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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 소유의 넉넉함이 생명을 보장하지 못함

작성자예수님만|작성시간26.06.11|조회수38 목록 댓글 0

8)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 소유의 넉넉함이 생명을 보장하지 못함

성경 본문: 누가복음 12장 13-14절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우리 안의 빈 잔

여러분,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고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문득 제 마음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 이것만 사면 내 삶이 참 편리해질 것 같은데."

여러분은 안 그러십니까?

우리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내 통장에 조금만 더 잔고가 있으면 불안이 사라질 텐데. 우리 집이 평수만 조금 더 넓어지면 참 행복할 텐데."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그렇게 원하던 것을 손에 쥐어도, 그 만족은 보름을 가지 못합니다.

옷장을 열어보면 옷이 가득한데 입을 옷이 없고,

차를 바꾸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길거리에 다니는 더 좋은 차만 눈에 들어옵니다.

소유는 분명히 늘어났는데, 우리 마음의 빈 잔은 왜 채워지지 않을까요?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 앞에 한 사람이 씩씩거리며 찾아왔습니다.

"예수님! 제 형에게 말해서 아버지 유산을 저와 정확하게 반반씩 나누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랍비들이 율법에 따라 이런 재산 문제를 판결해 주곤 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권위 있는 재판장으로 생각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예수님은 지금 그 형제의 재산 싸움 자체에 관심이 있으신 게 아니었습니다.

그 요청 뒤에 숨어 있는,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마저 집어삼켜 버린 무서운 괴물,

즉 그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탐심'을 보셨던 것입니다.

 

사실 이 사람의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 아닙니까?

우리는 돈 문제 앞에서는 가족도, 성도도, 심지어 하나님도 잠시 뒤로 밀어내곤 합니다.

우리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이 아픈 현실을 우리는 먼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재산 분쟁 너머에 있는 관계를 깨뜨리는 탐심의 실체를 고발하십니다.

 

 

1. 탐심의 본질: 하나님을 밀어내는 은밀한 우상

성경 본문: 누가복음 12장 15절 상반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예수님은 무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시며 아주 강력한 경고를 날리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여기서 예수님이 쓰신 "삼가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호라테(ὁρᾶτε)'인데,

는 눈을 크게 뜨고 밤을 새워 경계태세를 갖추라는 군대 용어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긴장해야 할까요?

탐심은 감기 기운처럼 조용히, 그리고 아주 합리적인 얼굴을 하고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자기가 취한 줄 알고, 화를 내는 사람은 자기가 화가 났다는 걸 눈치챕니다.

하지만 탐심에 취한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탐심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님, 이건 탐심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책임감이에요.

이건 욕심이 아니라 노후 준비라니까요?"

맞습니다. 우리는 늘 그렇게 포장합니다.

여기서 "탐심"은 헬라어로 플레오넥시아(πλεονεξία)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더 많은'을 뜻하는 플레온(πλείων)과 '가지다'를 뜻하는 에코(ἔχω)가 합쳐진 말입니다.

직역하면 "이미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더 가지려고 하는 멈추지 않는 갈망"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이 탐심을 아주 무섭게 정의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여러분, 우상이 무엇입니까?

금송아지 앞에 절하는 것만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보다 통장 잔고가 주는 평안이 더 크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주식 수익률 그래프에 가슴이 더 세차게 뛴다면, 우리는 지금 물질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종종 넘어집니다.

저도 목사로서, 가장으로서 미래가 불안해질 때면 기도의 무릎을 꿇기보다

당장 눈앞의 숫자를 계산할 때가 있습니다.

이게 참 부끄러운 우리의 본모습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물질을 하나님보다 앞세웠던 순간들을 회개합시다.

매일 스마트폰으로 쇼핑 앱을 목적 없이 새로고침하며 시간을 보내던 일들,

남들과 비교하며 내게 주신 은혜를 깎아내렸던 죄를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당장, 내 손을 꽉 움켜쥐게 만드는 그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작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탐심은 끊임없이 더 가지려는 영적 질병이며,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신뢰하게 만드는 우상숭배입니다.

 

 

2. 생명의 본질: 소유가 결코 보장하지 못하는 참된 삶

성경 본문: 누가복음 12장 15절 하반절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이어서 인생의 대전제를 선언하십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세상은 정반대로 가르칩니다.

"네 소유의 넉넉함이 네 생명을 보장한다! 네가 많이 가져야 대접받고, 많이 가져야 안전하고,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이 '소유의 넉넉함'을 위해 인생을 갈아 넣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명"은 헬라어로 조에(ζωή)입니다.

성경에서 '조에'는 단순히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생물학적 목숨을 넘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 만족,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얘들아, 너희가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 두어도, 그것이 너희 영혼에 참된 평안과 생명을 한 줌도 보태어 주지 못한다."

 

여기 짧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침대를 주문제작해서 안방에 들여놓았습니다.

황금으로 장식되고 최고급 거위털이 깔린 침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에게 지독한 불면증이 찾아왔습니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한숨을 쉬며 괴로워했습니다.

반면, 그 집의 정원을 돌보는 가난한 정원사는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한 뒤

마룻바닥에 낡은 이불 하나 깔고도 코를 골며 단잠을 잤습니다.

