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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五蘊)과 명색(名色)의 관계 연구

작성자봄봄|작성시간26.06.07|조회수85 목록 댓글 1

오온(五蘊)과 명색(名色)의 관계 연구

 

국문 초록

 

본 논문은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난 오온(五蘊, pañcakkhandha)과 명색(名色, nāmarūpa)의 관계를 존재론적·수행론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고찰한다.

오온에는 식(識)이 포함되나 명색의 전형적 정의에는 식이 포함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명색이 오온의 동의어로 언급되는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나아가 『Titthāyatanādisuttaṃ』(AN 3.62)에 나타난 육계(六界)에 의한 입태 조건, 명색과 육처(六處)의 연기적 관계, 그리고 오온과의 구조적 상응성을 검토함으로써 명색이 단순한 심신의 개념을 넘어 존재의 전환(有, bhava)과 재생의 핵심 기제임을 밝힌다.

또한 명색을 포함한 오취온(五取蘊)이 연기하여 발생한 법(緣已生法)이며, 이에 대한 집착이 괴로움의 발생(集)이고 그 소멸이 해탈의 구조임을 사성제(四聖諦)와의 관련 속에서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과거 모든 보살들이 식(識)-명색의 호연(互緣)을 깨닫고 오온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여 해탈에 이르렀음을 경전적 근거를 통해 확인한다.

 

주제어: 오온(五蘊), 명색(名色), (), 호연(互緣), 육계(六界), 십이연기, 오취온, 사성제, 제식연기(齊識緣起)

 

. 서론

 

1. 연구의 목적과 필요성

 

초기불교에서 오온(五蘊, pañcakkhandha)과 명색(名色, nāmarūpa)은 인간 존재를 분석하는 핵심 개념이다. 오온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다섯 가지 무더기를, 명색은 정신적 측면인 명(名)과 물질적 측면인 색(色)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오온에는 식(識)이 포함되어 있으나 명색의 전형적 정의(『Sammādiṭṭhisutta』 MN 9)에는 식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색은 오온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본 논문은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동의어로 간주될 수 있는 구조적·교리적 근거를 경전에 기초하여 규명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Titthāyatanādisuttaṃ』(AN 3.62)을 중심으로 명색의 존재론적 위상을 재조명함으로써, 명색이 단순한 심신의 병칭(倂稱)을 넘어 존재의 발생과 전환, 그리고 해탈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2. 연구의 방법과 범위

 

본 연구는 니까야(Nikāya)에 수록된 경문들, 특히 AN 3.62, MN 9, MN 28, MN 38, MN 109, DN 14, DN 15, DN 22, SN 12.12, SN 12.19, SN 22.82 등을 중심으로 오온과 명색의 관계를 분석한다.

12연기에서의 명색의 위치, 식-명색 호연의 구조, 오취온과 명색의 상관관계, 육계(六界)와 입태 조건, 육육법(六六法)의 흐름 속에서의 명색의 위상, 그리고 사성제와의 관련 속에서 해탈의 구조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고찰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본 연구는 초기불교의 존재론과 수행론을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 오온의 구조와 의미

 

1. 오온의 정의와 분류

 

오온은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의 무더기를 말한다. 『Saccavibhaṅgasutta』(MN 141)에 따르면:

 

“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aṃ ariyasaccaṃ.”

“간략히 말하면, 다섯 가지 취착의 무더기(五取蘊)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오온은 구체적으로 색온(色蘊, rūpakkhandha), 수온(受蘊, vedanākkhandha), 상온(想蘊, saññākkhandha), 행온(行蘊, saṅkhārakkhandha), 식온(識蘊, viññāṇakkhandha)으로 구성된다.

 

- 색온은 사대(四大, cattāro mahābhūtā)와 사대로부터 파생된 물질(upādāyarūpa)을 포괄한다.

- 수온은 즐거움·괴로움·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무더기이다.

- 상온은 인식하는 특징을 지닌 요소들의 무더기이다.

- 행온은 의도(cetanā)를 비롯한 여러 심리현상들의 무더기이다.

- 식온은 식별하는 작용의 무더기이다.

 

2. 오취온의 이중적 의미

 

오취온(五取蘊, pañcupādānakkhandha)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첫째, 취착의 대상이 되는 오온이라는 의미이다. 둘째, 이미 취착된 오온이라는 의미이다. 『Mahāpuṇṇamasutta』(MN 109)에서는 이 두 측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na ca, bhikkhu, aññatra pañcupādānakkhandhehi upādānaṃ paññāyati. na ca, bhikkhu, pañcupādānakkhandhā aññatra upādānā paññāyanti. api ca, bhikkhu, yo tattha chandarāgo taṃ tattha upādānaṃ.”

“비구여, 그리고 다섯 가지 취착온(取蘊)들을 제외하고는 취착(取)이 알려지지 않는다.

비구여, 그리고 취착을 제외하고는 다섯 가지 취착온들이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비구여, 거기에 어떠한 욕망과 탐욕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거기서의 취착이다.”

 

여기서 ‘오취온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취착이라는 설명은, 오취온이 단순히 존재론적 실체가 아니라 마음의 취착 작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즉 오취온은 ‘취착되는 것’이자 ‘취착이 이미 일어난 것’이다.

