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벙어리 개들 - 사명을 망각하고 파수하지 않는 지도자들
사 56: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여러분, 혹시 아침에 깨우는 스마트폰 알람 소리를 못 듣고 계속 자다가 낭패를 본 적 없으신가요?
처음에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깨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리에 몸이 적응해 버립니다.
나중에는 알람이 울려도 끄고 다시 자죠.
지금 우리 영혼의 알람판이 딱 이렇습니다.
세상의 자극적인 뉴스에는 심장이 뛰는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이상하게 평안(?)하게 잠이 옵니다.
오늘 본문은 고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의 무뎌진 심장을 흔드는 말씀입니다.
요약: 영적 무감각은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릴 때 시작됩니다.
1. 첫 번째 위험: 눈을 감아버린 소경과 무지
성경 본문: 이사야 56:10b,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소경: עִוֵּר (ivver, 이베르) - 육신의 눈은 떴으나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여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상태.
무지하다: לֹא יָדָע (lo yada, 로 야다) - 단순히 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언약 관계를 망각하여 그분의 뜻을 알지 못하는 상태.
당시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성벽 위에서 적이 오는지 똑바로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세상의 트렌드는 누구보다 잘 아는데, 하나님의 탄식은 보지 못합니다.
주식 차트와 부동산 흐름은 훤히 꿰뚫고 있으면서, 내 영혼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이게 바로 원어에서 말하는 '로 야다(לֹ아 יָדָע)',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무지입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매주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 쓰느라 정작 하나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놓칠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는 이토록 자기중심적입니다. 세상 지식에는 밝고 하나님께는 어둡습니다.
오늘 이 영적 소경 됨을 주님 앞에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세상 뉴스를 보는 시간 줄이고 내 영혼의 상태를 조용히 들여다보십시오.
우리의 감긴 눈을 다시 열어주실 것입니다.
요약: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세상은 보이고 영혼은 보이지 않습니다.
2. 두 번째 위험: 사람의 눈치 때문에 닫힌 입
성경 본문: 이사야 56:10c,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벙어리: אִלֵּם (illem, 일렘) - 본질적인 진리를 말해야 할 타이밍에 침묵하는 상태.
짖다: נָבַח (navach, 나바흐) - 위험을 경고하고 양 떼를 지키기 위해 강력하게 외치는 소리.
양을 지키는 개가 짖지 못하면 그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지요.
늑대가 나타났는데 개가 가만히 있으면 양들은 다 죽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짖지 못할까요?
왜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 앞에서는 침묵할까요?
갈라디아서에 보면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마저도
사람을 두려워해서 이방인과 밥을 먹다가 슬그머니 도망치며 외식하고 침묵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두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행위"라고 강하게 책망했지요.
요즘 인터넷 GPS를 켜고 운전할 때, 사고 다발 구역이나 과속 카메라가 있으면 GPS가 귀찮을 정도로 경고음을 울려줍니다.
"운전자님 기분 나쁘실까 봐 조용히 가겠습니다" 하는 GPS 보셨나요? 없습니다.
기분이 나빠도 소리를 질러야 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그런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죄를 보고 침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복음의 유일성을 숨기고 침묵합니다.
진리가 없는 사랑은 가짜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벙어리가 되곤 합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침묵해왔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내 주변의 한 사람에게, 비난이 아닌 따뜻한 사랑을 담아 하나님의 기준과 복음의 진리를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요약: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침묵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관입니다.
3. 세 번째 위험: 안일함이라는 치명적인 침대
성경 본문: 이사야 56:10d-11a,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라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잠자기 좋아하다: אָהֵב נוּם (ahev num, 아헤브 눔) - 영적인 긴장을 완전히 풀고 안일함과 게으름의 상태에 안주하는 것.
탐욕: עַז־נֶפֶשׁ (az-nephesh, 아즈-네페쉬) - 영혼의 갈망이 하나님이 아닌 자기 육신의 만족과 이기적인 욕심으로 가득 찬 상태.
사탄이 교회를 무너뜨릴 때 가장 자주 쓰는 방법은 핍박이 아닙니다.
바로 ‘안일함’이라는 푹신한 침대입니다.
"기도 안 해도 별일 없잖아?", "예배 좀 대충 드려도 인생 잘 굴러가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바로 영적인 잠에 빠져들고 있는 순간입니다.
본문은 이어서 그들이 '아즈-네페쉬(עַז־נֶפֶשׁ)', 즉 탐욕이 심해 족한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영적인 잠에 빠진 사람의 특징은 이상하게 육신의 욕심은 끝이 없어진다는 점입니다.
영혼이 굶주리니까 자꾸 세상 물질과 쾌락으로 그 배를 채우려고 합니다.
마치 겨울철에 따뜻한 이불 속에서 조금만 더 자야지 하다가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안일함의 침대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영적인 게으름은 반드시 세상의 탐욕으로 연결됩니다.
편안함에 속아 영적인 긴장감을 놓쳐버린 내 상태를 수용해야 합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루를 돌아보는 기도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요약: 영적인 안일함은 내 영혼을 세상의 탐욕에 내어주는 통로가 됩니다.
4. 복음과 하나님의 마음: 우리를 위해 깨어 계신 참된 파수꾼
성경 본문: 이사야 56:11b, “그들은 다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켜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익만 도모하며”
구약의 목자들도, 이스라엘의 파수꾼들도, 심지어 신약의 위대한 사도들도 인간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다 제 길로 갔고 자기 이익을 챙겼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깨어 있으려고 하지만 작심삼일에 그치고 마는 게 우리의 한계입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잠들 때도 결코 졸지도 자지도 않으시는 완벽한 파수꾼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다 잠들었을 때도 홀로 핏방울을 흘리며 깨어 기도하셨습니다.
세상의 비난과 십자가의 공포 앞에서도 침묵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진리를 당당히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벙어리 개처럼 침묵하지 않으셨고, 소경처럼 눈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잠들어 죽어 마땅한 영적 슬리퍼(Sleeper)인 저와 여러분을 피 값으로 사서 깨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 완벽한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의 마음입니다.
요약: 인간 파수꾼은 실패했으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벽한 파수꾼이 되어주셨습니다.
결론: 성벽 위에 다시 서는 파수꾼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화재 사건들을 보면, 경보기가 울리지 않았거나 파수꾼이 잠들어 있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성벽 위의 파수꾼이 잠들면 적군은 이미 성문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잠들면 죄는 소리 소문 없이 내 가정과 일터와 교회 공동체 안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신앙의 본질은 내 힘으로 완벽한 파수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그분의 깨우시는 음성을 듣고 날마다 깨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찾으시는 사람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 아닙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의 손을 잡고 성벽 위에 다시 서는 깨어 있는 파수꾼입니다.
벙어리 개처럼 세상의 불의와 죄악 앞에 침묵하지 마십시오.
안일함의 침대에서 일어나십시오.
"파수꾼이 잠들면 양은 길을 잃고, 지도자가 침묵하면 죄는 성 안으로 들어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 다시 한번 영혼의 눈을 뜨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진리의 복음을 삶으로 외치는 참된 파수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요약: 주님의 은혜로 날마다 깨어나 복음의 성벽을 지키는 참된 파수꾼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