 생활 속에서 3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첫째 tv, 게임, 만화책, 인터넷서핑, 무의미한 만남을 철저히 금지해야한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수단으로 활용되던 모든 무가치한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엔트로피상태는 내가 나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가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 모든 행위는 행복이 아니라 파멸로 가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분노,의심,거짓말,화를 금지해야한다. 사실은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모든 잡념을 버려야 한다. 또한 분노,의심,거짓말과 같은 행동은 엔트로피적 행동이다. 정의롭게 말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라. 네트로피 상태로의 진입은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한다.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다면 절제하고 엔트로피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라.

 

셋째 걸어라, 그리고 읽고 또 읽어라. 화가나거나 괴롭거나 엔트로피상태로 회귀하려는 생각이 든다면 걸어라 그리고 읽어라 네트로피 상태로 일단 진입하면 엔트로피적 위협은 감소되기 시작할것이다. 지금 하고있는 모든 행동들을 의심하고 나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어 갈수 있도록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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