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지금이 은을 받을 때냐? - 게하시의 탐욕이 문둥병으로 돌아온 이유 ; 은혜의 계절에 탐욕을 심는 자들에게
왕하 5: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값없는 은혜, 값비싼 위선
여러분, 오늘 우리는 참 부끄럽고도 뼈아픈 한 사람의 거울 앞에 서게 됩니다.
바로 엘리사 선지자의 비서였던 ‘게하시’라는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이 언제 무너지는지 물으면 "돈이 없고 가난할 때,
극심한 고난이 올 때 무너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목회를 하며, 또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깨닫는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사람은 돈이 없을 때보다, 돈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왔을 때 가장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부족함이 주는 시련보다,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이 주는 시험이 훨씬 더 무섭고 치명적입니다.
어느 바다에서 조난 구조대원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극적으로 건져 올렸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이 구조대원이 숨을 헐떡이는 사람을 보트에 태우자마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선생님, 제가 살려드렸으니 지금 차고 계신 그 명품 시계랑 지갑 좀 이리 내놓으시죠."
여러분, 이 상황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부끄러운 일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게하시가 바로 그 부끄러운 구조대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은혜가 선포된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서,
혼자 머리를 굴리며 주머니를 채울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두드리시며 주시는 이 엄중한 질문 앞에,
우리 모두가 겸손히 귀를 기울이기를 소망합니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을 때냐?"
1. 은혜를 거래로 바꾸는 눈먼 욕망
성경 본문: 열왕기하 5:20-21 "신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져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게하시는 지금 엄청난 기적의 현장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불치병인 한센병에 걸려 절망하던 아람의 최고 권력자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고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하게 치유받는 역사를 똑도 똑히 보았습니다.
나아만은 너무 감격해서 예물을 바치려 했지만, 엘리사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치유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하나님이 거저 주신 '전적인 은혜'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거절을 보며 게하시의 마음속에는 전혀 다른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20절을 보니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라고 합니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어지고, 내 안에서 스스로 속삭이는 독백에서 시작됩니다.
"저 아까운 걸 왜 그냥 보내지? 조금 챙긴다고 하나님 나라에 구멍이 나나? 내 몫도 좀 챙겨야지."
여기서 게하시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단어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탐욕을 뜻할 때 자주 쓰이는 히브리어 단어가 '하마드(חָמַד)'인데,
이는 단순히 뭔가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내 손에 넣지 않으면 도저히 직성이 풀리지 않아 눈이 멀어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게하시는 지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망각한 채, 은혜의 자리를 돈 버는 기회로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자꾸만 내 공로나 이익으로 계산하려는 지독한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이 부끄러운 게하시의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대가를 바라지 말고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조건 없는 친절이나 작은 섬김을 대가 없이 베풀어 보십시오.
한 줄 요약: 탐욕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를 인간의 유익과 거래로 전락시키는 영적 눈멈입니다.
2. 탐욕이 만들어내는 위선과 거짓말
성경 본문: 열왕기하 5:22-24 "그가 이르되 평안하니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게하시가 그것을 받아다가 집에 감추고..."
탐욕은 절대로 혼자 찾아오지 않습니다.
욕심이 마음에 잉태하면, 그 다음은 반드시 거짓말과 위선이라는 자식들을 줄줄이 낳게 마련입니다.
게하시는 달리는 말마차를 멈춰 세우며 나아만에게 거짓말을 지어냅니다.
"우리 스승님이 마음이 바뀌셨습니다.
마침 가난한 신학생 두 명이 찾아왔으니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만 도와주십시오."
얼마나 그럴듯한 명분입니까?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는 탐욕인데, 겉포장은 '가난한 신학생을 돕는 구제 사업'으로 위장했습니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거짓은 히브리어로 '쉐케르(שֶׁקֶר)'입니다.
이는 단순히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진실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위장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게하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스승의 이름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까지 팔아넘겼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그 은과 옷을 어두운 방안에 싹 감추어 두었습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것이지요.
작은 욕심 하나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삶 전체를 거짓과 위선으로 물들이는 실수를 범합니다.
"아무도 모를 거야"라며 숨겨둔 내 삶의 어두운 방과 거짓된 핑계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사소한 이익을 위해 사실을 과장하거나 변명하지 말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제 잘못입니다"라고 정직하게 고백하는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우리가 어둠 속에서 감추어둔 죄를 가지고 빛 가운데로 걸어 나오기만 하면, 주님은 언제든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한 줄 요약: 탐욕은 거룩한 명분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정직함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거짓의 덫입니다.
3. 영적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눈먼 신앙
성경 본문: 열왕기하 5:25-26 "들어 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영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서 있는 게하시에게 엘리사가 불벼락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을 때냐?"
이 다그침은 단순히 "왜 돈을 받았느냐"라는 책망이 아닙니다.
