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Ⅱ를 읽고
(해광 스님-육잠)의 선화
2025년 12월 26일 금
새벽 4시에 일어나 카톡을 대충 훑어보니 아래층 서 교수가 문자를 보내두었다. 우리 집 문고리에 책을 걸어두었다는 문자였다. 며칠 전, <서영옥이 만난 작가전 > 팜플렛을 보고 ‘축하드립니다’는 문자만 보냈는데 ….
가방을 들여와 보니 벽돌책이었다. <서영옥이 만난 작가> 라는 제목을 그전에 읽은 터라 수필집인가 했는데 화르륵 넘겨보며 들춰보니 화가들의 삶과 그림을 평해 놓은 426쪽 평론집이었다. 놀랐다. 십년간 60인의 유명 미술작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만난 방대한 인터뷰 자료와 해박한 혜안으로 적어둔 평으로 두툼한 읽을거리 책이었다. 감사함과 무게감에 빨려들어 책장을 넘겼다.
‘예술은 작가, 작품, 관객 세 축이고 비평은 기술, 해석, 평가 세 단계 구성인데 서영옥은 작가, 기획자. 비평가라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작가는 자신의 창작 단서를, 독자는 자신의 미적 체험을 높일 수 있는 비평집이다- 권대중의 추천서에서
‘작품 읽기는 그 속을 깊게 들여다보며 연대와 공감, 다양한 시각 확장을 하는 일이다.’- 서영옥 머리말에서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았다.
1. 화가들이 그림이나 작품 자료를 찾는 시각에 비추어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 생각하지 못했던 작업감(글감. 느낌)이 있을까?
2. 화가들은 어떤 환경과 매체에서 작품화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가?
3. 자신의 가치관과 흥미를 어떻게 작품 속에 녹여내는가를 주시하며 비교하며 읽었다.
1. 김대용의 모기 작업은 미화된(야만성 잔인함, 나약함을 가린) 인간 세상의 조각적 은유, 에술적 고발작품이다. 세상의 모든 불빛이 없으면 세상은 어둠이다. 죽음이 영원을 만들어 내듯 어둠은 밝음을 만들너낸다. 어둡고 습한 곳 존재가 밖으로 나와 빛을 만난다. 강대영의 내적 수양이 예술적 감응으로 드러난 무대다. 그의 불빛 근원 향수와 삶의 환기! 향후 이어질 빛은 세상을 더 넓게 비출 후광일 것이다.
2. 강지순-물빛 정원
삶도 죽음도 가장 자기다울 때 멋스럽고 울림도 크다. 정박한 배의 안전함보다 풍랑을 헤치며 바다를 건너가는 배가 더 배다움을 느낀다. 선택과 집중은 작가의 몫이다. 함께 실린 <기억 속으로> 작품의 울림이 컸다.
3. 김강록의 회화- 색으로 풀어낸 율려
• 화가의 시간은 자주 거꾸로 간다. 삶음 끊임없는 기다림이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기대감과 설렘에 대하여, 희망과 꿈에 대하여 장엄한 주주로 열린 따스한 생명의 흐름, 그 영혼과 신성에 대하여 또 다시 생각 한다. -내 작업은 늘 그리움이다. 작업 노트에서
•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창작예술은 가능한 세계의 기록이다. -법정 스님
• 율려는 십이율의 양률인 육률과 음려인 육려를 통틀어 일컫는다. 장대한 우주로 열린 조화로운 생명 태동의 기운이다. 음악 용어이기도 한 율려는 음양이 조화로운 태초의 소리이자 자연법칙의 소리이다. 율려는 만물의 생육과 조락에 관여하는 신비한 힘이다.
• 오방정색 사이에 간색과 잡색이 삽입되어 생명력을 가진 색채로 거듭났다. 분자가 스스로 생명체를 형성하듯 색체의 조립으로 공명을 일으키는 김강록에게는 색의 조합이 곧 생명의 의미이다.
4. 김결수- 노동으로 접근한 삶의 위무
김결수의 집은 고단한 노동과 달콥한 휴식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동시에 품은 리얼 삶의 현장이다. 작가가 집의 흔적을 숯으로 제시한 이유는 숯이 직접 언어로 가능하다.
