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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상티망 -Ressentiment

작성자나무거울|작성시간09.11.02|조회수435 목록 댓글 0

부제(르상티망 Ressentiment)

 

니체는 권력의지에 의해 촉발된 강자의 공격욕에 대한 약자의 격정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고 표현하였다. 니체의 르상티망은 사전적으로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원한•분노•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이지만,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더 비틀어져 있다. 예를 들어, 재벌회장이 체포되었을 때 '꼴 좋다. 이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건 니체의 르상티망이 아니다. 체포되든 말든, '아무리 부자라도, 진짜 선이나 삶의 가치를 모르는 불쌍한 인간.'이라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게 르상티망이다.

"상사에게 어떤 야비한 일을 당하더라도 괴로워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저런 인간도 있구나' 하면서 그를 동정하는 게 르상티망이다.

 

기독교적 도덕관은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예수의 말에 집약되어 있다. 약자는 힘과 권력으로는 맞설 수 없는 강자에게 학대당한 스트레스를 발산하지 못한 채 르상티망으로 뭉쳐져 있다고 보았다. 예수는 약자들에게 강자를 악인으로 간주하고 강자를 정의를 모르는 자라고 불쌍히 여김으로써 정신적 우위에 서는 법을 가르쳤다. 그것이 예수가 약자에게 베푼 도덕관의 정체이다. 그러나 예수의 도덕관 역시 르상티망을 바꿔 표현한 것에 불과한 만큼 기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근원적인 원한과 분노에서 도망갈 수 없다.

 

르상티망에 빠져 살아가는 중류층 집단으로는 학계의 전문가 집단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대단히 우월한 존재라고 여기며,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남에도 사회에서 고립된 채 충분히 보상받거나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보통 세상이 자기를 몰라본다고 생각하면서 영원한 실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감정을 때로는 심술로 드러내기도 하고, 극단적인 정치관을 피력함으로써 분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치관은 눈에 띠기 마련인데, 보통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능력에 걸 맞는 권력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을 그 특징으로 한다.

대학교수나 박사급 연구원들은 거의 모두 학창시절에 뛰어난 성적을 받았기에 비범한 인물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자라면서 줄곧 그런 말을 듣다보니 정말 그렇다고 스스로 세뇌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학생 때 자기보다 훨씬 성적이 떨어졌던 인간들이 사회에서 잘 나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행복은 쓰라림으로 변한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의사나 변호사는 타워펠리스 아파트에 고급빌라를 사들일 만큼 넘치도록 돈을 버는데 과학, 철학과 예술에 더 없이 박식한 나는 왜 이 꼴이란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불공평한 사회이기에 이 따위로 만드는 것인가? 시기와 질투에 무기력만 더해가는 지속적인 르상티망(Ressentiment) 상태에서 헤어날 길은 없는 것인가?

학문애호가들이 이럴 정도면 폭탄(약자, 인기 없는 자, 하류)은 말해 뭣 하겠는가? 아아. 폭탄에게 진정 구원의 길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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