 

3. 오온의 연기적 성격

 

12연기 지분 외에 연이생법으로 오취온이 나타나는 점에 유의한다. 오온은 연기된 것(paṭiccasamuppanna)이다. 『Mahāhatthipadopamasutta』(MN 28)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yo paṭiccasamuppādaṃ passati so dhammaṃ passati, yo dhammaṃ passati so paṭiccasamuppādaṃ passati. paṭiccasamuppannā kho panime yadidaṃ pañcupādānakkhandhā.”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며,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 연기하여 발생한 것들(緣已生法)이 바로 이른바 이 다섯 가지 취착의 무더기이다.”

 

이는 오온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의존하여 발생하고 소멸하는 현상의 다발임을 의미한다. 오취온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바로 괴로움의 발생(集)이며, 오취온에 대한 욕탐을 제거하고 버리는 것이 괴로움의 소멸(滅)이다.

 

 

. 명색의 구조와 의미

 

1. 명색의 정의

 

명색은 정신(名, nāma)과 물질(色, rūpa)의 결합을 지칭한다. 『Sammādiṭṭhisutta』(MN 9)의 정의에 따르면:

 

“katamaṃ nāma? vedanā, saññā, cetanā, phasso, manasikāro — idaṃ vuccati nāmaṃ. katamaṃ rūpaṃ? cattāri ca mahābhūtāni catunnañca mahābhūtānaṃ upādāyarūpaṃ — idaṃ vuccati rūpaṃ. iti idañca nāmaṃ idañca rūpaṃ — idaṃ vuccati, āvuso, nāmarūpaṃ.”

“무엇이 ‘명(名)’인가? 느낌(vedanā)이요, 인식(saññā)이요, 의도(cetanā)요, 접촉(phasso)이요, 작의(manasikāro)이다 — 벗이여, 이것이 ‘명’이라고 불린다. 무엇이 ‘색(色)’인가? 네 가지 큰 요소(cattāri mahābhūtāni)와 그 네 가지 큰 요소들로부터 의지하여 생긴 물질(upādāyarūpa)이다 — 벗이여, 이것이 ‘색’이라고 불린다. 이와 같이, 이 명과 이 색 — 벗이여, 이것이 바로 ‘명색’이라고 불리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명(名)의 구성요소가 수(受)·상(想)·사(思)·촉(觸)·작의(作意)의 오변행심소(五遍行心所)로 정의되며, 식(識)은 명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12연기의 맥락에서 식이 명색과 별도의 지분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2. 명색의 양 측면

 

명색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째, 명 혹은 색이라는 개별적 측면이다. 둘째, 명과 색 이 둘이 함께 결합된 법이라는 통합적 측면이다.

 

명색을 편지(遍知)한다는 측면에서는 무색계의 명도 편지하여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문은 욕계나 색계의 명과 색에 대한 교설이 중심을 이룬다. 『Mahānidānasutta』(DN 15)에서는 명색의 이러한 결합적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nām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tesu liṅgesu tesu nimittesu tesu uddesesu asati api nu kho rūpakāye adhivacanasamphasso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yehi, ānand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yehi uddesehi rūpakāyass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pe. tesu uddesesu asati api nu kho nāmakāye paṭighasamphasso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yehi, ānanda, ākārehi. pe. yehi uddesehi nāmakāyassa ca rūpakāyassa c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pe. tesu uddesesu asati api nu kho adhivacanasamphasso vā paṭighasamphasso vā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yehi, ānanda, ākārehi. pe. yehi uddesehi nāmarūpassa paññatti hoti, tesu ākāresu. pe. tesu uddesesu asati api nu kho phasso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ṃ nidānaṃ esa samudayo esa paccayo phassassa, yadidaṃ nāmarūpaṃ”.”

“아난다여, 명신(名身, nāmakāya)의 지칭(표시)이 있게 되는 그런 양상(ākāra)들, 그러한 표지(liṅga)들, 그러한 표상(nimitta)들, 그러한 지시(uddesa)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연 색신(色身, rūpakāya)에서 명명촉(命名觸, adhivacanasamphassa)이 알려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색신(色身)의 지칭이 있게 되는 그런 양상들, 그러한 표지들, 그러한 표상들, 그러한 지시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연 명신(名身)에서 유대촉(有對觸, paṭighasamphassa)이 알려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명신과 색신의 지칭이 있게 되는 그런 양상들, 그러한 표지들, 그러한 표상들, 그러한 지시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연 명명촉(adhivacanasamphassa)이나 유대촉(paṭighasamphassa)이 알려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명색(nāmarūpa)의 지칭이 있게 되는 그런 양상들, 그러한 표지들, 그러한 표상들, 그러한 지시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연 촉(phassa) 자체가 알려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바로 이것이 촉의 원인(hetu)이며, 이것이 인연(nidāna)이며, 이것이 발생(samudaya)이며, 이것이 조건(paccaya)이니, 이른바 명색(nāmarūpa)인 것이다.”

 

여기서 명신(名身)과 색신(色身)은 촉(觸)을 통해 상호 정보를 교환하며, 명색은 이러한 상호작용의 총체로서 존재한다.

