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힘의 네 근원
이 세상에는 큰 나라지만 작은 나라가 있고, 작은 나라지만 큰 나라가 있습니다. 쏘련은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막상 문이 열려 들어가 보니 너무나 작은 나라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는 거지나라입니다. 쏘련에 들어가서 당장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좀 늘어났겠지만 내가 들어갔을 때 모스크바에는 맥도날드 집이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맥도날드를 먹은 이들은 포장지를 가지고 가서 벽에 걸어 놓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지만 큰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을 가리켜 <작지만 큰 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땅이 작지만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국민수가 작지만 큰일을 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생긴 별명입니다. 유대인의 총 인구는 1500 만에서 1600 만입니다. 미국에 684 만 명, 이스라엘에 약 500 만 명입니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세계 역사의 가장 창조적인 일을 한 민족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20,770 평방 키로키터입니다. 강원도 경기도를 합한 크기입니다. 그러나 큰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크지만 작은 사람이 있고, 작지만 큰 사람이 있습니다. 골리앗은 큰 사람 같지만 17살 된 다윗에게 질 정도로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작은 사람 같지만 나라를 블레셋으로부터 구한 큰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은 작은 것 같지만 큰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사람을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유대인입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300명 정도입니다. 그 중에 93명이 유대인입니다. 약 3분의 1이 유대인입니다. 경제 분야에서 65%의 노벨상을, 의학 분야에서 23%, 물리 분야에서 22%, 화학 분야에서 12%, 문학 분야에서 8%를 유대인이 수상하였습니다. 미국 유대인의 생활수준은 평균이 두 배입니다. 미국 인구의 2%입니다. 그런데 상위 400 가족 중에 24%, 최상위 40 가족 중에 4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변호사가 70만 명입니다. 그 중에 20%인 14만 명이 유대인입니다. 뉴욕 중고등학교 교사 중에 50%가 유대인입니다. 국민투표로 당선된 미국 국회위원 535명중 42명이 유대인입니다. 미국 유명한 대학 프린스톤 대학, 하버드 대학의 교수 중에 25-35%가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총장, 주요 행정 책임자의 90%가 유대인입니다. 가장 영향력이 있는 매스컴 뉴욕 타임즈 사장 슐츠버그(Shultzburger), 워싱턴 포스트지 사장 케서린 그레그레이엄(Catherine Graium), 가장 출판을 많이 하는 램덤 하우스(Randum House) 사장이 유대인입니다. <세계 속에 영향을 미친 유대인 100명>이란 책을 보면 모세, 솔로몬, 예수님, 바울,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막스, 심리학자 프로이드, 화가 샤갈, 상대성 이론가 아인슈타인, 세계적 지휘자 번스타인, 외교가 키신저,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영화를 만든 스필버그등 모두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작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우수한 민족이 된 것일까요?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유대인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렇데 된 비결이 있습니다. 그 힘의 비결은 무엇일가요? 1. 믿음에서 나오는 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선택하여 주셨다는 믿음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여 주셨는데 누가 건드리요라는 믿음이 고무풍선처럼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방 땅에 살면서 한 가지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한 시도 한 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작은 사람이었지만 큰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작지만 크게 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땅 한 평도 없지만 장차 이 땅 모두를 가지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은 힘입니다. 그 피가 유대인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지금도 작지만 큰 나라입니다. 작지만 큰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나 백성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요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원수 민족인 니느웨가 구원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어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게다가 순풍이 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는 데 일이 참 순조로웠습니다. 폭풍이 불었습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배에 누군가가 죄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제비를 뽑았습니다. 요나에게 제비가 뽑혔습니다. 요나도 나 때문이니까 나를 바다에 던져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죄로 평탄하던 생도 언젠가는 종말이 있었습니다. 죄는 용서받아도 벌은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고래라고 하여도 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고래는 4시간이면 어떤 음식물도 소하사킬 수 있는 소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속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고래가 요나를 삼켰으나 고래는 요나를 소화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드디어 고래는 요나를 요나가 가야할 곳인 니느웨에 토해놓았습니다. 고래는 요나를 삼켰으나 소화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애급이 삼킨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화시키지 못 하고 토하였습니다. 바벨론이 삼켰습니다. 그러나 토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가 삼켰습니다. 그러나 소화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로마가 삼켰습니다. 그러나 뱉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사라센 제국이 삼켰습니다. 그러나 먹지 못 하였습니다. 그 후 독일도, 심지어 쏘련도 삼켰었으나 소화는 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요나민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누가 삼킨다고 하여도 소화시키지 못 하고 토해놓을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에서 유대인들은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 기도에서 나오는 힘 아브라함은 작은 사람이었지만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 힘은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조그만 일이든지 큰 일든지 항상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의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기도는 유명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죄악이 너무나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의인 50명만 있으면 구원시켜 주옵소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찾아보았으나 없었습니다. 45명으로 줄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45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40명, 30명, 20명, 10명으로 줄였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을 구하지 못 하여 다 유황불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끈기 있는 기도는 대단한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작은 사람이었지만 큰 사람이 된 힘은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그렇게 크게 된 이유도 기도에 있습니다. 유대인의 특징은 기도입니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합니다. 9시, 12시 그리고 3시에 기도합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오후 3시에 기도하러 가다가 앉은뱅이를 고친 것입니다. 나는 유대인들과 비교적 많이 접하며 사는 목사 중에 하나입니다. 나는 유대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기도의 체험을 많이 합니다. 한번은 독일에서 이스라엘에 혼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유월절이었습니다. 해마다 유월절이면 이스라엘 밖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러 이스라엘도 들어가기에 비행표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나는 비행기 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밤 2시에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둘러보았습니다.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단 한 좌석도 빈 자리가 없었습니다.