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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시험적 시도

작성자봄봄|작성시간23.04.04|조회수180 목록 댓글 0

 

382dhammānupassanā nīvaraṇapabbaṃ ;
法隨看 蓋分
dhammānupassanā <ㅓ1< ; 법 지켜봄. < dhamma`anupassanā
nīvaraṇapabbaṃ <ㅜ1< ; 덥개 분. < nīvaraṇa`pabba
nīvaraṇa << ; 덥개, 장애.
382.1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비구가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면서 사는 것인가?
kathañca << ; 어떤 방식인가? < kathaṃ`ca
kathaṃ << ; 어떤 방식인가? < ka`thaṃ : 방식접미
ca ^^ 그리고, 그런데.
pana ^^ : 접사
bhikkhave ^ㅑ8^ ; 비구들이여. < # bhikkhu
bhikkhu ^ㅏ1^ ; 비구는. # bhikkhu
dhammesu <ㅑ7< ; 법들에 대해. < dhamma
dhammānupassī <ㅏ1< ; 법을 지켜보는 자. < dhamma`anupassī
anupassī /in <ㅏ1< ; 지켜보는 자. : 소유의미 조사 '­in' 첨부, 기본형은 말음 'ī'
viharati ^aㅎ^ ; 산다, 머문다. # har
382.2idh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nīvaraṇesu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장애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idha ^^ ; 여기.
bhikkhave ^ㅑ8^ ; 비구들이여. < # bhikkhu
bhikkhu ^ㅏ1^ ; 비구는. # bhikkhu
dhammesu <ㅑ7< ; 법들에 대해. < dhamma
dhammānupassī <ㅏ1< ; 법을 지켜보는 자. < dhamma`anupassī
viharati ^aㅎ^ ; 산다, 머문다. # har
pañcasu <7< ; 다섯들에 대해서. < pañca
nīvaraṇesu < ㅠ7< ; 장애들에 대해서. < nīvaraṇa
382.3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nīvaraṇesu ;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비구가
다섯 장애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면서 사는 것인가?
kathañca << ; 어떤 방식인가? < kathaṃ`ca
kathaṃ << ; 어떤 방식인가? < ka`thaṃ : 방식접미
ca ^^ 그리고, 그런데.
pana ^^ : 접사
bhikkhave ^ㅑ8^ ; 비구들이여. < # bhikkhu
bhikkhu ^ㅏ1^ ; 비구는. # bhikkhu
dhammesu <ㅑ7< ; 법들에 대해. < dhamma
dhammānupassī <ㅏ1< ; 법을 지켜보는 자. < dhamma`anupassī
viharati ^aㅎ^ ; 산다, 머문다. # har
pañcasu <7< ; 다섯들에 대해서. < pañca
nīvaraṇesu < ㅠ7< ; 장애들에 대해서. < nīvaraṇa
ajjhattaṃ라는 단어는 본경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정형구에서 나타나며 그리고 이하 문맥에서 나타난다.
그 의미는 '
자기 자신과 관련된' 즉 '內로'라는 불변사로 쓰인다.
여기서 '자기 자신' 혹은 '자아'라는 표현은
'과거에 취착한 과보'인 현재 상황, 즉 '개체'라는 언어적 유희(fun)이다.
여기서 과거가 누겁의 업보이면 금생에 태어날 때 잡았고(< ādadāti >), 잡고 있는 각자의 '자아'이고,
태어나서 찰나전까지 업 혹은 수행에 의해서는 타인과 구별되는 '각자'는 존속하겠지만
그 자신에게(ajjhattaṃ) '자아'라는 무명-갈애에 의해서 생겨나는 我想 혹은
취착(upādāna)이 존속하고 있는 자도 있고, 없는 아라한도 있다.
382.4idha bhikkhave bhikkhu santaṃ vā ajjhattaṃ kāmacchandaṃ
atthi me ajjhattaṃ kāmacchando 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kāmacchandaṃ
natthi me ajjhattaṃ kāmacchando ti pajānāti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신에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충동이 있으면
'내 자신에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충동이 있다.'라고 확실히 알고,
자신에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충동이 없으면
'내 자신에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충동이 없다.'라고 확실히 안다.
idha ^^ ; 여기.
bhikkhave ^ㅑ8^ ; 비구들이여. < # bhikkhu
bhikkhu ^ㅏ1^ ; 비구는. # bhikkhu
santaṃ <ㅜ1/2< ; 있는 것. < santa ㅎㅂ < atthi < √as
^^ ; 혹은.
ajjhattaṃ << ; 안으로, 자신과 관련하여. < adhi`atta
atta << ; 자아, 자신. < attan / 취한 것, 거머쥔 것. < ādadāti
kāmacchandaṃ <ㅜ1/2< ; 감각적 욕망에 대한 충동. < kāma`chanda`
kāma << 감각적 욕망.
chanda << 충동, 욕망.
atthi ^aㅎ^ ; 있다. < √as
me <i3/4< ; 나에 의해/나에게 . <amha/asma < √as
kāmacchando <ㅏ1< ; 감각적 욕망에 대한 충동. < kāma`chanda
ti ^^ /iti ;~라고.
