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덕정을 보다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정조가 스스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호를 삼으며
이 정자에
萬川明月主人翁(THE OLD MASTER OF BRIGHT MOONS IN ALL WATERS)
自序(PROFILE서설,머릿글)라는 글귀를 현판(PLAQUE)으로 건 것이다.
홍재전서에 기록된 자서에 의하면,
萬川明月主人翁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종류는 일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일만 개면 달 역시 일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론 하나뿐인 것이다.
연거(燕居) 처소에
萬川明月主人翁 이라고 써서
자호(自號)로 삼기로 한 것이다.
무오년(1798, 정조22) 12월 3일,
만 개의 개울에 만 개의 달이 비치지만
달은 오직 하늘에 떠 있는 달, 바로 정조 자신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모든 백성을 골고루 사랑하는 초월적인 군주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정조 재위 22년인 1798년에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는 재위 20년을 지나
강한 왕권을 확립한 정조가 백성에게 왕의 덕을 고루 베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었다.
정조의 이러한 모습을 서양의 계몽군주에 비교하는 견해도 있다.
한 사람을 향한 299통의 비밀 편지”
수신자 심환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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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三淸洞)이라는 주소와 단규개탁(端揆開坼)이 들어간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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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삼청동(三淸洞)이라는 수신처도 보인다. 정조 당시 삼청동에 살았던 정승은 우의정 심환지(沈煥之). 그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찬성하고 개혁에 반대한 노론 벽파(僻派)의 영수였다. 심환지는 정조의 최대 정적(政敵)이었다. |
| “정적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다” 편지로 밝혀지는 정조의 정보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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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자 심환지의 영정 |
1799년 3월, 정조는 자신의 즉위에 반대했던 화완옹주를 석방하려 한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는 완강했다. 우의정 심환지는 관을 벗고 대전 밖으로 나가며 강력히 항의했고, 정조는 그를 파직시킨다. 즉시 뜰로 내려가 관을 벗고 견책을 청하라. - 1799년 3월 6일 저녁 편지 중에서 - 그러나 이 사건은 정조의 각본에 따른 연출임을 밝히고 있다. 이외에도 정조는 국정의 여러 일들을 편지를 통해 심환지와 치밀히 조율하는데..... |
| “임금과 신하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 만천명월주인옹과 정조가 꿈꿨던 대통합의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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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부용지의 물고기 부조 |
| 정조는 임금과 신하를 ‘물고기와 물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인 노론 벽파(僻派)의 심환지까지 포용하는 대통합의 정치를 추구했다. |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며,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고,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중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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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개의 시내를 비추는 달이 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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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존덕정의 만천명월주인옹 자서(萬川明月主人翁 自序)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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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환지는 정조를 죽였나?” 정조 독살설의 진실 |
| 정조가 죽기 13일 전에 보낸 마지막 편지. 그는 심환지에게 자신의 고통을 상세게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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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 독살설을 제기한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와 독약에 대한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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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조 죽음의 배후로 지목되는데.과연 심환지는 정조를 독살했는가? |
개혁의 상징 정조와 萬川明月主人翁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함을 벗기고 그 명예를 회복하고자
자신의 정적인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내 사도세자를 따라 세상을 떠난 신하의 벼슬을 높이고
그 의기를 기리자는 건의를 하도록 합니다.
이에 심환지는 정조의 의견을 받들어 대전에서 여러 신하들 앞에서 앞의 발언을 하고 동의를 이끌어 냅니다. 그 후 정조는 자신의 호를 바꿉니다.
만천명월주인옹.
일만개의 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인 늙은이.
개천이건, 호수건, 강이건 일만개의 물에 하나의 달이 비치면 그 달은 일만개가 된다는 뜻이고 자신은 그 달의 주인인 늙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얻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평, 충심, 그리고 중용 혹은 중도
그의 탕평책, 집현전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사상, 비전 그것들을 바탕으로 정조를 이해하면
정조는 참으로 외롭고, 고독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과 고독을 이겨내고 정적을 끌어 안는 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100여 년째 지속되는 당파싸움을 종식시키고자 탕평책을 실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 군신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만 했던 외롭고, 고독한 임금.
그럼에도 자신의 최대의 정적이자 어릴 때부터 자신을 제거하고자 했다고 믿어지는
심환지조차 끌어 안는 그 심계...
정적들의 한계를 이해하고, 또 그것을 인정하고 인정을 넘어 포용하려 했던
조선 500년의 역사 중 가장 비운했지만 가장 개혁적인 임금.
적과 아군의 한계를 이해하고 이용하는 것.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며, 인정하는 것이 그리고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이용하는 것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충심과 반대를 싹 쓸어버리고 싶은 사심을 넘어, 모든 이를 포용하고 이를 활용하는 마음. 그 마음은 얼마나 큰 마음일까요?
정조의 호 弘毅
정조의 호는 "홍제, 탕탕평평실, 만천명월주인옹, 홍우일인재등 여러가지 입니다.
침실이나 서실에 붙인 헌호입니다.
정조는 세손시절 동궁의 연침( 상급침대)에 " 홍제" 라는 헌호를 붙였는데
"홍제"는 논어의 홍의(弘毅)에서 따온 말로 태백편에서 증자가 한 말입니다.
논어에
士不可以不弘毅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넓은 견식과 강한 의지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니 任重而道遠이니라
仁以爲己任이니 不亦重乎아
死而後已니 不亦遠乎아.
선비는 너그럽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임무가 무겁고 갈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을 자기의 임무로 맏았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그만 둘 것이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
○사(士):도에 뜻을 둔 사람.
○불가이불(不可以不):하지 않으면 안 됨.
○홍의(弘毅):홍(弘)은 관대함, 의(毅)는 강인함. 넓은 포용력과 강한 의지를 말함.
○인이위기임(仁以爲己任): 이인위기임(以仁爲己任)의 도치형, 인을 자기의 임무로 삼는것.
정조는
자신이 군자다운 도 세가지를 갖추고 있다며 자부심을 토로 했습니다.
세가지란 '논어'헌문편에서 말한 '지(知)' '인(仁)' '용(勇)'을 가리킵니다.
지자불혹(知者不惑), 지혜로운 사람은 헷갈리지 않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