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비행기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탈릿을 두르고 기도문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도의 민족이구나> <유대인들의 조상은 아브라함인 데 아브라함을 닮아서 기도의 사람들이구나> 그리고 다른 체험이 있습니다. 나는 유대인 책방에 자주 들어갑니다. 한번은 유대인 책방에 들어가서 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2시 50분이 되었습니다. 주인이 외쳤습니다. <기도 시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조금 후 유대인들은 한 곳에 모였습니다. 책 고르기를 중단하였습니다. 테피린을 감는 이, 탈릿을 입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늘 지니고 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같이 모여 기도한 후 다시 책을 고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같이 유대인들은 누구나 기도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나라가 큰 나라가 되었고, 작은 사람들이 큰 사람이 된 것입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기도가 비결입니다. 3. 토라에서 나오는 힘 작은 사람인 아브라함이 큰 사람이 된 비결이 있습니다. 그는 말씀을 붙들고 사는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 하고 말씀을 좇아갔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창12;1-4)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직장을 따라 이사한 것이 아닙니다.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정을 따라 이주한 것도 아닙니다. 금은을 찾으러 방랑길을 떠난 물질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갔습니다. 말씀만 붙잡았습니다. 작은 사람이었지만 큰 사람이 아브라함의 믿음은 100살에 난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히11;17-19)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9-22) 유대인들은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유대인들의 말씀 교육은 탁월합니다. 미국 땅에 도착하면 우선 회당을 짓고, 두 번째로 성경공부 학교를 지었습니다. 다음에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와서 세운 학교가 있습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톤은 모두 이들이 성경공부하기 위하여 세운 학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최우수 대학이 되었습니다. 이 학교들이 300년 간 미국의 교육을 주도하고 세계 선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하자 아놀트 토인비(Arnold Toynbee.1852-1883)는 인류 역사 속에 일어났던 문명은 모두 28개였습니다. 그 중에 18개는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9개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문명 하나만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철저히 유대인들이 문명을 지킨 민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 원인 교육입니다. 토라 교육입니다. 1900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리고도 이 나라 저 나라로 유랑하면서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은 성경 토라와 탈무드였습니다. 아버지가 철저히 자녀에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세대 격차가 전혀 없는 민족이 유대민족입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크게 활약하였던 랍비입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어떻게 하면 유대인이 승리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매파와 비둘기파 둘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로마에 아부하는 매파는 로마와 대항하는 비둘기파를 항상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비둘기파였기에 늘 매파의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벤 자카이는 그 때 민족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길을 깊히 생각한 끝에 마침내 로마의 유력한 장군과 협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 안에 모두 감금당한 상태였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이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아프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벤 자카이는 널리 알려진 랍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하러 몰려들었습니다. 며칠 뒤 벤 자카이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죽었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제자들은 그를 관 속에 넣은 뒤 성밖의 묘지에 매장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하였습니다. 성 안에는 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파에서는 벤 자카이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칼로 찔러 죽었나를 확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반발하였습니다. <그런 짓은 죽은 사람을 모독하는 행위다> 유대인들에게는 시체조차 눈으로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자들은 관을 들고 로마군의 포위망을 치고 있는 곳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가자 로마 군인들은 관을 칼로 찔러 보아 확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만일 로마 황제가 죽었다면 당신들은 그 때도 칼로 관을 찌를 것인가?> 제자들은 전혀 무장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로마 군인들에게 받아드려졌습니다. 마침내 로마 군인들은 장례를 치르도록 길을 내주었습니다. 벤 자카이는 관 속에서 나와 로마 사령관에게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면담이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사령관 앞에 앉았습니다. 그는 사령관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장군에게 로마 황제에게 표하는 경의를 보냅니다> 그러자 장군은 황제 폐하를 모독하였다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벤 자카이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장군은 반드시 로마의 황제가 됩니다> 확신에 찬 랍비의 말에 장군은 얼른 입을 막았습니다. <그런 얘기는 그만 둡시다. 나를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보시오> 벤 자카이는 말했습니다. <장군! 나는 오직 한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장군이 물을 때 벤 자카이는 말했습니다. <성전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 대가로 야브네 거리만은 파괴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방 한칸의 교실이라도 좋으니 조그만 학교 하나만 그 곳에 지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 것만은 없애지 않았으면 고맙겠습니다> 야브네는 지중해안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 곳에서는 대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라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은 반드시 로마에 점령당하고 말 것을 알았습니다. 성전도 파괴될 것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토라 학교만 가지고 있으면 유대 민족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장군은 랍비의 청이 별로 대단치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 정도는 들어 주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둘이 이야기하고 있는 중에 로마에서 파견된 사자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 와서 말했습니다. <황제가 돌아 가셨습니다. 원로원에서 장군님을 황제로 선출하였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의 통찰력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작은 학교만은 절대로 없애지 말라> 그 날 밤 아키바는 성안으로 들어 와서 모든 사람들을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 성을 열어 줄 것입니다. 로마가 우리를 지배할 것입니다. 성전은 파괴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토라만은 건드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토라를 지켜야 합니다. 후에 우리는 이길 것입니다> 이튿날 예루살렘은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약탈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야브네만은 고스란히 보존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그 학교에 있던 학자들이 유대 민족의 지식과 전통, 신앙, 그리고 유대인의 얼을 지켜나가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의 유대인들의 생활 규범도 모두 그 학교에서 앞장서 선도해 나갔습니다. 여기에서 미슈나가 나왔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토라와 토라를 가르치는 학교만 가지면 유대인을 보호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문에 말씀 상자 메주자를 달아 두고 나갈 때 들어 올 때 입을 맞춥니다. 이마에 말씀상자 메주자를 달고 다닙니다. 팔에는 테피린을 맵니다. 말씀 중심으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말씀 토라 공부를 합니다. 