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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광장

오지랍도 화났다.

작성자신춘몽|작성시간19.09.07|조회수65 목록 댓글 2

오지 랍도 화났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의 오지랍 병은 가을 하늘을 덮고도 남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약간 주재 파악은 하는 터라 나의 오지랍은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들고 일어 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서두에 올리며 기막힌 사연을 적을 까 합니다.

언제나 새 날이 밝으면 경쾌한 로고송과 함께 보석 굴러가는 음성과, 약간은 쌕시하고  비단결 같은 목소리가 찾아 주기에 그날의 사연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행복을 만끽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내 시간들을 속상함으로 수장시킨 남의 사건이 일어 났습니다.

 내 사건도 아닌데 오지랍을 펼쳐서 신세를 볶느냐 하면, 나에게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친정 작은 아버지가 계십니다.

작은 아버지께는 아들만 4명이 있는데 평소에 크게 불효 하지 않고 건강하고 너나없이 생활 형편도 좋아서 그런 모두가 작은 아버지의 복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젊어서 열심히 일해서 마련한 집에서 부부가 따로 살고 있지만 월세 받는 것이 있어서 사는 대는 별 어려움이 없고, 다만 팔십이 낼 모래인 작은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게 좀 걱정이기는 합니다.

집세 나오는 것으로 아껴 쓰면 되는데 7월 달 부터는 노령 연금으로 18만원씩 나오기에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셨습니다.

심지어는 18만원이 입금된 통장을 받아 들고 은행 여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또 해서 은행직원을 당황스럽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욕심 없고 감사할 줄 아시는 작은 아버지가 몃일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된 사건이 일어 났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가난한 집 막내 아들로 태여나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문맹으로 70년을 넘겨 살아 오셨답니다.

가끔씩 모임에서나 뵙던 작은 아버지가 글을 모른 다는 것을 나는 짐작도 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한글을 배우러 다니신다는 소식에 그 때 알았습니다.

한글을 배워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동기는, 옥상에 가 건물을 지어 논 것을 구청에서 철거 하라는 공문을 받고부터 였다고 합니다. 작은 아버지는 남에게 읽어 봐 달라고 하기가 부끄러워서 별 것 아니겠지 하며 쓰래기 통에 버렸다가 벌금을 물고 지어놨던 옥상 건물을 헐리게 되였답니다.

그 공문이 그런 것을 알았더라면 어쩌면 뭔가 길이 있었을 탠데 그때 받은 무지 함으로 한글을 배우기로 결심을 하게 되였다고 했습니다.

물론 80이 다된 나이에 무슨 공부냐며 탐탐치 않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작은 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년 동안을 결석 한번 없이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고 이제는 신문도 읽고 동화책도 수준 높은 책으로 읽습니다.

물론 받침이나 띄어 쓰기가 좀 그렇지만 2년 다니셨는데 7년 다녔다는 어느 할머니 보다 잘 한다고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며 해맑게 웃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학원에서 글짓기를 하라고 하여 작은 아버지는 문맹 이였을 때 공원 밴치에 앉아 돋보기를 쓴 노인이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는 그런 내용을 글로 써서 냈다고 하는데 그 글이 1등으로 뽑혔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노인들의 별스럽지 않은 1등 인줄 알았었는데 그것이 전국 42개 학원 에서 몃 번의 평가를 거친 대단한 것이 였습니다.

시상식 또한 보통사람은 구경 한번 해 볼까 말까 하는 세종 문화회관 에서 한다고 하여 내 가슴까지 설레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애들에게 알려야지?

작은 아버지는 백점 짜리 시험지를 받아온 소년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요, 당연히 알려야지요,  애들이 엄청나게 좋아 할 꺼에요. 작은 아버지.

아들 4, 며느리 넷, 그리고 손주 손녀 9,,

~~ 작은 아버지 꽃다발에 묻히시겠어요.

나는 그 때만 해도 작은 아버지의 외소한 몸집이 꽃다발에 묻힐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한 여름 밤의 꿈 이였습니다.

자신의 아들딸의 유치원 재롱잔치에도 떡을 해 간다 , 꽃다발을 사간다 하더니 며느리 넷 모두는 이래 저래한 핑계로 전화만 하였고, 아들 한 명만 얼굴 내밀었다가 시상식도 끝나기 전에 오만 원 짜리 한 장을 쥐어 주고 가 버렸고, 아홉이나 되는 손주 손녀의 모습 또한 볼 수 없었습니다.

북적이는 시상식 장에는 늙어가는 조카와 허리 굽은 작은 아버지가 억지 웃음을만들고 남겨 졌습니다.

나는 어울리지 않는 재롱을 떨고 있었고

괜찮다, 나는 괜찮아, 하며 태연함을 가장하는 팔십 노인이 있었습니다

 작은 아버지의 아들과 며느리들이 참으로 밉고 원망 스럽습니다.

늙은 아버지가 공부를 해서 글을 깨우치셨다는 것만해도 존경스러울 탠데 시민 문화회관 단상에 올라가 상장을 받는데 그것이 자식들에게는 영광이 아니였을까요?

언제 세상 뜰지 모르는 나이 많은 아버지를 훗날에 어찌 기억하려고 그러는 건지 나의 이유 있는 오지랍이 분노로 폭발 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친 동생들도 아니고 한치건너 두치 라고 내 입장에서는 아무런 꾸지람도 하지 못했습니다.

내 자식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데 친척 동생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내 부모에게 효도 한번 해 보지 못하고서 주제 넘치는 오지랍을 펼치고 있습니다.

작은 아버지,

작은 아버지의 빛나는 상장을 금태 두른 액자에 넣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상장 받으실 때의 그 사진도 예쁜 액자에 넣어 작은 아버지 방에 걸어 드리겠습니다.

작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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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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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신춘몽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9.07 불은 켜야 할것 같아서,,,,
  • 작성자장현덕 | 작성시간 19.09.07 그건 오지랖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작은아버지 곁에서 자리를 지켜드렸으니 아주 잘 하신겁니다.
    복받으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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