pajānāti ^aㅎ^ ; 확실히 안다. < pa`jānāti
asantaṃ <ㅜ1/2< ; 없는 것. < a`santa < santa ㅎㅂ < atthi < √as
natthi ^aㅎ^ ; 없다. < n`atthi< √as
382.5yathā ca anuppannassa kāmacchand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kāmacchand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kāmacchand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
일어나지 않은 감감적욕망에 대한 충동이 일어나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알고,
일어난 감각적욕망에 대한 충동이 제거되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알고,
제거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충동이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안다.
yathā ^^ ; 그대로, 그 방법대로. < ya
ca ^^ ; 그리고, 그런데.
anuppannassa <ㅏ6< ; 일어나지 않음. < an`uppanna < uppajjati
kāmacchandassa <ㅏ6< ; 감각적 욕망에 대한 충동. < kāma`chanda
uppādo <ㅏ1< ; 일어남. < uppāda < uppajjati > ud√pad
hoti ^aㅎ^ ; 이다, 되다. / bhavati < √bhū
tañca <ㅜ2< ; 그것. < taṃ `ca
pajānāti ^aㅎ^ ; 확실히 안다. < pa`jānāti
uppannassa <ㅏ6< ; 일어남. < uppanna < uppajjati
pahānaṃ <ㅜ1< ; 제거됨. < pajahati < pa√hā
pahīnassa <ㅏ6< ; 제거됨. < pajahati < pa√hā // pahānassa
āyatiṃ ^^ ; 미래. < ā√yam / i
anuppādo <ㅏ1< ; 일어나지 않음. < an`uppāda < uppajjati > ud√pad
382.6santaṃ vā ajjhattaṃ byāpādaṃ atthi me ajjhattaṃ byāpādo 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byāpādaṃ natthi me ajjhattaṃ byāpādo 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byāpād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byāpād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byāpād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
자신에게 적의가 있으면 '내 자신에게 적의가 있다.'라고 확실히 알고,
자신에게 적의가 없으면 '내 자신에게 적의가 없다.'라고 확실히 안다.
일어나지 않은 적의가 일어나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알고,
일어난 적의가 제거되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알고,
제거된 적의가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안다.
byāpādaṃ <ㅏ2< ; 적의. < byāpajjati < vy`ā√pad
byāpādo <ㅏ1< ; 적의. < byāpajjati < vy`ā√pad
byāpādassa <ㅏ6< ; 적의. < byāpajjati < vy`ā√pad
382.7santaṃ vā ajjhattaṃ thinamiddhaṃ atthi me ajjhattaṃ thinamiddhan 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thinamiddhaṃ natthi me ajjhattaṃ thinamiddhan 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thinamiddh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thinamiddh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thinamiddh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
자신에게 해태 혼침이 있으면 '내 자신에게 해태 혼침이 있다.'라고 확실히 알고,
자신에게 해태 혼침이 없으면 '내 자신에게 해태 혼침이 없다.'라고 확실히 안다.
일어나지 않은 해태 혼침이 일어나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알고,
일어난 해태 혼침이 제거되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알고,
제거된 해태 혼침이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안다.
thinamiddhaṃ <ㅜ2< ; 해태 혼침. < thina`middha
thina / thīna ; 해태.
middha ; 혼침,
thinamiddhan <ㅜ1< ; 해태 혼침. < thina`middhaṃ`i
thinamiddhassa <ㅜ6< ; 해태 혼침. < thina`middha
382.8santaṃ vā ajjhattaṃ uddhaccakukkuccaṃ
atthi me ajjhattaṃ uddhaccakukkuccan 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uddhaccakukkuccaṃ
natthi me ajjhattaṃ uddhaccakukkuccan 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assa uddhaccakukkuccass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assa uddhaccakukkuccass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assa uddhaccakukkuccass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