그들은 늘 말합니다. <어릴 때 토라를 배우면 그 말씀이 피로 흡수되어 입으로 깨끗하게 나올 수 있으며, 노년에 배우면 피로 흡수되지 못 하여 깨끗한 말씀이 되지 못 한다> 유명한 랍비가 한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책임자는 이 곳 저 곳을 보여 주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작은 진지가 있었고 군인들이 그 마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울타리 방어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숙소로 돌아 온 랍비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 마을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 지 아직 알 수 없었어요. 병사나 울타리가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가 지키는 것입니다. 왜 내게 학교를 안내하지 않았습니까?> 토라 학교가 유대민족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이들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영화배우 남궁원 자녀 교육은 한번 충격을 준 적이 있습니다. 아들 홍 정욱이가 하버드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졸업할 때 3개 중요한 상을 혼자 휩쓸었습니다. 어머니 양춘자가 밝힌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단 한번도 과외공부를 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성경 과외공부를 시켰습니다. 선생님으로 가정으로 모셨습니다. 매일 와서 성경을 인물중심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남들은 세상 공부에 열중할 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한 선생님에게 지루한 감을 느끼면 다른 선생님을 부를 지언정 성경 공부를 중단시키지 않았더니 그렇게 지혜로운 아들이 되어 천재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유대인들의 힘은 말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4. 유모어에서 나오는 힘 아브라함은 99살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고 할 때 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창17;17) 유대인들은 조상 아브라함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웃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은 힘입니다. 능력입니다. 유대인이 있는 곳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정에서도 웃고, 직장에서도 웃고, 길거리에서 웃고, 학교에서도 웃습니다. 특별히 웃지 말아야 할 절기가 있습니다. 자신의 영을 괴롭게 하는 회개의 절기인 대속죄일이나 성전 파괴일외에는 항상 웃고 삽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비극적인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가장 박해를 많이 받아 온 민족입니다. 19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으로 쫓겨 다니던 민족입니다. 그래도 항상 웃습니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게토에 갇혀 살았습니다. 다른 곳에서 살 수 없는 거주의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항상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자기들을 억압하는 민족은 찡그리고 있는 유대인들은 항상 웃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이래저래 미움을 받는 중 너무 웃는다고, 너무 즐거워한다고 미움을 더 받았습니다. 부모상을 당하여도 한 달 이상 슬픔 속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웃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태양처럼 밝고 즐거우신 분이시고, 항상 웃는 분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탈무드에도 유모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말합니다. <하늘과 땅을 웃기려면 먼저 고아를 웃겨라. 고아가 웃으면 하늘과 땅 모두가 웃는다> 웃음은 힘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작은 사람이었지만 큰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정말 작은 민족이지만 큰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지만 큰 나라입니다.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1. 믿음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2. 기도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3. 말씀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4, 웃음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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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인성교육의 특징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우리는 서양이 300년이 넘도록 점진적으로 이룩했던 제1의 물결(농업혁명), 제2의 물결(산업혁명), 제3의 물결(정보혁명)을 지난 30,40년 만에 이루어 내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기적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오면서 세 측면의 복합적인 특징을 직접 체험하게 되고 이 변화 과정에서 체험한 우리 사회의 현상 가운데에서 여러 가지 사회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서구에서 서서히 나타났던 것들이었지만 우리에겐 짧은 기간 동안 체감 되었으니 그 충격이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 고도의 사회 성장은 과학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 풍요, 편리성, 각종 질병의 퇴치와 수명의 연장,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에서 도출되어 터득된 개인주의, 상대주의, 합리주의 등과 같은 수평문화 영역의 긍정적인 현상을 불러왔다. 그러나 물질 및 황금만능주의 사조, 상대주의와 합리주의가 바탕을 이루지 못한 개인주의 즉 이기주의의 만연, 지식 정보의 홍수에 대처 못하는 부족한 지혜 등과 같은 수직 문화 영역의 일탈현상 등의 부정적인 면도 속출했다. 수직문화 일탈현상이 심해지면 수평 문화 영역이 아무리 변화되었더라도 순식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뒤쳐지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생각할 때 현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모범적인 유대인 교육을 통해 현재의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한반도 1/10 정도의 국토 크기와 600만 인구이지만, 유대인들은 57개국 13억 이슬람권과의 경쟁에서 선두주자로 나섰을 뿐 아니라 2005년 현재까지 노벨상의 1/3(300명중 93명)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인구의 2.4%이면서 미국 상위권 명문대 학생 중의 21%(예일대 30%, 하버드대 27%), 미국 70만 변호사의 20%, 400대 재벌 중 23%, 미국 대학교수 중 25-35%가 유대인이란 자료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러한 수치는 유대인 교육의 목표인 철저한 전인 교육에서 나온다고 본다. 전인 교육 과정에서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수평문화 및 수직문화영역의 철저한 조화를 꾀하는 인성 교육 영역이다.
한국인의 경우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교포들 가운데에서 유년기에 두각을 나타내고 명문대학에 진학률이 상당히 높게 나타난 사실은 우리 민족의 저력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한국 교육 현장인 유년-초등-중등-고등-대학을 보자. 학습시간은 세계 최대일 것 같고, 교육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고등학교 에서는 새벽부터 자정까지 정규수업과 자율학습이 지속되는 초인적 학습풍토이지만, 최종 대학교육의 경쟁력 결과(IMD발표)는 세계 주요 60개국 중 거의 꼬리로 나타났다. 이 보고는 교직에 전념하는 우리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에게 또 한번 큰 충격을 던지고 우리 교육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위의 사실에서 한국 교육을 유대인의 교육과 비교 분석하면 30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직 문화 영역의 교육과 실천이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왔다고 볼 수 있고, 그 주요 부분이 바로 인성교육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닐까?
유대인의 교육은 자아 정체성 형성교육을 가정에서 철저하게 다룬다. 이는 심리적-철학적-종교적인 자아관을 형성하고 자신감을 가지도록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교육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의 부모 됨, 즉 자식에게 긍정적 모범인 동시에 동일시 대상으로 자식을 일깨워주는 철저한 모범 교육이다. “나도 최소한 부모님 같이, 아니면 부모님 보다 더 멋진, 더 나은 생활을 하겠다”는 기대를 길러주는 자아 정체성의 형성이다. “고향을 등지고 자기 집을 떠나려 하고 부모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아이들”을 양산한 우리 교육과 비교되는 현상이다.
가정에서 자기 정체성이 형성된 아이들은 이웃과 학교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성과 인간성을 교육받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가? 이웃 혹은 아파트 놀이터 등에서 모르는 아저씨를 만나면 “인사도 하지 말고”, “말도 걸지 말고”, “따라도 가지 말고”, “무엇을 줘도 받지 말고”, “먹을 것을 줘도 먹지 말라.”등의 사회 구성원간의 불신 풍조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현상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회성이 바람직하게 형성되면 어디에서나 자유와 질서를 존중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책임 있는 행동을 실천하게 된다. "양보가 진정한 승리이다.(Yield is winning)"란 서양 속담은 우리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해준다.