 

3. -명색의 비대칭적 호연 관계

 

명색과 식의 관계는 불교 교리에서 가장 심오한 주제 중 하나다. 욕계(혹은 색계)에서의 명색은 식과 호연(互緣)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무색계를 제외하면 명색은 이미 식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식은 반드시 명색을 전제할 필요가 없지만, 명색은 반드시 식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비대칭적 관계는 『Mahānidānasutta』(DN 15)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viññāṇe kho, ānanda, na uppajjamāne na bhūtamhi uppajjati, na nibbattamāne na nibbattati. viññāṇe kho, ānanda, na bhūtamhi na vattati, na nibbattamāne na nibbattati. viññāṇe kho, ānanda, na bhūtamhi na vattati, na nibbattamāne na nibbattati.”

“아난다여, 식이 모태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명색이 모태에서 응집되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식이 모태에 들어갔다가 떠나버렸다면, 명색이 이러한 상태로 현현하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다여, 어린아이 때 식이 끊어져 버렸다면, 명색이 성장·증대·충만하였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명색의 원인·인·집·연이 되는 것은 식이다.”

 

이 경문은 식이 명색의 선행 조건임을 분명히 한다. 식이 있기에 명색이 성립하고 유지되며 성장한다. 반대로 명색 또한 식의 조건이 된다:

 

“Viññāṇañca hi, ānanda, nāmarūpe patiṭṭhaṃ na labhissatha,

api nu kho āyatiṃ jātijarāmaraṇaṃ dukkhasamudayasambhavo

[jātijarāmaraṇadukkhasamudayasambhavo (sī. syā. pī.)] paññāyethā’’ti? ‘‘No hetaṃ, bhante’’.

‘‘Tasmātihānanda, eseva hetu etaṃ nidānaṃ esa samudayo esa paccayo viññāṇassa yadidaṃ nāmarūpaṃ..”

“아난다여, 만약 식이 명색에 확고히 머물지 않았다면, 미래의 생·노·사, 즉 괴로움의 생겨남이 알려졌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식의 원인·인·집·연이 되는 것은 명색이다.”

 

 

4. 제식연기(齊識緣起)와 명색

 

12연기의 탐구 과정에서 붓다는 식과 명색의 관계가 상호의존적임을 발견하셨다. 이를 제식연기(齊識緣起)라 한다. 『Nagarasutta 』(SN 12.65)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된다:

 

“paccudāvattati kho idaṃ viññāṇaṃ nāmarūpamhā, na paraṃ gacchati. ettāvatā jāyetha vā jīyetha vā mīyetha vā cavetha vā upapajjetha vā, yadidaṃ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실로 이 식은 명색으로부터 되돌아온다,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이 범위에서 태어나거나, 살거나, 죽거나, 이동하거나, 다시 생겨난다. 즉 명색을 연하여 식, 식을 연하여 명색 … 이와 같이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발생이 있다.”

 

여기서 ‘되돌아온다(paccudāvattati)’는 표현은, 식의 근원을 추적해 올라가면 명색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순환적 관계가 발견된다는 의미다. 이는 이후 무명과 행으로까지 소급되는 12연기의 근본적 통찰을 보여준다.

 

이러한 제식연기의 깨달음이 모든 보살들의 공통된 깨달음의 길이었음이 경전에서 확인된다:

 

“svākkhāto kho me esa bodhāya maggo, yadidaṃ nāmarūp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viññāṇanirodhā nāmarūpanirodho, nāmarūpanirodhā saḷāyatananirodho …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실로 나에 의해 깨달음을 위한 이 길은 잘 도달되었다. 그것은 바로 명색의 멸로부터 식의 멸, 식의 멸로부터 명색의 멸, 명색의 멸로부터 육처의 멸 … 괴로움의 멸이다.”

 

 

. 오온과 명색의 관계

 

1. 식의 위치: 오온과 명색의 결정적 차이

 

오온과 명색의 가장 큰 차이는 식(識)의 위상에 있다. 오온에서 식은 수·상·행·식 중 하나로서, 다른 네 온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반면 명색에서 식은 명색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명색과 호연 관계를 맺는 독립된 지분이다.

 

『Mahāpuṇṇamasutta』(MN 109)는 각 온의 발생 조건을 설명하면서 식온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cattāro kho, bhikkhu, mahābhūtā hetu, cattāro mahābhūtā paccayo rūpa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vedan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saññ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saṅkhārakkhandhassa paññāpanāya. nāmarūpaṃ kho, bhikkhu, hetu, nāmarūpaṃ paccayo viññāṇakkhandhassa paññāpanāyā.”

“비구여, 네 가지 큰 요소들은 실로 색온의 알려지기 위한 원인이며 조건이다. 접촉은 수온의 알려지기 위한 원인이며 조건이다. 접촉은 상온의 알려지기 위한 원인이며 조건이다. 접촉은 행온의 알려지기 위한 원인이며 조건이다. 비구여, 명색은 실로 식온의 알려지기 위한 원인이며 조건이다.”

 

여기서 식온의 조건이 명색이라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이는 식이 명색으로부터 발생함을 의미하며, 동시에 명색에 의존하여 유지됨을 시사한다.

 

2. ()의 이중적 의미

 

오온의 행(行, saṅkhāra)은 그 범위가 매우 넓은 개념이다. 행온은 수(受)와 상(想)을 포함하기도 하고, 수·상을 제외한 사(思)·촉(觸)·작의(作意)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의 이중적 의미는 오온과 명색의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수와 상이 독립된 온으로 분리될 경우, 행은 사·촉·작의를 중심으로 한 나머지 심리현상들의 무더기가 된다. 그런데 명색의 명(名)은 정확히 수·상·사·촉·작의의 오변행심소로 구성된다. 따라서 행을 사·촉·작의로 이해할 때, 수·상·사·촉·작의는 곧 명색의 명에 해당하게 된다.