숯의 외침-
타다가 만 숯은 치솟는 불길 속에서 제 형상을 유지하려는 나무의 발버둥
숯에 난 균열은 새로운 태동을 희망하던 나무의 또 다른 몸부림
나무의 몸부림은 삶을 지탱해온 인간의 노동에 비견
결국 숲의 노동은 삶의 내부로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남겼다. 그 숲이 인간의 삶에 대한 심층적 유대 감정을 갖게 한다. 작가의 논리대로라면 삶=노동=예술
예술의 기원은 주술과 유희와 노동이다. 김결수의 현대미술은 예술의 근원(노동)에 가 닿는다.
5. 김성수의 사실 회화 나무조각가(기억과 현실의 해학적 기록)
한적한 시골 작업실- 뜰에 넓게 퍼진 풀꽃들 사이로 흰 나비가 날고, 마당 한켠에 무리지은 작약은 동그란 꽃망울을 막 터뜨릴 태세다. 작가는 어릴 적 결핵성 관절염을 앓아, 산비탈의 음지에서 자라는 굴곡진 나무, 형체가 뒤틀린 나무를 애써 정교하게 다듬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자기 발견이자 소통의 매개로 치유의 일환이다. 미학가 고유섭(개성 박물관장했던 분 아닌가?)은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보고 ‘구수한 큰 맛과 무기교의 기교’가 느껴진다 한 바 있다. 김성수의 투박한 나무 조각에서도 유사한 미감이 감돈다. <웃는 얼굴 수막새>나 <백자가 항아리>에서와 같이 무심한 한국인 정서가 작동해 사실적 외형 묘사에 치중한 형사보다 내재된 정신, 사의에 집중할 때 감상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김성수의 조각은 직관에 더한 무심한 손맛에서 잉태된다. 작품에서 감지되는 기운은 순수함이다. 지난 삻의 질곡을 지나 비로소 체득한 맑은 영혼과 같은 상태다. 김성수의 조각에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 현재를 응시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꼭두가 연결고리다. 꼭두는 가고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가늠케 한다. 곁에 없음으로 오히려 오래 남는 역설 같은 기억을 꼭두로 조형했다. 꼭두는 작가의 유년 시절의 상실과 위로의 매개체다. <새를 타고 나는 사람들> 작품이 좋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천진한 아이의 시선으로 녹여낸 김성수의 조각 작품은 아포리즘(깊은 체험을 간결하게 압축한)과 같은 일기다.
6. 환상파 화가 김영환- 허상의 경계를 탐색한 비현실경
실재와 허구를 중첩시킨 물속의 풍경은 존재의 재인식을 불러온다. 작품 <알프스에 뜬 달>은 그의 상념을 압축, 경험 없는 자에게는 상상 속의 달이지만 상상력은 긴장과 이완에 더한 재미를 동시에 맛볼 수 있게 한다.
7. 목우 김일환
한은 밞음이고 깨달음이다. 우리 민족은 한을 얻고자 수행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음 속에 자리하는 한을 나무들의 모습으로 표현해보가 한다- 작가 노트에서
한은 분출이 아닌 응고의 감정. 쌓이고 쌓이면 한이 된다. 흐르지 않고 고이면 응어리가 생기게 마련. 맻히고 서린 감정이 축적되어 깊어지면 그림으로 표면화된다. 당산나무가 김일환에게는 한을 대변하는 기회다.
“희망의 끈을 맺힘이 아닌 회해로 융해하고 응어리를 풀어나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나무를 택한 것”이다. 한은 바람과 직결된다. 바람은 곧 희망이다. 큰 키의 당산나무는 작가가 기대는 믿음의 대상, 분신이다. 당산나무가 우뚝 선 심산풍격에서 삶의 성숙을기원하는 염원이 얼비친다. 당산마무에 오색 천을 달고 소원을 빌었을 한민족의 기운이 화가의 바람이 되어 허공에 나부낀다. 고여ㅛ한 산속에 동지를 틀었던 것은 나무를 나무(無)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8. 김재경의 산책
김재경은 걸러진 심상(고양이, 새, 강아지 등)다양한 색의 옷을 입힌다. 종이인형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 순수함과도 맞닿는 캐릭터가 실공간의 주체인 것과, 공간을 점유한 캐릭터의 배치에 따라 새로운 공간이 탄생 되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10. 김종언의 회색 풍경
김종언의 풍경화에서 숭고미가 얼비친다. 동서의 경계를 흐리는 회색빛 설경의 울림 때문? 울림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온다. 치유의 길로 끓어 당기기도 한다. 니채가 죽음을 얘기하면서 삶을 얘기하듯, 김종언은 어둠을 그리면서 밝음을 노래한다. 휴머니즘이다. 파상적 풍경이 전해 줄 수 없는 스토리텔링의 가치가 전도되는 지점이다. 색색의 민낯을 가리고 세상을 하나로 감싸는 눈! 높은데가 엇비슷해지고 뽀족 모난 모서리도 두루뭉술. 눈은 빈부격차나 혼탁한 세상을 지울 지우개로써 용하하다. 그의 그림에서 세상의 미래는 내리는 눈의 속도와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 미래의 결실이 우리가 누릴 회복의 꿈이 화가의 손에 달려있다. 그의 밤풍경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 빛과 어둠의 조화로운 너른 품의 따뜻함을 본다.
