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생태마을에서의 알콩달콩
박경선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선생은 거처를 정하는 요건으로 수화(水火)와 오곡, 풍속과 산천의 아름다움 등을 꼽았다. 하지만 남편의 퇴임을 앞두고 전원주택으로 시골집을 구할 때는 그런 것들이 염두에 없었다. 오직 대구에서 드나드는 40분 거리에 흙을 만지며 일할 수 있는 텃밭과 잔디밭과 소나무, 단풍나무들이 울타리를 둘러싸고 있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낙동강 줄기가 흐르는 산책로를 걸을 수 있는 풍취에 취해서,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부엉이가 우는 밤에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하는 노천명 시인의 시속 마을에 들어온 듯했다. 그리고 대구 집 베란다 좁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던 남편이 측은하여, 퇴임 후에는 ‘넓은 공간이 있는 거실’을 마련해 그림을 마음껏 그리게 해주고 싶었던 터라, 집은 낡은 기와지붕으로 나지막하게 엎드려 있어도 ‘탁 트인 거실’ 이 마음을 화르르 붙잡았다. 흙벽의 흙이 뚝뚝 떨어지는 황토벽도 낭만있게만 보였고, 황토방 부엌 구들에 불이 잘 드는지 어떤지는 가늠해 볼 여유도 없이, ‘황토방 저 가마솥에 밥해서 누룽지 긁어 먹고, 백숙 삶아서 나눠 먹으면 좋지.’ 손님 청할 생각에만 몰두하였다. 늘 꼼꼼하게 따져보던 남편도 집을 보러 왔는지 나무를 사러 왔는지 제 정신이 아닌듯했다. 집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철마다 꽃 피는 꽃나무와 유실수들이 한 그루씩 서 있는 모습에 반해서 여우골에 들어와 여우에게 홀린 듯 정원에만 돌아다녔다. 우리 부부는 ‘여기가 꿈의 궁전 아닌가?’ 하는 황홀감에 취해서, 한 달 만에 그 집을 사서 남편의 퇴임식을 준비하였다. 그 해에 함께 근무한 선생님들 백 명만 초대하여 잔디밭에 남편이 구워 오던 도자기 작품과 그려온 유화 작품들을 펼쳐두고 작품 전시회 겸 퇴임식을 하면서,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입주식도 함께 치렀다. 그날 다녀간 백 명의 선생님들을 필두로 방명록을 펼치며 흙집에서 5도 2촌(5일은 도시에, 이틀은 시골에 살기) 생활을 시작하였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손님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할 도구나, 그릇들을 사 모으기에 바빴고, 남편은 나뭇가지 치기, 잔디밭 깎기, 텃밭 가꾸기에 필요한 도구들을 사 모으기에 바빴다.
이렇게 인심 좋고 풍수 좋은 동네에 살다 보니, 새도 풍수가 좋은 곳만 찾아다니는 걸까? 오목눈이, 딱새, 비둘기, 참새는 아예 정원의 나무와 텅납새(처마 안쪽 지붕)에 둥지를 지어 살았다. 도시에 살 때는 앵무새를 사서 새장에 키우다가 날아가 버린 일도 있지만, 저희가 알아서 날아와서 살고 있는 시골집에서는 먹이를 따로 챙겨주거나, 똥 싼 둥지를 일부러 청소해줄 일도 없이, 저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나 노래 소리를 공으로 들으며 즐겼다.
오히려, 집을 비워두었다가 대문을 열 때마다, 잔디밭을 평화롭게 거닐던 새들이 난데없는 침략자(주인) 때문에 놀라 하늘로 날아오르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으로 발소리를 죽이며 들이섰다. 그러다가 우리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날개 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딱새를 보았다.
“어라, 딱새가 어디 있다가 날아가지?”
하며 무심코 부엌 쪽으로 걸어가다가 신발장 위 큰 종이상자 한구석 안쪽에 둥지를 틀어 둔 것이 보였다. ‘세상에!’ 메추라기알보다 더 작은 분홍 새알이 여섯 개나 놓여 있었다. 동그란 무늬가 군데군데 있는 알록 알이었다. ‘햐아 차암!’ 둥지는 어디서 물고 온 실오라기인지 하얀 실오라기들을 안쪽으로 촘촘히 엮어 만든 솜이불 포대기 같았다. 알이 도굴 도굴 굴러도 긁히지 않게, 아주 보송보송한 이불 같았다. ‘햐아, 차암!’ 연신 감탄하다가 걱정이 앞섰다. ‘하필이면 안전한 나무 위를 놔두고 이 낮은 곳 상자 속에 둥지를 틀었을까?’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세입자는 아니지만, 딱새 부부가 놀라지 않게 우리야, 다른 쪽으로 다니면 되지만, 코털을 세우고 콩콩 냄새를 맡으며 다가오는 고양이가 불안했다. 고양이 밥그릇을 들고 텃밭 쪽으로 가져가며 새알을 아예 넘보지 못하도록 미리 예방책을 쓰기도 했다.