자신에게 들뜸 후회가 있으면 '내 자신에게 들뜸 후회가 있다.'라고 확실히 알고,
자신에게 들뜸 후회가 없으면 '내 자신에게 들뜸 후회가 없다.'라고 확실히 안다.
일어나지 않은 들뜸 후회가 일어나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알고,
일어난 들뜸 후회가 제거되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알고,
제거된 들뜸 후회가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안다.
uddhaccakukkuccaṃ <ㅜ2< ; 들뜸 후회. < uddhacca`kukkucca
uddhacca << ; 들뜸.
kukkucca << ; 후회
uddhaccakukkuccan <ㅜ1< ; 들뜸 후회. < uddhacca`kukkuccaṃ`i
uddhaccakukkuccassa <ㅜ6< ; 들뜸 후회. < uddhacca`kukkucca
382.9santaṃ vā ajjhattaṃ vicikicchaṃ atthi me ajjhattaṃ vicikicchā ti pajānāti
asantaṃ vā ajjhattaṃ vicikicchaṃ natthi me ajjhattaṃ vicikicchā ti pajānāti
yathā ca anuppannāya vicikicchāya 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uppannāya vicikicchāya pahānaṃ hoti tañca pajānāti
yathā ca pahīnāya vicikicchāya āyatiṃ anuppādo hoti tañca pajānāti ;
자신에게 의심이 있으면 '내 자신에게 유예가 있다.'라고 확실히 알고,
자신에게 의심이 없으면 '내 자신에게 유예가 없다.'라고 확실히 안다.
일어나지 않은 의심이 일어나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알고,
일어난 의심이 제거되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알고,
제거된 의심이 미래에 일어나지 않게 되는 대로 그것을 확실히 안다.
vicikicchaṃ <ㅓ2< ; 의심, 유예. < vicikicchati
vicikicchā ^ㅓ1^ ; 의심, 유예. < vicikicchati
vicikicchāya <ㅓ6< ; 의심, 유예. < vicikicchati
anuppannāya <ㅓ6< ; 일어나지 않음. < an`uppanna
uppannāya <ㅓ6< ; 일어남. < uppanna < ud`pad
382.11iti ajjhattaṃ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 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nīvaraṇesu ;
이와 같이 안으로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밖으로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안밖으로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법들에 대해서 일어나는 속성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법들에 대해서 사그라지는 속성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법들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그라지는 속성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그에게 아는 정도만큼(앎의 대상으로서만) 기억나는 정도만큼(기억의 대상으로서만)
'법이 있다.'라는 기억이 확고하게 확립된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아서 의지하지 않고 산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가 다섯 장애의 법들에 대해 법을 지켜보면서 산다.
본 경의 정형구가 반복된다.
382.12nīvaraṇapabbaṃ niṭṭhitaṃ ;
장애분이 끝났다.
nīvaraṇapabbaṃ <ㅜ1< ; 덥개 분. < nīvaraṇa`pabba
niṭṭhitaṃ <ㅜ1< ; 끝, 마침. < niṭṭhita < niṭṭhāti
383dhammānupassanā khandhapabbaṃ ;
法隨看 蘊分
dhammānupassanā <ㅓ1< ; 법 지켜봄. < dhamma`anupassanā
khandhapabbaṃ <ㅜ1< ; 무더기 분. < khandha`pabba
khandha ^ㅏ^ ; 무더기.
383.1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
비구들이여, 그 다음으로 다시 비구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의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며 산다.
upādānakkhandhesu ^ㅑ7< ;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무더기들에 대해서. < upādāna`khandha
upādāna ^n^ ; 취착. < upādiyati < upa`ā √dā
khandhesu ^ㅑ7< ; 무더기. < khandha
383.2kathañca pana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비구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의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며 사는 것인가?
內로 흔적(習, dhamma)을 남기면, 外로 자취(習, attha)가 드러난다.

