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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아위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12.29 제가 설명이 좀, '제가 말하고 나서도' 이건 아니다 싶은데요. 음~~~~~~~
<십이처(=일체)가 '명색'에 불과한 것임을 견(見) 하라는 것>이고, 그렇게 견(見)하는 방법과 길을 설하는 것이 불교라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이러이러 하기 때문에 이러하다'는 사유는 좀 아니다 싶습니다. 불교 그 어디에 그런 가르침이 있는 것인지 저는 처음 듣습니다. 십이처(=일체)가 고임을 보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고, 연기도 보는 것이고..............백문이불여일견.........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작성자 아위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12.29 경전에는 <연기를 작의(의에 새김)하라, 연기를 보라>라는 표현은 있어도, 연기를 사유하라는 말은 없고 십이처를 사유하라는 말도 없거든요. 어떻게 사유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도 않고요. 사유의 결론을 고집하는 것은 ........좀..........
십이처(=일체)가 '무상, 고, 비아'임을 볼 수 있는 방법론을 설하신 것이 불교고요. 그 길을 설하신 것이 불교고요. 심이처(=일체)의 집을 보라는 것과 집을 사유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요? 집(集)이란 것이 사유의 대상도 아닐 뿐더러 사유가 가능하기는 하겠습니까? 그러하니 '봉행'님이 형이상학이나 철학을 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불교에 없는 말을 주장하시는 것 같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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