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있고 싶어요"
손주 녀석이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자더니, 다음 날도 자겠다고 합니다. 그 다음 날도. 사흘째 밤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오늘도 자고 싶어요"를 외칩니다. 엄마가 "이제 집에 가야지"라고 하면 입이 쭉 나오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집니다.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한 켠이 뭉클해졌습니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할아버지 할머니 집이 좋은 걸까.
아마 이곳에서는 혼나지 않아도 되고, 뭔가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 아닐까요. 맛있는 것을 주고, 꼭 안아주고, 같이 놀아주고,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는 사람들 곁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런 모습인가.
주일이 오면 교회에 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또 오고 싶다, 오늘도 여기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예배당 문을 두드리는 날이 얼마나 될까요. 의무감으로, 습관으로, 어쩌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시편 84:10)
이 고백은 억지로 만들어진 종교적 의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이 너무 좋아서, 하루라도 더 있고 싶다는 영혼의 탄성입니다. 손주가 할머니 집을 떠나기 싫어하는 것처럼, 시편 기자도 하나님의 임재 곁을 떠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나는 그 마음이 잘 생기지 않을까요.
어쩌면 하나님의 집이 아직 '집'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혼나지 않을까, 부족한 것을 들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복음은 바로 이것을 바꿉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자리를 비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혼날 것을 두려워하며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녀로 당당히 아버지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여전히 두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아직 내가 예수님 안에서 받은 신분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그 더듬거리는 발걸음조차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니까요.
오늘, 아주 작은 것 하나만 해보시겠어요.
예배당 문을 들어서기 전, 혹은 조용히 하나님 앞에 앉기 전, 딱 한 마디만 속으로 말해 보십시오.
"아버지, 저 왔어요. 오늘도 여기 있고 싶어요."
손주 녀석이 할머니 집 문을 열며 "할머니, 나 왔어!" 하고 뛰어들어 오는 것처럼요.
언젠가,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도 여기서 자고 싶어요."
그 마음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면, 이미 은혜가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