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성경 구절: 요한일서 2장 15절 - 16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주 익숙하지만, 동시에 매일의 삶에서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습니다.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데, 그런데 이상하지요?
보면 볼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묘한 허탈감과 갈증이 찾아옵니다.
만족은 없고 더 큰 욕심만 생겨납니다.
오늘 사도 요한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 중심을 향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느냐? 네 시선과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손에 쥔 세상의 헛된 것들을 발견하고,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진짜 사랑을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매일 무의식적으로 바라보고 검색하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세상의 실체입니다.
1. 육신의 정욕: 만족을 약속하지만 갈증만 남기는 통제되지 않는 갈망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요한일서 2:16a)
첫 번째로 요한이 경고하는 것은 바로 '육신의 정욕'입니다.
여기서 '정욕'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에피뒤미아(ἐπιθυμία)'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냥 단순한 필요나 소원이 아닙니다.
'통제되지 않는 강렬한 갈망', 즉 하나님 없이 내 육체의 욕구를 스스로 채우려는 제어 불가능한 욕망을 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육신', 즉 '사르크스(σάρξ)'는 하나님 없이 독립하려는 인간의 타락한 성품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게 살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욕구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리라고 좋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욕망이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할 때 발생합니다.
필요가 아니라 탐욕이 내 인생의 핸들을 잡기 시작하면, 그 인생에는 감사가 죽어버립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하늘에서 신선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입맛에 이 만나는 너무 하찮다, 고기를 달라!"
욕망이 찾아오니까 매일 받던 기적이 당연한 것이 되고, 감사가 원망으로 바뀐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짧은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삶은 '바닷물을 마시는 난파선의 선원'과 같습니다.
목이 마르다고 눈앞에 펼쳐진 시원해 보이는 바닷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어떻게 됩니까?
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세포 속 수분까지 다 빼앗겨 더 지독한 갈증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요즘 유행하는 쇼츠나 릴스 같은 짧은 영상들을 한 시간, 두 시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잠시 즐거운데 돌아서면 허무합니다.
새 차를 사고 새 옷을 사도 그 만족은 한 달을 가지 못합니다.
인간의 정욕은 채우면 채울수록 그릇 자체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도의 자리보다 편안한 안락의자를 더 찾을 때가 많습니다.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 육체가 편한 길을 선택하려 합니다.
요약: 육신의 정욕은 채울수록 더 큰 영적 갈증을 낳는 바닷물과 같으므로, 통제되지 않는 갈망을 경계해야 합니다.
2. 안목의 정욕: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빼앗는 화려한 신기루
"...안목의 정욕과..." (요한일서 2:16b)
두 번째 경고는 '안목의 정욕'입니다.
안목은 헬라어로 '옵달모스(ὀφθαλμός)'라고 하는데, 우리의 '눈'과 '시선'을 의미합니다.
눈은 우리 마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넓은 창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언제나 우리의 '눈'을 먼저 공격합니다.
창세기의 하와를 보십시오.
선악과를 지식으로 알 때는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을 받고 그 나무를 '바라본' 순간, 성경은 "보암직도 한지라"라고 기록합니다.
눈으로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다윗 왕도 평안히 왕궁 침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보았기'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아간 역시 여리고 성에서 화려한 외투와 은덩이를 '보고' 탐내어 숨겼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화려한 시각 매체를 통해 우리의 눈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상적인 예가 있습니다.
여러분, 마트나 과자 코너에 가면 치즈 향이 진하게 나는 과자들이 있습니다.
노랗고 화려해서 아주 맛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성분표를 보면 진짜 치즈는 0.1%도 안 들어있고,
전부 인공 향료와 색소뿐입니다.
영양가는 하나도 없고 몸만 상하게 만들지요.
세상이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 화려한 이미지들이 바로 이 인공 색소 과자와 같습니다.
SNS에 올라오는 멋진 인플루언서들의 사진, 광고 속의 멋진 아파트, 화려한 인테리어는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이것 봐, 멋지지? 이걸 가져야 네 인생이 행복해지는 거야."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이 항상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아닙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크기와 외모와 숫자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중심과 믿음을 보십니다.
눈이 이끄는 대로 살면 우리는 결국 세상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약: 안목의 정욕은 영양가 없는 인공 색소 과자처럼 우리의 눈을 현혹하여 영혼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3. 이생의 자랑: 하나님 없이 나를 증명하려는 가짜 인생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일서 2:16c)
마지막 세 번째 경고는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 단어는 원어 분석이 참 흥미롭습니다.
'자랑'은 헬라어로 '알라조네이아(ἀλαζονεία)'라고 하는데,
이것은 실속은 없으면서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는 '허세, 과시, 자기 과장'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생'은 헬라어로 '비오스(βίος)'인데,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육체적 생계, 재산, 생활의 수단'을 의미합니다.