※ ※
모내기를 끝낸 논물에 파란 벼들이 발 담그고 놀고, 백로가 너울너울 하늘을 날아오르는 6월, 붉은 자두가 단내 품으며 몰랑몰랑하게 익어 갈 때,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었다. 나무에 싱그럽게 달린 자두를 보며 ‘잘 익은 자두를 따 먹는 맛도 별미가 되겠지?’ 싶어 설레며 친구들을 초대한 그날, 한 걸음 앞서와 대문을 열었을 때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간 자두나무를 둘러보니 자두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자두씨만 소복이 널브러져 있었다. 새들이 먼저 알고 맛집 식사를 다 해버린 상태였다. ‘주인도 맛보게 좀 남겨둘까?’ 그런 생각은 아예 없었을 테지.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 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는 주님 새를 먹여 주시니’ 그 노래가 들려왔다. 우리가 주인이 아니며, 주님은 하느님이심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좀 더 겸손해지기로 했다. 새 노랫소리 공짜로 들으면 그 값이라도 치러야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가을이면 우리 집 정원에 있는 대왕 소나무에 날아와 소나무 가지에서 식사를 즐기는 까치들 생각에 웃음이 났다. 까치들은 뒷집 이장님댁 마당에 널어둔 땅콩을 물고 와 소나무 가지에서 까먹다가 떨어뜨리면 내려와 주워가지 않고, 다시 이장님댁 마당으로 날아가서 더 튼실한 땅콩을 물고 와 까먹곤 했다. 그 덕에 남편은 그 소나무 밑에서 까치들이 떨어뜨린 튼실한 땅콩들을 많이 주워 왔다. 이장님께 이실직고했을 때 이장님은 우리가 베풀며 사니까 흥부에게 제비가 날아와 박씨 주고 가듯 하는 거라고 해석하셨다. 어쨌든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면서 딱새 부부의 새알들이 무사히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스무날쯤 지났을까? 알에서 깨어나 연노란색 부리가 뾰족해진 새들은 온몸을 갈색 솜뭉치 털옷으로 감싸고 꼬물거렸다. 깨어나자마자 입부터 쭁쭁 벌렸다. 엄마• 아빠 딱새가 먹이를 부리로 쪼아 물고 왔다. 그러나 곧바로 둥지로 날아들지 않았다. 둥지 맞은편 쪽 대추나무에 앉아서 위험한 적이 없나 살피다가 안심될 때 둥지로 날아왔다. 새끼들은 아직 힘이 없지만, 먹이를 받아먹으려고 온 힘을 다해 고개를 겨우 쳐들고 입을 벌렸다.
※ ※
무화과가 초록 열매를 달고 옹기종기 열리는 7월 들머리 어느 날, 딱새 둥지 속을 기웃거려보았다. 그런데 언뜻 보이는 솜뭉치 같은 몸에 연노란색 부리만 보였다. ‘저게 새끼인가. 그런데 왜 꼼짝도 하지 않지?’ 갈색 솜뭉치를 살짝 건드려보았다. 움찔움찔하지도 않고 띠앗 머리(형제 사이의 우애) 좋게 꼭 끼여서 죽은 듯이 있었다. 포도잎을 갉아 먹는 노란 벌레를 주워서 딱새 둥지로 와서 새끼들 부리에 갖다 대어보았다. 그래도 아무도 입을 벌리지 않았다.
“사람이 먹이를 주니 놀랐을 거야. 딱새 엄마도 수상한 침입자가 오거든 그저 죽은 듯이 있으라고 했을걸?”
하는 남편 말이 맞는 듯했다. 둥지 속 새끼들이 엄마•아빠 딱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오곤 조곤(서로 매우 정답게) 받아먹으며 지내는 동안, 저마다 몸집이 불어나자, 샘바리 셋째는 아예 뒤쪽으로 밀려나 고개만 삐뚜름하게 내밀고 지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상자 속에 둥지를 틀었던 딱새 형제가 모두 탈 없이 자라 활기차게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동안 아기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 시골마을에서 새들 울음소리 공으로 들으며 사는 이곳 요건이야말로 다산 선생이 내세우던 거처 정하기에 몆 배로 더 좋은, 축복받은 마을이 아닌가? (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