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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C 경고시리즈

14) 들으라 부한 자들아 - 쌓아둔 재물이 마지막 날에 증거가 됨

작성자예수님만|작성시간26.06.18|조회수38 목록 댓글 0

14) 들으라 부한 자들아 - 쌓아둔 재물이 마지막 날에 증거가 됨

야고보서 5장 1-3절

5: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5: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는가

참 이상하지요. 돈이 좀 모이면 평안할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통장이 불어날수록 불안도 함께 자랍니다.

재산이 늘어나면 이제는 만족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더 목이 마릅니다.

왜 그럴까요?

돈은 결코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충격적인 선언으로 포문을 엽니다.

"울고 통곡하라!" 왜 울라고 할까요?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닙니다.

그 돈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서서, 우리 손에 쥐어진 것들의 진짜 정체를 함께 정직하게 들여다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보다 재물을 요새로 삼은 사람들

야고보서 5: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본문에 나오는 ‘부한 자들’은 헬라어로 (호이 플루시오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부자'는 단순히 은행 잔고가 많은 사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 기록 당시 로마 제국의 거대한 상업 도시들 속에서,

하나님 없이 오직 재물만을 자기 인생의 안전지대와 미래의 요새로 삼고 살아가던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신뢰하는 그 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입술은 예배당에서 "오직 주님만이 나의 방패이십니다"라고 노래합니다.

하지만 월요일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차가운 숫자를 붙들고 떨고 있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의 약속보다 통장의 잔고가 더 든든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보다 유력한 사람의 전화번호 하나 쥐고 있는 게 더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자산 가치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과 미래의 불안에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리는 현대인의 실존적 재정 불안 문제.

하나님보다 돈을 내 삶의 진짜 요새로 신뢰한 죄, 미래의 불안을 핑계 삼아 이웃을 향한 나눔을 유예한 내 계산적인 믿음.

오늘 하루 동안은 재테크 채널이나 자산 확인 앱을 완전히 닫고,

내 삶의 공급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주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요약, 탐욕의 시작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2. 녹슨 재물이 법정의 증인이 됩니다

야고보서 5:2-3a,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여기서 야고보는 아주 무서운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증거는 헬라어로 (마르튀리온)입니다.

이는 법정에서 피고인의 죄명을 아주 빼도 박도 못하게 입증하는 '결정적인 최후의 증거물'을 뜻합니다.

 

야고보 시대에 부의 3대 상징은 곡물, 옷, 그리고 금과 은이었습니다.

그런데 창고에 너무 오래 쌓아두어 곡식은 썩었고,

명품 옷은 장롱 속에서 좀이 먹었으며, 영원할 줄 알았던 금과 은마저 시커멓게 녹이 슬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금과 은은 원래 녹이 슬지 않는 금속입니다.

그런데 왜 녹이 슬었다고 할까요?

흘러가야 할 물질이 막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누어야 할 물질이 내 소유욕 속에 갇혀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고대 도시 폼페이가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화산재에 덮였을 때의 일입니다.

수천 년이 지난 후 고고학자들이 그곳을 발굴하면서 아주 기이하고 슬픈 유골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한 여인의 유골이었는데, 그녀의 손뼈는 화산재가 밀려드는 그 공포의 순간에도

값비싼 보석 주머니를 얼마나 세게 움켜쥐고 있었던지, 보석 형상 그대로 굳어 있었습니다.

그 보석이 그녀를 살렸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도망칠 시간을 빼앗아 갔고, 결국 그녀의 무덤 속에서 그녀가 어떤 탐욕을 가졌는지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닫고 있을 때,

우리가 웅크리고 쌓아두었던 그 재물들이 법정에서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주님, 저는 저 사람의 금고 안에서 숨이 막혀 죽어갔습니다.

저는 저 사람이 입지도 않으면서 쌓아둔 옷장 속에서 좀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그 물질이 결국 우리를 고소하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쓰고 남은 물건은 쌓아두면서 정작 주변의 지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구제와 격려에는 지갑을 닫아버리는 현대식 미니멀리즘의 모순.

청지기 정신을 잊어버리고 내게 맡겨진 물질을 온전히 내 지분으로만 착각하며 움켜쥐었던 이기심.

