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 하나
박경선
1. 무지개 나라
서아프리카에 무지개 나라가 있다. 나라 국기에 빨, 노, 초 무지개 색깔이 세 개나 들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빨간색은 독립을 위해 피 흘린 사람들을 상징하고, 노란색은 풍부한 광물 자원을 상징하고, 초록색은 자연이 풍부함을 상징한다. 검은 별도 자그맣게 하나 그려져 있는데, 자유와 단결, 해방을 상징한다.
이 나라에 사는 일곱 살 소년 록바는 아침을 먹고 나서, 카카오 농장에 가는 엄마와 자동차 정비소로 일하러 가는 아빠를 보내고 동생 티토와 둘이 남는다.
“우리도 가자.”
록바는 동생의 손을 잡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강으로 간다. 오전 내내 흙탕물에 들어가 조그마한 금 조각(사금)들을 체로 걸러 찾아낸다. 그 조각들을 모아 사금 가게에 가져가면 저울에 달아 돈을 준다. 하루에 몇백 원 정도밖에 못 받지만, 운이 좋은 날에는 몇 천 원을 받을 수도 있다. 티토는 자기도 그 일을 해서 먹을 것을 사는데 보태고 싶다고 하지만 록바는 ‘너는 아직 힘들어!’하면서 말린다.
그리고는 동생과 놀아주려고 나무 그늘을 찾아간다. 나무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축구공을 내어준다. 바람 담아 붕붕 떠오르는 그런 공이 아니다. 헌옷 조각을 헌스타킹에 넣어 몇 겹으로 꽁꽁 묶어 만든 공이다. 잘 튀어 오르지는 않지만, 무슨 놀이든지 할 수 있는 공이라서 좋다.
“형아, 진짜 축구공이 있다면 형은 축구선수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티토가 눈을 빛내며 형의 꿈을 응원할 때마다 록바는 티토에게 말한다.
“두고 봐. 진짜 공을 차며 골대에 골을 넣을 날이 올 거야.”
티토는 늘 정확하게 공을 차주는 형을 보면서, 사금 가게 주인이 보던 텔레비전 속 멋진 축구 선수를 떠올린다.
‘우리에게 진짜 축구공 하나 생기게 해주세요. 그러면 우리 형도 축구선수가 될 거예요.’
이렇게 놀고 있으면 저녁에 엄마‧아빠가 돌아온다. 엄마는 바쁘게 음식을 준비해서 커다란 양은그릇에 담아 내어놓는다. 네 식구가 바닥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지만 배부르게 먹을 수는 없다. 한 숟가락씩 서로 양보하며 먹지만 그래도 날마다 감사의 기도를 꼭 하고 잔다.
‘오늘도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우리 식구가 아프지 않게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2. 고장 난 트럭
록바가 사는 나라는 정부군과 반군으로 갈라져 전쟁하고 있다.
어느 날, 형제가 공차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코뿔소처럼 생긴 커다란 트럭이 다가왔다. 록바가 사는 마을 사람들이 흔들어 보이던 눈에 익은 파란색 깃발이 달려있었다. 그래도 총을 겨눌지도 몰라서 얼른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두 사람이 트럭에서 내려 자동차 바퀴들을 살펴보더니 형제들에게 손짓을 했다.
“형 들켰어. 우리보고 손짓하는데?”
“그러게, 총을 쏘진 않을 테지. 가보자.”
형제는 손을 맞잡고 엉거주춤 그들 앞으로 슬슬 다가갔다.
“얘들아, 혹시 정비소가 어디 있는지 아니?”
“알아요. 길을 그림으로 그려줄게요.”
하며 록바는 길을 그릴 흉내를 해 보였다. 아저씨는 눈치가 빨랐다. 얼른 쪽지와 볼펜을 꺼내어 록바에게 내밀었다.
“보세요.”
록바가 그려준 길 그림을 받아 든 두 사람은 환하게 웃더니 차에 시동을 걸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형제는 바람 빠진 바퀴로 굴러가는 차가 아빠 정비소까지 무사히 가기를 빌며 땅바닥에 꿇어앉아 기도 손을 했다.
’저 차가 잘 고쳐지게 해주세요.‘
’잘 고쳐지게 해주세요.‘
3. 최고의 아빠
저녁 늦게 아빠가 돌아왔다.
“아빠, 코뿔소같이 생긴 큰 차 봤어요?”
형제의 물음에 아빠가 빙긋이 웃으며 손에 든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뭐야? 비닐봉지가 왜 이렇게 둥그래요?”
티토는 무엇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록바가 비닐봉지를 받자마자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야, 축구공이다! 사금 가게에서 텔레비젼 볼 때 국제경기에 쓰던 그런 축구공!”
