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궐도東闕圖는
조선국 후기에 도화서 화원들이 한성의 동쪽에 위치한 동궐東闕인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 및 궁궐 전경을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듯이 그리는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린 궁궐 배치도이며
비단에 채색한 것이고
16첩 병풍으로 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576㎝, 세로 273㎝이고
입체감이 나도록 조감도鳥瞰圖로 그려
자연의 구릉과 능선,
지당池塘,수목,화목을 심은 계단인 화계,
궁장,전각,월대,어도,정자,화장실 측간廁間,
장독,경비초소 파수간把手間,나무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땅에 박고
가로로 인방을 보낸 후 여기에 널판장을 붙인 판장板墻,
버들고리덩굴생울타리 취병翠屛,
과학기기,화재 예방을 위해 설치한 드므,
약방에서 탕약 달이는 약탕기인 은관,
추위를 막기 위하여 문에 치는 휘장인 문염자門簾子,
등촉을 관리한 등촉방, 차일과 휘장을 친 배설방,
희정당,수정전 마당을 불밝힌 석등,
금천교,
하마석과 계마목 등이 생생하며,
건물과 기물마다 먹으로 이름이 씌어 있다.
1830년(순조 30) 8월 1일에 오시(午時)에 빈전殯殿 환경전歡慶殿에 화재火災가 나서
함인정(涵仁亭)·공묵합(恭默閤)·경춘전(景春殿)·숭문당(崇文堂)·영춘헌(迎春軒)·오행각(五行閣)·빈양문(賓陽門)을 연달아 태웠다.
1830년(순조 30) 8월 1일에 창경궁 환경전歡慶殿이 불탔다고 하였는데
동궐도에는 환경전이 그려져 있어 1830년 이전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궁궐지에는 창덕궁 상림원 내의 어진을 봉안한 연경당演慶堂이 1828년(순조 28)에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동궐도에는 연경당이 없으므로 1828년 이전에 그려진 것이다.
궁궐지에 창덕궁 殯殿 景福殿이 1824년(순조 24) 8월 24일에 소실.
동궐도에 경복전기景福殿基로 씌어 있고 경복전 건물 터만 그려져 있으므로
동궐도는
1824년 경복전이 소실된 후부터 1828년 연경당이 건립되기 이전까지의
기간 중에 그려진 것이다.
1832년 1월 29일 순조가 동궐(東闕)의 역사(役事) 시작을 가을을 기다려서 하도록 명하였다.
조선국 도읍 한성(漢城)의 동쪽에 창건한 동궐(東闕) 창덕궁(昌德宮)은
큰 종을 주조하여 매달은 정문 돈화문(敦化門),
대신들이 궐내각사로 출입한 서행랑문(西行廊門)인 금호문(金虎門),
공식 의례와 조회(朝會)를 행하는 정전(正殿) 인정전(仁政殿),
국왕이 국정 사무를 보는 편전(便殿) 선정전(宣政殿),
국왕의 생활, 침식 공간인 대전(大殿) 희정당(熙政堂),
왕후가 생활하는 중궁전(中宮殿) 대조전(大造殿),
왕세자가 생활하는 동궁전(東宮殿) 중희당(重熙堂),
세자에게 학문을 강학하는 성정각(誠正閣),
왕실 도서관 승화루(承華樓),
세자의 사무 공간 시민당(時敏堂),
효장세자(진종)가 훙서한 진수당(進修堂),
대리청정(代理聽政)한 효명세자(문조)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진작례(進爵禮)를 거행한 연경당(演慶堂)이 있다.