이러한 유대인의 교육은 철저한 개인주의 즉 자아가 형성되어 개인의 존엄성을 깨닫고 인정하여,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상의 핵을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는 것으로 발전된다. 개인주의 바탕에 ‘너’를 인정하고 존중하여 ‘나’를 존중받게 하는 상대주의와 합리주의가 더해져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책임이 전제되고 질서와 자유가 합리성을 따라 조화되고 실천될 때 인성 교육은 성공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지식교육은 금해야 한다. 우리 교육이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지 않으며, 무엇을 잃고 있는지 반성할 때라고 본다. “너 죽고 내 살자” 식의 경쟁심리, 지혜롭지 못한 조기교육 붐과 입시 지옥, 유아들의 발달 단계를 무시한 지식 교육, 부모의 지혜롭지 못한 판단으로 소질이나 적성이 무시된 채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부모의 시간에 맞춘 자녀 학원 보내기, 취학 전 과도한 지식 위주의 예비교육, 시간 때우기 식의 자율학습, 부모의 과잉 기대 등이 인성 교육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
교육은 전인교육이 되어야 한다. 전인교육의 중요한 영역인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부모가 책임을 지고 먼저 부모의 역할과 부모 됨(동일시 대상)에서 출발하여 아이 됨 교육(독립된 인격체로의 자아 성장 보조)을 수행해야 할 것이고, 학교는 더욱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바람직한 인성형성교육(IQ와 EQ의 조화, 수직-수평문화전통 조화 중시 및 실천, 지식과 지혜의 습득, 친구사귀기, 리더십 길러주기, 봉사실천, 심신수련 등)을 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는 재교육과 재사회화(평생교육, 질서와 준법, 철저한 타인존중 등)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을 출발점으로 학교와 사회가 현재의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인성교육을 중시하여 부단히 실천한다면 오늘날 만연한 우리 사회 구성원간의 불신과 세대, 지역, 계층 간의 갈등 및 오해 편견들까지도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인 정의성과 서구의 합리성이 조화되어 한국인들이 만든 새 역사와 문화가 세계 속에서 또 한번 빛나리란 기대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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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인성교육의 특징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우리는 서양이 300년이 넘도록 점진적으로 이룩했던 제1의 물결(농업혁명), 제2의 물결(산업혁명), 제3의 물결(정보혁명)을 지난 30,40년 만에 이루어 내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기적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오면서 세 측면의 복합적인 특징을 직접 체험하게 되고 이 변화 과정에서 체험한 우리 사회의 현상 가운데에서 여러 가지 사회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서구에서 서서히 나타났던 것들이었지만 우리에겐 짧은 기간 동안 체감 되었으니 그 충격이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 고도의 사회 성장은 과학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 풍요, 편리성, 각종 질병의 퇴치와 수명의 연장,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에서 도출되어 터득된 개인주의, 상대주의, 합리주의 등과 같은 수평문화 영역의 긍정적인 현상을 불러왔다. 그러나 물질 및 황금만능주의 사조, 상대주의와 합리주의가 바탕을 이루지 못한 개인주의 즉 이기주의의 만연, 지식 정보의 홍수에 대처 못하는 부족한 지혜 등과 같은 수직 문화 영역의 일탈현상 등의 부정적인 면도 속출했다. 수직문화 일탈현상이 심해지면 수평 문화 영역이 아무리 변화되었더라도 순식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뒤쳐지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생각할 때 현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모범적인 유대인 교육을 통해 현재의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한반도 1/10 정도의 국토 크기와 600만 인구이지만, 유대인들은 57개국 13억 이슬람권과의 경쟁에서 선두주자로 나섰을 뿐 아니라 2005년 현재까지 노벨상의 1/3(300명중 93명)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인구의 2.4%이면서 미국 상위권 명문대 학생 중의 21%(예일대 30%, 하버드대 27%), 미국 70만 변호사의 20%, 400대 재벌 중 23%, 미국 대학교수 중 25-35%가 유대인이란 자료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러한 수치는 유대인 교육의 목표인 철저한 전인 교육에서 나온다고 본다. 전인 교육 과정에서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수평문화 및 수직문화영역의 철저한 조화를 꾀하는 인성 교육 영역이다.
한국인의 경우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교포들 가운데에서 유년기에 두각을 나타내고 명문대학에 진학률이 상당히 높게 나타난 사실은 우리 민족의 저력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한국 교육 현장인 유년-초등-중등-고등-대학을 보자. 학습시간은 세계 최대일 것 같고, 교육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고등학교 에서는 새벽부터 자정까지 정규수업과 자율학습이 지속되는 초인적 학습풍토이지만, 최종 대학교육의 경쟁력 결과(IMD발표)는 세계 주요 60개국 중 거의 꼬리로 나타났다. 이 보고는 교직에 전념하는 우리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에게 또 한번 큰 충격을 던지고 우리 교육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위의 사실에서 한국 교육을 유대인의 교육과 비교 분석하면 30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직 문화 영역의 교육과 실천이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왔다고 볼 수 있고, 그 주요 부분이 바로 인성교육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닐까?
유대인의 교육은 자아 정체성 형성교육을 가정에서 철저하게 다룬다. 이는 심리적-철학적-종교적인 자아관을 형성하고 자신감을 가지도록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교육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의 부모 됨, 즉 자식에게 긍정적 모범인 동시에 동일시 대상으로 자식을 일깨워주는 철저한 모범 교육이다. “나도 최소한 부모님 같이, 아니면 부모님 보다 더 멋진, 더 나은 생활을 하겠다”는 기대를 길러주는 자아 정체성의 형성이다. “고향을 등지고 자기 집을 떠나려 하고 부모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아이들”을 양산한 우리 교육과 비교되는 현상이다.
가정에서 자기 정체성이 형성된 아이들은 이웃과 학교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성과 인간성을 교육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가? 이웃 혹은 아파트 놀이터 등에서 모르는 아저씨를 만나면 “인사도 하지 말고”, “말도 걸지 말고”, “따라도 가지 말고”, “무엇을 줘도 받지 말고”, “먹을 것을 줘도 먹지 말라.”등의 사회 구성원간의 불신 풍조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현상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회성이 바람직하게 형성되면 어디에서나 자유와 질서를 존중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책임 있는 행동을 실천하게 된다. "양보가 진정한 승리이다.(Yield is winning)"란 서양 속담은 우리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해준다.
이러한 유대인의 교육은 철저한 개인주의 즉 자아가 형성되어 개인의 존엄성을 깨닫고 인정하여,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상의 핵을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는 것으로 발전된다. 개인주의 바탕에 ‘너’를 인정하고 존중하여 ‘나’를 존중받게 하는 상대주의와 합리주의가 더해져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책임이 전제되고 질서와 자유가 합리성을 따라 조화되고 실천될 때 인성 교육은 성공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지식교육은 금해야 한다. 우리 교육이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지 않으며, 무엇을 잃고 있는지 반성할 때라고 본다. “너 죽고 내 살자” 식의 경쟁심리, 지혜롭지 못한 조기교육 붐과 입시 지옥, 유아들의 발달 단계를 무시한 지식 교육, 부모의 지혜롭지 못한 판단으로 소질이나 적성이 무시된 채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부모의 시간에 맞춘 자녀 학원 보내기, 취학 전 과도한 지식 위주의 예비교육, 시간 때우기 식의 자율학습, 부모의 과잉 기대 등이 인성 교육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