行으로 한역된 saṅkharoti(saṅkhāra, saṅkhata)는 사전에 의하면
두 가지 어원으로 설명한다.

1. < saṃ√kṛ ; 접두+동사형
2. <
√śaṃs+√kṛ ; 복합형

전제는 영어로 to put together로 번역하여
'함께 두다.'로 직역할 수 있고, 의역하면 '합치다.'의 의미이다.

후자는 영어로 restores, prepares로 번역하여
'회복, 복구하다.' 혹은 '준비하다.'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이 단어의 형태에 의하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즉 起動(쯔위, cvi)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 의미를 살펴본다.

먼저 √śaṃs로 사용된 단어는 saṃsati/saṁsati로서 그 의미는
'선언하다, 예고하다, 지적하다.' 혹은 '기대하다, 바라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기대하다, 바라다.'라는 의미를 취하고,
'회복, 복구하다.' 혹은 '준비하다.'도 념두에 두고 있다.

'기대하다.', '준비하다.'와 '회복, 복구하다.'를 함께 놓고 보면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음식을 조리(=行)하고자 한다면
그는 여러 재료를 적당한 방법에 의해서 가공(=行)을 하는 것은
먹기에 알맞은 결과를 기대(=行)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처음 의도(=行)한 대로 그 결과(=行)가 나타나면(=行)
그것은 조리한다는 행위가 맛있는 음식이라는 결과로 드러난(=反復/復舊)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라는 것은
하늘에서 행한 어떤 것과 같이 땅에서도 반복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늘 신들의 언어적 행위와 같게 땅의 인간의 언어적 행위가 되기를 기대하고 만든 것이
人工어이며 加工어인 saṁskṛtam(삼스끄리땀), 즉 saṁskṛt(산스끄리뜨)로 생각된다.

다른 예를 들면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을 살해했다.
즉 의도를 가지고서 살해라는 행위를 했다면 기대하든 기대하지 않든
가까운 시간 내, 나는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을 받거나,
혹시라도 금생에서 그 벌을 받지 않더라도 내생 혹은 내내생에
그 행위에 대한 대가로 어떤 제3자에 의해서 내가 살해된다면 그것은
'회복, 복구하다.'가 된 것이다. 여기서 회복/복구라는 것은 反復이라는 의미이다.
아니면 내생 혹은 내내생에 과거 살해를 한 習이 남아 있어서
또한 금생에서도 또 다시 살해를 한다면 이 또한
'회복, 복구하다.'가 된 것이다. 여기서 회복/복구라는 것은 反復이라는 의미이다.

반대로 31겁 전에 어떤 수행자에게 작은 물질적 보시를 했는데
그 과보가 금생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또한
'회복, 복구하다.'가 된 것이다. 여기서 회복/복구라는 것은 反復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흔적, 자취' 혹은 '영향력‘을 남기는 것을 行이라고 한다.
'흔적, 자취' 혹은 '영향력‘이 나타나는 것이 反復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경문의 용례도 있는 것이다.
{
atha kho, bhikkhave, rathakāro yaṃ taṃ cakkaṃ chahi divasehi niṭṭhitaṃ taṃ pavattesi.
taṃ pavattitaṃ samānaṃ yāvatikā abhi
saṅkhārassa gati tāvatikaṃ gantvā ciṅgulāyitvā
bhūmiyaṃ papati.
yaṃ pana taṃ cakkaṃ chahi māsehi niṭṭhitaṃ chārattūnehi taṃ pavattesi.
taṃ pavattitaṃ samānaṃ yāvatikā abhi
saṅkhārassa gati tāvatikaṃ gantvā
akkhāhataṃ maññe aṭṭhāsi.
비구들이여, 그때 마차공은 먼저 6일 만에 만든 바퀴를 굴렸다.
그것은
힘이 미친 곳까지 가서 선회하고는 땅바닥에 넘어졌다.
[이번에는] 6일을 제외한 6개월을 걸려 만든 바퀴를 굴렸다.
그것은 굴러
힘이 미친 곳까지 가서 차축에 끼워 넣어진 것처럼 멈추었다.}

