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 자기 뜻대로 변형시킨 불완전한 순종의 위험
본문: 사무엘상 15장 22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서론: 내 생각이라는 양념을 치는 순간
살다 보면 참 묘한 일들을 자주 겪게 됩니다.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얘야, 마트 가서 다른 거 사지 말고 딱 우유 하나만 사 오너라."
그런데 아이가 한참 뒤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양손 무겁게 돌아옵니다.
봉지를 열어보니 우유는 없고, 비싸고 화려한 과자와 음료수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아이가 당당하게 말하죠.
"엄마, 내가 보니까 우유보다 이게 훨씬 더 맛있고 좋은 거예요! 엄마 위해서 더 좋은 걸로 골라왔어요!"
성도 여러분, 이때 마음이 어떠십니까?
아이가 참 기특하고 기쁘신가요?
아니죠. 속이 타들어 갑니다.
문제는 '더 좋은 것을 샀느냐'가 아닙니다.
'말씀드린 대로 했느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꼭 이 아이처럼 행동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여기서 멈추라" 하셨는데, 우리는 "조금만 더 가면 대박이 날 것 같은데요?" 하며 더 걸어갑니다.
하나님은 "그 욕심 버리라" 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 이거 잘 놔뒀다가 나중에 주의 일에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하고 슬쩍 남겨둡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이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대놓고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생각을 섞어서 열심히 종교적인 행위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순종이라고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예배와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1. 부분적인 순종은 사실상 불순종입니다
사무엘상 15장 3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하나님의 명령은 군더더기 없이 명확했습니다.
"아말렉을 쳐서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여기서 '진멸하다'라는 단어는 원어로 헤렘(חֵרֶם)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냥 마구잡이로 부수고 죽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서, 이 세상의 소유로 남겨두지 않고 완전히 제거하다"라는 뜻입니다.
온전한 구별을 의미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셨을까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 길을 걸을 때,
가장 지치고 약해진 끄트머리의 약자들을 뒤에서 비열하게 공격했던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정면으로 가로막았던 사단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죄악의 뿌리를 완전히 끊어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어떻게 합니까?
아말렉을 이기긴 이겼는데, 자기 눈에 보기에 그럴싸한 아각 왕은 살려둡니다.
그리고 양과 소 중에서 가장 기름지고 좋은 것은 슬그머니 남겨두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진멸합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99%는 순종한 것처럼 보입니다. 대단한 승리를 거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99%의 승리를 순종으로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양이 아니라 방향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화려한 성과를 냈는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에 온전히 굴복했는지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주일 예배는 기가 막히게 드립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상처 준 그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씀 앞에서는 멈춰 섭니다.
헌금은 주저 없이 드립니다.
그런데 내 일터에서 물질을 버는 방식 속의 탐욕은 그대로 남겨둡니다.
교회 봉사는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내 안의 은밀한 교만과 자존심은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꽁꽁 숨겨둡니다.
"우리는 자꾸만 내가 순종할 영역을 내가 선택하려고 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말씀에는 순종하고,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씀은 슬쩍 편집해 버립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내가 선택한 순종은 순종이 아니라, 내 만족을 위한 종교 행위일 뿐입니다.
부분적인 순종은 온전한 불순종입니다.
요약: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은 성과를 많이 내는 순종이 아니라, 온전히 말씀의 방향을 따르는 순종입니다.
2. 내 방식대로 하는 순종은 예배를 파괴합니다
사무엘상 15장 15절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 선지자가 추궁하자 사울이 아주 당당하게 변명합니다.
"아, 이거요? 내가 가지려고 남겨둔 게 아닙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장 멋진 제사를 드리고 싶어서, 제일 좋은 놈들로만 골라서 남겨둔 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눈물이 날 만큼 경건해 보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해 보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 내가 주의 교회를 위해 큰 사업을 해서 대박을 터뜨린 다음에
엄청난 건축헌금을 드리려고 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유예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유혹에 빠진 분들을 참 많이 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열심이 앞서는 비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의 그 화려한 예배 계획에 전혀 감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슬퍼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에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여기서 '순종'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구약성경과 신약의 흐름 속에서 샤마(שָׁמַע)라는 히브리어 단어와 연결됩니다.