교육은 전인교육이 되어야 한다. 전인교육의 중요한 영역인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부모가 책임을 지고 먼저 부모의 역할과 부모 됨(동일시 대상)에서 출발하여 아이 됨 교육(독립된 인격체로의 자아 성장 보조)을 수행해야 할 것이고, 학교는 더욱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바람직한 인성형성교육(IQ와 EQ의 조화, 수직-수평문화전통 조화 중시 및 실천, 지식과 지혜의 습득, 친구사귀기, 리더십 길러주기, 봉사실천, 심신수련 등)을 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는 재교육과 재사회화(평생교육, 질서와 준법, 철저한 타인존중 등)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을 출발점으로 학교와 사회가 현재의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인성교육을 중시하여 부단히 실천한다면 오늘날 만연한 우리 사회 구성원간의 불신과 세대, 지역, 계층 간의 갈등 및 오해 편견들까지도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인 정의성과 서구의 합리성이 조화되어 한국인들이 만든 새 역사와 문화가 세계 속에서 또 한번 빛나리란 기대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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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큰 나라지만 작은 나라가 있고, 작은 나라지만 큰 나라가 있습니다. 쏘련은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막상 문이 열려 들어가 보니 너무나 작은 나라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는 거지나라입니다. 쏘련에 들어가서 당장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좀 늘어났겠지만 내가 들어갔을 때 모스크바에는 맥도날드 집이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맥도날드를 먹은 이들은 포장지를 가지고 가서 벽에 걸어 놓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지만 큰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을 가리켜 <작지만 큰 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땅이 작지만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국민수가 작지만 큰일을 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생긴 별명입니다. 유대인의 총 인구는 1500 만에서 1600 만입니다. 미국에 684 만 명, 이스라엘에 약 500 만 명입니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세계 역사의 가장 창조적인 일을 한 민족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20,770 평방 키로키터입니다. 강원도 경기도를 합한 크기입니다. 그러나 큰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크지만 작은 사람이 있고, 작지만 큰 사람이 있습니다. 골리앗은 큰 사람 같지만 17살 된 다윗에게 질 정도로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작은 사람 같지만 나라를 블레셋으로부터 구한 큰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은 작은 것 같지만 큰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사람을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유대인입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300명 정도입니다. 그 중에 93명이 유대인입니다. 약 3분의 1이 유대인입니다. 경제 분야에서 65%의 노벨상을, 의학 분야에서 23%, 물리 분야에서 22%, 화학 분야에서 12%, 문학 분야에서 8%를 유대인이 수상하였습니다. 미국 유대인의 생활수준은 평균이 두 배입니다. 미국 인구의 2%입니다. 그런데 상위 400 가족 중에 24%, 최상위 40 가족 중에 4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변호사가 70만 명입니다. 그 중에 20%인 14만 명이 유대인입니다. 뉴욕 중고등학교 교사 중에 50%가 유대인입니다. 국민투표로 당선된 미국 국회위원 535명중 42명이 유대인입니다. 미국 유명한 대학 프린스톤 대학, 하버드 대학의 교수 중에 25-35%가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총장, 주요 행정 책임자의 90%가 유대인입니다. 가장 영향력이 있는 매스컴 뉴욕 타임즈 사장 슐츠버그(Shultzburger), 워싱턴 포스트지 사장 케서린 그레그레이엄(Catherine Graium), 가장 출판을 많이 하는 램덤 하우스(Randum House) 사장이 유대인입니다. <세계 속에 영향을 미친 유대인 100명>이란 책을 보면 모세, 솔로몬, 예수님, 바울,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막스, 심리학자 프로이드, 화가 샤갈, 상대성 이론가 아인슈타인, 세계적 지휘자 번스타인, 외교가 키신저,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영화를 만든 스필버그등 모두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작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우수한 민족이 된 것일까요?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유대인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렇데 된 비결이 있습니다. 그 힘의 비결은 무엇일가요? 1. 믿음에서 나오는 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선택하여 주셨다는 믿음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여 주셨는데 누가 건드리요라는 믿음이 고무풍선처럼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방 땅에 살면서 한 가지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한 시도 한 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작은 사람이었지만 큰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작지만 크게 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땅 한 평도 없지만 장차 이 땅 모두를 가지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은 힘입니다. 그 피가 유대인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지금도 작지만 큰 나라입니다. 작지만 큰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나 백성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요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원수 민족인 니느웨가 구원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어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게다가 순풍이 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는 데 일이 참 순조로웠습니다. 폭풍이 불었습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배에 누군가가 죄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제비를 뽑았습니다. 요나에게 제비가 뽑혔습니다. 요나도 나 때문이니까 나를 바다에 던져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죄로 평탄하던 생도 언젠가는 종말이 있었습니다. 죄는 용서받아도 벌은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고래라고 하여도 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고래는 4시간이면 어떤 음식물도 소하사킬 수 있는 소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속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고래가 요나를 삼켰으나 고래는 요나를 소화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드디어 고래는 요나를 요나가 가야할 곳인 니느웨에 토해놓았습니다. 고래는 요나를 삼켰으나 소화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애급이 삼킨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화시키지 못 하고 토하였습니다. 바벨론이 삼켰습니다. 그러나 토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가 삼켰습니다. 그러나 소화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로마가 삼켰습니다. 그러나 뱉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사라센 제국이 삼켰습니다. 그러나 먹지 못 하였습니다. 그 후 독일도, 심지어 쏘련도 삼켰었으나 소화는 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요나민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누가 삼킨다고 하여도 소화시키지 못 하고 토해놓을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에서 유대인들은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 기도에서 나오는 힘 아브라함은 작은 사람이었지만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 힘은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조그만 일이든지 큰 일든지 항상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의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기도는 유명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죄악이 너무나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의인 50명만 있으면 구원시켜 주옵소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찾아보았으나 없었습니다. 45명으로 줄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45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40명, 30명, 20명, 10명으로 줄였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을 구하지 못 하여 다 유황불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끈기 있는 기도는 대단한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작은 사람이었지만 큰 사람이 된 힘은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그렇게 크게 된 이유도 기도에 있습니다. 유대인의 특징은 기도입니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합니다. 9시, 12시 그리고 3시에 기도합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오후 3시에 기도하러 가다가 앉은뱅이를 고친 것입니다. 나는 유대인들과 비교적 많이 접하며 사는 목사 중에 하나입니다. 나는 유대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기도의 체험을 많이 합니다. 한번은 독일에서 이스라엘에 혼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유월절이었습니다. 해마다 유월절이면 이스라엘 밖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러 이스라엘도 들어가기에 비행표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나는 비행기 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밤 2시에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둘러보았습니다.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단 한 좌석도 빈 자리가 없었습니다.