내전(內殿) 대조전(大造殿)의 부속건물인 경훈각(景薰閣),
성종이 경연(經筵)을 한 보경당(寶慶堂),
고조 광무제가 대신을 소견하고 외교관을 접견한 낙선재(樂善齋),
이희(李熹)의 상(喪)에 망곡(望哭)을 행한 석복헌(錫福軒),
정조가 응제시 무과에 회방(回榜)한 사람들을 소견한 수강재(壽康齋),
어진(御眞) 봉안하는 선원전(璿源殿),선원전 재실 양지당(養志堂),
대비전(大妃殿) 만수전(萬壽殿),
부속 건물 인원왕후가 승하(昇遐)한 영모당(永慕堂),
어원(御園) 상림원(上林苑)은 과거시험장 영화당(暎花棠),
서재 기오헌(寄傲軒),
순조가 교리 홍의영(洪儀泳)과 수찬 이정병(李鼎秉)을 소견하고 심경(心經)을 강독한
태극정(太極亭), 소요정(逍遙亭), 취한정(翠寒亭),
정조가 재숙(齋宿)을 한 농산정(籠山亭),
황태자가 일시적으로 모인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실제의 가게처럼 꾸민 음식점인 모의점(模擬店)을 설치한 취규정(聚奎亭),
정조가 각신(閣臣)들과 낚시를 한 부용정(芙蓉亭),
중종이 양로연(養老宴)을 행한 애련정(愛蓮亭), 청심정(淸心亭), 승재정(勝在亭),
태학 유생(太學 儒生)의 응강應講을 행한 존덕정(尊德亭), 관람정(觀纜亭), 농수정(濃繡亭),
왕후가 내외명부(內外命婦)를 거느리고 친잠례(親蠶禮)를 행하는 채상단採桑檀이 있다.
3정승과 정2품 이상 고위 관직자가 모여 중요한 안건을 협의한 빈청(賓廳),
사헌부나 사간원의 벼슬아치들이 국왕에게 아뢸 일을 의논하던 대청(臺廳),
이조(吏曹)나 병조(兵曹)의 전관(銓官)이 도목정사都目政事를 보던 정청(政廳)
어명 출납(出納)과 관보 발행하는 승정원(承政院),
실록을 편찬하는 춘추관(春秋館),
국정 자문,간쟁하는 홍문관(弘文館),
문서 제술,사초(史草) 기록하는 예문관(藝文館),
어제 어필을 보관하고 학술 연구하는 규장각(奎章閣),
서적의 수집과 출판을 담당한 검서청(檢書廳),
궁중(宮中)의 의약(醫藥)을 맡은 내의원(內醫院),
궁중의 음식을 공급하는 사옹원(司甕院),
내시(內侍)들이 근무하는 내반원(內班院)의 궐내각사가 있다.
창경궁(昌慶宮)은
의례 공간인 정전 명정전(明政殿),
국왕 사무 공간 편전 문정전(文政殿),
강학 공간 숭문당(崇文堂),
중궁전 통명전(通明殿)
대비전 자경전(慈慶殿)
세자 강학 공간 신독재(愼獨齋),
내전 환경전(歡慶殿),
정조가 탄강한 경춘전(景春殿),
혼전(魂殿) 통화전(通和殿),
인조가 칙사(勅使)를 접견한 양화당(養和堂),
약방(藥房)에서 숙종을 입진(入診)한 연희당(延禧堂),
현빈(효순왕후)이 훙서한 건극당(建極堂),
국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서 농정을 살피는 권농장(勸農場)인 내농포內農圃
영조,정조가 추수하는 광경을 친히 관람한 관풍각(觀豊閣),
어원(御園) 함춘원(含春苑), 정문 홍화문(弘化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훙서한 선인문(宣仁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사당인 경모궁을 전배하기 위해 만든 월근문(月覲門),
임금이 성균관(成均館)의 문묘 참배 시에 사용하는 집춘문集春門이 있다
창덕궁을 그린 그림
창덕궁에서 열리는 여러 연회의 장면이나, 궁궐의 건물을 수리하기 위해 그린
“영건도감”,
100여년전에 그렸다고 알려진
“동궐도형”등이 있습니다.
기타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서적으로는
“동궐도 읽기(안휘준, 전상운, 정재훈, 주남철 글, 문화재청창덕궁관리소)”,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박정혜 글, 일지사)”,
“궁궐지”
“한경지략”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