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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나님과 재물 -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단호한 영적 선택

작성자예수님만|작성시간26.06.08|조회수79 목록 댓글 0

6) 하나님과 재물 -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단호한 영적 선택

본문: 마태복음 6장 24절 (연결 본문: 마태복음 6장 33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무엇에 묶여 살아가는가

성경 본문: 마태복음 6장 24절 전반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여러분, 참 쉽지 않은 세상이지요.

우리는 눈을 뜨면서부터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점심에 무얼 먹을지 같은 작은 선택부터, 이 집을 지금 사야 하는지,

주식을 팔아야 하는지 같은 가슴 떨리는 선택까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내가 돈을 부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돈이 나를 부리고 있는 걸까?"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 앱이나 영상 플랫폼의 '자동 결제 서비스' 아시지요?

처음에는 내가 필요해서 구독 버튼을 눌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보지도 않으면서 매달 돈이 빠져나갑니다.

 

나중에는 취소하는 것조차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 두곤 하지요.

돈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방식이 꼭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필요해서 벌고 내가 주인처럼 쓰는데,

어느 순간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 자리를 밀어내고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목사인 저도 이 부분에서 매번 넘어집니다.

통장 잔고가 줄어들면 기도가 간절해지는 게 아니라 마음부터 불안해집니다.

말씀대로 살면 손해 보지 않을까 계산기부터 두드리는 제 모습을 보며 깜짝라곤 합니다.

여러분만 힘든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날것 그대로의 연약함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주님"을 부르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간밤의 주식 창이나 뉴스부터 확인하는 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솔직한 모습 아닙니까?

재물은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 영혼을 구독하여 서서히 주인의 자리를 찬탈합니다.

 

 

2. 재물이라는 인격화된 가짜 신의 정체

성경 본문: 마태복음 6장 24절 후반부,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아주 독특한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라고 하실 때,

재물은 헬라어 원어로 '맘모나스'(μαμμωνᾶς)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주머니에 있는 동전이나 지폐를 뜻하는 물질적 단어가 아닙니다.

당시 고대 아람어에서 유래한 말로, '인간이 전적으로 의지하는 부와 물질'을 뜻하는데,

예수님은 이 단어를 마치 살아 움직이는 '인격체'처럼 부르고 계십니다.

즉, 돈 뒤에는 인간의 예배를 받으려는 거대한 영적 세력인 '맘몬'이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이 선포되던 1세기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 제국의 무자비한 세금 압제 아래에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사치 부리고 외제 차를 타기 위해 돈을 원했던 게 아닙니다.

내일 당장 우리 아이에게 먹일 빵 한 조각을 살 수 있을까,

세금을 못 내서 노예로 팔려가진 않을까 하는 처절한 '생존의 문제'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생존의 길목에서 조차 "돈이 너희 주인이 되지 않게 하라"고 단호하게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섬기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둘류에인'(δουλεύειν)이라고 합니다.

이 뜻은 취미 생활로 조금 돕는 수준이 아니라, '노예로서 주인에게 절대 복종하다'라는 뜻입니다.

 

돈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조금만 더 모아라. 그래야 네 미래가 안전하다. 돈이 있어야 네 자존심도 지키고, 사람 대접도 받는단다."

참 신기하지요? 통장 잔고는 분명 늘어나는데 내 마음의 평안은 줄어듭니다.

소유는 많아지는데 이상하게 감사는 메말라갑니다.

왜 그럴까요?

돈을 주인으로 모시는 순간,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하나님도 잘 섬기고 돈도 잘 다루면 되지 않나?" 하고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려고 합니다.

중립지대가 있을 거라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재물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에게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는 '맘몬'이라는 가짜 신입니다.

 

 

3. 두 주인의 격돌과 현실의 몸부림

성경 본문: 마태복음 6장 24절 중반부,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왜 하나님과 재물은 공존할 수 없을까요?

두 주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명령의 방향이 완전히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웃을 위해 네 손을 펴고 나누어 주라." 하지만 재물은 우리 귀에 대고 소리칩니다.

"안 돼, 꽉 쥐어 짜서 네 창고에 더 쌓아야 해.

그래야 네가 살아남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나를 믿으라."

재물은 말합니다.

"네 통장 잔고를 믿어라. 그 숫자가 네 인생의 진짜 방패막이다."

 

어느 자동차에 핸들이 두 개 달려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운전석에도 핸들이 있고 조수석에도 핸들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대면 그 차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얼마 못 가 전복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라는 인생의 운전대를 하나님과 돈에게 동시에 맡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둘은 결코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온통 이 재물이라는 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듯합니다.

부동산 가격에 나라 전체가 일희일비하고, 젊은이들은 주식과 코인 창을 들여다보며 밤잠을 설치지요.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은혜의 크기를 물질의 축복으로 재단하려는 서글픈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말씀이 무엇이라 하시는가?"보다 "얼마나 손해를 보고 이익을 얻는가?"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가장 솔직한 영적 위기이자 하나님 앞에 처절하게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할 점입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주님(큐리오스, κύριος)'이라 부르면서,

실제 삶의 위기 순간에는 돈을 주님으로 의지해 왔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은 요구하는 방향이 정반대이기에 우리 마음의 운전대를 동시에 잡을 수 없습니다.