 

여기에 식온이 더해지면 오온이 완성되지만, 색·수·상·행(사·촉·작의)의 결합은 곧 명색의 구조와 일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온은 명색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3. 육계(六界)와 오온의 구조적 상응성

 

『Titthāyatanādisuttaṃ』(AN 3.62)은 다음과 같이 명색의 발생 조건을 제시한다:

 

“channaṃ, bhikkhave, dhātūnaṃ upādāya gabbhassāvakkanti hoti; okkantiyā sati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계(六界)를 취하고서 모태에 들어감이 있다. 입태가 있을 때 명색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육처가 있고, 육처를 연하여 촉이 있고, 촉을 연하여 느낌(受)이 있다.”

 

여기서 육계(channaṃ dhātūnaṃ)는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식(識)의 여섯 가지 요소를 의미한다. ‘계(dhātu)’는 ‘기본이 되는 틀’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존재를 구성하는 근본적 요소들을 지칭한다.

 

육계는 지·수·화·풍·공·식으로서 색(rūpa) 중심의 분류 방식이며, 오온(五蘊)은 수·상·행의 명(nāma) 중심의 분류 방식이다. 식(識)은 두 분류 모두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구조적 상응성은 명색과 오온이 존재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분류 방식일 뿐, 그 함의는 동일함을 시사한다.

 

4. 명색과 유(, bhava)의 관계

 

명색은 ‘유(bhava)’의 상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Moḷiyaphaggunasutta』(SN 12.12)은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viññāṇāhāro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yā paccayo; tasmiṃ bhūte sati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식식(識食)은 미래 다시 됨(bhava)을 초래하는 연이 된다. 그 됨이 있으면 육처들이 있고, 육처를 연하여 촉이 있다.”

 

여기서 ‘됨(bhūta)’은 ‘유(bhava)’의 상태를 지칭한다. 식식(識食)은 4식(四食) 중 하나로서, 애(愛)에 의해 생겨난다. 즉, 식식은 취(取)의 위치에 있으며, 취 다음의 유(有)가 본 경문의 ‘됨(bhūte)’이다.

 

이러한 구조는 명색이 과거 생의 취(取)에 의해 발생하고, 현재 생의 육처(생)로 이어지는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Paṭhamabhavasuttaṃ』(AN 3.77)은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vijjānīvaraṇānaṃ sattānaṃ taṇhāsaṃyojanānaṃ hīnāya dhātuyā viññāṇaṃ patiṭṭhitaṃ evaṃ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 hoti.”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매인 중생들의 식(識)은 저열한 (欲)계에 확립한다. 이와 같이 미래 다시 됨(bhava)을 초래하게 된다.”

 

5. 오취온에서 명색으로의 변성 과정

 

오온이 어떻게 명색으로 변성(變成/有, √bhū, becoming)되는가는 애·취·유(愛·取·有)의 과정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오온은 단순한 존재 분석의 범주가 아니라, 집착의 발생 구조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Mahāhatthipadopamasutta』(MN 28)에 따르면, 육내처(안·이·비·설·신·의)가 완전하고 육외처(색·성·향·미·촉·법)가 영역에 들어오며, 거기에 상응하는 작의(수집, samannāhāra)가 있을 때 비로소 식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렇게 생긴 것 가운데서 물질은 색취온에 속하고, 느낌은 수취온에 속하며, 인식은 상취온에 속하고, 심리현상들은 행취온에 속하며, 알음알이는 식취온에 속한다”고 한다.

 

이렇게 생겨난 오취온에 대해 욕망하고 집착하는 것(애·취)이 괴로움의 발생이며, 이 과정을 통해 유(有, bhava) 즉 ‘변성됨’이 일어난다. 이 유(有)가 바로 명색의 ‘bhava’적 측면이다.

 

『Mahānidānasutta』(DN 15)은 다음과 같은 순환적 구조를 제시한다:

 

“iti kho, ānanda,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이와 같이, 아난다여, 명색을 연하여 식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촉이 있고, 촉을 연하여 수가 있다 … 이와 같이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발생이 있다.”

 

이러한 명색과 식의 상호의존적 순환 구조 속에서, 오취온에 대한 애·취·유의 과정이 명색으로의 변성을 가져오며, 이는 다시 새로운 생(生)의 조건이 된다.

 

6. 오온-명색의 동의어적 사용의 근거

 

오온과 명색이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구조적 측면에서, 명색의 명(수·상·사·촉·작의)은 오온의 수·상·행(수·상을 제외한 사·촉·작의)에 해당하고, 명색의 색(사대+소조색)은 오온의 색에 해당한다. 여기에 식이 결합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명색의 촉이 根-境-識 삼사화합인 경우에는 이미 식은 전제되어 있다.

 

둘째, 연기적 측면에서, 오취온은 연기된 것(paṭiccasamuppanna)이며, 명색 또한 12연기의 한 지분으로서 연기된 것이다. 양자 모두 조건적 발생의 산물이다.

 

셋째, 기능적 측면에서, 오취온과 명색 모두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다. 오취온에 대한 욕탐이 괴로움의 집(集)이고 그 소멸이 괴로움의 멸(滅)이듯, 명색 또한 식과의 호연을 통해 괴로움을 발생시키고 그 소멸이 해탈로 이어진다.

