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부자와 나사로 - 영혼의 때를 준비하지 못한 물질의 풍요(2)
본문 말씀: 누가복음 16장 19절 ~ 25절
본문 속 경고성 한 줄 문구: > "오늘 내 대문 안의 호화로운 잔치가, 내일 내 영혼을 태울 불꽃이 될 수 있습니다."
준비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남기려 합니까?
여러분, 요즘 세상은 온통 '준비'라는 단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서점에 가거나 유튜브를 켜보면 온통 노후 준비, 은퇴 자금 마련, 재테크 비결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
요즘은 놀랍게도 20대 청년들부터 주식 차트를 보고 부동산 강의를 들으며 '경제적 자유'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고,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 몇 개씩 보험을 들어둡니다.
맞습니다. 준비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고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목회자로서 성도님들의 삶을 부딪치며 보게 되는 안타까운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다가올 30년의 노후는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하면서,
왜 그 뒤에 찾아올 영원한 삶에 대해서는 이토록 무감각할까요?
평생 쓸 재산은 눈물겹게 모았는데 정작 죽음 앞에서는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인생을 보게 됩니다.
통장 잔고는 가득 채워져서 남부러울 게 없는데, 하나님 앞에 내놓을 영혼의 잔고는 텅 비어 있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성공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는 세상 기준으로 보면 완벽한 승리자였습니다. 돈도 많았고, 건강했고, 매일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 순간, 그는 우주에서 가장 가난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화려한 삶 속에 감춰진 영혼의 파산
본문 말씀 (누가복음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의 삶은 눈부셨습니다.
성경은 그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증언합니다.
당시 역사적 배경을 보면, 자색 옷은 지중해의 특정한 조개에서만 추출할 수 있는 극상품 염료로 염색한 옷이었습니다.
그 가치가 문자 그대로 은값과 맞먹을 정도로 귀해서 왕이나 최고 상류층만 입을 수 있던 옷이었습니다.
게다가 고운 베옷은 이집트산 최고급 세마포를 뜻하는데,
오늘날로 치면 최고급 명품 디자이너 의상을 매일 걸치고 살았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가 '호화롭게 즐기더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유프로쉬노스'(εὐφραινόμενος)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기분 좋게 놀았다는 뜻이 아니라,
'값비싼 비용을 들여 성대한 연회를 배풀고 축제를 벌였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그랬습니다.
매일 밤 그의 대저택에서는 화려한 음악이 흐르고, 최고급 음식이 넘쳐났으며, 세상의 유력한 자들이 모여 그를 칭송했습니다.
오늘날로 바꾸어 볼까요?
최고급 외제차를 타고, 강남의 수십억 짜리 펜트하우스에 살면서,
매일 밤 상류층 인맥들과 최고급 와인을 마시며 파티를 즐기는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보며 부러워하고 성실하게 성공한 인생이라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화려함 속에 무서운 함정이 있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하나님'이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온 마음은 오직 지금 이 땅에서의 쾌락과 안락함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당장 눈앞에 편안한 침대가 있고, 통장에 여유가 생기면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보다 스마트폰으로 주식 시세를 확인하거나 세상 뉴스에 눈길이 먼저 갈 때가 많습니다.
눈앞의 물질적 풍요가 영원한 가치를 가려버리는 것입니다.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돈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돈이 내 삶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보다 중요해질 때,
우리의 영혼은 소리 없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부자는 겉으로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내면은 철저히 파산한 상태였습니다.
내 삶의 화려함과 바쁨이 영혼의 빈곤을 감추는 포장지가 아닌지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 저도 눈앞의 안락함 때문에 하나님을 잊고 살 때가 많음을 인정합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하십시오.
오늘 하루, 물건을 사거나 소비를 하기 전에 "이것이 내 육신의 정욕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마음속으로 딱 한 번만 질문해 보십시오.
요약: 세상의 화려한 풍요는 하나님 없는 영혼의 파산을 가리는 가장 위험한 가면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외면한 그 한 사람을 보고 계십니다
본문 말씀 (누가복음 16:20-21)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예수님의 비유에서 아주 흥미롭고 영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주님은 날마다 잔치를 벌이던 그 대단한 부자의 이름은 언급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인사였겠지만,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반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버려진 거지의 이름은 똑똑히 불러주십니다.
그의 이름은 '나사로', 히브리어 원어로 '엘르아살'(אֶלְעָזָר)에서 온 이름입니다.
그 뜻은 바로 "하나님이 도우신다"입니다.
나사로는 온몸이 진물과 상처투성이인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문화에서 부자의 대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라 대저택의 거대한 성문 같은 곳이었습니다.
나사로는 스스로 움직일 힘도 없어서 누군가 주인이 드나드는 그 길목에 던져놓은 것입니다.
그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즉 당시 사람들이 음식을 손으로 닦아내고 버리던 빵 조각으로라도 배를 채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고, 들개들이 와서 그의 상처를 핥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도심의 대형 교회 앞에는 매일 구걸하는 노숙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매주 멋진 정장을 입고 성경책을 품에 안은 채,
그 노숙인을 스쳐 지나가며 예배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그 노숙인에게 다가가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며 이름을 물었습니다.
노숙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있은 지 3년 만에 내 이름을 물어봐 준 사람은 청년이 처음입니다.
다들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거든요."