 

 

4. 복음의 시선: 십자가 은혜가 깨뜨린 탐욕의 사슬

성경 본문: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독한 돈의 사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내 의지로 "오늘부터 돈을 미워하겠다!" 결단하면 될까요?

안 됩니다.

작심삼일로 끝날 뿐입니다.

우리의 결단은 그리 강하지 못하니까요.

 

성경의 역사를 보십시오.

에덴동산에서부터 인간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기 좋고 먹음직한 실과를 선택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적을 보고도 당장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자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어 절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 역시 예수님보다 은 삼십 개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비참한 한계입니다.

우리는 뼛속까지 자기중심적이고, 눈에 보이는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죄인들입니다.

이 사실을 처절하게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직 은혜(Sola Gratia)'의 말씀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우리는 매번 돈 앞에 무릎 꿇고 배신하는데,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재물의 노예가 되어 영원한 파멸로 걸어갈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말씀처럼, 본래 가장 부요하신 분이셨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가장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다.

옷 한 벌 남기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벗기우신 채 죽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돈의 노예로 찌들어 가던 저와 여러분을 피 값으로 사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참된 부요함을 선물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에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의 거룩한 대속의 사랑이 내 마음에 밀려들어 올 때에만,

비로소 돈이 주던 가짜 안전감이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진짜 보물이신 예수님을 발견했기에, 손에 쥐고 있던 가짜 보물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우리를 쥐어짜기 위한 의무 조항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네 인생을 책임질 터이니,

이제는 그 썩어질 재물의 노예 상태에서 나와 참된 자유를 누리라는 아들의 초청입니다.

 

여기서 '구하라'는 헬라어 '제테이테'(ζη테ῖτε)로, '간절히 열망하고 갈구하다'라는 뜻입니다.

돈을 향했던 우리의 열망이, 이제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가장 부요하신 그리스도께서 가난해지신 십자가의 은혜만이 우리를 재물의 종노릇에서 건져내어 자유케 합니다.

 

 

5. 삶의 적용: 오늘, 작게, 시작하는 주권 이양 훈련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주인의 자리를 바꾸는 훈련을 해야 할까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첫째, '지출 내역'을 정직하게 마주하십시오

신앙의 상태는 말에 있지 않고 지출에 있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 내가 가장 많은 돈을 쓴 곳이 어디인지 카드 명세서를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내 지갑이 흘러간 그곳에 내 마음의 주인이 숨어 있습니다.

만약 주님과 상관없는 곳에 내 모든 물질이 탕진되고 있다면,

"내가 말로만 하나님을 주인이라 불렀구나" 하고 정직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불안한 마음'을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십시오

돈을 안 쓰거나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해서 탐욕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 밀려오는 불안감, 남들과 비교하며 느껴지는 박탈감을 감추지 마십시오.

"주님, 저는 여전히 돈이 없으면 불안한 연약한 존재입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십시오.

 

셋째, '오늘 작은 나눔'을 통해 맘몬의 목을 비틀어 버리십시오

돈의 힘을 깨뜨리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돈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거창한 기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내 주변에 마음이 지쳐 있는 한 사람,

혹은 늘 고생하는 누군가를 위해 대가 없이 따뜻한 커피 한 잔,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해 보십시오.

내 소유를 깨뜨려 누군가를 섬길 때,

내 안에서 왕 노릇 하던 맘몬의 권세는 소리 없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물질을 주님 뜻대로 사용하는 순간, 재물은 무서운 주인에서 비로소 '착한 종'의 자리로 내려오게 됩니다.

물질의 쓰임새를 점검하고, 연약함을 인정하며, 오늘 작은 나눔을 실천할 때 재물은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6. 맺는 말: 영원한 주인 곁에 깃드는 참된 평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세상은 오늘 밤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확성기를 대고 외칠 것입니다.

"더 가져야 해. 그래야 네 미래가 보장돼. 돈이 너를 지켜줄 거야!"

그러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모든 피와 물을 쏟으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내가 너를 지킨다. 너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는 하늘 아버지가 바로 너의 주인이다."

 

과거 수많은 재산을 모았던 세상의 한 자산가는 죽기 직전 이런 고백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 평생 모은 금화들이 내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숨통을 단 1초도 늘려주지 못하는구나."

그렇습니다. 재물은 유능한 종이 될 수는 있어도, 우리 영혼을 구원할 좋은 주인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계십니까?

재물을 내 손안에 쥐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재물이 내 마음을 쥐게 만드는 순간, 우리 인생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돈을 얼마나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내 삶의 진짜 주인인가'의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유일한 왕으로 모셔 들일 때,

내 삶을 짓누르던 돈에 대한 염려와 탐욕은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리고 비로소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참된 평안과 자유가 우리 영혼에 깃들게 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의 여정 안에서,

돈의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당당하게 승리하시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신앙은 소유의 크기가 아닌 주권의 문제이며,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실 때 비로소 재물로부터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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