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온(色蘊)은 과연 물질인가?
기초 튼튼, 불교교리 한 토막 14
2008년 08월 통권 406호 / 목경찬
부처님 가르침을 가까이 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용어의 생소함입니다. 부처님 시대가 아닌 우리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이미 우리 사고가 우리 시대의 사고에 젖어 있으므로 더욱 힘듭니다. 따라서 어떤 언어로 되었든지 그 용어에 대한 개념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전에 있는 풀이로만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전에 있는 풀이는 벌써 오늘날 우리의 사고가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부처님 당시의 용어 쓰임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쓰임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일상 언어 속에 깊은 뜻을 부여하여 설법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제로 삼은 ‘색온’에서 ‘색’도 빠알리어로는 ‘루빠(rupa)’로서 사전에는 ‘물질, 형상, 모습’ 등으로, ‘색온’은 ‘물질들의 집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불교서적에서도 색온을 ‘물질’로 풀이합니다.
사실 경전을 글자 그대로 보면 ‘물질’로 번역할 여지도 있습니다. 가령 경전에는 “모든 색은 사대[四大(地·水·火·風)]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四大所造]”라고 하거나, 또한 그 속성에 대해 ‘걸림[ ]과 나눔[分]’ 등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물질에 대한 뜻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호에서 언급하였지만, 색온을 물질로 수·상·행·식 4온을 정신으로 풀이하여 ‘인간은 색온인 물질과 정신인 4온으로 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지·수·화·풍인 물질과 고·락인 정신이 모여서 인간과 세상을 만든다’는 적취설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외 다른 이유를 언급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여튼 ‘색온이 과연 물질인가’에 대한 의문은 필자만의 의문이 아닙니다. 가령 경전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걸리고 나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을 색수음(색음, 색온)이라고 한다. 또 걸리는 것으로서 손, 돌, 막대기, 칼, 추위, 더위, 목마름, 굶주림이나 혹은 모기나 등에의 모든 독한 벌레, 바람, 비에 부딪치는 것을 가리켜 그것을 부딪치는 걸림이라 한다.”
-『잡아함경』 권2, 46경
‘목마름’이나 ‘굶주림’ 같은 것을 물질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른 어떤 언어로 표현하기에 적당한 것이 떠오르지 않고 철학적인 사고의 깊이도 미천하기에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 ‘색온’을 물질로 번역하기보다는 그냥 ‘색온’이라고 사용해 왔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과감하게 물질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래 몇몇 분들의 글이 색온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대(地大)는 땅(흙)의 본성으로서(땅 자체가 아니라) 단단함·거침·무거움…부드러움·매끄러움·가벼움 등도 포함됩니다. 수대(水大)는 물의 본성으로서 흐름·응집·접착·습함·침투 등의 특성을 지니며, 화대(火大)는 불의 본성으로 열기·따뜻함·차가움·기화·숙성·노쇠·소멸 등의 특성을 지닙니다. … 풍대(風大)는 바람의 본성으로 움직임·지탱·에너지·긴장 등의 특성을 지닙니다.”
- ‘4대 관찰은 실재 통찰의 지름길’, 월간 「불광」 2007년 12월호, 64~65쪽
이는 『구사론』에서 지·수·화·풍 사대를 견고성(堅固性)·습윤성(濕潤性)·온난성(溫暖性)·유동성(流動性)으로 풀이하는 것과 동일한 관점입니다. 즉, 지·수·화·풍을 흙 그 자체, 물 그 자체, 불 그 자체, 바람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의 성질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와 ‘걸림과 나눔’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도 있습니다.
“4대가 물질이거나 물질적 요소가 그 자체가 아니라 외부의 어떤 것이 우리 감각 기관에 부딪치고 와 닿을 때 만들어지는 개념, 곧 의식작용이라는 붓다의 기본적 규정은 ‘rupa’라는 용어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rupa’는 빠알리어 ‘rupati’에서 온 것인데, 이것은 ‘장애가 되는’, ‘부딪치는’, ‘부서지는’ 등을 뜻한다. … 혀·몸·눈 등 감각 기관으로 어떤 물질이 와 닿는 것 같은 부딪치는 듯한 감촉되는 느낌, 그 느낌의 기억, 그 기억들이 쌓여서 ‘이것은 색이다, 물질이다’라는 허위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 김재영, ‘반야심경’, 「참여불교」 2006년 10·11월호, 36쪽
여기서 4대 또는 색을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개념, 의식작용, 의식의 산물로 보고 있습니다. 또 ‘걸림과 나눔’이라는 표현은 물질이 부딪친다거나 나뉜다는 뜻이 아님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일상 언어에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식이 일어날 때 대상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대상 자체를 받아들인다면 눈은 그 대상 자체보다 커야 합니다. 인식이 일어날 때는 ‘어떤 물질이 와 닿는 것 같이’ 인식하는 주체에 인식되는 대상의 의미 내용이 부딪쳐 걸리고 나눠진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이러한 대상의 성질, 의미 내용이 바로 색온입니다.
