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정목일
11월은 가을의 영혼이 보이는 달,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보이고 텅 빈 내부가 보인다.
가을이 절정에 다달아 감동과 찬탄을 자아내지만, 그 뒷면에 감춰진 고독과 고통의 표정이 보인다.단풍은 생명의 아름다움과 일생의 절정을 보여주지만 지는 노을처럼 황홀하여서 눈물겹다.
이때엔 빛깔의 경연이랄까, 삶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빛깔의 표현양식과 기법이 유감없이 드러난다.가을이 보여주는 생명의 극치감,풍요,결실은 앞모습일 뿐이다.가을은 삶의 빛깔을 완성하지만,그 빛깔들을 해체해버린다.천지에 넝마처럼 낙엽이 날려 뒹굴고 색은 무너져버린다.절정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던 것만큼 무너짐은 쓸쓸하고 처절하다.결실로써 풍요를 얻는 것만큼 버림으로써 마음을 비워내야 한다.절정으로 치닫은 것만큼 추락을 맞아야 한다.
모든 빛깔들이 한자리에 만났으니,이제는 혼자가 되어 떠나야 한다
계절의 교차가 보인다.인생의 교차로가 보인다.단풍은 절정과 풍요를 위한 한순간의 장식에 불과하다.어쩌면 삶의 수식어일지 모르는 단풍을 걷어내고,벌거숭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고뇌의 몸살을 앎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빈 자리가 보이고 사색과 침묵을 향해 눈을 감는 시간이 있다
색을 다 해체하여 떨쳐버리고 얻는 비움의 충만,고용의 평온이 있다.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서 다시 시작하는 시발점이 보인다.
고요히 존재의 참모습을 찿아 길을 떠나는 계절이다. 명암이 있다
화렴함 뒤에는 언제나 허전함이 있고 환희 뒤에는 눈물이 있다.성장 속에는 추락의 아픔이 있다.
들판은 어느새 비어져 공허롭고 나무들은 옷을 벗어버렸다.충만 속에서 느낄 수 없던, 빈 것의 정갈함,허허로움 속에 뻗은 새로움의 세계가 보인다.
끓어오르던 열정을 식히고 고요와 달관의 눈으로 텅 빈 대지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가을 끝무렵, 어느새 노을이 지고 땅거미가 드리울 때처럼 돌아갈 곳,존재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가버리고 말면 다시 볼 수 없을 듯한 애잔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인생의 궤적을 뒤돌아보게 하고, 자신이 걸어온 삶의 길위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떠나가고 싶는 달.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영원의 오솔길로 산보할 수 있는 빈 들판길을 걷고 싶다
11월은 바깥의 화려함보다도 내면의 절실함이 깃들어 있는 달,
자신의 모습을 겨울에 비춰보며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