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비행기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탈릿을 두르고 기도문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도의 민족이구나> <유대인들의 조상은 아브라함인 데 아브라함을 닮아서 기도의 사람들이구나> 그리고 다른 체험이 있습니다. 나는 유대인 책방에 자주 들어갑니다. 한번은 유대인 책방에 들어가서 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2시 50분이 되었습니다. 주인이 외쳤습니다. <기도 시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조금 후 유대인들은 한 곳에 모였습니다. 책 고르기를 중단하였습니다. 테피린을 감는 이, 탈릿을 입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늘 지니고 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같이 모여 기도한 후 다시 책을 고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같이 유대인들은 누구나 기도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나라가 큰 나라가 되었고, 작은 사람들이 큰 사람이 된 것입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기도가 비결입니다. 3. 토라에서 나오는 힘 작은 사람인 아브라함이 큰 사람이 된 비결이 있습니다. 그는 말씀을 붙들고 사는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 하고 말씀을 좇아갔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창12;1-4)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직장을 따라 이사한 것이 아닙니다.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정을 따라 이주한 것도 아닙니다. 금은을 찾으러 방랑길을 떠난 물질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갔습니다. 말씀만 붙잡았습니다. 작은 사람이었지만 큰 사람이 아브라함의 믿음은 100살에 난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히11;17-19)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9-22) 유대인들은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유대인들의 말씀 교육은 탁월합니다. 미국 땅에 도착하면 우선 회당을 짓고, 두 번째로 성경공부 학교를 지었습니다. 다음에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와서 세운 학교가 있습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톤은 모두 이들이 성경공부하기 위하여 세운 학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최우수 대학이 되었습니다. 이 학교들이 300년 간 미국의 교육을 주도하고 세계 선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하자 아놀트 토인비(Arnold Toynbee.1852-1883)는 인류 역사 속에 일어났던 문명은 모두 28개였습니다. 그 중에 18개는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9개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문명 하나만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철저히 유대인들이 문명을 지킨 민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 원인 교육입니다. 토라 교육입니다. 1900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리고도 이 나라 저 나라로 유랑하면서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은 성경 토라와 탈무드였습니다. 아버지가 철저히 자녀에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세대 격차가 전혀 없는 민족이 유대민족입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크게 활약하였던 랍비입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어떻게 하면 유대인이 승리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매파와 비둘기파 둘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로마에 아부하는 매파는 로마와 대항하는 비둘기파를 항상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비둘기파였기에 늘 매파의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벤 자카이는 그 때 민족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길을 깊히 생각한 끝에 마침내 로마의 유력한 장군과 협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 안에 모두 감금당한 상태였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이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아프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벤 자카이는 널리 알려진 랍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하러 몰려들었습니다. 며칠 뒤 벤 자카이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죽었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제자들은 그를 관 속에 넣은 뒤 성밖의 묘지에 매장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하였습니다. 성 안에는 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파에서는 벤 자카이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칼로 찔러 죽었나를 확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반발하였습니다. <그런 짓은 죽은 사람을 모독하는 행위다> 유대인들에게는 시체조차 눈으로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자들은 관을 들고 로마군의 포위망을 치고 있는 곳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가자 로마 군인들은 관을 칼로 찔러 보아 확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만일 로마 황제가 죽었다면 당신들은 그 때도 칼로 관을 찌를 것인가?> 제자들은 전혀 무장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로마 군인들에게 받아드려졌습니다. 마침내 로마 군인들은 장례를 치르도록 길을 내주었습니다. 벤 자카이는 관 속에서 나와 로마 사령관에게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면담이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사령관 앞에 앉았습니다. 그는 사령관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장군에게 로마 황제에게 표하는 경의를 보냅니다> 그러자 장군은 황제 폐하를 모독하였다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벤 자카이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장군은 반드시 로마의 황제가 됩니다> 확신에 찬 랍비의 말에 장군은 얼른 입을 막았습니다. <그런 얘기는 그만 둡시다. 나를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보시오> 벤 자카이는 말했습니다. <장군! 나는 오직 한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장군이 물을 때 벤 자카이는 말했습니다. <성전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 대가로 야브네 거리만은 파괴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방 한칸의 교실이라도 좋으니 조그만 학교 하나만 그 곳에 지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 것만은 없애지 않았으면 고맙겠습니다> 야브네는 지중해안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 곳에서는 대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라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은 반드시 로마에 점령당하고 말 것을 알았습니다. 성전도 파괴될 것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토라 학교만 가지고 있으면 유대 민족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장군은 랍비의 청이 별로 대단치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 정도는 들어 주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둘이 이야기하고 있는 중에 로마에서 파견된 사자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 와서 말했습니다. <황제가 돌아 가셨습니다. 원로원에서 장군님을 황제로 선출하였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의 통찰력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작은 학교만은 절대로 없애지 말라> 그 날 밤 아키바는 성안으로 들어 와서 모든 사람들을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 성을 열어 줄 것입니다. 로마가 우리를 지배할 것입니다. 성전은 파괴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토라만은 건드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토라를 지켜야 합니다. 후에 우리는 이길 것입니다> 이튿날 예루살렘은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약탈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야브네만은 고스란히 보존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그 학교에 있던 학자들이 유대 민족의 지식과 전통, 신앙, 그리고 유대인의 얼을 지켜나가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의 유대인들의 생활 규범도 모두 그 학교에서 앞장서 선도해 나갔습니다. 여기에서 미슈나가 나왔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토라와 토라를 가르치는 학교만 가지면 유대인을 보호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문에 말씀 상자 메주자를 달아 두고 나갈 때 들어 올 때 입을 맞춥니다. 이마에 말씀상자 메주자를 달고 다닙니다. 팔에는 테피린을 맵니다. 말씀 중심으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말씀 토라 공부를 합니다. 