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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재물의 유혹 - 말씀의 결실을 가로막는 가시 떨기의 정체

작성자예수님만|작성시간26.06.10|조회수97 목록 댓글 0

7) 재물의 유혹 - 말씀의 결실을 가로막는 가시 떨기의 정체

본문: 마태복음 13장 22절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여러분, 일주일을 살아가시면서 "아, 숨 막힌다"라는 느낌을 받아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꽉 막힌 도로 위에서, 혹은 매달 날아오는 카드 고지서와 대출 이자 문자를 볼 때 우리는 숨이 턱 막힙니다.

당장 내일의 쓸 것과 미래의 대책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기도의 자리에서도 깊은 한숨이 먼저 터져 나오곤 합니다.

이게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우리 마음의 상태를 진단하십니다.

많은 분이 이 비유를 들을 때 "나는 길가인가, 돌밭인가, 좋은 땅인가?"를 고민합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무섭고도 흔한 밭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가시떨기 밭입니다.

길가처럼 아예 말씀을 거부하는 것도 아닙니다.

돌밭처럼 박해나 환난이 왔다고 교회를 떠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매주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교회 마당을 열심히 밟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의 변화, 즉 영적인 ‘결실’이 없습니다.

말씀은 내 안에 분명히 들어왔는데, 왜 내 삶은 여전히 메마르고 제자리걸음일까요?

예수님은 그 이유를 아주 날카롭게 진단하셨습니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안에 자라난 가시가 말씀의 숨통을 쥐고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재물의 유혹은 죄의 얼굴을 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본문 말씀] 마태복음 13:22上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 숨통을 막는 첫 번째 가시로 '재물의 유혹'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유혹'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아파테'(ἀπάτη)입니다.

이 단어의 진짜 뜻은 단순히 마음이 끌린다는 수준이 아니라, ‘속임수’, ‘기만’, ‘거짓 약속’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돈 자체를 정죄하시기 전에, 재물이 우리에게 행하는 교묘한 '사기극'을 폭로하고 계신 것입니다.

재물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거짓 약속을 속삭입니다.

"이 정도 평수의 아파트만 가지면 네 인생은 안전해.", "통장에 이 정도 잔고만 채워두면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 거야."

여러분, 그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 열심히 달려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 완전한 평안이 찾아오던가요?

이상하게도 돈이 주는 만족은 유통기한이 너무나 짧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재물은 다시금 더 큰 액수를 요구하며 우리의 숨을 조여 옵니다.

만족이 아니라 더 큰 갈증을 만들어냅니다.

 

요즘 스마트폰을 켜면 온통 주식 정보, 부동산 전망, 자산 관리 비법이 쏟아집니다.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 뒤처지고 있는 것 같고,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최근 정교하게 짜인 스미싱 문자나 피싱 사기를 보면, 처음부터 범죄의 얼굴로 오지 않습니다.

국가 기관이나 은행을 사칭하며 아주 안전하고 유익한 정보인 것처럼 다가와 우리의 지갑을 털어갑니다.

 

재물의 유혹이 딱 그렇습니다.

그것은 죄의 모습을 하고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행동처럼 우리를 속이며 찾아옵니다.

재물이 주는 진짜 문제는 돈의 부족함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갈증과 속임수입니다.

 

돈을 더 가지면 내 미래와 행복이 완벽하게 보장될 것이라고 믿었던 내 안의 영적 맹목함과 우상숭배를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동안 내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주식 차트나 부동산 정보,

혹은 소비 채널을 들여다본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정직하게 헤아려 봅시다.

그리고 내 마음에 찾아온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대면해 보십시오.

재물의 유혹은 우리에게 안전을 약속하지만 결국 평안을 빼앗아 가는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2. 가시는 말씀보다 훨씬 더 빨리 자랍니다

[본문 말씀] 마태복음 13:22中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예수님 당시 유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농경 문화를 보면 이 비유가 얼마나 생생한지 알 수 있습니다.

중동의 가시덤불은 겉으로 보기엔 땅 표면이 깨끗해 보여도, 흙 속에 질긴 뿌리가 깊이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농부가 열심히 씨를 뿌려놓아도, 봄비가 내리면 곡식보다 가시덤불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자라납니다.

가시는 거친 생명력으로 땅의 수분과 영양분을 모조리 흡수해 버리고, 넓은 잎으로 햇빛을 가려버립니다.

결국 곡식 씨앗은 살아 있지만, 자라나지 못하고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이 '막혀'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심프니게이'(συμπνίγει)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길을 가로막는 수준이 아닙니다.

‘사방에서 목을 졸라 질식시키다’라는 뜻입니다.

가시떨기가 말씀의 목을 졸라 숨을 못 쉬게 만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리의 영적 삶이 이와 같습니다.

주일에 눈물로 예배를 드리고 은혜의 씨앗을 마음에 품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이 시작되는 순간,

세상의 염려라는 가시가 말씀보다 천 배는 빠른 속도로 자라나 내 마음을 덮어버립니다.

직장에서의 생존 경쟁, 자녀의 학업 문제, 노후 대책이라는 가시들이 사방에서 돋아나

예배 때 받은 은혜의 수분과 영양분을 사정없이 빼앗아 갑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내 안에 말씀이 죽지는 않았습니다.

성경 지식도 있고 직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숨이 막혀 있기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내 인격은 변화되지 않고, 성경은 읽는데 삶의 순종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은혜는 받았다고 말하지만 돈 앞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비굴해지거나 이기적으로 변합니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내 마음의 영양분을 염려와 돈 걱정이라는 가시에게 전부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의 아픈 현실입니다.

