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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신불산 (1209m) 평화통일 기행

작성자하늘북|작성시간13.04.23|조회수67 목록 댓글 0

1.   신불산 평화통일 기행

      4월은 민족의 자주 독립, 단독정권 수립에 반대하며 통일운동을 위해 온몸을 던져 싸웠던

      신불산 마지막 빨치산 구연철 선생과 함께 떠나는 신불산 평화통일 기행입니다.

 

     일 정 :

     (8:00) 출발 법원 / ⇒ (9:30) 상단입구 도착⇒ (9:50) 상단입구 출발⇒ (11:30) 삼거리 도착 ⇒  (11:50) 삼거리 출발 ⇒ (12:30) 팔각정 집결 ⇒ 이후 식사 및 휴식 ⇒ (14:30) 팔각정 출발 ⇒ (15:00) 파래소 폭포 도착 ⇒ (15:30) 파래소 폭포 출발
⇒ (16:00) 하단 도착 ⇒ (16:30) 뒷풀이 장소 집결 ⇒ (18:00) 출발 귀가

 

2.  모임일시 :  4월 28일 일요일 / 대구 수성구 법원 주차장

                       안내 하늘북 010-2757-5542

 

3.  회비 및 준비물 :   생수, 과일 등 간편식, 즐거운 마음, 참가비 15,000 원

                                 (교통비 1/n 별도, 도시락 및 뒤풀이는 주최측에서 준비)

 

 4. 부산집결 장소 :  부산 서면 영광도서앞 (오전 9시)
                            연락처:051-807-3069  / 손전화: 011-877-3097  / 담당: 이병화

 

 

 

 

신불산 책소개

http://sanzinibook.blog.me/20126745760?Redirect=Log&from=postView  

지리산 외 하급 조직원 첫 기록…한국전 ‘비사’ 등 적어
“민주화 역주행? 사람사는 세상에 희망 없는 곳 없어”

생애사 펴낸 ‘신불산 마지막 빨치산’ 구연철씨

 

바람이 나뭇잎 흔드는 소리를 들으면 죽으면서 잘 싸웠다고 말해달라던 소녀 대원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

1천m급 ‘경남알프스’에 속하는 신불산(1209m)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마지막 빨치산’ 구연철(80)씨가 수기를 펴냈다. 부산울산경남열사장학문화사업회 기획으로 소설가 안재성씨가 구술을 받아 정리한 기록 <신불산>(산지니 펴냄)이다.

구씨는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나이 스물에 ‘친외세·반통일 세력’에 쫓겨 신불산으로 입산해 54년 4월 부산에서 체포될 때까지 3년9개월동안 조선노동당 경남도당 동해남부지구당 소속으로 대민 조직활동을 벌였다. 그의 마지막 직함은 제3소지구당 조직부장. 지리산 지역 외 하급 빨치산에 대한 기록은 처음이다. 그동안 평전이 나온 이현상·남도부(본명 하준수)· 정순덕(여성)은 지리산 또는 지휘관급이었다.


마지막 빨치산’이었던 구연철씨가 1950년 한국전쟁 직후부터 3년9개월동안 활동했던 신불산에 올라 ‘공비지휘소가 있던 곳’ 표지석을 살펴보고 있다.


해방전후 격동의 시기에 이 땅을 뒤흔든 빨치산 투쟁,

그 현장을 지켜온 영남알프스 빨치산 구연철 일대기


 

구씨는 책에서 알려지지 않은 비사를 전한다. ‘그가 입산했을 때 동해남부지구당은 모두 합쳐 30여명. 걸인행색에 무기는 99식 소총 서너 정뿐이었다. 재치와 부드러운 인상 탓에 울산군당 조직부 대원이 되었다. 갈산고지에 본부를 둔 전성기의 남도부 부대는 1천여명. 50년 말 남도부 부대가 수행한 형산강 다리폭파에 쓰인 폭약은 미군 다이너마이트로, 당시 신불산의 이천3리 계곡에 주둔한 미군 공병대가 빨간 부대깃발 탓에 빨치산 부대로 오인받아 미군기 폭격을 받아 쫓겨가면서 버린 것을 수습해 쓴 것이다. 51년 1월초 남도부 부대가 신불산에서 철수한 이유는 전술에 따른 것이 아니라 조직 갈등에서 비롯됐는데, 남도부가 중앙에서 지구당 명칭 변경을 구두로 받아오자 지역간부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도부는 3월에 명령서를 들고 다시 와 조직을 장악할 수 있었다.’

비전투대원인 구씨는 산 아래에 정보원을 만들어 보급품이나 정보를 얻는 일 또는 전투대원의 길 안내를 했다. 하지만 “52년 봄 울산~경주 비포장도로에서 미군 장갑차를 보급품 트럭으로 오인해 공격했다가 혼쭐이 났고, 무룡산 자락에서 매복한 국군 소대병력한테 헛총을 놔 쫓아보낸 뒤 먹거리를 구한 적도 있다”고 그는 털어놨다.

그는 지하당 조직을 위해 하산 뒤 가짜 도민증용 사진을 찍으려다 붙잡혀 20년동안 복역했다. 교도소에서는 재소자용 식량을 빼돌리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고, 7·4공동성명 뒤 자행된 전향공작에 대항해 고초도 겪었다. 74년 출옥해 막노동 현장을 전전하다가 80년대 후반,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 오리농장을 차려 자리를 잡았다. 농장은 2009년 문을 닫기까지 20여 년 동안 지역 노동운동가들의 약속 장소였다.

그는 최근 민주화 역행 현상에 대해 “사회의 모순이 깊어지고 진보의 열정이 식어도 희망없는 세상은 없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진보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고 전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출처 :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75417.html


 

 신불산 파래소 폭포

 

 

 

 

 

 

신불산 등산지도  http://blog.daum.net/flowlove55/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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