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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메시지

탐내지 말라] 출 20:17

작성자하늘의 별과 같이|작성시간26.06.08|조회수1 목록 댓글 0

[탐내지 말라] 출 20:17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은 전체 계명을 포함하고 있는 계명입니다.
탐내다 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하마드(חָמַד)는
탐내다 뿐 아니라 갈망하다, 기뻐하다, 아름답게 여기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지속적으로 탐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는 뜻입니다.

✔ 욕망의 변질
하마드 자체는 원래 보기에 심히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사모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보기에 아름답고>
네흐마드 레마르에(נֶחְמָד לְמַרְאֶ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단어 네흐마드의 어원이 하마드인데
십계명에서 명령하고 있는 탐내지 말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기 좋아하는 것은 정상적입니다.
아름다우면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 보기 좋고 먹기 좋은 나무들이 나게 하셨습니다.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금지된 것을 향할 때,
이 하마드란 단어는 '탐심'이라는 파괴적인 욕망으로 변합니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탐스럽다>
기본 동사가 하마드(חָמַד)입니다.
아름다운, 매력적인 이란 뜻의 하마드를 탐스럽다로 번역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고 사모하던 인간의 욕망이
금지된 것을 주목하고 갈망할 때 탐심이 된 것입니다.

금지된 열매인 선악과를 탐내고 먹었을 때 사람의 육체에 어떤 병적 현상이 생겼습니다.
사람의 눈과 마음은 정욕에 붙잡히게 되었고 세상을 정욕으로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요일 2장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 (ἐπιθυμία τῆς σαρκός): 육체의 무절제한 탐욕과 쾌락을 추구하는 탐심.
안목의 정욕 (ἐπιθυμία τῶν ὀφθαλμῶν):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시각적 탐심
이생의 자랑 (ἀλαζονεία τοῦ βίου): 재물이나 지식, 지위를 남에게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

온 세상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푸신 사랑의 선물이었고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좋은 것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금지된 것을 탐하면서 감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육신이나 눈의 욕망은 금지된 것을 원하고 바라는 탐심으로 병들었습니다.

사람에게 금지된 것을 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입니다.
잠 9장17.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왜 한 남자 한 여자만 결혼해야해, 두 남자 두 여자가 함께 살아도 돼잖아.
서로 합의 하에 여러 사람과 동시에 사랑을 나누는
'폴리아모리'를 지지하는 활동가나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아내도 여러 명 남편도 여러 명, 아빠도 여러 명, 엄마도 여러 명입니다.

왜 사람과만 결혼해야 해, 하면서 개나 동물들과 혼인하고 부모형제 간에 혼인합니다.
요즘 파업은 왜 남의 것을 요구하면 안돼 하는 식입니다.
내가 일한 대가로 월 3백을 받았지만
사장이 얻은 이익을 성과급으로 나눠달라는 요구입니다.
삼성전자의 노조위원장의 수입은 판공비 등을 합하면 연 9억이 된다고 합니다.

병든 눈과 육체를 방치하게 된 결과는 인간성의 파괴,
인간이 짐승처럼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눈이 없었더라면 저질러지지 않았을 죄악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옥의 형벌을 피하려면
눈을 빼는 마음으로, 손발을 찍는 마음으로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의 다른 계명들(살인, 간음, 도둑질)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규제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마음속의 동기와 뿌리를 겨냥합니다.
모든 범죄(도둑질, 간음 등)가 결국 이 하마드(탐심)에서 시작됩니다.


✔ 이 계명은 사람 속에 있는 탐심의 죄성을 지적합니다.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열 번째 계명에서 명하신 탐내지 말라는 히브리어 하마드를
바울은 에피뒤미아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탐심을 가리키는 헬라어 에피뒤미아(ἐπιθυμία)는
'~위에, 향하여'를 뜻하는 '에피(ἐπί)'와
'불타오르다'를 뜻하는 '두모스(θυμός)'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무언가를 향해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욕망을 뜻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대부분 '죄악된 정욕', '육신의 정욕','탐심'으로 번역됩니다.

이 탐심은 내 속에서 나를 죄로 끌고가는 무서운 죄의 소원, 죄의 힘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육체는 금지된 것을 탐하고 갈망하는 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이란 표현이 바울서신에서 종종 사용됩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 육체의 욕심은 같은 표현입니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육체에 탐심의 성질이 있어 사람을 죄와 파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갈 5장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웃의 집, 아내, 남종, 여종, 소, 나귀 등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육체의 정욕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이웃의 행복을 깨트리게 됨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란 자신의 운명을 가릅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옳다거나 틀리다고 판단할 때 그 기준이 무얼까요?
하나님께서 그것을 옳다고 하셨거나 잘못되었다고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옳고 자기가 싫어하기 때문에 틀리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술취하는 게 옳은가
도박이 옳은가
결혼한 사람이 애인을 두는 것이 옳은가?

자기가 그것을 행하는 중이라면 그것이 옳다거나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열심히 주장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거나
어떤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매우 좋은 사람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은 그 마음의 욕망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거룩한 욕망
어떻게 탐심을 버리고 탐심을 죽이고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이룰 수 있을까요?
다윗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후에 하나님 앞에 간절한 소원을 품고 기도했습니다.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인간의 육체 속에 깊이 뿌리내린 탐심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베푸신 대책이
성령이십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은 믿는 자 안에 거룩한 소원을 일으키시며 육체의 욕망을 이기는 권세를 행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소원을 나타내는 헬라어 델로(θέλω)는
바라다, 원하다, ~하고자 하다, 좋아하다, 기뻐하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는 자 속에는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거룩한 소원, 성령의 소원이 있습니다.
이 거룩한 소원의 성격은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엡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하나님이 성도의 마음에 부어주신 소원과 갈망은 어찌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육체의 소욕과 거룩한 영의 소원이 격돌하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성도의 승리는 어떤 소원을 더 활성화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성령 충만을 구하라.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주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을 더욱 알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인간은 가만히 두면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인 욕망(에피뒤미아)을 따라 파멸로 달려갑니다.
내 힘으로는 이 죄 성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에피뒤미아를 누르고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소원(델로)을 계속해서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다", "말씀대로 살고 싶다"라는 거룩한 소원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 충만을 받으십시오.
내 안의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소원에 의지를 드려 순종하십시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눅 22:15).

여기 예수님이 원하고 원하였다는 구절에 탐심을 가리키는 에피뒤메아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거룩한 소원은 주님의 소원이며 성령의 소원입니다.

영의 소원이 육신의 소욕보다 강하고 영의 힘이 육신의 힘을 이깁니다.
그러나 영이 병들면 육신을 이기지 못합니다.

젊은 사자 앞에 하이에나는 한 끼 식사에 불과하지만
병든 사자는 하이에나를 못 이깁니다.
아무도 당할 수 없었던 삼손이 머리가 잘리고 나니 무력해지고 눈알을 뽑히고
적의 노리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순절 성령을 보내실 때 제자들에게 성령을 사모하고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령은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으시는 거룩한 갈망의 응답입니다.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이며
성령충만은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내 안에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주셨으나, 때로는 금지된 것을 넘보고 이웃의 것을 탐내는 병든 죄성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이 불타오르는 욕망을 이길 수 없사오니,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원치 않는 탐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거룩한 소원을 날마다 불일듯 일으켜 주시옵소서.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옷 입혀 주시어, 육체의 소욕에 패배하는 무력한 삶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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