핵심은 '돈'이 아니라 '때'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때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에트(עֵת)'인데,
이는 시계의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목적이 숨쉬고 있는 결정적인 타이밍"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암흑기였습니다.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따르며 심판의 위기 앞에 서 있던 때였습니다.
그 혹독한 영적 기근의 때에, 하나님은 이방 장군 나아만을 치유하심으로
"보아라, 이방인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살려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다!"라는 절박한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계셨습니다.
온 우주의 시선이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되어야 할 바로 그 엄숙한 때에,
게하시는 고작 자기 집 마당에 감람원과 포도원을 넓히고 소와 양을 살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야 할 시즌에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는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돈을 벌고 재산을 모으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당한 노동과 축복을 기뻐하십니다.
진짜 문제는 '타이밍'입니다.
내 삶에 영적 위기가 찾아와 눈물로 기도해야 할 때인데 여전히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면,
지금 내 가정이 영적으로 무너지고 있어서 자녀들의 신앙을 돌봐야 할 때인데
여전히 세상 성공과 스펙 쌓기에만 매달려 있다면,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으실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지금이 어찌 네 욕심을 채우며 주저앉아 있을 때냐?"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영적 타이밍보다 내 육신의 안위와 물질적 타이밍을 늘 우선시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영적인 둔감함에 빠져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아파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 물질적 이익을 위한 스케줄을 잠시 멈추고,
무너진 내 예배의 자리나 내 주변에 영적으로 낙심한 한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는 일에 시간을 사용해 보십시오.
우리가 영적 잠에서 깨어나 고개를 들기만 하면, 주님의 은혜의 소낙비는 지금도 우리를 향해 쏟아집니다.
한 줄 요약: 영적 타이밍을 분별하지 못하는 탐욕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고 사명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4. 탐욕의 비참한 결말과 십자가의 값없는 은혜
성경 본문: 열왕기하 5: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게하시는 결국 원하던 은 두 달란트와 화려한 옷 두 벌을 손에 쥐었습니다.
소원 성취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나 처참했습니다.
그는 돈을 얻은 대신 평생 고칠 수 없는 문둥병을 얻었습니다.
재산은 불어났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선지자의 처소에서 영원히 쫓겨나야 했습니다.
순간의 이익 때문에 평생의 영적 축복을 통째로 날려버린 것입니다.
구속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 게하시의 비극을 바라보십시오.
사실 이 모습은 게하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담 이후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을 반역하고 영적인 문둥병에 걸려 죽어가던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세상의 이익을 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며, 내 유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진리를 타협하는 영적 나병 환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이 비극적인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며 모든 영광과 부요를 누릴 자격이 있으신 분이었지만,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해지셨습니다.
게하시는 남의 병이 나은 자리에서 탐욕을 부리다 문둥병자가 되었지만,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시면서도 우리의 영적 문둥병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라는 진영 밖으로 나가 처참하게 찢기셨습니다.
복음은 거래가 아닙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모든 죄의 대가를 예수님이 당신의 생명으로 전부 지불하셨기에,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나와 값없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탐욕의 끝은 영적 파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조건 없는 용서와 생명을 주십니다.
내가 은혜를 은혜답게 여기지 못하고 세상의 썩어질 물질을 더 묵상해 왔음을 눈물로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 통장 잔고나 세상 걱정을 묵상하는 대신,
나를 조건 없이 구원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감사하며
"주님,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라고 짧게 기도하고 주무십시오.
한 줄 요약: 탐욕의 결말은 죽음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는 우리를 영적 나병에서 건져 무한한 은혜의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결론: 가슴에 남는 본질의 질문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화려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이번 주에 얼마를 벌었는가?"
"너의 아파트 평수는 얼마나 넓어졌는가?"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을 얼마나 가졌는가?"
그러나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은 게하시의 무덤을 넘어
지금 이 시간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엄중하고도 자비로운 목소리로 물으십니다.
"사랑하는 내 자녀야, 너는 얼마나 정직하게 행했느냐?" "
너는 세상의 물질과 나 중, 진짜 누구를 너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느냐?"
"지금이 어찌 세상의 썩어질 은을 붙잡고 동분서주할 때냐?"
게하시는 눈앞의 은 두 달란트를 얻고 평생의 저주를 선택했지만,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세상의 모든 보화를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선택했습니다.
탐욕은 아주 작은 타협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우리의 영혼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독약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거저 주신 그 전적인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세상의 물질은 우리가 주님의 일을 위해 잠시 사용하는 편리한 도구일 뿐, 결코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문을 나서 세상으로 돌아가실 때,
마음속에 이 한 문장을 깊이 새기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바꾸려는 순간, 축복은 저주로 변한다."
세상의 계산기를 과감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내 유익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들고 승리하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