오늘 집으로 돌아가시면 옷장과 서랍을 열어보십시오.

지난 1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쓰지 않은 물건을 딱 하나만 골라내어 이번 주 안에 필요한 이웃이나 기부 단체로 흘려보내십시오.

요약, 하나님께 맡겨진 재물을 움켜쥔 손은 마지막 날 심판의 날에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3.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야고보서 5:3b,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야고보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가리켜 ‘말세’, 즉 헬라어로 (엔 에스카타이스 헤메라이스, 마지막 날들 가운데)라고 선포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머지않았고 심판이 문 앞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대신 곧 불타 없어질 세상의 것들을 쌓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가슴을 치며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 무서운 심판대 앞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과연 여기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우리 중 그 누구도 탐욕의 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 내 창고를 먼저 채우고 싶어 하는 죄인들입니다.

 

우리가 쌓으려고만 할 때, 하늘의 가장 귀한 보화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스스로를 전 수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말씀처럼,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는 내 손에 쥐려고 예수님을 밀어내기 바빴지만,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손바닥에 대못이 박히기까지

그 손을 활짝 펴서 당신의 물과 피를 우리에게 전부 쏟아내 주셨습니다.

내 창고의 녹슨 증거를 지우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 없습니다.

오직 은혜(Sola Gratia)로만 우리는 이 법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성공 방정식과 축적의 논리에 함몰되어 영원한 종말론적 가치를 잃어버린 채 영적 파산 상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무감각함.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급보다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영토를 넓히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영적 간음죄.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오늘 주변의 영적으로 지쳐 있는 한 사람에게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며 내 마음의 여백을 나누십시오.

요약, 썩어질 재물이 아닌, 나를 위해 가난해지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보화이십니다.

 

 

4. 오늘 작은 손을 펴십시오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의 물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물’은 헬라어로 (테사우로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땅에 묻어둔 재화가 아니라, 내 실존이 의지하고 있는 최후의 보루,

내 자존심의 근거,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숨겨진 탐욕은 한 번 눈물 흘리며 결단한다고 해서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탐욕은 오직 '구체적인 나눔'을 통해서만 그 힘이 꺾입니다.

우리의 움켜쥔 손을 의도적으로 펼 때, 물질 우상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위대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회개가 필요하다. 첫째는 가슴의 회개요, 둘째는 정신의 회개요, 마지막 세 번째는 돈지갑의 회개다."

 

돈지갑이 회개하지 않은 신앙은 안타깝게도 아직 가짜일 확률이 높습니다.

오늘 거창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당장 우리 주변에 홀로 계신 어르신이나, 학비로 고민하는 청년,

혹은 묵묵히 사역하는 선교사님을 위해 내 지갑을 작게라도 열어보는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그 작은 지출이야말로,

내가 돈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세상에 선포하는 위대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경제적 불황을 이유로 지나치게 인색해져 가며 고립을 자초하는 이기적인 소비 문화와 이웃 관계의 단절.

입술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고 하면서 물질 사용의 우선순위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맨 뒷전으로 밀어내었던 위선.

오늘 커피 한 잔 값을 아끼거나 작은 재정을 구별하여,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푸는 식사 한 끼나 작은 선물을 대접해 보십시오.

요약, 나눔은 재산을 잃는 소비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함을 입증하는 청지기의 믿음 고백입니다.

 

 

결론: 신앙의 본질을 가슴에 새기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심판의 날이 오면, 이 세상 모든 금고의 문이 강제로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믿었는지, 아니면 통장을 믿었는지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의 금고가 우리를 고소하는 증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금고의 두께에 있지 않습니다.

아파트의 평수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재물을 소유하는 것은 절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재물이 나를 소유하게 방치하는 것은 무서운 죄입니다.

이 땅의 썩어질 것들을 쌓아두느라 하늘의 법정에서 고발당하는 미련한 인생이 되지 마십시다.

비록 세상의 통장은 조금 가벼워질지라도,

영원한 보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여

오늘도 기꺼이 손을 펴서 사랑을 유통하는 진정한 천국의 상속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창고에 쌓아둔 탐욕의 무게가, 내일 당신을 심판할 법정의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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