 

넷째, 제식연기의 관점에서, 과거 모든 보살들이 식-명색의 호연을 깨달은 후 오온의 생멸을 관찰하여 해탈에 이르렀다는 점은, 양자가 동일한 통찰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 명색과 연기(緣起)의 구조

 

1. 십이연기 속의 명색

 

십이연기에서 명색은 식(識)과 육처(六處) 사이에 위치한다. 『Titthāyatanādisuttaṃ』(AN 3.62)은 명색을 연하여 육처가 있다고 명시하며, 이는 명색이 존재의 전환 단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함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식과 명색의 상호연관성이다. 『Bālapaṇḍitasuttaṃ』(SN 12.19)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vijjānīvaraṇassa, bhikkhave, bālassa taṇhāya sampayuttassa evamayaṃ kāyo samudāgato. iti ayañceva kāyo bahiddhā ca nāmarūpaṃ, itthetaṃ dvayaṃ, dvayaṃ paṭicca phasso saḷevāyatanāni, yehi phuṭṭho bālo sukhadukkhaṃ paṭisaṃvedayati etesaṃ vā aññatarena.”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매여 이와 같이 이 몸(身)이 생겨난다. 이처럼 이 몸과 그 외부에는 명색, 이 둘이 있다. 둘을 연하여 촉, 육처들이 있고, 이들(육처들)이나 이들 중 어떤 것에 의해 접촉하게 된 어리석은 자는 고와 낙을 경험한다.”

 

이 경문은 명색이 ‘이 몸(내부)’과 ‘외부’의 이중적 구조로 나타나며, 이 둘을 연하여 촉과 육처가 발생함을 보여준다. 즉, 명색은 욕계에 태어나는 과정에서는 ‘식을 지닌 몸(群)’의 외부에 위치하지만, 태어난 이후에는 내부에 위치하여 내-외의 상대적 개념을 형성한다.

 

2. 육육법(六六法)과 명색의 관계

 

육육법은 욕계의 현상법들을 체계화한 것으로, 6內處-6外處-6內識-6內觸-6內受[-6外想-6外思]-6外愛의 흐름으로 구성된다. 『Mahāsatipaṭṭhānasuttaṃ』(DN 22)에서는 여기에 6外尋-6外伺가 추가된 60법(10×6)의 구성도 있으며, 반면에 6界-5蘊이 추가된 59법의 구성도 있다.

 

이러한 육육법의 흐름에서 주목할 점은 갈애(taṇhā)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DN 22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etthesā taṇhā uppajjamānā uppajjati, ettha nivisamānā nivisati.”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면서 일어나고, 여기서 뿌리내리면서 뿌리내린다.”

 

즉, 육육법의 각 단계에서 갈애가 발생하며, 이러한 갈애의 발생 구조가 바로 괴로움의 발생(集)이다. 이는 십이연기에서 갈애(taṇhā)가 괴로움의 직접적 원인으로 제시되는 것과 일관된 구조이다.

 

한편, 『Okkantasaṃyuttaṃ』(SN 25)와 『Kilesasaṃyuttaṃ』(SN 27)에 열거된 59법에 대한 교설에서는, 이러한 법들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예류자(Sotāpanna)의 증득이며, 이 법들에 대한 욕탐(chandarāga)을 버리는 것이 출리(nekkhamma) 즉 불환자(Anāgāmi)의 경지임을 시사한다. 이는 五蘊을 포함한 존재 현상에 대한 통찰이 해탈의 단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됨을 보여준다.

 

3. 명색과 유()의 전환

 

『Visuddhimagga』(청정도론)는 유(bhava)를 업유(kamma-bhava)와 생유(upapatti-bhava)로 구분한다:

 

“kammabhavaupapattibhavabhedaṃ vā anupagamma saddhiṃ antogadhehi kāmabhavādivasena tayo bhavā honti.”

“업의 있음(존재/됨)과 재생의 있음(존재/됨)이라는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그 안에 자연히 포섭되는 욕계·색계·무색계로 세 가지 있음(존재/됨)을 설정한다.”

 

이러한 후대의 업유·생유 분별은 이미 니까야의 식-명색 호연과 애·취·유 메커니즘 속에 원형적으로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SN 12.12; “ime kho, bhikkhave, cattāro āhārā bhūtānaṃ vā sattānaṃ ṭhitiyā sambhavesīnaṃ vā anuggahāyā”ti.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 네 가지 식(食)들은, 이미 존재하는(된) 중생들의 유지를 위함이거나, 혹은 앞으로 태어나려는 자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에서 bhūtānaṃ ṭhitiyā는 업유, sambhavesīnaṃ anuggahāyā는 생유와 연관 지을 수 있다.

 

名色六處 - 六處에서 五蘊(六六法: 6內處-6外處 ~ 6-5)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앞서 언급된 “viññāṇāhāro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yā paccayo, tasmiṃ bhūte sati saḷāyatanaṃ”에서 ‘미래 다시 됨(bhava)’은 금생에서의 업유(kamma-bhava)의 결과로서 생유(upapatti-bhava)를 의미한다. 이때 애-취-유(變成)된 명색은 6내외처에서 생겨난 5온이 된 것이다.