11. 김진혁과 ‘디아스포리를 넘어’ 전
있는 것만으로 사뭇 설레는 곳, 고국에 정주하지 못한 불착만들에게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그림움의 주소지가 바로 고향이다. 조곡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향수의 의미 이상이다.
12. 김찬주가 꿈꾸는 공존의 공간
김찬주의 유화 일련 묘사를 정리하면 아이의 뒷모습은 작가의 내면을 주목하게 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용한다. 다른 종의 동물과 나란히 선 아이는 생명체들 간의 화평한 공존, 공생과 상생의 가교다. 하늘과 바다, 얼룩말이 서 있는 몽환적 분위기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가 생각나게 한다. 암굴 속 끄트머리에서 빛으로 열리는 이상향에 필적할만하다. 작가의 예술은 꿈과 이상을 지향한다.
13. 김하균의 사람풍경- 취몽
그의 그림에서 한껏 취해있는 사람은 모두 평범한 우리 이웃이다. 작가는 취한 이의 표면이 아닌, 이념일 것이다. 실제와 멀어졌을 때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듯,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꿈을 꾸려면 꿈에서 벗어나야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내가 된 건지 질문할 수 있다.
14. 김현석- 진실과 허구의 이분법적 경계에 대한 질문
애초에 미술은 삶의 도구이거나 삶의 풍요에 일조했다.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에 새긴 영원에 대한 갈구와 중세 성당의 이콘화를 포함한 모든 미술은 당시를 가늠케 하는 삶의 흔적이다.
15. 노상동(서예가)의 한 일자로 생성된 새로운 공간
하늘은 차별이 없기 때문. 다른데 하나이면 하늘이고,
같은데 다르면 땅이다. 가치의 경중이 아니라 공존할 때 하늘과 땅은 각각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모두 한일자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다. 천. 지 인의 의미를 품고 있는 한일자 긋기에서 노상동의 예술관과 인생관이 읽혀진다.
16. 노창환의 구름 조각
그의 구름 작업은 순간과 찰나의 감정, 원형상의 편린이 덩어리로 거듭난 것이다. 점점 퇴색되어가는 순수함을 구름에서 건져 올린다. 다양한 기억과 감정이 농축된 구름 조각이 그의 곁에 흐르는 시 공간을 머금었다.
아로새겨진 사랑의 시작과 끝이 구름 알갱이로 무리지어 다시 만난다. 외피를 걷어낸 매체(나무)는 아기의 속살처럼 순수 무구하다. 이들은 서로 대구를 이루며 작품 전체의 네러티브를 형성한다. 생경험마저 포용하는 채화된 사랑, 그 개변체로서의 구름이 하트로 변모한 것이다.
17. 날 것 같은 원형의 색으로 한바탕 놀다간 화가 박생광
그림에서 감동은 무엇인가? 먼저 생활에 감동해야 되고 사람에 감동하면 그림은 스스로 감동 있는 것이 된다. -1984.작가 노트에서
무당은 하늘의 신성과 땅의 물질성을 매개하는 존재로서, 무당이 하는 굿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접화 놀이다. 신과 인간, 나와 남이 어우러지며 소통하게 한다.
18. 조각가 박휘봉의 작업 세계
그는 이성보다 감정을, 논리보다 의지를 중시하는 휴머니스트다. 시원은 세월이 남긴 환부를 침묵하며 견디는 것이었다. 진실에는 많은 장식이 필요치 않다.