 

염려에 마음의 에너지를 다 빼앗겨, 정작 내 안의 말씀이 자랄 여유를 주지 못했던 영적 게으름과 불신앙을 돌이켜야 합니다.

이번 주간에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고 있는 염려의 가시 하나를 종이에 구체적으로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염려가 내 영적 호흡을 어떻게 막고 있는지 기도의 자리에서 주님께 솔직하게 털어놓으십시오.

세상의 염려와 가시는 말씀보다 빠르게 자라나 우리의 영적 호흡을 막고 삶의 결실을 방해합니다.

 

 

3. 재물의 핵심 문제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지배의 방향입니다

[본문 말씀] 마태복음 6:24 (연계 말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성경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대부체였고, 이삭과 야곱도 거부였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제공했던 아리마대 요셉도 자산가였습니다.

 

성경이 경고하는 핵심은 내가 돈을 얼마나 가졌느냐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내 마음을 누가 다스리고 있느냐는 '지배의 방향'입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단순한 물질로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과 대등하게 맞서서 인간의 경배를 받으려는 영적 세력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서 재물을 '맘모나스'(μαμωνᾶς), 즉 '맘몬'이라는 신의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돈은 자꾸만 우리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 앉으려고 합니다.

재물이 내 삶의 도구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급격히 병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나 이웃을 위한 구제보다 나를 위한 소비가 훨씬 더 짜릿하고 즐거워집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 시간보다 주식 동향과 투자 정보를 검색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얻는 평안보다 은행 통장의 잔고가 주는 안도감이 더 커집니다.

 

여러분, 우상은 불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그것이 없으면 내 인생이 무너질 것 같다고 믿는 바로 그것이 오늘 내 마음의 왕좌에 앉아 있는 우상입니다.

재물이 주인의 자리에 앉으면, 말씀은 조연으로 전락하고 우리의 영혼은 서서히 말라 죽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이라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돈을 더 신뢰하고 재물의 지배 아래 살아가기를 자처했던 이중적인 모습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번 주에는 내 물질의 소유권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작은 훈련을 시작해 봅시다.

내가 가진 재물 중 작은 부분이라도 이웃이나 도움이 필요한 성도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흘려보내는 나눔을 실천해 보십시오.

흘려보냄은 맘몬의 통치력을 깨뜨리는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입니다.

재물은 우리가 다스려야 할 도구일 뿐이며, 결코 하나님을 대신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4.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본문 말씀] 마태복음 13:23 (연계 말씀)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 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여기까지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목사님,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인데, 제 마음에 가시가 가득 차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더 숨이 막힙니다.

저는 어쩔 수 없는 가시떨기 밭인가 봅니다."

그런 절망감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깊고 질긴 가시 뿌리를 도저히 뽑아낼 재간이 없습니다.

내 힘으로 의로워지려 할수록 도리어 자괴감만 깊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그 자리에 복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농부가 씨를 뿌릴 때 이 땅이 가시떨기 밭인 것을 모르고 뿌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염려로 가득 차 있고,

재물의 유혹에 날마다 흔들리는 연약한 밭임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까운 천국 복음의 씨앗을 아낌없이 우리 마음에 또 뿌려주십니다.

가망 없어 보이는 우리 마음에 은혜를 끊임없이 부어주십니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마음 밭에 가득 차 있던 그 저주스러운 가시덤불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머리에 엮어 쓰셨다는 사실입니다.

병들이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던 가시관(ἀκάνθινος στέφανος).

그것은 다름 아닌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라나 있던 세상의 염려요, 재물의 유혹이요, 탐욕의 가시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찔려 죽어야 할 그 죄와 염려의 가시들을 친히 당신의 머리에 쓰시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그 보혈이 오늘 우리의 가시 가득한 마음 밭에 뚝뚝 떨어집니다.

그래도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굳어버린 땅을 다시 갈아엎으십니다.

그래도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 안의 모든 가시를 소멸하십니다.

 

우리가 가시를 뽑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대장간에서 단련된 은혜의 손길로 우리 마음의 가시를 뽑아내 주십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 임합니다.

돈이 있어야 안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 날개 아래 있을 때 이미 충분하다는 고백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 주님의 신실하신 은혜가 마침내 우리를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땅으로 기어코 빚어내고야 마실 것입니다.

 

내 힘으로 마음 밭을 가꾸려다 절망했던 인본주의적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주권을 신뢰하지 못했던 연약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밤 기도의 자리에서 내 머리로 하던 모든 세상 걱정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내 인생의 농부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은혜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주님의 일하심을 잠잠히 기대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의 가시를 대신 머리에 쓰시고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는 오직 그분의 은혜로만 좋은 밭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붙드는 영원한 생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지금도 교묘하게 일합니다.

대놓고 교회를 못 다니게 막지 않습니다.

성경을 뺏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삶을 세상 염려로 가득 채우고,

재물의 유혹에 눈이 멀게 하여 말씀이 내 안에서 한 걸음도 자라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영적인 영양실조에 걸려 숨이 막힌 채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으로 박제해 두려고 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의 가슴을 향해 찾아오셔서 다정하게, 그러나 엄중하게 물으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지금 네 마음 밭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느냐?

세상의 염려와 돈 걱정의 가시가 네 영혼의 목을 조르고 있지는 않느냐?"

 

돈은 잠시 우리 손에 쥐어졌다 사라지는 유한한 인생의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내고, 참된 만족과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 가시를 이기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위해 가시관을 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그 압도적인 은혜 앞에 내 마음을 완전히 내어드릴 때,

성령께서 내 안의 모든 가시의 뿌리를 잘라내시고 우리 삶에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번 한 주간, 숨 막히는 세상 속에서 재물을 붙들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붙듦으로,

참된 복음의 숨통이 트이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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