 

즉, 명색이란 5온이 애-취-유(變成)된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과정이 논에서 업유와 생유로 구분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오온(명색)과 사성제(四聖諦)의 구조

 

1. 괴로움()으로서의 오온(명색)

 

사성제의 첫 번째 진리인 괴로움(苦)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AN 3.62):

 

“saṃ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aṃ ariyasaccaṃ.”

“간략히 말하면,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五取蘊)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여기서 pañcupādānakkhandhā는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문맥상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집착’ 혹은 ‘집착된 다섯 가지 무더기’가 괴로움으로 읽을 수 있다. 이는 명색이 단순히 존재의 조건이 아니라 집착의 대상이 될 때 괴로움이 발생함을 시사한다.

 

오온(명색)이 괴로움의 구조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Mahāhatthipadopamasuttaṃ』(MN 28)은 다음과 같이 명시한다:

 

“paṭiccasamuppannā kho panime yadidaṃ pañcupādānakkhandhā.”

“연기하여 발생한 것들(緣已生法)이란 바로 이른바 이 다섯 가지 취착의 무더기이다.”

 

즉, 명색을 포함한 오취온은 연기하여 발생한 법(緣已生法)이며, 이에 대한 욕망·애착·고착이 바로 괴로움의 발생(集)이다.

 

2.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

 

사성제의 두 번째 진리인 괴로움의 발생(集)은 AN 3.62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katamañca,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무엇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성스러운 진리인가?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이 있고,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육처가 있고, 육처를 연하여 촉이 있고, 촉을 연하여 수가 있고, 수를 연하여 애가 있고, 애를 연하여 취가 있고, 취를 연하여 유가 있고, 유를 연하여 생이 있고, 생을 연하여 노사와 수비고우뇌들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발생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라고 말한다.”

 

이 연기적 구조 속에서 명색은 식(識)과 육처(六處) 사이에 위치하며, 존재의 전환 단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연기적 구조가 단순한 이론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실제 수행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괴로움의 소멸(滅)에 대해 동일한 경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katamañca, bhikkhave,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라고 말하는가?”

 

이어지는 설명에서 괴로움의 소멸은 연기적 구조의 각 단계가 소멸하는 과정으로 제시되며, 이는 명색의 소멸 또한 해탈의 구조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을 시사한다.

 

3. 깨달음의 구조: 4()3()

 

부처님의 깨달음 과정은 4선(禪)과 3명(明)으로 요약된다. 『Mahāsaccakasuttaṃ』(MN 36)에 따르면, 부처님은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에게서 배운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가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함을 아시고,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하셨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ṃ pitu sakkassa kammante sītāya jambucchāyāya nisinn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itā. siyā nu kho eso maggo bodhāyāti? tassa mayhaṃ, aggivessana, satānusāri viññāṇaṃ ahosi — eseva maggo bodhāyāti.”

“악기웻싸나여, 나는 아버지 삭까의 농장에서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있을 때, 감각적 쾌락을 여의고 불선한 법을 여의어, 생각과 숙고(尋·伺)가 있고 여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담음(禪)’을 성취하여 머묾을 기억한다(abhijānāmi).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은 아닐까? 악기웻싸나여, 나에게 (그) 기억을 따르는 식(satānusāri viññāṇaṃ)이 생겨났다 — (바로)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菩提道)이라고.”

 

이어지는 네 번째 禪(jhāna)을 통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삼명(三明)을 증득하셨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

“그런 나는 이와 같이 마음이 안정(통일, 三昧)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유능하고, 확립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다. 그런 나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했다.”

 

이것이 밤의 초경(初更)에 증득한 첫 번째 명지(明知)이며, 이어지는 천안통(天眼通)이 두 번째 명지, 누진통(漏盡通)이 세 번째 명지이다. 이 삼명의 증득 과정에서 마지막 누진통은 다음과 같이 사성제의 여실지(如實知)로 나타난다: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苦…集…滅…道를 여실하게 自證했다.”

 

이러한 깨달음의 구조는 명색을 포함한 존재 현상에 대한 철저한 통찰이 해탈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특히 네 번째 담음(第四禪)의 안정된 마음 상태에서 삼명을 증득하는 과정은, 명색에 대한 집착을 소멸시키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을 제시한다.

 

 

. -명색 호연과 오온의 생멸 관찰

 

1. 보살의 깨달음 과정

 

과거 모든 보살들은 식-명색의 호연을 깨닫고서 오온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였다. 『Mahāpadānasutta』(DN 14)에 따르면, 위빳시 보살은 제식연기를 깨달은 후 다음과 같이 오온을 관찰하였다:

 

“atha kho, bhikkhave, vipassī kumāro pañcupādānakkhandhesu udayabbayānupassī vihāsi: ‘iti rūpaṃ, iti rūpassa samudayo, iti rūpassa atthaṅgamo; iti vedanā … iti saññā … iti saṅkhārā … iti viññāṇaṃ, iti viññāṇassa samudayo, iti viññāṇassa atthaṅgamo’ti. so pañcupādānakkhandhesu udayabbayānupassī viharanto na cirasseva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cci.”

“그 후에, 비구들이여, 위빳시 보살은 다섯 가지 취착의 무더기들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물렀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 이것이 알음알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그가 오취온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무는 동안, 오래지 않아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은 위빳시 보살뿐 아니라 시키, 웨사부, 까꾸산다, 꼬나가마나, 깟사빠, 그리고 고따마 보살에 이르기까지 모든 보살들에게 공통된 것이다.