19, 배수봉이 꿈꾸는 영원한 시간
작가는 한지의 물성에 매료되었다. 한자는 사람의 가슴처럼 따뜻한 온기를 품었다. 400년 긴 시간을 품은 한지가 바탕이 된 것도 여러 점이다. 고추, 사마귀, 꽃신, 박제된 까치도 실제 같다. 거친 바위와 비문을 탁본한 한지 위에 세필로 재현된 이미지들은 불멸할 대상들이다. 예술로 승화된 재생이자 환생이다. 밀물, 썰물처럼 펴명과 이면으로 양분된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가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공간(세상)에서 가상이 실제를 돌아보게 한다. <결>- 작품이 좋다.
20. 백태호의 마른 명태
<절규하는 명태> 그림이 좋다.
명태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생선. 황태로 거듭나기까지 까다로운 과정 숙명을 타고 났다. 하늘 향해 벌려놓은 입 속에는 맑은 공기와 추위가 고르게 들어차야 한다. 네댓 달 찬바람에 몸이 마른 과정을 거쳐 비로소 온전한 황태가 될 수 있다. 녹록치 않은 과정을 거친 몸이다. 불운했던 삶의 질곡의 명태는 마지막 혼의 불태움이자 재생과 부활의 알레고리다.
21. 엄혜원의 회화- 바위의 변주
화면은 온통 바위의 집합체다. 화면 전체를 지배할 만큼 비교적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바위가 우리 시선을 끌어당긴다. 포개어지거나 겹겹이 축적된 바위가 산을 이룬다. 바위는 비와 바람에 깎이면서도 자연의 섭리를 수용하는 우직한 존재다. 기쁨이나 성냄 같은 소소한 감정에 휘둘리자 않고, 우직한 중량감은 동정이나 번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비정함 앞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단단함이 바위의 속성이다. 바위는 자연의 치열한 생존전략을 고스란히 품으며 변화 가득한 생태계를 의연하게 수용하는 자연의 결정체다. 바위산 꼭대기는 먼 산 능선으로 이어지기고 하고 때로는 협곡을 만들어 폭포수를 쏟아 내리기도 한다. 맑은 개울물을 감싸고 돌 때는 한껏 평화롭고 고요하다. 하늘을 보고 선 소나무가 위태로울 법도 한데 안정적이다. 외세와 대결할 대세를 갖춘 듯 우뚝 선 소나무의 결연한 태세가 비정하다. 엄혜원에게 바위는 바위 그 자체가 아닌 내면화된 작가의 의지. 신념으로 보인다.
22. 이동재
여자가 개를 안고 있지만 주인공은 개다. 작가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1인칭 관찰자인 동시에 서술자가 된 화가는 관람자들에게도 넌지시 자기처럼 해보라고 한다.
23. 장경선의 치유의 매개, 영성의 받아쓰기
작가는 삶의 지향점과 그 의미에서 그림 소재를 발견한다.(나 역시 그렇잖은가?) 주위를 살피고 인생의 숲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지성의 종착점은 영성이다’고 이어령 선앵이 말했다. 꽃잎이 떨어지고서야 열매 맺힌다는 것을 알고, 그 뒤애 맺치는 엶내야말로 영원으로 이어진다는 진리르 아는 작가의 그림을 빛에 비유해본다. 성찰과 기 도가 배태한 그림은 세상을 비추는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24. 장석수 <광녀>
광녀는 미쳐야먄 다다를 수 있는 예술의 길에서 미쳐 돌아가는 듯한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고 풀기를 반복한 작가 자신 아닐까?
25. 최해구의 라이프 스타일이 반영된 회화
반아웃 증후군이 찾아올 때쯤 행복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최해구의 라이프 스타일이자 그가 추구하는 작업의 밑바탕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진으로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기억의 편린들을 긁어 모은다. 이어서 영감과 추억을 붓으로 버무리고 걸러서 편집한다. 작업할 때만큼은 스스로가 즐거워야 한다며 ‘나의 작업은 재미에 의미들 둔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시각적 쾌감이다.
26. 현수영의 반전 서사- 젤레 곰 형상의 메타포
팝아트 작가들은 인종 문제를 문학과 연결하거나 로스를 쓰레기와 연결하곤 했다. 두 가지 상층되는 이미지와 서사를 병치하는 방식은 현수영의 작품도 맥락을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젤리 곰 형상을 통해 소외 계층의 가려진 부분을 표면 위로 끌어 올린다. 일종의 호소이자 폭로다. “춤 추는 젤리 곰이 행복해서 춤출까? 그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우리가 행복할까? 타인에게 인정되는 내 모습이 행복할까? 춤 추는 곰 형상은 겉으로는 웃지만 내면에서는 고독과 외로움을 달고 사는 현대인 모습이다.