이와 같은 行은 대부분의 문맥에서는 복수형으로 나타나며
그 용례는 주석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연기에서 나타나는 行은 과거 누겁의 身口心-行을 의미하고 舊業을 의미한다.
그 결과 行(반복적인 習)에 의해서 識(재생연결식)이 생겨난다.
그 이후 六入에 의한 觸에서는 이미 反復되는 識은 이미 생겨난 상태이고
그 이후 여러 법수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또한 반복이고
그것을 경에서 '識에 의해서 분별되어질 法들'이라고 나타난다.
여기서 '法들'이란 제6근의 대경이 '法들'이니 이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안識에 의해서 분별되어질 法들'이란
제1근과 제1경에서 생겨난 것에 '속하는 것'(=법)들이라는 의미이고 이하 동일하다.
즉 六入 이후의, 舊業의 反復인
身口意-行은 身業을 의미하고 이 또한 어느 시점에서는 舊業이 된다.

5온의 行蘊은 色受想과 識을 (포함하거나) 포함하지 않는 나머지의 '법들'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제6근의 대경이 되는 '법들'이란
제1경에서 제5경을 (포함하거나) 포함하지 않는 나머지의 '법들'이라는 용례와 동일하다.
383.3idha bhikkhave bhikkhu iti rūpaṃ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iti vedanā iti vedanāya samudayo iti vedanāya atthaṅgamo
iti saññā iti saññāya samudayo iti saññāya atthaṅgamo
iti saṅkhārā iti saṅkhārānaṃ samudayo iti saṅkhārānaṃ atthaṅgamo
iti viññāṇaṃ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 ti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물질은 이와 같고, 물질의 일어남은 이와 같고, 물질의 사라짐은 이와 같고
느낌은 이와 같고, 느낌의 일어남은 이와 같고, 느낌의 사라짐은 이와 같고
지각의 이와 같고, 지각의 일어남은 이와 같고, 지각의 사라짐은 이와 같고
습관은 이와 같고, 복구의 일어남은 이와 같고, 반복의 사라짐은 이와 같고
분별은 이와 같고, 분별의 일어남은 이와 같고, 분별의 사라짐은 이와 같다.'라고.
rūpaṃ <ㅜ1< ; 물질. < rūpa
rūpassa <ㅜ6< ; 물질. < rūpa
samudayo<ㅏ1< ; 일어남. < saṃ√udaya
atthaṅgamo <ㅏ1< ; 가라앉음, 돌아감. < atthaṅ`gamu
vedanā ^ㅓ1^ ; 느낌. <vedeti < √vid
vedanāya ^ㅓ6^ ; 느낌. < vedanā
saññā <ㅓ1< ; 지각. < sañjānāti < saṃ√ñā
saññāya ^ㅓ6^ ; 지각. < saññā
saṅkhārā <ㅑ1< ; 가공, 반복, 복구. < saṅkhāra < saṃ√kar
saṅkhārānaṃ <ㅑ6< ; 가공, 반복, 복구. < saṅkhāra < saṃ√kar
viññāṇaṃ <ㅜ1< ; 분별. < viññāṇa < vijānāti , vi√ñā
viññāṇassa <ㅜ6< ; 분별. < viññāṇa
383.4iti ajjhattaṃ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samud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sī vā dhammesu viharati
atthi dhammā 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ṭ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kho bhikkhave bhikkhu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pañcasu upādānakkhandhesu;
이와 같이 안으로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밖으로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안밖으로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법들에 대해서 일어나는 속성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법들에 대해서 사그라지는 속성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법들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그라지는 속성을 지켜보는 자가 산다.
혹은 그에게 아는 정도만큼(앎의 대상으로서만) 기억나는 정도만큼(기억의 대상으로서만)
'법이 있다.'라는 기억이 확고하게 확립된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서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아서 의지하지 않고 산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의 법들에 대해서 법을 지켜보며서 산다.
본 경의 정형구가 반복된다.
383.5khandhapabbaṃ niṭṭhitaṃ ;
무더기 분이 끝났다.
khandhapabbaṃ <ㅜ1< ; 무더기 분. < khandha`pabba
niṭṭhitaṃ <ㅜ1< ; 끝, 마침. < niṭṭhita < niṭṭh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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