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일만 악의 뿌리 - 돈을 사랑함이 가져오는 영적 이탈과 근심
디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은 우리 삶에 정말 필요합니다.
당장 내야 하는 공과금, 아이들 학원비, 노후 준비까지 돈이 없으면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차가운 현실입니다.
성경은 결코 돈 자체를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고난을 이겨낸 욥도,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다윗 왕도 엄청난 재물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돈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목사라고 돈 걱정 안 할까요? 아닙니다.
통장 잔고를 보며 남몰래 불안해할 때가 있고, 남들의 풍요로움을 보며 부러워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물질 중심적인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살아갑니다.
오늘 바울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우리에게 아주 충격적이고도 뼈아픈 경고를 던집니다.
1. 돈을 사랑하면 영적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돈을 사랑함 — 필라르귀리아 : '사랑하다'의 필레오와 '은, 돈'을 뜻하는 아르귀로스의 합성어로, 돈에 대한 집착적인 애착을 뜻합니다.
미혹을 받아 — 아포플라나오 :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요약: 돈에 마음을 빼앗기면 인생의 올바른 영적 방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됩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보낸 에베소는 당대 최고의 무역 도시였습니다.
그곳에는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는데, 그 신전은 단순히 종교 시설이 아니라
오늘날의 거대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금융의 중심지였습니다.
사방에서 돈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심지어 교회 안의 거짓 교사들까지도
"신앙생활 잘하면 부자가 된다"라며 경건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습니다(존 칼빈, 디모데전서 주석 참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바울은 '필라르귀리아', 즉 돈을 향한 집착적 사랑을 경고합니다.
돈을 사랑하게 되면 가장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바로 '아포플라나오', 영적인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미혹되어 길을 잃어버립니다.
여기 아주 작은 원숭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사냥꾼이 좁은 유리병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달콤한 견과류를 넣어 두었습니다.
원숭이가 손을 집어넣어 견과류를 한 움큼 쥐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빼려니 병 목이 좁아서 주먹이 빠지지 않습니다.
손을 펴서 견과류를 놓으면 자유해지는데, 원숭이는 그 손을 절대 놓지 못합니다.
결국 원숭이는 손에 쥔 작은 먹이 때문에 사냥꾼에게 잡히고 맙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은연중에 돈이 있어야 내 미래가 안전하다"라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합니다.
처음에는 삶을 꾸리기 위해 돈을 벌지만, 어느 순간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조금만 더, 이번 한 번만 더" 하다가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를 뒤로 미룹니다.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해서 쫓아갈 뿐이라고 변명하지만,
실제로는 돈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이 연약한 현실을 우리는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내 손에 꽉 쥐고 있는 재정에 대한 염려와 집착을 아주 조금만 내려놓아 보십시오.
오늘 하루, 돈 때문에 양심을 타협하거나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작은 결단부터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2. 돈을 사랑하면 믿음의 닻이 끊어집니다
본문 말씀: 디모데전서 6장 10절 "믿음에서 떠나"
떠나 — 아포스케우아조, 문맥상 아페플라네데산의 의미 :
항구를 떠나 넓은 바다로 흘러가 버리는 배처럼, 신앙의 기초에서 완전히 멀어진 상태를 묘사합니다.
요약: 돈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면 결국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자리에서 떠나게 됩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결국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주일 예배 한두 번 빠지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센 풍랑 속에서 배를 고정해 주던 닻줄이 툭 끊어져, 배가 통제력을 잃고 망망대해로 떠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보면,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가 정확히 이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는 주님의 기적을 보았고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중심에는 주님보다 '돈 주머니'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돈에 대한 사랑이 그를 믿음에서 완전히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보며 "이것만 있으면 내 삶이 구원받겠구나"라는 가짜 복음을 믿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과 오직 그리스도만을 외치지만,
돈은 우리에게 "오직 재물만이 너를 보호한다"라고 속삭입니다.
