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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C 경외시리즈

10) 예수님: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경외

작성자예수님만|작성시간26.01.05|조회수26 목록 댓글 0

10) 예수님: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경외

성경 :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5장 7절 말씀을 통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완전한 경외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며, 우리 삶의 진정한 순종과 믿음의 본질을 되찾고자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두려움과 고난에 직면합니다. 경제적인 불안, 관계의 어려움, 건강의 문제 등 현실의 파고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경외심마저 흐릿하게 만들곤 합니다. 과연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하나님이 무서워 벌벌 떠는 감정일까요? 아니면 주일 성수나 십일조 같은 종교적 행위를 충실히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신앙 현실을 돌아보면,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의 욕심과 계획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들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고, 순종은 복을 받기 위한 거래 조건이 되기 쉽습니다. 이러한 자기 중심적인 신앙은 진정한 경외와는 거리가 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우리의 피상적인 신앙을 깨뜨리고, 진정한 경외가 무엇인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명확히 보여줍니다.


본론: 완전한 경외의 본질

 

1. 고난 속에서 드린 간구와 눈물

본문은 예수님께서 육체에 계실 때, 즉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계셨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간구 (δεήσεις - deēseis, 데에세이스)

: '간청', '탄원'을 의미하며, 자신의 깊은 필요를 채우기 위한 절박한 요청을 뜻합니다.

소원 (ἱκετηρίας - hiketērias, 히케테리아스)

: '애원', '간절한 청원'을 의미하며, 특히 당시에는 목숨을 구하는 탄원자가 올리는 간절하고 겸손한 기도 형식을 가리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전 존재를 던져 아버지께 매달리셨음을 보여줍니다.

경외하심 (εὐλάβειαν - eulabeian, 율라베이안)

: '선한 조심성', '경건한 두려움', '존경심을 가지고 조심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공포가 아니라, 아버지의 권위와 뜻을 극도로 존중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깊은 존경을 포함합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느끼신 죽음에 대한 실제적인 고통과 번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간구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드려졌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오면 그 고난 자체를 면하게 해달라고만 간구합니다. 고통의 잔이 지나가기를 원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예수님은 잔을 피하고 싶으셨지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진정한 경외는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적 경외

예수님의 기도가 들으심을 얻은 이유는 그분의 경외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을 면제받는 기도를 드렸지만, 그 기도의 본질은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순종이었습니다. 이 순종이 바로 예수님의 경외를 입증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죄인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순종의 길, 즉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자발적인 복종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려는 아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율법적인 순종이 아닌, 사랑에 기초한 완전한 경외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곧 인류 구원의 길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길은 자기 희생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결론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기를 바랐습니까?

나의 기도와 간구가 나의 욕심과 세상의 안락함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었는지 돌아봅시다.

고난 앞에서 회피하기 급급하여 하나님의 훈련의 손길과 뜻을 거부했던 교만함을 회개합시다. 예수님처럼 고통 중에도 "아버지의 뜻"을 최우선으로 두는 순종적인 경외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을 통해 온전한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신앙의 본질을 가르치셨습니다.

진정한 경외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가장 절박한 순간에도 사랑으로 선택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얻었을 뿐 아니라, 고난 속에서 순종하는 경건의 모범을 배웠습니다. 이 경외의 자세만이 우리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시는 합당한 소원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피하지 않고 통과하심으로 완전한 경외와 순종을 보이셨듯이, 우리도 우리의 삶의 고난 속에서 오직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나아갈 때,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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