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이들이 보고 있어요
손주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더니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를 번갈아 보며 "여보, 여보!" 하고 불렀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배꼽을 잡았습니다. 어디서 배웠냐 했더니, 어린이집에서 한 또래 여자아이가 손주를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분명히 집에서 엄마 아빠가 주고받는 말을 고스란히 담아와, 아이들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꺼낸 것이겠지요.
아이들은 그렇게 배웁니다. 말을 배우고, 표정을 배우고, 어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그대로 흉내 냅니다.
웃음이 가시고 나서 문득 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 손주들은 지금 우리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려 합니다. 예절도, 믿음도, 올바른 말도. 그런데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치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것을 더 빨리, 더 깊이 배웁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 서로를 대하는 방식, 힘들 때 어디에 기대는지—그 모든 것이 아이들의 마음에 조용히 새겨집니다.
신명기 6장은 "이 말씀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는데, 그 무대는 다름 아닌 일상의 집이었습니다. 집에 앉았을 때, 길을 걸을 때, 눕고 일어날 때—신앙은 교회의 시간보다 가정의 일상 속에서 더 많이 전해집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아이들 앞에서 늘 좋은 모습만 보일 수는 없습니다. 지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기도하는 시간조차 빼먹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있습니다. 완벽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어도 됩니다.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 실수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 그래도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가는 모습—그것이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신앙의 언어가 됩니다.
오늘 한 가지만 해보십시오. 아이 앞에서, 손주 앞에서 짧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오늘도 감사해요."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삶을 먼저 읽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언젠가 그 아이들이 하나님을 처음 만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