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DIRC 목회컬럼

"그때 왜 그리했을까요?"

작성자예수님만|작성시간26.06.23|조회수14 목록 댓글 0

"그때 왜 그리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방귀를 끼지 않았습니다.

 

나들이를 마치고 온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는 귀갓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났고, 창문을 두 번 열었다 닫았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딸이 나란히 말했습니다. "아빠가 낀 거잖아요." 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 번 더—그 순간,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내가 진짜 안 꼈다고!"

 

차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훈훈했던 귀갓길이 냉랭해지는 데 걸린 시간, 딱 3초였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잃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도 집 안은 조심스러웠습니다. 방귀 하나가 이렇게까지 될 일인가 싶었지만, 사실 방귀는 문제가 아니었겠지요. 억울함이 방아쇠가 되었을 뿐, 안에 이미 쌓인 것이 있었을 겁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말씀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에베소서 4:26)

바울은 화를 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분을 내어도"라고 했습니다. 억울할 수 있고, 답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해가 지도록 품고 있는 것,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저는 다음 날 아내와 딸에게 톡을 보냈습니다. 길게 쓰지 않았습니다. "부드럽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 한 줄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한 줄이 닫혔던 문을 열었습니다.

 

돌아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날을 세울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고, 피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 안에 아직 내려놓지 못한 자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억울하면 안 된다는 마음.

 

복음은 바로 그 자리에서 찾아옵니다. 완벽하게 자신을 다스린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분을 냈다가 무너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 문자 한 줄을 보내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오십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혹시 가까운 누군가와 차갑게 지내고 있다면, 거창한 화해가 아니어도 됩니다. 짧은 문자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미안해요." 그 세 글자가, 해 지기 전에 보내는 충분한 화해입니다.

해가 지기 전에, 오늘도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