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은 없다] 갈 1:6-12
● 복음이탈의 위험과 경고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하나님, 예수님 믿으면 되지 뭔 복음이니 다른 복음이니 하느냐 라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주변 주유소 중에 석유에 물이나 다른 거 섞어서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약간 섞으니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물이 자꾸 쌓이다 보면 중간에 시동이 안 걸리거나 꺼지기도 하고
엔진이 망가집니다.
물이 섞인 건지, 경유인지 등유인지 일반인은 모릅니다.
전문가는 시험하는 장비가 있고 기술이 있기에 다 찾아냅니다.
귀한 것일수록 가짜는 큰 타격을 줍니다.
순금 바 1kg 현 시세가 2억4천만 원 합니다.
도금 바 1kg 시세는 5만-8만원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른 복음에서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고 참 복음, 바른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복음에 미혹되는 것은 순금바를 도금바로 바꾸는 것보다
더 큰 손해입니다.
복음에서 이탈하는 것은 열차가 철로에서 이탈하는 것보다 더 위험합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유대 율법주의가 성도들의 시선을 복음에서 돌아서게 하고 미혹했습니다.
●복음의 절대성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다른 것으로도 복음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할 때 우리는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을 포함합니다.
다른 사도들뿐 아니라 하늘의 천사라도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당신은 바른 복음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바른 복음을 믿고 있습니까?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지금 세대는 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드리냐에 따라
진리를 바꿉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이란 것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일방적으로 떠먹여주지 말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스스로 배우겠다는 것입니다.
원래 그 근본이 인본주의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생각에 좋든지 나쁘든지 순종해야할 법이며
명령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원하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면
진리가 아니며 악이 됩니다.
법관의 법리 판단이나 심지어 법률 자체도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바꿉니다.
서구의 법원들에서 낙태를 원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태아는 아직 인권을 가진 생명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며
낙태를 허용했습니다.
중요한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 인사들은 동성애자 관계자들의 협박에 못이겨
동성애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적 질환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타고난 성 취향일 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정치적인 논리가 교회 안에도 들어왔습니다.
어떤 문화적인 것은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의자가 없이 다 바닥에 앉았고 남녀가 따로 앉았습니다.
예배 중에 물 한 잔도 마실 수 없었고 화장실도 갈 수 없었고
에어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편의시설이 많이 갖추어졌습니다.
그런데 점점 사람들의 기호와 요구조건이 많아졌습니다.
TV, 유튜브에서 설교가 넘쳐나고 얼마든지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결코 아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메시지를 변경하도록 요구합니다.
죄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 너무 길다,
힘들게 살다가 교회 와주는 것만도 과한데 회개하라 이래라 저래라
요구한다며 투덜됩니다.
설교도 좀 재미있고 스릴있고 즐거움을 주도록 하라고 주문합니다.
세상에 설교가 어떻게 재미있나요?
제발 설교 좀 하지마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체의 기호에 맞을까요?
말씀은 육체의 마음에는 불편한 것이며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말씀은 마음과 영에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옛 시대에도 사람들은 선지자들에게 예언하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사랑 노래 부르는 사람들처럼 달콤하게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사 30:10.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사람들의 마음이 높고 교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육신의 뜻이나 성향과 안 맞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말씀입니다.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은 왜 그렇게 복음의 절대성을 강조하였을까요?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다, 사람에게 배운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바울은 이 복음을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교회들에게 보낸 서신을 성경으로 확정한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계시임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사도와 선지자들의 위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엡 3: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보다 성경과 복음의 위치는 더 높고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미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계시로 확증하신 이 말씀 외에
다른 어떤 복음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바울은 우리 사도들이라도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요?
● 복음의 핵심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게 합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속량하다는 뜻의 헬라어 Ἐξαγοράζω(엑사고라조)는 '대가를 치르고
사 오다',는 뜻입니다.
노예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노예의 몸값을 대신 지불하고,
그 노예를 시장 밖으로 데려와 자유인으로 만들어 줄 때
이 속량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죄의 노예가 되었고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사
우리 대신 죗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죄값을 다 치루었다는 뜻입니다.
식당에 가서 식사를 마치고 집사님이 밥값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나오면서 내가 내겠다고 주머니를 뒤지고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어떤 공로나 행위에 주목하기 보다
나의 구원을 위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고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록 선행도 공로도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함을 주십니다.
그러면 십자가 공로를 믿기만 하면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는 것이냐?
삶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시느냐 하면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의 생명이 자라게 하시고 예수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게 하십니다.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리셨고
믿는 자 속에 성령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믿는 자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보혈의 능력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증언하십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자에게 아들의 영을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 그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성령을 따라 살며 육체의 욕심을 죽이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갈라디아 교회에는 율법주의를 가르치는 유대인 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흔들었습니다.
예수만 믿어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구원받겠지"라는
보상 심리(율법주의)를 가집니다.
그러나 내 행위를 의지하면 평생 구원의 확신이 없고 불안합니다.
가톨릭이 떨어진 이유도 마리아 숭배나, 죽은 성인 숭배, 교황 신격화 외에
예수만 믿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선행이 더해져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부족해서 거기에 자기의 선행과 공로를
더해야 한다면 얼마만큼의 공로를 더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가톨릭의 배도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외쳤습니다(Sola Gratia, Sola Fide).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는 이들은 죽을 때까지
구원의 소망과 확신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성령께서는 아름다운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바른 복음 위에 굳게 서게 하시고 예수 외에 다른 이름, 십자가 외에 다른 복음이 없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의지하고 바라보게 하소서.
그 피를 의지하여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시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 십자가 사랑을 확증시켜주시고
의와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