그들은 늘 말합니다. <어릴 때 토라를 배우면 그 말씀이 피로 흡수되어 입으로 깨끗하게 나올 수 있으며, 노년에 배우면 피로 흡수되지 못 하여 깨끗한 말씀이 되지 못 한다> 유명한 랍비가 한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책임자는 이 곳 저 곳을 보여 주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작은 진지가 있었고 군인들이 그 마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울타리 방어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숙소로 돌아 온 랍비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 마을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 지 아직 알 수 없었어요. 병사나 울타리가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가 지키는 것입니다. 왜 내게 학교를 안내하지 않았습니까?> 토라 학교가 유대민족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이들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영화배우 남궁원 자녀 교육은 한번 충격을 준 적이 있습니다. 아들 홍 정욱이가 하버드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졸업할 때 3개 중요한 상을 혼자 휩쓸었습니다. 어머니 양춘자가 밝힌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단 한번도 과외공부를 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성경 과외공부를 시켰습니다. 선생님으로 가정으로 모셨습니다. 매일 와서 성경을 인물중심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남들은 세상 공부에 열중할 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한 선생님에게 지루한 감을 느끼면 다른 선생님을 부를 지언정 성경 공부를 중단시키지 않았더니 그렇게 지혜로운 아들이 되어 천재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유대인들의 힘은 말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4. 유모어에서 나오는 힘 아브라함은 99살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고 할 때 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창17;17) 유대인들은 조상 아브라함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웃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은 힘입니다. 능력입니다. 유대인이 있는 곳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정에서도 웃고, 직장에서도 웃고, 길거리에서 웃고, 학교에서도 웃습니다. 특별히 웃지 말아야 할 절기가 있습니다. 자신의 영을 괴롭게 하는 회개의 절기인 대속죄일이나 성전 파괴일외에는 항상 웃고 삽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비극적인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가장 박해를 많이 받아 온 민족입니다. 19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으로 쫓겨 다니던 민족입니다. 그래도 항상 웃습니다.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게토에 갇혀 살았습니다. 다른 곳에서 살 수 없는 거주의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항상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자기들을 억압하는 민족은 찡그리고 있는 유대인들은 항상 웃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이래저래 미움을 받는 중 너무 웃는다고, 너무 즐거워한다고 미움을 더 받았습니다. 부모상을 당하여도 한 달 이상 슬픔 속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웃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태양처럼 밝고 즐거우신 분이시고, 항상 웃는 분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탈무드에도 유모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말합니다. <하늘과 땅을 웃기려면 먼저 고아를 웃겨라. 고아가 웃으면 하늘과 땅 모두가 웃는다> 웃음은 힘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작은 사람이었지만 큰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정말 작은 민족이지만 큰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지만 큰 나라입니다.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1. 믿음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2. 기도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3. 말씀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4, 웃음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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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인성교육의 특징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우리는 서양이 300년이 넘도록 점진적으로 이룩했던 제1의 물결(농업혁명), 제2의 물결(산업혁명), 제3의 물결(정보혁명)을 지난 30,40년 만에 이루어 내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기적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오면서 세 측면의 복합적인 특징을 직접 체험하게 되고 이 변화 과정에서 체험한 우리 사회의 현상 가운데에서 여러 가지 사회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서구에서 서서히 나타났던 것들이었지만 우리에겐 짧은 기간 동안 체감 되었으니 그 충격이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 고도의 사회 성장은 과학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 풍요, 편리성, 각종 질병의 퇴치와 수명의 연장,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에서 도출되어 터득된 개인주의, 상대주의, 합리주의 등과 같은 수평문화 영역의 긍정적인 현상을 불러왔다. 그러나 물질 및 황금만능주의 사조, 상대주의와 합리주의가 바탕을 이루지 못한 개인주의 즉 이기주의의 만연, 지식 정보의 홍수에 대처 못하는 부족한 지혜 등과 같은 수직 문화 영역의 일탈현상 등의 부정적인 면도 속출했다. 수직문화 일탈현상이 심해지면 수평 문화 영역이 아무리 변화되었더라도 순식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뒤쳐지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생각할 때 현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모범적인 유대인 교육을 통해 현재의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한반도 1/10 정도의 국토 크기와 600만 인구이지만, 유대인들은 57개국 13억 이슬람권과의 경쟁에서 선두주자로 나섰을 뿐 아니라 2005년 현재까지 노벨상의 1/3(300명중 93명)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인구의 2.4%이면서 미국 상위권 명문대 학생 중의 21%(예일대 30%, 하버드대 27%), 미국 70만 변호사의 20%, 400대 재벌 중 23%, 미국 대학교수 중 25-35%가 유대인이란 자료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러한 수치는 유대인 교육의 목표인 철저한 전인 교육에서 나온다고 본다. 전인 교육 과정에서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수평문화 및 수직문화영역의 철저한 조화를 꾀하는 인성 교육 영역이다.
한국인의 경우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교포들 가운데에서 유년기에 두각을 나타내고 명문대학에 진학률이 상당히 높게 나타난 사실은 우리 민족의 저력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한국 교육 현장인 유년-초등-중등-고등-대학을 보자. 학습시간은 세계 최대일 것 같고, 교육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고등학교 에서는 새벽부터 자정까지 정규수업과 자율학습이 지속되는 초인적 학습풍토이지만, 최종 대학교육의 경쟁력 결과(IMD발표)는 세계 주요 60개국 중 거의 꼬리로 나타났다. 이 보고는 교직에 전념하는 우리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에게 또 한번 큰 충격을 던지고 우리 교육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위의 사실에서 한국 교육을 유대인의 교육과 비교 분석하면 30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직 문화 영역의 교육과 실천이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왔다고 볼 수 있고, 그 주요 부분이 바로 인성교육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닐까?
유대인의 교육은 자아 정체성 형성교육을 가정에서 철저하게 다룬다. 이는 심리적-철학적-종교적인 자아관을 형성하고 자신감을 가지도록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교육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의 부모 됨, 즉 자식에게 긍정적 모범인 동시에 동일시 대상으로 자식을 일깨워주는 철저한 모범 교육이다. “나도 최소한 부모님 같이, 아니면 부모님 보다 더 멋진, 더 나은 생활을 하겠다”는 기대를 길러주는 자아 정체성의 형성이다. “고향을 등지고 자기 집을 떠나려 하고 부모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아이들”을 양산한 우리 교육과 비교되는 현상이다.
가정에서 자기 정체성이 형성된 아이들은 이웃과 학교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성과 인간성을 교육받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가? 이웃 혹은 아파트 놀이터 등에서 모르는 아저씨를 만나면 “인사도 하지 말고”, “말도 걸지 말고”, “따라도 가지 말고”, “무엇을 줘도 받지 말고”, “먹을 것을 줘도 먹지 말라.”등의 사회 구성원간의 불신 풍조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현상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회성이 바람직하게 형성되면 어디에서나 자유와 질서를 존중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책임 있는 행동을 실천하게 된다. "양보가 진정한 승리이다.(Yield is winning)"란 서양 속담은 우리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해준다.