부자의 진짜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는 나사로를 때리거나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죄는 '철저한 무관심'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화려한 자색 옷을 입고 대문을 나설 때마다, 발밑에 누워 신음하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투명인간을 보듯 외면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탐욕이 가득 차자, 이웃의 고통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정직해져야 합니다.
나사로가 구원을 받은 것은 단지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그의 이름 뜻대로, 이 땅에서 소망이 끊어진 순간에도 오직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반면 부자는 눈앞의 나사로를 외면함으로써, 자기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버렸습니다.
내가 가진 물질과 시간이 오직 나만을 위해 쓰이고 있으며, 내 주변의 약자들을 외면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 저 바쁘다는 핑계로 내 곁에 두신 이웃의 아픔을 투명인간 취급했습니다"라고 돌이키십시오.
매일 마주치는 경비원, 청소 노동자, 혹은 교회 안의 외로운 지체에게
따뜻한 인사말 한마디와 작은 음료수 하나를 먼저 건네며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요약: 하나님은 우리의 세상적 성공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하고 지나친 대문 앞의 나사로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검증하십니다.
3. 죽음, 모든 것을 뒤집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경계선
본문 말씀 (누가복음 16:22-23)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부자의 자색 옷도, 거지의 헌데 투성이 몸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부자의 장례식은 온 성읍이 떠들썩할 정도로 화려했을 것입니다.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무덤에 그의 업적이 빼곡히 적혔을 것입니다.
반면에 나사로는 장례식은커녕 아무도 모르게 성문 밖 쓰레기장에 던져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장례식이 끝나는 순간, 영적인 대역전극이 일어났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자마자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낙원, 곧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영원한 위로와 안식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죽어서 눈을 떠보니 차디찬 음부, 곧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시편 49편 16절과 17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어떤 왕이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어의에게 명령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내 관 양쪽에 구멍을 뚫고 내 두 손을 관 밖으로 내밀어 세상 사람들이 보게 하라.
천하를 호령하던 왕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손에 쥐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역사 속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로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소유는 죽음이라는 경계선 앞에서 단 1그램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모든 연극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무대 위에서 왕의 역할을 맡았든, 거지의 역할을 맡았든, 연극이 끝나면 분장을 지우고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가 이 땅에서 모은 '소유'를 묻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만을 드러냅니다.
"너는 이 땅에 살면서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했는가? 네 영혼은 누구를 의지했는가?"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죽음은 영원한 파멸의 시작입니다.
이 땅의 삶은 영원에 비하면 아주 짧은 나그네 길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 영원히 살 것처럼 이 땅의 것에 집착했던 제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마음을 찢으십시오.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 손을 비우고
"주님, 만약 오늘 밤 제 영혼을 부르신다면, 저는 주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라고 정직하게 1분간 묵상하십시오.
요약: 죽음은 이 땅의 모든 소유를 박탈하고,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남겨놓는 가장 확실한 심판의 경계선입니다.
4. 그래도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본문 말씀 (누가복음 16:24-25)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음부에 떨어진 부자는 비참하게 부르짖습니다.
고작 원했던 것이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날마다 최고급 와인과 산해진미를 누리던 자가, 이제는 물 한 방울을 구걸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너는 살았을 때 네 좋은 것을 다 받았고, 이제 너와 우리 사이에는 건너갈 수 없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다."
사후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엄중한 선언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은 이 본문을 주해하면서
"부자가 당한 고통은 단지 육체적인 불꽃의 고통뿐만 아니라,
살아생전 회개할 기회를 모두 날려버렸다는 영적인 후회와 절망의 고통"이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지옥이 왜 지옥입니까?
더 이상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지옥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무서운 말씀 뒤에 숨겨진 진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비유는 이미 지옥에 간 사람들을 정죄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돌이킬 기회가 있는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가슴 찢어지는 사랑의 경고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이 부자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고, 이웃의 아픔에 무감각하며,
영혼의 때를 준비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원래 우리는 영원한 음부의 불꽃 속에서 물 한 방울을 구걸해야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영원히 파산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늘 보좌의 영광을 가진 가장 부유하신 분이,
우리를 위해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가장 가난한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낮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온몸이 찍히고 물과 피를 쏟으시며, 우리가 받아야 할 음부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이 절망의 운명이 뒤바뀝니다.
주님은 오늘 이 엄중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고 계십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내 대문 안의 탐욕을 버리고,
지금 내게로 돌아오라!"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직 내게 호흡이 남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이킬 은혜의 기회를 주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 당연하게 여겼던 오늘이라는 시간이 주님의 핏값으로 산 기회임을 믿고 감사함으로 받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오늘 하루 동안 내게 주신 물질의 십분의 일, 혹은 내 시간의 일부를 구별하여
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공책에 적어보십시오.
요약: 음부에는 기회가 없지만 지금 우리에겐 기회가 있으니,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 즉시 회개의 자리로 돌이켜야 합니다.
[결론] 가장 부요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진 자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소유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내 영혼의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의 부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준비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자기 영혼과 영원을 준비하지 못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반면 나사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신뢰함으로 영원한 하늘의 부요함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현장으로 나아갈 때 세상의 유혹과 탐욕의 소리에 귀를 닫으십시오.
통장의 잔고보다 내 영혼의 상태를 매일 점검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내 대문 앞에 보내신 작은 자, 소외된 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으십시오.
이 땅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은 가장 많은 재산을 쌓아둔 사람이 아닙니다.
죽음의 문을 통과할 때 나와 영원히 함께하실 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영원의 때를 지혜롭게 준비하는
신실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