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 : 2026. 3.21(토) 맑음
◈ 곳 : 사릉, 광해군묘(경기 남양주)
◈ 교통 : 방총 가마
◈ 어떻게
- 10:40 강동에서 방총 가마를 타고 남양주 진건으로...
- 11:30 진건 사릉주차장 도착하여 사릉 둘러 봄(입장료 1,000원. 경노 무료)
- 13:30 사릉 견학을 마치고 인근에 있는 광해군묘를 향해...
- 13:40 광해군묘는 공개 제한되어 있어 멀리서 쳐다 보기만하고 인근에 있는 묘적사로 이동...
- 14:30 묘적사 주차장 도착, 묘적사 둘러 봄
- 15:30 강동으로 귀환
▼ 思陵
홍유릉 인근에 있는 사릉은 비운의 왕인 제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 씨(1440~1521)의 능이다. 사릉은 왕릉보다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궁과, 능에 필요한 나무를 기르는 양묘 사업소 묘포장으로 유명하다. 과거에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적이 있으나 방문객이 적어 비공개 왕릉으로 분리되었다가 2013년 1월 1일부터 태강릉의 강릉, 동구릉의 숭릉과 함께 공개하고 있다.
조선 왕릉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 당시 묘포장에 있는 종자 은행과 소나무 등 각종 유전자원이 궁궐과 능원의 생태 문화 자원 보존에 의미가 있다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알려진다. 이곳에 있는 소나무 묘목은 태백산맥 능선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묘소인 준경묘와 영경묘의 낙락장송 후손으로, 숭례문 복원에 사용될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소나무로 평가받고 있다. 1999년에는 사릉에서 재배된 묘목을 단종의 무덤인 영월 장릉에 옮겨 심어 단종과 정순왕후가 그간의 아쉬움을 풀고 애틋한 정을 나누도록 했다. 이때 사용된 소나무를 '정령송(精靈松)'이라 부르므로 사릉을 답사할 때 유심히 보기 바란다.
↓ 사릉 주차장에 가마를 세우고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여(성인 1,000원)...
↓ 사릉(조선 6대임금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의 능) 안내도...
↓ 홍살문 앞으로 가 보니 해설사님께서 사릉에 대해 해설을 해 주고 계시네요...
↓ 잡귀의 출입을 막는다는 홍살문
↓ 홍살문 앞에서...
↓ 사릉 표식비(조선국 정순왕후의 능)...
↓ 정순왕후의 사릉 해설...
↓ 사릉역사문화관에도 들러 보고...
↓ 사릉역사문화관 앞에는 백송(가지가 하얀 소나무)이...
▼ 光海君 墓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위치한 조선 제15대 국왕 광해군과 문성군부인의 묘.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 김씨의 성묘(成墓)와 동복형인 임해군의 묘도 근처에 있다.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었다.
폐위되어 '군(君)'의 신분이 된 광해군은 여러 유배지를 전전하다 마지막에 제주도에서 사망한 후 그곳에 안장되었다.
광해군은 사망하면서 유언으로 어머니인 공빈 김씨의 무덤 발치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현재의 위치로 이장했다.
폐위된 임금과 왕비의 무덤이기 때문에 묘제 역시 임금의 예가 아닌 왕자의 예를 따랐다.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장명등, 상석, 향로석, 혼유석, 망주석, 묘표를 배치하였고,
난간석, 무인석, 동물상은 조성되지 않았다.
곁에 안장된 인물은 광해군의 정비였던 문성군부인 류씨다.
또 다른 폐주(廢主)인 연산군의 묘는 서울특별시 내에 있는지라 접근성이 좋은 반면,
광해군의 묘는 찾아가기 복잡하고 규모도 작은 편이다.
처음에는 광해군의 서녀가 혼인했던 가문에서 관리했으며,
현재는 사릉에서 관리한다.
폐위된 왕의 묘이기 때문에 연산군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빠져 있다.
↓ 사릉 견학을 마치고 인근에 있는 광해군묘를 둘러 보기로 하고...
↓ 그런데 공개 제한을 알리는 표지판이...
↓ 할수없이 멀리서 쳐다 보기만하고...
↓ 빌려 온 사진(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있는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과 왕비 문화유씨의 능)
↓ 광해군 묘를 빠져 나와 인근에 있는 묘적사로 향해 봅니다...
묘적사는 남양주시 와부읍 묘적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며
삼국시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617~686)께서 창건한 사찰입니다.
창건 뒤 조선 초기까지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묘적사를
조선 세종대왕(1397~1450)때 학열스님이 180여 칸을 지으며 중창하였으며,
“세종실록”, “연산국일기”, “신증동여지승람”등의 문헌에
남북 군영을 세우고 무과 시험장으로 쓰여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진왜란(1592~1598)때 사명대사(1544~1610)께서 승군을 훈련하는
훈련도감으로 사용하였으나 왜군들의 집중 공격을 여러 차례 받으며
결국 폐허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김교헌(1868~1923)이 쓴 [묘적사 산신각 창건기]에 의하면,
수백 년 동안 소규모의 사찰로 명맥만 이어오던 묘적사를
1895년 규오스님께서 산신각을 짓고, 산왕신상을 봉안하였으며,
1971년 자신스님께서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건하였습니다.
묘적사는 이처럼 국난을 지키기 위해 대비하던 사찰로서, 승병 양성 도량이었으며
본래 국왕 직속의 비밀기구로서, 왕실 산하 비밀요원을 선발하여
승려로 출가시킨 뒤 고도의 군사훈련과 정예 교육을 받도록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까닭에 다른 사찰에 비해 유독 비밀스럽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호국 도량입니다.
↓ 대웅전은 한창 개축 공사중이 었고...
↓ 산신각과 석굴암 내부도 구경해 봅니다...
◈ 묘적사 탐방을 마치고 곧장 강동으로 귀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