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반성문>
2026년 6월 16일 화요일
얼마 전에 최성식 교장한테서 『행복으로 가는 문‧감사』 퇴임 기념 수필집을 한 권 얻었다. 귀한 집 귀공자로 살아왔을 것 같은 외모와 달리 야학으로 중. 고등학교에 다녀 교대를 수석으로 합격한 그 재능과 투지와 마음에 품은 고운 심성이 돋보였다. https://cafe.daum.net/packgungsun/V9UB/362?svc=cafeapi
수필집 속에는 같은 가톨릭문인회 회원인 공태연 시인(아내)의 삶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최 교장의 수필집을 읽기 전에 공태연 선생의 『노을 시계』 시집을 먼저 읽고 감동해서 교보문고에https://cafe.daum.net/packgungsun/kYSx/298?svc=cafeapi 리뷰까지 올린 터였다. 부부가 같이 고난을 극복해 온 지혜와 단단한 사랑과 제 나름의 영역에서 문학을 붙잡고 사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특히 결혼식을 성당 저녁 미사 때 치르면서 부모의 축복도 미처 못 받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고 삶을 치밀하게 살아내는 모습이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주인공들 같았다. 밝은 날, 우리 집 정원에서 리마인드 웨딩 촬영이라도 꼭 한번 해주고 싶었다. 성당에서 미사 시간마다 최 교장과 마주칠 때마다 그 마음이 숙제로 담겨 있어서 우리집에 꼭 한번 초대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 시골집에 들어와서 보니, 최 교장과 공 선생 얼굴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최 교장께 전화를 하려고 했더니 전화번호 저장이 잘못되어 엉뚱한 사람 목소리가 나왔다. 공태연 선생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다행이 연락이 닿았다. 10시 50분쯤님 되었는데 부부가 수목원을 걸으려고 수목원 입구에 도착했단다. 방향을 바꾸어 우리 시골집에 오실 수 있는지 물었다.
“거기서 35분쯤 걸리는 거리인데요?”
단거리를 강조해서 우리 집으로 모시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정자에 상을 차렸을 텐데, 낮 기온이 31도라서 정자는 청소만 해두고, 거실에 에어컨을 틀고 상을 차렸다. 갑자기 차리다 보니 식사 전에 먹을 사과. 오렌지, 방울토마토 정도로 차린 뒤, 복어국과 쇠고기 불고기 찌개. 곤지, 궁채, 오이소박이김치 정도로 조촐한 상이 되었다. 다식상에는 블루베리, 대추 절임, 산딸기. 박하차, 솔잎쥬스차 등을 내어놓았다. 그런데 산딸기를 보더니 최 교장이 외할머니가 챙겨주시던 산딸기 이야기를 꺼내었다.
“제가 상담을 하고 있는데요. 그 사람이 자기 엄마에 대해 이야기해요. 어릴 때 자기가 얻은 초코바 하나를 먹지 않고 아껴서 엄마께 갖다줬는데 엄마가 그걸 먹지 않아서 아주 속상했데요. 자라면서 엄마는 자기랑 놀자는 약속을 해놓고, 엄마 친구가 제주도에서 왔다며 아들인 자기와의 약속을 무시하고 나가서, 엄마는 어릴 때도 그러더니 커서도 자기는 무시하더라며, 그게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데요.”
그 이야기를 하기에 나도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한 병사가 부대에서 주는 초코바이 하나를 먹지 않고 부처님 전에 올려뒀데요. 부대장이 초코바이 하나라고 함부로 버려둔 사병을 찾아내어 혼을 내려고 물은 즉
‘다른 친구들은 부처님 전에 좋은 것들을 바치는데 저는 돈이 없어서 고마운 부처님께 제 성의로 그걸 바쳤습니다.’ 했데요.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해 상처 내고, 상처받는 일이 많은데 저는 우리 아들이 1학년 일 적에, 같이 관문시장을 갔어요. 아들이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길래 ‘약이다 약!’하고 지나쳤지요. 그다음에 또 아들을 데리고 시장에 갔더니 아들이 먼저 ‘엄마 저건 약이지요? 약!’ 하지 않겠어요? 세월이 갈수록 그때 그 딸기 한번 못 사준 게 한이 되더라고요. 이제 그 아이가 중학생 딸을 둔 아비가 되었는데 그때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는 기억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했더니 공 선생이 나섰다.
“서운했던 기억이 없다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하면서 위로해 주었다. 최 교장은 3학년 때 친척 집에 맡겨져 있을 때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김칫독의 김치를 훔쳐 먹었다는 이야기와 그때 할머니가 챙겨주던 산딸기가 생각난다는 이야기도 했다. 모두 곤궁한 시대를 살아왔던 가난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며 이야기할 수 있어 감사했다.
오늘의 반성문:
1. 최. 공선생 부부를 보내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남편에게 넌지시 물었다.
“최 선생 부부는 환경이 어려워도 야학으로 과업을 이루었는데, 미분 아씨한테는 야학의 길도 왜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위로 오빠가 둘이나 있었으면서…….”
“그때는 우리가 다 같이 어려서 자기 살 궁리만 했고, 시골에서 야학으로 공부 가르치는 곳도 없었어.”
남편은 변명 아닌 변명을 했지만, 일곱 형제 중에 유독, 남편 바로 밑의 미분 아씨만 초등 졸업 후 옷 만드는 일을 배우러 다녔다는 이야기가 내 가슴에 맺혔다.
“만일 그때 야학을 알아서 야학교에만 다녔어도 지금 아씨 마음이 좀 편했을 텐데요.”
“그러게, 미분이가 옷 만드는 일을 배우면서도 간단한 영어 단어를 몰라 애 먹었다고 하더라고.”
나도, 사실 심훈의 『상록수』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주인공이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실천에 옮긴 적이 없다. 우리 큰 시누이도 야학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이상, 더 이상 꿈을 펼칠 수 없었겠다. 이 생각마저도 오늘 최 교장 부부를 만나고 나서야 할 수 있었으니.
“당신 형제들이 그래도 윤기 좋게 지내는 게 신기해요.”
오늘 손님상에 차려 낸 산딸기도 시골에서 농사지은 남동생이 가져다준 것이니…
2. 오늘 『행복으로 가는 문‧감사』 수필집과 『노을 시계』 시집 출판 기념회를 해드려야 했는데 남편이 손목이 아프다고 하는 바람에 현수막 준비를 못 했다. 다음번에 두 분의 책 출간 축하 현수막을 써 붙이고 다시 한번 초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