즉, 이생의 자랑이란 내가 가진 물질, 학벌, 직장, 자녀의 성공 같은 '비오스(생활 수단)'를 가지고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려는 헛된 허세입니다.
"내가 이만큼 가졌으니 난 대단한 사람이야", 혹은 "우리 자녀가 이 대학에 갔으니 난 성공한 부모야"라고 외치는 마음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명품 가방이나 명품 시계의 '빈 상자'를 돈 주고 산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알맹이는 없는데, 그 상자를 방에 두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마치 자신이 부유한 사람인 것처럼 과시하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서글픈 인생의 단면입니까?
이것이 바로 요한이 말한 '알라조네이아', 즉 실체 없는 허세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 마음속에도 이런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형편에 살면 은근히 어깨가 으쓱해지고,
남들보다 뒤처지면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 같아 낙심하는 마음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은 스스로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영적으로 가장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들이었습니다.
반대로 서머나 교회는 세상적으로는 환난과 궁핍 속에 있었지만,
주님은 그들을 향해 "네가 실상은 부요한 자니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생의 자랑은 결국 내 인생의 주인 자리에 하나님을 밀어내고 내 업적과 소유를 올려놓으려는 바벨탑의 정신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소유로 우리를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요약: 이생의 자랑은 알맹이 없는 명품 상자처럼 내 소유로 나를 증명하려는 영적인 허세이자 교만입니다.
복음: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우리는 날마다 이 세 가지 유혹 앞에 무너집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육신의 정욕에 시선이 돌아가고, 안목의 정욕에 마음을 빼앗기며,
이생의 자랑에 취해 살아갑니다.
"아, 목사님, 저는 틀렸나 봐요. 제 속에는 탐욕밖에 없나 봐요"라며 절망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유혹에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 우리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광야로 가셔서 사탄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육신의 정욕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천하 만국의 화려한 영광을 보여주며 절하라는 안목의 정욕의 시험을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네 능력을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라는 이생의 자랑의 시험을 오직 하나님만 신뢰함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넘어지는 그 실패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완벽하게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의를 십자가를 통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아무 대가 없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네 의지로 세상을 이기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복음은 "내가 이미 세상을 이겼으니, 너는 내 안에 거하라"고 초청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굳은 결심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Sola Fide)에서 나옵니다.
내 힘으로 세상을 버리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더 크고 아름다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 마음에 가득 채우십시오.
더 큰 사랑이 들어오면, 이 전의 하찮은 사랑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요약: 우리가 실패한 유혹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승리하셨으며, 오직 그분의 대속의 은혜만이 우리를 세상에서 건져냅니다.
삶의 적용: 깨달음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오늘의 걸음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 "우리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의 안락함과 화려함,
그리고 남들의 인정에 목말라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이 탐욕의 사슬을 끊을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 "이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주님께 인정해야 합니다"
낙심하거나 정죄감에 빠지지 마십시오.
"하나님, 제 눈과 마음이 오늘도 세상 정욕에 흔들렸습니다.
이런 저에게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 은혜(Sola Gratia)밖에 소망이 없습니다"라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며 그분의 품으로 나아가십시오.
—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하십시오"
첫째, 탐욕 점검하기:
"나는 오늘 이것 없이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눈앞의 물질이나 조건이 있다면,
그것을 우상의 자리에 내려놓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둘째, 시선 차단하기:
스마트폰에서 나에게 끊임없이 비교와 불만을 심어주는 SNS 앱이나 쇼핑 앱이 있다면,
오늘 하루 동안만이라도 알림을 끄거나 과감히 삭제해 보십시오. 비교를 멈추어야 감사가 시작됩니다.
셋째, 그리스도 바라보기:
하루를 마감하기 전, 세상 뉴스를 검색하는 대신 오늘 주신 말씀 구절을 조용히 세 번 암송하며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십시오.
오늘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내 자랑을 내려놓고 격려의 말을 건네 보십시오.
삶의 적용 한 줄 요약: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늘 하루 SNS 알림을 끄며 시선을 그리스도께로 돌리는 구체적인 작은 실천을 시작합시다.
결론: 영원을 붙잡는 인생이 되십시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요한은 오늘 말씀의 결론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법칙을 선언합니다.
이 세상은 대단하고 영원할 것처럼 소리치지만, 결국 다 지나갑니다.
우리가 그렇게 목숨 걸고 모으려고 했던 돈도 지나갑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명예와 권력도 지나갑니다.
청춘도, 건강도 화살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흘러 떠내려가는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붙잡으려고 영혼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질서 속에서 나를 증명하려던 모든 율법적인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오직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손에 쥐려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놓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붙드는 순간, 우리는 영원을 붙들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과 함께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의 지혜가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나가는 유한한 세상을 과감히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붙잡는 지혜로운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