돈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순간, 하나님은 내 삶의 주권자가 아니라 그저 내 재산을 증식해 주는 도구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는 솔직해져야 합니다. "내 삶의 진짜 안정감은 어디서 오는가?" 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있다면, 이미 우리의 믿음의 닻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돈이 주는 거짓 안정감에 속았던 우리의 영적 음란함을 회개합시다.
그리고 삶의 모든 공급자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다시 고백하며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3. 돈을 사랑하면 결국 자신을 관통하는 상처를 입습니다
본문 말씀: 디모데전서 6장 10절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찔렀도다 — 페리페이로: '주위에'라는 뜻의 페리와 '꿰뚫다'라는 뜻의 페이로의 합성어로,
사방에서 날카로운 창으로 온몸을 관통하여 스스로 치명적인 고통을 가하는 모습을 뜻합니다.
요약: 재물을 우상으로 삼은 삶의 끝은 행복이 아니라, 스스로를 파괴하는 영적인 근심과 고통뿐입니다.
돈을 사랑하며 쫓아간 인생의 종착역은 안락함이나 행복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 끝이 '페리페이로', 즉 수많은 근심의 창으로 자기 자신을 사정없이 찔러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윌리엄 헨릭슨은 그의 주석에서
"재물에 대한 탐욕은 결국 영혼을 찌르는 가시가 되어 밤잠을 설치게 하고 심령을 갉아먹는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더 많이 소유해라, 그래야 네 가치가 증명된다." 그래서 우리는 밤낮없이 달립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지면 가질수록 더 불안합니다.
1억을 가지면 10억 가진 사람이 보이고, 10억을 가지면 100억 가진 사람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자주 말하지만. 돈은 우리에게 좋은 침대를 살 수는 있게 해주지만 달콤한 잠을 주지는 못합니다.
돈으로 비싼 약을 살 수는 있어도 잃어버린 건강을 살 수는 없습니다.
최고급 아파트를 살 수는 있어도 따뜻한 가정은 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돈은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 없고, 다가오는 죽음과 심판 앞에서 우리를 단 1초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지지 못해 불행한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 때문에 스스로를 찌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기중심적인 비교 의식을 인정합시다.
"아, 내가 또 세상의 기준에 속아 내 영혼을 찌르고 있었구나" 하고 수용합시다.
그리고 오늘, 나보다 더 부족한 처지에 있는 지체나 이웃을 돌아보며,
내 지갑을 열어 작은 사랑을 흘려보내십시오.
채우려고만 할 때는 근심이 나를 찌르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누기 시작할 때 내 영혼을 찌르던 가시는 사라지고 하늘의 평안이 임할 줄 믿습니다.
복음: 그래도 하나님 — 은혜의 초청
탐욕으로 무너진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이 우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목사님, 알겠습니다. 그런데 당장 내일 삶의 터전으로 나가면 또 돈 때문에 피눈물 흘려야 하는 게 현실인데 어떻게 합니까?
저는 도저히 이 탐욕과 두려움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 물질의 유혹을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으로 달려갈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너 얼마 가졌니? 네 몸값은 얼마니?"라며 우리의 소유로 가치를 매기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주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값으로 우리의 가치를 매겨 주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돈을 사랑함으로 가득 찬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은 삼십에 팔리셨지만, 정작 자신은 그 어떤 재물도 탐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전부 내어주셨습니다.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이 십자가 사랑을 만나는 순간,
비로소 내 마음을 단단히 쥐고 있던 돈이라는 우상이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내 주인이 돈이 아니라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자족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결론: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성경은 돈을 무조건 멀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돈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 사용할 아주 유용한 '종'입니다.
그러나 돈이 내 마음의 왕좌에 앉는 순간, 그것은 가장 잔인한 '주인'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고 갑니다.
신앙의 본질은 내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돈을 손에 쥐고 사십시오. 부지런히 일해서 정직하게 버십시오.
그러나 돈이 여러분의 마음을 쥐게 하지는 마십시오.
물질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를 찌르는 근심 속에 살아가지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삶의 유일한 구원과 만족으로 삼는 사람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평안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매일 마주하는 재정의 염려 앞에서 "하나님, 내가 돈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의지합니다"라고 선포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돈 때문에 울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기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