 

2. 명색에서 오온으로의 이행

 

식-명색의 호연을 깨달은 후 오온의 생멸을 관찰하는 것은 단순한 주제의 전환이 아니라, 동일한 실재에 대한 통찰의 심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명색은 오온의 다른 표현이며, 식-명색의 호연은 곧 오온의 조건적 발생을 의미한다.

 

특히 ‘명색의 멸 → 식의 멸’로 이어지는 멸도(滅道)의 통찰은, 오온의 소멸에 대한 통찰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는 『Mahānidānasutta』(DN 15)의 “이와 같은 범위 안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늙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이 세상에서 떠나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범위 안에 명칭의 토대, 언어 표현의 토대, 개념의 토대가 있다”라는 설명에서도 확인된다.

 

 

. 내외(內外)의 의미

 

1. 오온에서의 내외 구분

 

오온에 대한 경전적 설명에서는 흔히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ajjhattaṃ vā bahiddhā vā)’이라는 구분이 나타난다. 『Mahāpuṇṇamasutta』(MN 109)에서는 물질의 무더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rūpaṃ, bhikkhu, yaṃ kiñci rūpaṃ sabbaṃ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 ayaṃ vuccati rūpakkhandho.”

“비구여,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것은 물질의 무더기이다.”

 

2. ‘안의 것의 의미

 

여기에서 ‘안(ajjhattaṃ)’은 삼매(三昧)와 관련되고, ‘밖(bahiddhā)’은 지견(知見)과 관련된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단순히 신체적 내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대상을 내적으로 경험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Janavasabhasuttaṃ』(DN 18)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ajjhattaṃ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nto tattha sammā samādhiyati, sammā vippasīdati. so tattha sammā samāhito sammā vippasanno bahiddhā paradhammesu ñāṇadassanaṃ abhinibbatteti.”

“內로 法들에서 法을 따라 보며 머물면서, 거기에 바르게 삼매에 들고, 바르게 맑아진다. 그는 거기에 바르게 삼매에 들고 바르게 맑아져서, 밖으로 他의 法들에 대해 知·見을 낸다.”

 

Mahāsatipaṭṭhānasutta(DN 22) 法隨看의 두 번째 지켜봄은 오온이다(dhammānupassanā khandhapabbaṃ). 여기에 나오는 內-外(ajjhattaṃ-bahiddhā)라는 표현도 ‘內로 삼매에 들고 나서, 다른 사람의 (신-수-심-)법이 아닌 자신의 法을 外로, 他로(parakāye) 여기는 것’이 知·見(앎·봄)이 되고, 위빳사나의 기초가 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내외의 구분에서 ‘내’는 주관적 경험의 장(場), 즉 ‘자신의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외’는 객관적 대상 세계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둘은 엄격히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이다.

 

3. 외적 색의 의미

 

Saṅgītisuttaṃ (DN 33.) :

tividhena rūpasaṅgaho — sanidassanasappaṭighaṃ rūpaṃ, anidassanasappaṭighaṃ rūpaṃ, anidassanāppaṭighaṃ rūpaṃ.

 

『잡아함경』 T02, no. 99, 91c:

眼是內入處,四大所造淨色,不可見,有對 耳、鼻、舌、身內入處亦如是說 …

色外入處,若色四大造,可見,有對,是名色是外入處 …

若聲四大造,不可見,有對,如聲,香、味亦如是 … 謂四大及四大造色,不可見,有對,是名觸外入處 … 十一入所不攝,不可見,無對,是名法外入處

 

‘밖의 색(bāhirā rūpā)’이라는 표현은 눈의 대상으로서의 형색(有見有對色)을 의미한다. 이는 타인의 신체와 산, 강, 나무 등 모든 외적 물질 세계를 포함한다. 나머지 聲香味觸은 無見有對色이고 법처에 속하는 無見無對色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복수형(rūpā 등)으로 표현되는 외적 대상은 4대-4대소조로 이루어지며, 내적 5근(眼~身)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단식(段食)의 섭취를 통해 색(色)의 지속과 변성(有)의 조건이 된다.

 

『Samudayasutta』(SN 47.42)에서는:

“āhārasamudayā kāyassa samudayo; āhāranirodhā kāyassa atthaṅgamo.”

“(段)食의 일어남은 身의 일어남.”

 

『Upādānaparipavattasutta』(SN 22.56)에서는:

“āhārasamudayā rūpasamudayo; āhāranirodhā rūpanirodho.”

“(段)食의 일어남은 色의 일어남.”

 

『Puṇṇamasutta』(SN 22.82)에서는:

“cattāro kho, bhikkhu, mahābhūtā hetu, cattāro mahābhūtā paccayo rūpakkhandhassa paññāpanāya.”

“비구여, 네 가지 큰 요소가 因이 되고, 네 가지 큰 요소가 緣이 되어 色蘊이 알려진다.”

 

 

. 결론

 

본 논문에서는 오온과 명색의 관계를 존재론적·수행론적 관점에서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주요 논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오온과 명색의 구조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동일한 실재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명색의 명(수·상·사·촉·작의)은 오온의 수·상·행(사·촉·작의)에 해당하고, 색은 오온의 색에 해당하여 구조적 일치를 보인다. 또한 행의 이중적 의미를 고려할 때, 오온은 곧 명색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명색과 식의 관계는 비대칭적 호연 관계에 있다. 식은 명색을 전제할 필요가 없으나, 명색은 반드시 식을 전제한다. 이는 『Mahānidānasutta』(DN 15)에서 “명색의 원인이 되는 것은 식이며, 식의 원인이 되는 것은 명색이다”라는 상호의존적 구조로 확인된다. 이러한 제식연기(齊識緣起)의 통찰은 모든 보살들의 공통된 깨달음의 길이었다.

