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 - 허무한 것에 눈독 들이는 수고의 헛됨
본문: 잠언 23장 4절~5절
23: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조금만 더"라는 이름의 신기루
여러분, 요즘 마트에 장 보러 가기가 참 무섭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영수증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지요.
세상은 온통 재테크, 주식, 부동산 이야기뿐입니다.
주변에서 누가 어디에 투자해서 대박이 났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이게 바로 요즘 시대가 앓고 있는 ‘포모(FOMO) 증후군’, 즉 나만 소외되는 것 같은 불안감입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목사이기 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다 보니,
매달 날아오는 공과금 고서나 미래에 대한 염려 앞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통장 잔고를 보며 ‘조금만 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불쑥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안정감을 원합니다.
성경은 결코 성실한 노동이나 물질 그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땀 흘려 일해 가정을 돌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고, 내 영혼의 안전기지가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가족의 행복을 위해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목적과 수단이 뒤바뀝니다.
조금 더 넓은 집, 조금 더 좋은 차를 향해 달리다 보면,
"얼마면 충분합니까?"라는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 귓가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벌어야 안전해"라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거대한 브레이크를 밟으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 이 말씀의 진짜 의미를 함께 살펴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1. 영혼을 갈아 넣는 지독한 수고
잠언 23장 4절 전반부,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솔로몬 왕이 이 잠언을 기록할 당시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물질적인 풍요가 극치에 달했던 시대였습니다.
은을 돌처럼 흔하게 여기던 시대였지요(열왕기상 10:27).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풍요의 정점에 있던 솔로몬이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애쓰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원어로 ‘야가(יָגַע, Yaga)’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기진맥진하다", "지쳐서 녹초가 되다", "영혼이 탈진할 정도로 자신을 갉아먹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칼빈(John Calvin)은 그의 주석에서 이 구절을 향해
"인간이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어 스스로의 힘으로 완벽한 안전을 구축하려는 탐욕의 발버둥"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통장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너무 쉽게 희생시킵니다.
가정을 지키려고 밤낮없이 일하는데 정작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은 볼 시간이 없습니다.
노후를 준비하느라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다가, 정작 나중에는 그동안 번 돈을 병원에 고스란히 바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돈을 버느라 하나님을 만날 영적인 에너지를 다 잃어버립니다.
주일에 예배 자리에 앉아있긴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세상 염려와 계산기로 가득 차서 영혼이 '녹초(야가)'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 인생을 지켜줄 것이라 믿으며, 자기도 모르게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자기중심적인 죄성에 갇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영혼을 갈아 넣으며 헛된 곳에 지쳐 있구나"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내 삶의 시간표를 돌아보십시오.
이번 일주일 동안 내 영혼을 가장 지치게 만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까, 아니면 물질에 대한 염려였습니까?
돈 때문에 가족에게 짜증을 냈거나 예배를 소홀히 했다면,
그 멈추지 못하는 영혼의 가속도를 오늘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재물을 얻기 위해 영혼을 탈진시키는 ‘애씀(야가)’의 삶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지름길입니다.
2. 실체가 없는 신기루를 잡으려는 인생
잠언 23장 4절 후반부~5절 전반부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세상은 재물을 이 땅에서 가장 확실하고 만질 수 있는 '실체'라고 말합니다.
현금이 있고 건물이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지요.
그런데 성경의 시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목숨 거는 그 재물을 향해 "허무한 것"이라고 부르십니다.
여기서 "허무한 것"은 히브리어 원어로 ‘아인(אַיִן, Ayin)’입니다.
이 단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놀랍게도 "없는 것(Nothing)",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인다고 믿었던 물질이, 하나님의 눈에는 사실 ‘실체가 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여기 작은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수억 원에 거래되던 가상화폐나 주식이 데이터베이스 오류나 시장의 패닉 한 번으로 하루아침에 숫자가 지워져 버리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전쟁이 터지거나,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오면 종이 화폐는 순식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갑니다.
심지어 대기업 회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오늘 밤 그 영혼을 부르시면
그가 가진 수조 원의 자산은 순간적으로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아인(없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붙잡으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왔던 것일까요?
기도하는 시간보다 주식 차트나 부동산 앱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지 않았습니까?
성경의 성취와 흐름 속에서 보면,
광야에서 백성들이 안식일에도 만나를 더 모으려고 나갔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건과 같습니다.
