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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지식/정보

[논문]시화호 공룡알과 둥지화석의 의미

작성자김현대|작성시간01.08.03|조회수420 목록 댓글 0
시화호 공룡알과 둥지화석의 의미


정갑식1, 최종인2, 이융남3, 허민4, 장순근1, 최문영1


1.한국해양연구소
2.희망을 주는 시화호만들기 화성-시흥-안산시민연대
3.연세대학교
4.전남대학교


지난 6월 시화호 남쪽해안, 행정적으로는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고정리에서 공룡알화석과 둥지화석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많은 알과 둥지화석이 발견돼
이들이 발견된 장소는 시화호가 막히기 전, 즉 바닷물이 드나들 때에는 조간대속에 있던 작 은 섬들의 해안이다. 한염, 하한염, 중한염, 상한염, 개미섬, 닭섬 등으로 불리우는 이 섬들은 옛날에는 펄밭 가운데 있는 무인도라 사람이 가까이 가기도 힘들었고 관심도 없었을 것이 다. 그러나 이제는 조간대가 육지가 되면서 무인도는 야산이 되어 잡초가 우거지고 야생동 물이 서식하는 곳이 되었다. 이 화석이 발견된 동기는 최종인씨가 시화호의 변천과정을 지켜보며 환경변화를 감시하기 위하여 시간이 있을 때마다 시화호의 자연을 둘러 본 덕분이다. 어느 날 야산 주변 해안 바 위 속에 검고 둥근 원형물체들이 그의 눈에 띄었다. 크기는 큰 것은 어른의 주먹크기이고 그 보다 작은 것도 있었다. 그가 호기심을 느꼈던 물체들은 공룡알화석이었고 둥지화석이었 던 것이다. 우리는 공룡알화석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둥근 구형이나 타원형을 연상한다. 그러나 그런 것 은 완벽한 경우이고 대부분의 알화석은 그렇게 완벽하게 산출되지 못한다. 예컨대 완전한 알화석이라 하더라도 침식되어 구형보다는 원형 또는 껍데기가 깨어져 조각으로 덮인 둥그 스름한 덩어리의 일부로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공룡알의 표면에는 공룡에 특유한 미세구조가 있어 공룡알임을 증언한다. 이는 마치 신선한 달걀의 표면이 오돌도톨한 곳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물론 껍데기 단면은 단면대로 특유한 구조가 있어 주인공의 생태 를 밝히는 데 귀중한 학술적 단서가 된다. 공룡알화석은 1920년대에 고비사막에서 발견된 이후 중국 후베이성 청룡산과 스페인 레리다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알화석이 발견된 지층의 암상은 주로 크고 작은 자갈이 섞인 붉은 색의 사암으로 20° 정도 기울어져있다. 화석이 산출된 지층은, 한국자원연구소가 1995년에 발간한 우리 나라 지질도 에 의하면, 백악기의 K2층이다. 아주 작은 K2층이 시화호남쪽에 좁고 가늘게 분포하는데 그 곳에서 운좋게(?) 귀중한 화석이 발견된 것이다. 지금까지 시화호에서 발견된 공룡알화석은 300개가 넘으며 둥지의 숫자도 상당하다. 가장 많은 알화석은 두께 1mm 정도의 초식공룡의 알화석이다. 그러나 몇 개 발견된 알화석의 껍 데기는 두께가 거의 4mm 정도가 되어 상당히 두꺼운 육식공룡의 알이다. 모든 껍데기는 화 석으로 되면서 검은 색으로 변했고 상당수의 알은 부화된 후 또는 운반되면서 깨어졌는지 속은 자갈이 섞인 모래로 채워져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알은 둥근 모양으로 나와 보존상태 는 상당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모로 중요한 의미가 있어
경북대학교 양승영 교수가 1972년 여름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수문동에서 알껍데기조각화 석을 발견했고 장기홍 교수와 부산대학교 김항묵 교수가 경상북도 의성군 탑리에서 공룡뼈 화석을 발견한 이래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숫자의 공룡의 발자국화석이 발견되었다. 1990년 대 들어서 전라남도 해남에서는 익룡의 발자국화석도 아시아주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진주시 부근에서는 공룡의 뼈화석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공룡과 익룡 그리고 새들의 발자국화석은 우리 나라에서 상당히 많이 산출된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경상남 북도와 전라남도에 국한된다. 그런 점에서 시화호의 공룡알화석은 적어도 한반도 남쪽에서는 가장 북쪽에서 발견된 공룡화석이다.