 

여러분, 돈으로 최고급 침대는 살 수 있지만, 단 1분간의 깊은 잠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값비싼 종합검진은 받을 수 있어도,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단 1초도 연장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소유에 링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현실에서는 자꾸 잊어버립니다.

내 인생의 안전판을 하나님이 아닌 내가 모아둔 소유에 두려고 했던 어리석음을 고백합시다.

이번 주간에는 무언가를 소비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기도해 봅시다.

"주님, 이것이 내 삶에 정말 필요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 불안을 감추기 위한 욕심입니까?" 질문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참된 생명과 평안은 재물의 넉넉함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3. 부요의 본질: 세상의 창고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

성경 본문: 누가복음 12장 16-21절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예수님은 이 진리를 설명하시기 위해 '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부자는 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 대풍년을 맞이했습니다.

곡식이 넘쳐나자 그는 행복한 고민에 빠집니다.

"아, 이 많은 곡식을 어디다 두지? 그래! 지금 있는 창고를 헐고 더 크게 짓자! 그리고 거기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는 거야!"

그리고 그는 자기 영혼을 향해 외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이제 안심해라! 쉬고, 먹고, 마시고, 인생을 즐기자!"

 

여러분, 이 부자의 말이 얼마나 당당합니까?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파이어족',

즉 일찍 성공해서 은퇴하고 잔뜩 쌓아놓은 돈으로 여유롭게 여행 다니는 인생의 롤모델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향해 청천벽력 같은 대답을 내리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부자의 치명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비유 속에서 이 부자가 쓰는 말을 가만히 보십시오.

"내가, 내 곡식, 내 창고, 내 영혼..." 온통 주어가 '나'입니다.

그는 이 풍년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힘으로 이룬 자기 소유라고 착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영혼의 만기일이 오늘 밤일 수도 있다는 인생의 유한함을 완전히 계산에서 빼버렸습니다.

그는 미래를 치밀하게 계산했지만, 그 계산기 속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여기서 "부요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플루테오(πλουτέω)입니다.

넘치도록 풍성해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부유해지는 것 자체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어디에 부요한가'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 이번 달에 얼마 모았니? 평수가 어떻게 되니?"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물으십니다.

"너는 나에 대해 얼마나 부요하니? 네 심령에 나를 향한 감사가 쌓이고 있니?

말씀이 쌓이고 있니? 이웃을 향한 사랑의 흔적이 쌓이고 있니?"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통장의 숫자는 어떻게든 늘려보려고 아등바등하면서,

하늘 창고에 기도를 쌓고 눈물을 쌓는 일에는 얼마나 인색했습니까?

스마트폰은 몇 년 주기로 최신형으로 바꾸면서,

우리의 영성은 몇 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창고는 채워지는데 영혼은 바짝 말라가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어리석은 부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돌이킵시다.

나만을 위해 움켜쥐었던 손을 펴서,

이번 주에 내 주변의 힘들어하는 한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거나 작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구체적인 나눔을 시작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해 부요해지는 첫걸음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돌이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생의 진정한 어리석음은 하나님 없이 내일을 계산하는 것이며,

성도는 땅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마음: 움켜쥔 탐심을 녹이는 십자가의 은혜

성경 본문: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다 탐심의 지배를 받는 죄인들입니다.

더 가지려 하고, 더 높은 성을 쌓으려 하고,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힘과 의지로는 이 탐심이라는 지독한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오직 내 힘으로만 살려고 하는 이 전적인 타락이 우리의 진짜 비극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 복음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움켜쥐려고 '탐심'의 길을 걸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가장 부요하신 하나님이신 그분이,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려고 가장 낮고 가난한 자리에 오셨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탐심은 나를 위해 이웃의 것을 움켜쥐는 것이지만,

십자가 복음은 죄인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탐심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창고를 짓는 것이지만,

복음은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내 영혼을 책임지시는 은혜입니다.

"탐심은 더 많이 가지게 하지만, 결코 더 많이 살게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의 은혜를 진짜로 만나면, 더 이상 세상의 소유에 목숨을 걸지 않게 됩니다.

주님이 이미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전부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내 창고가 조금 비어 있어도,

내 미래를 책임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에 우리는 비로소 만족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자유를 얻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가장 부요하신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주셨으니,

십자가의 은혜만이 우리 안의 탐심을 물리칩니다.

 

 

결론: 영혼의 창고를 하나님으로 채우는 삶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탐심이라는 끝없는 굴레 속에서 평생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고, 진짜 행복을 주시려고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세상의 창고를 채우기 전에, 먼저 여러분의 영혼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십시오.

땅에 썩어질 것을 쌓기 전에, 영원히 썩지 않을 하나님 나라에 여러분의 삶을 투자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고, 오직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움켜쥔 손을 펴고 주님의 신실하신 공급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탐심은 우리에게 더 많은 소유를 약속하지만, 결국 더 깊은 영적 갈증 속에 우리를 가두어 둡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힘으로 내 미래를 보장해 보겠다고 움켜쥐었던 모든 탐심과 우상숭배를 회개합니다.

소유의 넉넉함이 내 생명을 지켜주지 못함을 이 시간 뼈저리게 고백하오니,

물질에 흔들리는 우리의 중심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날 위해 전부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제는 내 창고를 채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부요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삶의 유일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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