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 참 다행이야
출-BS
독정- 26.6.22
저- 10명 시인의 공저를 읽고
내가 뽑은 최우수 작 10편
<숲속 의자> -정순오
딱딱한 나무 의자는
아파트 숲속에 앉아서
고향을 생각했어
나무가 발을 덮던 땅
나무가 베고 눕던 그늘
나무가 머리 감던 호수
그리운 가족과
친지 그리고
같이 놀던 친구들
곧 달려갈 고향 하늘 쪽으로
네 개의 다리가 움찔거려졌어
※ 나무가 품고 있는 그림움에 포착한 시
<변신>-나기철
국화빵에서
붕어방으로
붕어빵에서
잉어빵으로
잉어빵에서
황금잉어빵으로
곧
고래빵이 될 거 같아요
벙튀기처럼요
※ 세월 따라 변해가는 빵이름에 대한 고찰이 뛰어난 시
<담장에서> -류숙자
담장 밖이 궁금한
접시꽃, 해바라기
위로 위로
담장 안이 편안한
제비꽃, 패랭이꽃
옆으로 옆으로
안과 밖
다 보고 있는 담장
온갖 꽃
다 데리고 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관점과 삶의 방식에 대한 사색을 담은 시
<왕과 나>- 아이안나
저벅저벅
거실을 가로지르는
발소리
왕이 나타나면
엉덩이 들기 바쁜
우리 식구들
할머니는 부엌으로
아빠는 할머니를 따르고
엄마는 슬그머니 안방으로
혼자 남은 나
눈 둘 곳 몰라
헛기침하는 우리집 왕
할아버지의 손
꼬옥 잡는다
※ 가족의 심리에 카메라 셔터를 갖다 대고 들여다본 관찰 시
<어쩌지>-정순화
지난 여름
우리 집 마당에 왔던
작은 새
가을에 다시왔다
다래 먹으러 왔을까
포도 먹으러 왔을까
지난번 보았던 코코 보러 왔을까
어쩌지?
지금은
다래도 없고
코코도 없는데
※ 새가 맛집을 찾아온 마음을 헤아려보는 심성의 시
<이불> 조수진
봄엔 한 겹
여름엔 반 겹
가을에도 한 겹
겨울엔 두 겹
반 겹과
두 겹 사이의
계절을 껴안고
일 년을
돌고 도는
이불
※ 무생물인 이불에 계절의 온도를 담아내는 시심의 시
<썬텐>-조인
반들반들 붉은 고추
돗자리에서 쪼글쪼글
주렁주렁 참깨
마당에서 뽕송뽀송
새카만 쥐눈이콩
평상에서 땡글땡글
더 맛있어지고
단단해지려고
햇살에 몸 맡긴다.
※ 자연은 자연대로 제마다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이유를 찾은 사색의 시
<친구> 차홍희
저녁 어스름마다
학교 운동장으로 놀러 오는
산그늘
누구랑 놀지?
멍 때리는
그네와 철봉과 시소는
차가워서 싫어
어깨동무 조각상
아무리 흔들어도
책만 읽고 있다
산그늘!
오늘도 혼자서 놀다 간다.
※ 날이 갈수록 쓸쓸해지는 학교 모습을 산그늘이 대변해주는 시
<대나무>-최영선
사다리차
한 대씩 품었다
포개진 사다리
밀어 올려
위로 위로
올라가더니
내려올 줄 몰라
빈 사다리만
세워놓고
덜덜덜 떨고 있다
※ 대나무를 사다리차로 보는 관점의 신선함이 깃든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