시화호 공룡알화석의 발견은 여러 가지의 학술적 의미가 있으며 중요하다. 첫째는 화석이 된 주인공자체와 그의 생태에 관한 비밀이다. 즉 알주인이었던 공룡의 크기, 생활상, 다른 공룡과의 생물학적 관계 등등 끝이 없다. 새들은 아무리 많이 모여 둥지를 틀어도 둥지사이 의 거리는 날개를 벌렸을 때의 길이이다. 즉 그보다 가까이 모이지는 않는다. 그래야 새들이 “최대로 모여 살면서도 상대방을 최소로 방해하기” 때문이다. 새의 조상인 공룡도 비슷한 습성을 가졌다고 상상하면 공룡둥지 사이의 거리는 공룡의 크기를 지시한다고 상상할 수 있 다. 예컨대 둥지 사이가 15 미터이면 공룡의 크기도 그 정도이다. 또 영화 쥐라기공원의 기 술책임자인 세계적인 공룡학자 존 호너의 미국 몬타나주 공룡연구로는 공룡들은 수천 마리 또는 그 이상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아시아주의 공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모여 살지 않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그것은 또 놀랄만한 새로운 지식이자 정보이며 업적이다.

둘째는 알 주인의 뼈화석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알이 발견되었으니 알 주인의 뼈화석이 발견 되리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후꾸이현에서는 몇 개의 이빨화석에 근거해 두 점의 뼈화석을 찾은 것은 공룡화석발견에 사람의 관심과 노력이 얼마나 주요한 가를 보여주는 좋 은 사례이다. 뼈화석을 발견하면 알화석과 둥지화석에서 유추한 이상의 훨씬 귀중한 고생물 학적 지식과 지질학적 지식을 얻을 것이다.

셋째 남해안과 시화호 중간지역으로 지금까지 공룡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던 지역에서도 공룡 화석을 기대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는 사실이다. 즉 충청북도 옥천-음성-영동일대, 충청 남도 공주-부여일대, 전라북도 부안-진안-무주일대, 강원도 홍천일대 등 중생대 백악기지층 이 분포되는 곳에서도 공룡화석이 발견될 것이다. 공룡이 남해안과 경기도에 살았는데 그 가운데 지역에 살지 않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공룡들이 이 지역을 오가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사실 그 지역에 공룡화석이 없다는 점은 화석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있는 화석도 몰랐고 화석이 없다고 생각해 찾지 않은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화석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있어도 그 사실을 모르면 없는 것이 된다. 물론 각 지역 의 백악기시절의 환경에 따라 공룡뼈와 알화석 또는 발자국화석 가운데 어느 것이 주로 발 견되느냐 하는 문제는 있을 것이다. 뼈와 알은 주로 건조한 기후에서 쉽게 화석으로 보존되고 발자국화석은 적어도 발자국이 만 들어질 정도의 환경, 즉 보드라운 진흙이 쌓일 정도로 물이 흘러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튼 공룡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무엇을 남기든 남겼을 것이다.

넷째 이 화석들은 청소년들의 교육자료이자 일반인들의 교양과학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학술재료 이상이다. 예컨대 경상남 북도와 전라남도의 학생들과 주민들은 마 음만 먹으면 박물관이 아닌 현장에서 공룡의 발자국화석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행운 이다. 반면 경기도나 서울과 인천의 학생들은 남해안지방으로 수학여행을 가지 않으면 현장 의 공룡발자국을 보지 못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단지 그렇게 볼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시설을 하는 일이 남았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사회의 책 임이자 학자들의 영역을 벗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시화호 공룡알과 둥지화석의 발견은 우리 나라 인구의 반 이상이 모여 있는 수도권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고생물학적 가치 이상의 박물학적-일반교양과학적 가치가 있 다. 이런 가치가 인정될 수 있는 때가 하루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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