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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C 경고시리즈

9) 어리석은 부자 - 영혼의 때를 준비하지 못한 물질의 풍요

작성자예수님만|작성시간26.06.12|조회수65 목록 댓글 0

경고 시리즈. 물질과 탐욕, 세상 유혹에 대한 경고

9) 어리석은 부자 - 영혼의 때를 준비하지 못한 물질의 풍요

누가복음 12:16-21 (중심 본문: 20절) 

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버킷리스트는 있는데, 유언장은 없습니다"

여러분,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노후 자금 계산은 해보셨습니까?

은퇴 후에 어디서 살지, 자녀들 결혼은 언제쯔음 어떻게 도와줄지, 건강보험은 어떤 걸로 들지

— 우리는 이런 계획을 꽤 구체적으로 세웁니다.

어떤 분은 엑셀 파일로 30년 치 재정 계획을 짜놓으셨을 정도입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를 하면서 장례를 인도할 때마다 반복해서 보았던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은 가족들이 정작 가장 당황하는 순간은,

슬픔 그 자체보다 "이 통장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이 보험은 누구 명의지", "아버지가 이 말을 들으셨어야 하는데..."라는 정리되지 못한 일들 앞에서입니다.

평생을 준비했는데, 정작 "그날"은 준비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것을 계획합니다.

노후, 건강, 자녀, 부동산... 그런데 딱 한 가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확실하게 일어날 그 일

— 우리 영혼이 이 몸을 떠나는 그 순간 — 에 대해서는 계획표에 칸 자체가 없습니다.

 "그건 나중 일이야. 아직 멀었어."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을 삽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도 정확히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자기 인생 계산기에 없던 변수 하나를 만났습니다.

 

 

1. "내가, 내가, 내가" — 완벽해 보이는 인생 설계도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식 쌓아 둘 곳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눅 12:16-19)

 

먼저 분명히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사기를 친 것도, 누구를 속인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미래를 계획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정도면 우리 동네에서 "자수성가한 모범 인생"으로 칭찬받을 사람입니다.

 

헬라어 본문을 보면 짧은 세 구절(17-19절) 안에 1인칭 대명사·동사("나/나의/내가")가 무려 6~7번 등장합니다.

"내가 어찌할까", "내 곡식 쌓아 둘 곳",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모든 곡식", "내 영혼에게", "영혼아 ... 즐거워하자".

이 사람의 우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 영혼(ψυχή, 프시케)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쉬어라, 먹어라, 마셔라, 즐거워하라" — 마치 자기 영혼이 자기 소유물이고, 자기가 그 영혼의 주인인 것처럼 말합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는 "내 인생", "내 노후", "내 건강", "내 미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내 것" 안에서 모든 계획을 세웁니다. 

정말 이상한 건, 이 계획 속에 하나님이 들어올 자리가 단 한 줄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이상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다음 주 사역 일정, 다음 달 가계부, 올해 목표... 다 계획합니다.

그런데 그 계획표 어디에도 "혹시 오늘 밤이 마지막이라면"이라는 칸은 없습니다.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 우리는 영원을 살 것처럼 오늘을 계획합니다.

이 부자의 문제는 악함이 아니라, 계산기에서 하나님과 죽음을 빼버린 "자기 충족적 인생 설계"입니다.

 

 

2.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 계산표에 없던 변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0)

 

이 부자가 "내 영혼아, 즐거워하자"라고 말한 그 순간, 또 다른 음성이 들립니다.

바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은 이 부자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인생 계획서에 단 한 줄을 추가하십니다. 

"오늘 밤."

 

① "어리석은 자여" (ἄφρων, 아프론) — 이 단어는 헬라어로 '이성·분별·마음'을 뜻하는 프렌(φρήν)에 부정 접두사가 붙은 형태로, "분별력이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구약 시편 14편 1절("우매한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에서

'우매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발(נָבָל)을, 헬라어 구약(LXX)은 이 단어와 동일하게 아프론으로 번역합니다.

즉 성경에서 "어리석은 자"란 지능이 낮은 사람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인생을 계산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② "오늘 밤에" (ταύτῃ τῇ νυκτί, 타우테 테 뉘크티) — 이 부자가 19절에서 계산했던 시간 단위는 "여러 해"(πολλά ἔτη)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시간 단위는 "오늘 밤"입니다.

몇십 년짜리 계획표 위에, 하나님은 단 하나의 변수를 적어 넣으십니다.

그리고 그 변수 하나가 모든 계획을 무효화시킵니다.

③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ἀπαιτοῦσιν, 아파이투신) — 이 동사는 헬라어에서 "빌려준 것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다"라는 뜻을 가진 재정·법률 용어입니다.

쉽게 말하면 "채권 회수"입니다.

이 표현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충격적인 사실은 이것입니다

— 이 부자의 영혼은 처음부터 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빌린 것이었습니다. 

전도서 12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여러분, 이 부자는 "내 영혼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영혼을 두고, 사람은 "내 것"이라 부르고 하나님은 "도로 찾을 것"이라 부르십니다. 