이 '샤마'는 단순히 귀로 소리를 듣는 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귀 기울여 듣고, 그 말씀에 전인적으로 복종하여 따르다"라는 의미입니다. .
성경이 말하는 '들음'은 반드시 '행동'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들었다면, 내 방식을 고집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편집합니다.
"하나님,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문자 그대로 다 지킵니까?
내가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으니 걱정 마십시오."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상황에 맞게 말씀을 잘라내고 수정합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핍박하는 자들이 일어났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으로 바꾸어 버린
'종교적인 사람들'이 득세했을 때였습니다.
이단도 그렇게 시작되었고, 수많은 신앙의 타락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날마다 맑은 말씀의 거울 앞으로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요약: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한 종교적 성과보다,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상한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3. 불순종의 깊은 뿌리는 '완고한 교만'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3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하나님은 사울의 행위를 두고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거역'이었고 '완고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완고함'에 해당하는 원어적 개념은 파차르(פָּצַר)라는 단어와 연결되는데,
이것은 "자신의 고집을 관철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강요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불순종의 본질은 깜빡 잊어버린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보다 내 판단이 더 정확하다"고 믿는 완고한 자기중심성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왕이 되어 하나님과 비기려고 하는 교만, 그것이 바로 불순종의 진짜 얼굴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완고함을 '우상 숭배'와 똑같다고 선언합니다.
우상 숭배가 무엇입니까?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신을 조종하려는 행위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 아니라,
좋은 제물을 드려 하나님의 환심을 산 뒤, 자기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나님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내가 주인 된 삶, 이것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지었던 죄의 본질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속삭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요... 그래도 내 경험상, 내 형편상 지금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내 생각을 섞는 순간, 순종은 이미 불순종이 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지 않는 모든 열심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사울은 결국 이 교만 때문에 왕위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요약: 불순종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판단과 경험을 더 신뢰하는 완고한 교만입니다.
4. 그래도 하나님은 완전한 순종자를 보내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울의 이야기는 참 비참한 실패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의 마음도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도 사울과 똑같은 완고함과 교만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100% 온전한 순종을 드릴 능력이 없는 비참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울은 실패했고 아담도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왕이자 온전한 순종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빌립보서 말씀에 등장하는 '복종'은 헬라어로 휘파코에(ὑπα코ή)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의 아래에서(hypo) 귀를 기울여 듣다(akouo)"라는 뜻입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권위 아래 엎드려 그분의 음성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육신을 가지셨기에 그 십자가의 잔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 생각을 섞지 않으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단순히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생 지키지 못해 빚어낸 그 수많은 불순종의 죗값을 대신 갚으시고,
예수님이 평생 이루신 그 완벽한 순종의 의(義)를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넘겨주신 사건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의 공로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넘어지지만, 예수님의 순종이 우리를 덮고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다시 일어나 순종을 다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순종해야 구원을 받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그 완벽한 순종의 사랑이 너무나 감사해서,
그 은혜에 이끌려 내 생각을 내려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약: 우리는 실패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불순종을 대속하셨습니다.
결론: 오늘, 내 생각을 내려놓는 작은 걸음으로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내 뜻대로 조종하는 종교 활동에 있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은 내 왕관을 벗어 던지고, 그분의 말씀 앞에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남겨둔 아각 왕이 있습니까?
주님은 끊어내라고 하셨는데, "이건 아까워서 안 됩니다" 하며
내 삶의 뒤편에 묶어둔 은밀한 죄악, 포기하지 못하는 자존심, 내 방식대로의 고집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거창한 선교를 가거나 전 재산을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고 구체적인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내 생각을 섞는 99%의 순종이 사실은 내 교만에서 나온 불순종이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십시오.
내 힘으로는 온전히 순종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나를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십시오.
오늘 하루,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성령님이 감동 주시는
'그 한 사람'에게 먼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거나 마음을 내려놓아 보십시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주일 낮에 교회 마당을 밟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평일의 삶 속에서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사역의 화려한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내 뜻을 꺾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울처럼 "나를 위해서, 내 생각에는"이라는 변명을 멈추고,
"주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주님이 가라 하시는 곳에 가고 멈추라 하시는 곳에 멈춰 서는 온전한 순종의 여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