티토는 축구공을 바라보며 ‘내 기도가 통했나 봐’ 라고 생각했다. 록바도 놀란 눈빛을 감출 수 없었다. ‘진짜 축구공이 내 손에 들어오다니…….’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아빠도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자동차 바퀴에 땜을 하고 바람을 넣는 동안, 그 사람들은 너희들이 그려준 약도를 내어 보이며, 자기들을 위해 바닥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너희들 모습에 너무 감동했다더라. 그러면서 차에서 축구공을 꺼내 오더라. 자기 아들과 차고 놀던 공인데 주고 싶다고 하면서.
”와!“
티코는 아빠 목말을 타고, 록바는 아빠 두 손에 매달려 빙빙 돌며 좋아했다.
”자기 아들 공을 선물로 준 은혜를 잊지 마라.“
하면서 아빠는 그 아저씨의 명함을 록바에게 건네주었다. 록바는 그 사람 이름을 읽으면서 속으로 ‘나도 커서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4. 축구의 신 록바
록바가 사는 나라는 정부군과 반군으로 갈라져 총을 겨누고 싸워서 사람들이 늘 불안에 떨었다. 마을은 종종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찼고, 거리에는 부서진 건물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널렸다. 그런 전쟁 중에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스무 살이 된 록바는 꿈에 그리던 초록색 잔디가 깔린 커다란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었다. 공격수가 되었지만, 골을 넣지 못해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고, 거친 수비수들에게 부딪혀 발목을 크게 다치고, 경기장 바닥에 쓰러져 일어날 수 없어 들것에 실려 나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발끝에 차인 공은 언제나 골대로 들어가야 해.’ 하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러다가 상대편이 찬 공을 눈에 맞아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이제 '축구의 신' 록바가 세계 축구대회에서 공을 차게 되었다. 록바가 나타나면 상대 팀 수비수들은 긴장을 놓지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록바의 발끝에서 멋진 골이 터졌고, 사람들은 ‘귀신같은 록바’라고 외쳐대었다. 각 나라 축구 코치들은 록바의 비결에 대해 궁금해하며 여러 가지 분석을 하고 다녔다.
“록바는 등과 어깨 힘이 바위 같아. 수비수들이 아무리 거칠게 밀쳐도 절대 넘어지지 않잖아.”
“정확한 바나나킥 실력도 만만찮아. 귀신같은 실력이야.”
“맞아. 그리고, '해딩 슛이 록바의 주 무기이기도 하지.”
5. 전쟁을 멈춘 축구공 하나
록바가 사는 무지개 나라 사람들은 세계 경기 기간 중에 록바의 실력 덕에 즐거운 나날을 지냈다. 어디를 가나 록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흥분해서 서로 껴안으며 기뻐했다.
그런 중에 예선에서 파랑새 나라 팀과 맞서 승리해서 세계대회에 진출권을 확정짓게 되었다. 경기를 중계하던 카메라 앞에 록바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미친 듯이 환호의 박수를 쏟아부으며 외쳤다.
”축구 신 록바, 록바는 축구의 신!“
그때, 늘 겸손해서 인터뷰를 거부해왔던 록바가 마이크를 받아 들고 청중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우리는 지금 축구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을 위해 이제 총을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 주세요!“
그때 한 청년이 스튜디오 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록바는 그 청년을 맞아 악수를 한 뒤 사람들 앞에서 청년을 소개했다.
”이 청년의 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 우리 마을을 지나다가 우리 형제에게 자기 아들의 축구공을 선물로 주셨지요. 우리는 그 공을 차며 축구에 대한 꿈과 실력을 키워왔지요. 그래서 오늘 그에 대한 감사로 제 싸인 볼을 건네주고자 그분 아들을 불렀습니다. 제 친구가 된 존슨입니다.“
그 말에 스튜디오 안과 밖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세월이 흘러도 은혜는 은혜로 되돌아오기 마련이지!“
훈훈한 이야기가 들리며 박수 소리가 세상 모든 공기를 따스하게 감싸안았기 때문일까? 록바의 진심 어린 전쟁 중단 호소는 힘을 얻었고, 마법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 후 거짓말처럼 총소리가 뚝 끊겼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차 다시 전쟁을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때, 록바가 전쟁을 잠재우기 위해 또 나섰다. 이번에는 반군의 본거지이자 심장부였던 북부 도시에서 평화의 축구 경기를 치르자고 제안했다. 경호와 안전 문제로 모두가 말렸지만, 록바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잠시도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나라에서 제가 살아 있으면 뭐 하겠습니까? 제가 할 일은 축구공으로 사람들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입니다. 저는 이 일을 하다가 죽어도 행복합니다.”
하며 나서자, 양쪽 군의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어 이 경기를 지켜보았다. 이 경기를 통해서 록바가 사는 무지개 나라는 축제의 분위기로 변했다. 이를 본 정부군 장성들과 반군 지도자가 서로 껴안고 울었다. 축구공이 정치에 대한 마음의 벽을 허문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했다. 이로부터 축구는 나라의 단결을 이루게 하는 상징이 되었다. 이제 록바가 사는 나라 아이들은 다시 넓은 땅에서 마음껏 축구공을 차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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