누구의 말이 진짜입니까?

 

경고: 우리는 "내 생명", "내 시간", "내 건강", "내 노후"라고 말하지만, 그 모든 것의 실제 소유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잠시 맡아 쓰고 있는 관리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임대 계약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날 밤, 일방적으로 종료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본문 앞에서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본문이 우리를 무겁게 누르려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밤"이라는 한 단어가 인생 전체의 계산법을 뒤바꿔 놓습니다 — 우리의 영혼은 빌린 것이지,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3. "그러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창고는 가득해도 손은 빈손입니다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20하-21)

 

이 질문이 정말 잔인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그 거대한 창고, 그 많은 곡식, 그 모든 계획... 그날 밤이 지나면, 그것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닙니다.

시편 49편 17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가 죽으면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욥기 1장 21절도 같은 진리를 말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으니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가리니."

 

여러분, 우리가 평생 모은 것들 — 통장, 집, 자동차, 명예, 인맥, 심지어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내 노력으로 이룬 것들"

— 그 모든 것은 그날 밤이 지나면 우리 손에서 떠나갑니다. 

창고는 가득 차 있는데, 두 손은 빈손으로 그 문을 나서야 합니다.

저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만큼 사역하고, 이만큼 준비해 놓으면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은데." 그런데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 그 어떤 준비도, 제 영혼의 만기일을 단 1초도 늦춰주지 못합니다. 이게 참 쉽지 않은 고백입니다.

 

경고: 우리는 평생 "무엇을" 준비할지 고민하며 삽니다.

그런데 본문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무엇을 준비하느냐"가 아니라 "준비한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입니다.

만약 그 답이 "나도 모릅니다"라면, 우리는 지금 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진짜 위기는 "적게 가진 것"이 아니라, "많이 가진 것이 누구의 것이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마음: 그날 밤에도 "당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우리가 알거니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하늘에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1)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 (롬 14:8)

 

여기까지 들으면, 이 본문은 그저 "두려운 경고"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우리를 떨게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를 진짜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시기 위함입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의 가장 큰 비극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밤"이라는 질문 앞에서 그는 줄 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같은 질문 앞에서 전혀 다른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우리가 주의 것이라"(롬 14:8).

어떻게 바울은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더 많이 모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리석은 자"로 살다가 갑자기 만날 그 "오늘 밤"의 두려움을, 십자가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오늘 밤"이라는 질문 앞에서 더 이상 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은 이미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은 말합니다 — 이 땅의 장막이 무너지는 그 순간,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 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밤에도, 우리는 여전히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의 바울의 고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것은 죽음을 좋아하는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과 죽음 모두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평안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누구의 것"이라는 질문에 답이 없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주님의 것"이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삶의 적용: 오늘, 영혼의 창고를 정리하는 작은 시작

1. 오늘 밤 질문을 가족과 나눠보십시오.
"만약 오늘 밤이 마지막이라면, 내가 가장 후회할 일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배우자나 자녀와 함께 나눠보십시오.

거창한 대화가 아니어도 됩니다. 식탁에서 한 번 던져보는 질문으로도 충분합니다.

 

2. 정리해야 할 관계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용서하지 못한 사람, 화해하지 못한 가족 — "언젠가 시간 되면" 풀겠다고 미뤄둔 그 관계 하나를,

이번 주에 문자 한 통으로라도 시작해 보십시오.

영혼의 준비는 통장 정리보다 관계의 정리에서 시작됩니다.

 

3. 잠들기 전, 짧은 기도로 하루를 맡기십시오.
시편 4편 8절은 말합니다.

"내가 평안히 자고 자리니 ...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오늘 밤부터, 잠들기 전 1분만 — "주님, 오늘 하루도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라고 기도해 보십시오.

 

4. 창고를 채우는 시간만큼, 영혼을 채우는 시간을 떼어놓으십시오.
이번 주, 평소 재테크 정보나 쇼핑에 쓰던 시간 중 10분을 떼어,

말씀을 읽거나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으로 바꿔보십시오.

작은 시작이지만, 이것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로 향하는 첫걸음입니다.

오늘까지 계산기에서 하나님을 빼고 살았다 해도,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적을 수 있습니다.

 

 

나가며: 시계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아닙니다.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계산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빌린 것이고,

그 시계는 우리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이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을 "도로 찾으시는" 그 하나님이,

동시에 그 영혼을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내 인생, 내 창고, 내 영혼"을 움켜쥐고 떨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미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그날 밤에도 안전합니다.

여러분의 창고가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을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 밤, 잠자리에 누워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주님, 오늘도 제 시간이 아니라 당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여러 해를 계산하며 살았지만, 정작 오늘 밤이라는 변수를 인생 계산표에서 빼고 살았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우리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쌓아둔 모든 것이 그날에는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함을 압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의 생명이 이미 주님의 것이 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 된 자로, 오늘 하루도 안심하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 영혼의 참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곡간은 가득 차 있어도, 영혼의 시계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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