내 지혜와 내 계산으로 인생의 성을 쌓으려는 '사사로운 지혜'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헛된 신기루를 잡으려다 넘어지고 깨질 때에도,
하나님은 실체 없는 돈 대신 영원한 실체이신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오래 참음으로 기다려 주십니다.
세상의 재물은 결국 실체가 없는 ‘허무함(아인)’이며, 그것에 인생을 거는 것은 신기루를 쫓는 것과 같습니다.
3. 날개를 달고 도망치는 독수리
잠언 23장 5절 후반부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하나님은 재물의 속성을 아주 생생한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재물에는 '날개'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파리나 참새의 날개가 아니라, 하늘을 가장 빠르고 높이 날아오르는 '독수리의 날개'입니다.
여기서 "날아가리라"는 히브리어 원어로 ‘우프(עוּף, Uph)’인데,
이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다"라는 강렬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베란다에 찾아온 야생 새 한 마리를 상상해 보십시오.
너무 예뻐서 꽉 붙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새는 푸드덕거리며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내가 소유했다고 믿었지만, 사실 그 새는 내 통제 속에 있지 않습니다. 재물이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욥기 1장에서도 욥의 그 많던 재산과 가축들이 불과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배경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욥은 그때 고백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욥기 1:21). 성경은 재물 자체가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날개 달린 재물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것을 의지하는 태도를 엄히 경고합니다.
잠언 11장 28절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리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돈은 이 세상에서 참 좋은 종이 될 수 있지만, 최악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돈을 다스리는 사람은 자유를 누리지만,
돈에 묶인 사람은 독수리가 날아갈까 봐 평생을 불안과 두려움의 감옥에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회개해야 할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마음의 평안의 근거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이었습니까,
아니면 언제든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통장 잔고였습니까?
내 손에 쥔 것을 움켜쥐려 하지 않고,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재물의 노예에서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재물은 언제든 독수리처럼 날아갈 준비를 하는 손님이기에, 우리의 의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4. 복음 :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최고의 부요함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물질 중심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단순히 "돈을 사랑하지 말자"고 다짐하면 탐욕이 사라집니까?
아닙니다.
더 큰 아름다움을 보기 전에는 내 손에 쥔 가짜 보석을 놓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내 힘으로 만족을 만들어 낼 수 없기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9절에서 기가 막힌 복음의 신비를 선포합니다.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크리스토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부요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옷 한 벌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기신 채 벌거벗겨져 죽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처절하게 가난해지셨습니까?
바로 돈이 없으면 죽을 것처럼 불안해하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영혼을 탈진시키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늘의 영원한 부요함'을 선물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더 가져야 너의 가치가 증명되고 안전해."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음성을 들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너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니, 너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자다."
독수리처럼 날아가는 세상 재물은 우리를 배신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주식 시장은 폭락해도 하나님의 언약은 폭락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사업은 부도가 날 수 있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공급은 절대 마르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는 세상의 결핍을 뛰어넘는 영원한 부요함을 선물 받았습니다.
결론 : 하늘의 부요함으로 오늘을 살아내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내 힘으로 내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태도를 꺾고,
나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공중의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기르십니다.
날개 달린 돈을 쫓아다니느라 영혼을 ‘야가(지치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어차피 ‘아인(실체가 없는 것)’이며 언젠가 독수리처럼 ‘우프(날아갈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작은 것에 감사하는 훈련을 시작합시다.
탐욕은 항상 '없는 것'을 보게 만들어 우리를 굶주리게 하지만,
은혜는 '이미 받은 것'을 보게 하여 우리를 부요하게 만듭니다.
이번 한 주간, 나를 위해 전부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묵상하십시오.
날아갈 재물을 쌓기보다,
하나님의 통치와 이웃을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흘려보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돈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살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부요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요약
도입부 요약: "조금만 더"를 외치는 세상의 목소리와 달리, 성경은 물질이 인생의 목적이 될 때 찾아오는 영적 위기를 경고합니다.
1단락 요약: 재물을 얻기 위해 영혼을 탈진시키는 ‘야가’의 삶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지름길입니다.
2단락 요약: 세상의 재물은 결국 실체가 없는 ‘아인’이며, 그것에 인생을 거는 것은 신기루를 쫓는 것과 같습니다.
3단락 요약: 재물은 언제든 독수리처럼 날아갈 준비를 하는 손님이기에, 우리의 의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4단락 요약: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는 세상의 결핍을 뛰어넘는 영원한 부요함을 선물 받았습니다.
결론부 요약: 날아갈 재물이 아닌 영원한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우리는 비로소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