27. 장개원의 그릇 알레고리- 정재된 기억
동양화는 기암 절벽 같은 웅장함을 고원법이나 심원법에 기댄다. 서양 미술사는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과 같은 극적 장면 연출을 위해 파격과 왜곡을 허용한다. 장개원은 안정감있는 평원법의 눈높이룰 고수, 안정감이 고요로 이어진다. 사색의 진입로로 안성맞춤이다. 그릇에 집을 담았다. 한국 시골 정취가 듬뿍 묻은 집. 작품명은 <기억>
강지순-초화의 청향만당(맑은 향기가 집에 가득하기를- 새해인사)
법정스님- 창작예술은 가능한 세계의 기록이다.
김결수- 검은 숯은 나무 본래의 재질과 호력을 상실한 집의 일부였다
숯을 집으로 본 사고의 확장
숯- 생명을 꺼버리지 않으려는 나무의 노동
김문숙- 그림에서 최고의 재료는 비움으로 시작하는 정성과 평화로운 마음이다.
이휘령- 숨쉬는 한지는 빛이 드나들 만큼 흡수력과 투과력이 탁월하다
이어령- ‘지성의 종착점은 영성이다.’했다. 꽃 떨어지고 열매 맺어야 영원으로 이어진다.
엄마는 자신을 비우고 자식을 채운다. 한 가정을 채우는 것이다.
거대한 것들이 삶을 지탱하는 것 같지만 소소하고 작은 순간들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
거기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다. (여기서 서영옥은 철학자가 되어 있었다.)
장하윤이 기록한 집은 변화되는 삶이다.
불과 공기가 승천의 성질이라면 흙과 물은 아래로 향한다.
지상의 생명체는 물에서 시작된다.
페르소나- 가면
젤리곰은 페르소나에 가린 고립감과 고톡, 소외감은 즐거움 이면에 가려진 부정저 내러티브다
『서영옥이 만난 작가』 Ⅱ 출판을 축하드리며
-작고 낮고 소소한 것에 눈 맞추는 지혜를 되새기며-
평론가 서영옥 박사가 십년 간 취재해온 화백 60명에 대한 인터뷰 글은 425쪽 벽돌책으로 엮여 25년 11월 10일에 ‘아트코파’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은 44쪽이라 https://cafe.daum.net/packgungsun/hfq3/758?svc=cafeapi 에 올려두었다. 여기서는 세 가지만 두드러지게 적어 축하에 가름하려 한다.
<개구리 한 마리>
27 토. 한밤중에 깨어나 『서영옥이 만난 작가』 Ⅱ를 다시 펼쳐들었다. 가장 마음에 남는 그림 한 장이 아롱거려서다. 해광(육잠) 스님이 그린 그림,
우산 아래 웅크리고 있는 개구리가 하는 말 ‘오늘은 비가 와서 뱀이 나오지 않으니 좋구나.’- 그 말 한마디 때문이다.
비 오지 않는 맑은 날을 무심코 선호해왔던 나를 돌아보았다. 비타민 D를 쬘 수 있어 좋고, 기분도 날씨 따라 맑게 개여 좋다며 지냈다. ‘내가 만족에 젖어 지내는 날들 동안, 개구리는 뱀에게 잡혀 먹힐까 걱정하는 나날을 살아왔구나!‘ 만물을 생각하며 수양하며 사는 해광스님의 경지는,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수행하여 더 이상 수행할 게 없는 ’돈오돈수‘의 경지임을, 비로소 번득 알게 되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서영옥의 비평을 다시 읽었다
“육잠의 선화는 간결하다. 반농반선의 틈틈이 이루어낸 유희와 농필의 선묵 세계는
순수, 심심한 데다 담백하고 꾸밈이 없어 대교약졸처럼 알차고 깊다.”
해광 스님의 그림 세계를 어떻게 이렇게 해박한 사자성어로 해맑게 평해놓을 수 있을까? 그녀는 한학자일까? 212쪽, 우산 쓴 개구리 한 마리 그림 밑에 내 감동 대신 사자성어의 뜻을 적으며 공부해보았다.