이러한 유대인의 교육은 철저한 개인주의 즉 자아가 형성되어 개인의 존엄성을 깨닫고 인정하여,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상의 핵을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는 것으로 발전된다. 개인주의 바탕에 ‘너’를 인정하고 존중하여 ‘나’를 존중받게 하는 상대주의와 합리주의가 더해져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책임이 전제되고 질서와 자유가 합리성을 따라 조화되고 실천될 때 인성 교육은 성공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지식교육은 금해야 한다. 우리 교육이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지 않으며, 무엇을 잃고 있는지 반성할 때라고 본다. “너 죽고 내 살자” 식의 경쟁심리, 지혜롭지 못한 조기교육 붐과 입시 지옥, 유아들의 발달 단계를 무시한 지식 교육, 부모의 지혜롭지 못한 판단으로 소질이나 적성이 무시된 채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부모의 시간에 맞춘 자녀 학원 보내기, 취학 전 과도한 지식 위주의 예비교육, 시간 때우기 식의 자율학습, 부모의 과잉 기대 등이 인성 교육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
교육은 전인교육이 되어야 한다. 전인교육의 중요한 영역인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부모가 책임을 지고 먼저 부모의 역할과 부모 됨(동일시 대상)에서 출발하여 아이 됨 교육(독립된 인격체로의 자아 성장 보조)을 수행해야 할 것이고, 학교는 더욱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바람직한 인성형성교육(IQ와 EQ의 조화, 수직-수평문화전통 조화 중시 및 실천, 지식과 지혜의 습득, 친구사귀기, 리더십 길러주기, 봉사실천, 심신수련 등)을 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는 재교육과 재사회화(평생교육, 질서와 준법, 철저한 타인존중 등)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을 출발점으로 학교와 사회가 현재의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인성교육을 중시하여 부단히 실천한다면 오늘날 만연한 우리 사회 구성원간의 불신과 세대, 지역, 계층 간의 갈등 및 오해 편견들까지도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인 정의성과 서구의 합리성이 조화되어 한국인들이 만든 새 역사와 문화가 세계 속에서 또 한번 빛나리란 기대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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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인성교육의 특징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우리는 서양이 300년이 넘도록 점진적으로 이룩했던 제1의 물결(농업혁명), 제2의 물결(산업혁명), 제3의 물결(정보혁명)을 지난 30,40년 만에 이루어 내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기적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오면서 세 측면의 복합적인 특징을 직접 체험하게 되고 이 변화 과정에서 체험한 우리 사회의 현상 가운데에서 여러 가지 사회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서구에서 서서히 나타났던 것들이었지만 우리에겐 짧은 기간 동안 체감 되었으니 그 충격이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의 경우, 고도의 사회 성장은 과학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 풍요, 편리성, 각종 질병의 퇴치와 수명의 연장,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에서 도출되어 터득된 개인주의, 상대주의, 합리주의 등과 같은 수평문화 영역의 긍정적인 현상을 불러왔다. 그러나 물질 및 황금만능주의 사조, 상대주의와 합리주의가 바탕을 이루지 못한 개인주의 즉 이기주의의 만연, 지식 정보의 홍수에 대처 못하는 부족한 지혜 등과 같은 수직 문화 영역의 일탈현상 등의 부정적인 면도 속출했다. 수직문화 일탈현상이 심해지면 수평 문화 영역이 아무리 변화되었더라도 순식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뒤쳐지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생각할 때 현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모범적인 유대인 교육을 통해 현재의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한반도 1/10 정도의 국토 크기와 600만 인구이지만, 유대인들은 57개국 13억 이슬람권과의 경쟁에서 선두주자로 나섰을 뿐 아니라 2005년 현재까지 노벨상의 1/3(300명중 93명)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인구의 2.4%이면서 미국 상위권 명문대 학생 중의 21%(예일대 30%, 하버드대 27%), 미국 70만 변호사의 20%, 400대 재벌 중 23%, 미국 대학교수 중 25-35%가 유대인이란 자료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러한 수치는 유대인 교육의 목표인 철저한 전인 교육에서 나온다고 본다. 전인 교육 과정에서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수평문화 및 수직문화영역의 철저한 조화를 꾀하는 인성 교육 영역이다.
한국인의 경우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교포들 가운데에서 유년기에 두각을 나타내고 명문대학에 진학률이 상당히 높게 나타난 사실은 우리 민족의 저력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한국 교육 현장인 유년-초등-중등-고등-대학을 보자. 학습시간은 세계 최대일 것 같고, 교육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고등학교 에서는 새벽부터 자정까지 정규수업과 자율학습이 지속되는 초인적 학습풍토이지만, 최종 대학교육의 경쟁력 결과(IMD발표)는 세계 주요 60개국 중 거의 꼬리로 나타났다. 이 보고는 교직에 전념하는 우리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에게 또 한번 큰 충격을 던지고 우리 교육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위의 사실에서 한국 교육을 유대인의 교육과 비교 분석하면 30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직 문화 영역의 교육과 실천이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왔다고 볼 수 있고, 그 주요 부분이 바로 인성교육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닐까?
유대인의 교육은 자아 정체성 형성교육을 가정에서 철저하게 다룬다. 이는 심리적-철학적-종교적인 자아관을 형성하고 자신감을 가지도록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교육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의 부모 됨, 즉 자식에게 긍정적 모범인 동시에 동일시 대상으로 자식을 일깨워주는 철저한 모범 교육이다. “나도 최소한 부모님 같이, 아니면 부모님 보다 더 멋진, 더 나은 생활을 하겠다”는 기대를 길러주는 자아 정체성의 형성이다. “고향을 등지고 자기 집을 떠나려 하고 부모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아이들”을 양산한 우리 교육과 비교되는 현상이다.
가정에서 자기 정체성이 형성된 아이들은 이웃과 학교에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성과 인간성을 교육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가? 이웃 혹은 아파트 놀이터 등에서 모르는 아저씨를 만나면 “인사도 하지 말고”, “말도 걸지 말고”, “따라도 가지 말고”, “무엇을 줘도 받지 말고”, “먹을 것을 줘도 먹지 말라.”등의 사회 구성원간의 불신 풍조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현상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회성이 바람직하게 형성되면 어디에서나 자유와 질서를 존중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책임 있는 행동을 실천하게 된다. "양보가 진정한 승리이다.(Yield is winning)"란 서양 속담은 우리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해준다.
이러한 유대인의 교육은 철저한 개인주의 즉 자아가 형성되어 개인의 존엄성을 깨닫고 인정하여,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상의 핵을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는 것으로 발전된다. 개인주의 바탕에 ‘너’를 인정하고 존중하여 ‘나’를 존중받게 하는 상대주의와 합리주의가 더해져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책임이 전제되고 질서와 자유가 합리성을 따라 조화되고 실천될 때 인성 교육은 성공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지식교육은 금해야 한다. 우리 교육이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지 않으며, 무엇을 잃고 있는지 반성할 때라고 본다. “너 죽고 내 살자” 식의 경쟁심리, 지혜롭지 못한 조기교육 붐과 입시 지옥, 유아들의 발달 단계를 무시한 지식 교육, 부모의 지혜롭지 못한 판단으로 소질이나 적성이 무시된 채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부모의 시간에 맞춘 자녀 학원 보내기, 취학 전 과도한 지식 위주의 예비교육, 시간 때우기 식의 자율학습, 부모의 과잉 기대 등이 인성 교육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다.
교육은 전인교육이 되어야 한다. 전인교육의 중요한 영역인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부모가 책임을 지고 먼저 부모의 역할과 부모 됨(동일시 대상)에서 출발하여 아이 됨 교육(독립된 인격체로의 자아 성장 보조)을 수행해야 할 것이고, 학교는 더욱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바람직한 인성형성교육(IQ와 EQ의 조화, 수직-수평문화전통 조화 중시 및 실천, 지식과 지혜의 습득, 친구사귀기, 리더십 길러주기, 봉사실천, 심신수련 등)을 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는 재교육과 재사회화(평생교육, 질서와 준법, 철저한 타인존중 등)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을 출발점으로 학교와 사회가 현재의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인성교육을 중시하여 부단히 실천한다면 오늘날 만연한 우리 사회 구성원간의 불신과 세대, 지역, 계층 간의 갈등 및 오해 편견들까지도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인 정의성과 서구의 합리성이 조화되어 한국인들이 만든 새 역사와 문화가 세계 속에서 또 한번 빛나리란 기대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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