 

셋째, 명색은 육계(六界)를 기반으로 하는 입태 조건에 의해 성립되고, 식식(識食)의 결과로서 ‘유(bhava)’의 상태이며, 육처(生)의 조건이 된다. 이는 명색이 과거 생의 취(取)에 의해 발생하고 현재 생의 육처로 이어지는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즉 욕계에서의 (五蘊 取→) 有는 名色과 상응하고, 生은 六處와 상응한다.

그래서 生은 蘊의 드러남, 處의 획득으로도 설명된다.

(… khandhānaṃ pātubhāvo āyatanānaṃ paṭilābho, ayaṃ vuccati, bhikkhave, jāti. ; DN 22)

 

넷째, 명색을 포함한 오취온(五取蘊)은 연기하여 발생한 법(緣已生法)이며, 이에 대한 집착이 바로 괴로움의 발생(集)이다. 따라서 괴로움의 소멸(滅)은 이러한 집착의 소멸을 의미하며, 이는 부처님의 깨달음 구조(4선과 3명) 속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다섯째, 오온에 대한 설명에서 나타나는 내외(內外)의 표현은 삼매나 지견과 관련된 것으로, 주관적 경험의 장으로서의 ‘내’와 객관적 대상 세계로서의 ‘외’의 구분을 의미한다. 이는 위빳사나 수행의 기초가 된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명색은 초기불교의 존재론과 수행론을 연결하는 핵심 개념이다. 명색은 단순한 심신의 병칭이 아니라, 존재의 전환과 재생의 기제로서, 또한 집착의 대상으로서 괴로움의 구조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결론적으로, 5온-취가 명색임을 명시하는 경문은 없지만, 취와 상응하는 4식(食) 중 식식(識食)이 명색화되는 과정을 시사하는 경문이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온은 명색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오온과 명색은 분석의 목적과 맥락에 따른 표현의 차이일 뿐, 인간 존재의 조건적 발생과 소멸을 설명하는 상보적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연기(緣起)의 통찰을 통해 오온의 생멸을 관찰하고 궁극적으로 해탈에 이르는 수행의 길을 제시하는 초기불교의 핵심 교의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본 연구는 문헌학적 분석에 주로 의존하였기에, 향후 명색 개념의 역사적 변천 과정이나 다양한 불교 전통에서의 수용 양상에 대한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명색과 관련된 수행론적 측면, 특히 선정(jhāna) 수행과 명색 관찰의 구체적 연관성에 대한 실천적 연구도 의미 있는 후속 과제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원전 자료

- Aṅguttara Nikāya (AN)

- Dīgha Nikāya (DN)

- Majjhima Nikāya (MN)

- Saṃyutta Nikāya (SN)

- Khuddaka Nikāya (KN)

『잡아함경(雜阿含經)』, 구나발타라(Gunabhadra, 求那跋陀羅) 한역,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제2권, 99경, 91c면.

 

2. 국역 및 연구 자료

- 고익진,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 담마아카데미, 2018.

- Buddhaghosa, Visuddhimagga, (trans. by Ñāṇamoli),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1991.

 

ABSTRACT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ā) and Name-and-Form (Nāmarūpa) – Focusing on Ontological Structure and Soteriological Implications based on the Titthāyatanādisutta (AN 3.62) and Related Suttas

 

This study comprehensively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ā) and name-and-form (nāmarūpa) in early Buddhist scriptures from both ontological and soteriological perspectives. Although the five aggregates include consciousness (viññāṇa), the standard definition of name-and-form (MN 9) does not include consciousness. Despite this difference, name-and-form is often used synonymously with the five aggregates. This paper investigates the structural and doctrinal grounds for this synonymous usage.

 

Furthermore, by analyzing the conditions for conception through the six elements (dhātus), the dependent relationship between name-and-form and the six sense-bases (saḷāyatana), and the structural correspondence with the five aggregates as presented in the Titthāyatanādisutta (AN 3.62), this study demonstrates that name-and-form is not merely a concept of mind-body but a crucial mechanism for the transition of existence (bhava) and rebirth. The study also examines how the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pañcupādānakkhandhā), including name-and-form, are phenomena arisen through dependent origination (paṭiccasamuppanna), and how attachment to them constitutes the origination of suffering (samudaya), while their cessation leads to liberation (nirodha) in relation to the Four Noble Truths.

 

Finally, this paper confirm‎s through canonical evidence that all past bodhisattas, having realized the mutual conditionality (paṭiccasamuppāda) between consciousness and name-and-form, contemplated the arising and passing away of the five aggregates and attained liberation.

 

Keywords: five aggregates (pañcakkhandhā), name-and-form (nāmarūpa), consciousness (viññāṇa), mutual conditionality (aññamaññapaccaya), six elements (dhātus), dependent origination (paṭiccasamuppāda), five aggregates subject to clinging (pañcupādānakkhandhā), Four Noble Truths (ariyasaccāni), consciousness-conditioned name-and-form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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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봄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9
    오자, 탈자가 보여서 일부 정정하였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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