반농반선- 농사지으며 참선을 실천하며
검이불루-검소하나 누추하지 않은 생활로
돈오돈수- 금방 깨치고 금방 수행하여 더 이상 수행할 게 없는 경지에 사셔서 작품이
대교약졸-기교가 크게 단순, 순수하여 오히려 서툰 것처럼 보이는 심심한 여운의 명작이 되고
농필-멋을 부려 붓을 흥청거려 쓴 글씨가 서예가로서 수행하는 도구가 되었으니…
서영옥 박사의 명 평론 한 구절을 다시 가져와 본다.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 삶의 태도를 주목하게 한다. 작고 낮고 소소한 것에 눈 맞추게 한다. 내용과 형식의 일치는 결국 자신을 내려놓고 생각조차 멈춘 상태에서 빚는 것이라는 것을 단출한 그림이 일러준다.”
서영옥, 그녀는 한학자이면서 시인인가?
<그릇에 집을 담은 사고의 확산과 엄마 작가가 사는 집의 세계>
놀랐다. ‘장개원의 그릇 알레고리- 정재된 기억’이라는 글에서 집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고착된 곳(기암 절벽 등)에 대한 내 사고가 ‘기억’ 아라는 작품으로 밥그릇에 담긴 시골집을 보는 순간, ‘아 사고의 확산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나?’에 생각이 ‘뻥’ 열려졌다. 글도 이렇게 열린 시각으로 생각하고 써야 읽을거리가 있는 좋은 글이 될 텐데….
평론가는 해설을 붙여주었다. ‘동양화는 기암 절벽 같은 웅장함을 고원법이나 심원법에 기댄다. 서양 미술사는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과 같은 극적 장면 연출을 위해 파격과 왜곡을 허용한다. 장개원은 안정감 있는 평원법의 눈높이룰 고수, 안정감이 고요로 이어진다. 사색의 진입로로 안성맞춤이다. 그릇에 집을 담았다. 한국 시골 정취가 듬뿍 묻은 집! 심오한 기저를 바탕으로 평해 놓은 그녀의 평론은 우매한 내게 새 공간을 열어주었다.
한편, <장하윤이 기록한 집- 변화되는 삶> 작품은 생후 8개월 된 아기를 둔 엄마 작가가 집을 보는 시각으로 ‘자신을 비우고 자식으로 채우는 집’을 투형해 작품으로 형상화해 두었다. 이를 직시한 평론가는 ‘거대한 것들이 삶을 지탱하는 것 같지만, 소소하고 작은 순간들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 거기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다.’ 고 평해두었다. ‘엄마는 자신을 비우고 자식을 채운다. 한 가정을 채우는 것이다.’ 는 명 문장이 장하윤씨의 집을 대변해주기에 나는 서영옥 그녀를 평론가에 앞서 철학자로 보게 된다.
한편, 김결수 작가에게서 ‘검은 숯은 나무 본래의 재질과 호력을 상실한 집의 일부였다’면서, 숯을 집으로 본 사고의 확장에 대해 언급하는 눈을 가졌다. 늘, 탈취력, 공기 정화, 습기 조절 등 실용성에만 갇혀 바라본 숯이 ‘생명을 꺼버리지 않으려는 나무의 노동’이라고 생각해낸 서영옥 평론가의 그 깊이는 심오한 철학 세계였다.
<김문숙의 오래된 새로움-- 흰>
그림에서 ‘최고의 재료는 비움으로 시작하는 정성과 평화로운 마음이다.’ 고 언급한 기운!
이휘령의 한지 작품에서 ‘숨쉬는 한지는 빛이 드나들 만큼 흡수력과 투과력이 탁월하다.’면서 ‘지성의 종착점은 영성이다.’고 한 이어령 박사의 어록을 상기시켜주었다. ‘꽃 떨어지고 열매 맺어야 영원으로 이어진다.’ 는 말이 새삼스럽게 그녀가 철학자로 보였다. 뿐 아니다. 이렇게 고운 시어로 풀어 쓰니 그녀는 시인이요.
사자성어로 풀어 해석함을 즐기는 그녀는 한학자요
깊은 해안과 심성으로 조근조근 알려주니 그녀는 다정한 평론가이다. 축약하면, 작고 낮고 소소한 것에 눈 맞추는 지혜를 되새겨주는 그녀는 섬세한 철학자, 평론가이다.
그녀가 우리 아파트에 같이 살고 있음부터 영광이어라.
2025년 12월 29일. 『서영옥이 만난 작가』 Ⅱ 출판을 기념하며
동화작가 박경선 섬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