오온(五蘊)은 다섯 가지 마음 작용
기초 튼튼, 불교교리 한 토막 15
2008년 09월 통권 407호 / 목경찬
몇 달 동안 오온을 살펴보는 가운데 색온(色蘊)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색온은 사대(四大)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대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을 흙·물·불·바람 그 자체로 풀이하지 않고, 견고성(堅固性)·습윤성(濕潤性)·온난성(溫暖性)·유동성(流動性)이라고 언급하는 경전과 논서 등을 통해서, 그리고 오늘날 연구물에 의거하여 색온을 ‘물질’로 이해하기보다는 ‘대상의 성질, 의미 내용’으로 파악하였습니다.
즉, 색온은 물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성질입니다. 그런데 이 대상에 대한 성질이 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색온은 과거의 업(마음 작용)에 의해 마음속에 들어있는 대상에 대한 성질, 대상에 대한 의미 내용, 정보의 덩어리입니다. 이점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는 필자의 독특한 생각이 아닙니다. 『티벳 사자의 서』를 해설한, 다음 내용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바이로차나(비로자나불)는 에테르, 곧 물질의 집합체를 상징한다. 이것을 불교용어로 색온(色蘊)이라고 한다. … 우리의 『티벳 사자의 서』에서 에테르 원소는 바이로차나로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바이로차나는 ‘모든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자’이다. 여기서 에테르 원소가 상징하는 것은, 티벳 불교의 개념을 서양 심리학 용어로 바꿔 말하면, 인간의 잠재의식이다. … 붓다의 가르침에도 암시되어 있듯이 윤회계의 여러 상태에서 경험한 과거의 기억들은 모두 이 잠재의식 속에 보관되어 있다.” -『티벳사자의 서』(류시화 번역, 정신세계사, 60~61쪽)
비록 색온을 ‘에테르, 곧 물질의 집합체’라고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잠재의식으로 과거의 경험이 보관되어 있다’고 풀이합니다. 여기서 물질이라고 번역한 것은 보통 우리가 색온을 물질이라고 번역할 때 단순한 그 의미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잠재의식’, ‘경험한 과거의 기억 보관’ 등이라고 풀이한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연기법은 ‘바깥 대상과 대상간의 관계성이나 세상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에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작용간의 관계성이나 이 세상이 나에게 어떻게 구성되어 이해되는가(나타나는가)’에 중심이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를 외연기라 하였고, 후자의 경우를 내연기라 하였습니다. 오온설이 연기법을 설명하는 가르침 중 하나라고 할 때, 내연기의 관점에서 오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봅니다.
오온이란 마음 작용을 다섯 가지로 나눈 것입니다. 색온은 대상에 대한 성격, 의미내용으로서 마음 작용을 통해 새롭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과거 마음 작용에 의해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대상을 인식할 때 대상 사물 자체가 의식 속에 들어와서 그 대상을 파악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상을 인식할 때 마음속에 있는 ‘대상에 대한 의미내용’이 드러나면서 그 대상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인식합니다. 왜 우리는 개가 ‘와우와우’가 아니라 ‘멍멍’ 짓는다고 여깁니까? 마음속에 색온으로 그렇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온(受蘊)은 이렇게 드러난 ‘대상에 대한 의미내용’을 받아들이는 감수작용입니다.
상온(想蘊)은 받아들인 ‘대상에 대한 의미내용’에서 모양을 취하여 표상(表象, 相)을 종합하고 통일하는 통각기능입니다.
행온(行蘊)은 상온에 의해 종합된 표상에 대해 언어를 통한 개념을 산출하여 대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구체적인 대상을 정립하는 구성작용입니다.
식온(識蘊)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대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종합적으로 사실 판단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대상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색수상행의 작용으로 구성된 대상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컵을 대할 때, 마음속에 간직된 컵에 대한 의미내용, 정보들(색온)이 드러나, 그 컵의 의미내용을 받아들입니다(수온). 그 받아들인 컵의 의미내용에 근거하여 그 컵을 이러이러한 모양이라고 종합하고 통일하는 작용(상온)을 그쳐, 그 컵에 여러 개념을 붙여서 이러한 컵이라는 것을 구성하게 됩니다(행온). 그리고 종합적으로 (식온에 의해) ‘컵이다’, 또는 ‘내가 먹던 컵이다’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참고로, 오온이 동시에 일어나는지 순차적으로 일어나는지에 대한 논쟁은 옛날부터 있어왔습니다. 동시에 일어난다고 하는 경우, 위에서 순차적으로 설명한 것은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 순서입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일어난다고 하는 경우, 워낙 찰나에 일어나는 작용이라 동시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우리 앞에 법이 펼쳐집니다.
따라서 내가 접하는 모든 것은 마음 작용인 오온에 의해 드러난 것입니다. ‘인간은 오온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돌과 나무는 행온과 색온으로 이루어져 있다’가 아니라, 나와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은 오온 작용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이 인간이든, 돌이든 모두 오온으로 이루어져 드러납니다. 이때 마음 작용과 그 드러난 것을 법(法)이라고 합니다. 즉, 법(法)이라는 것이 막연한 ‘우주 만물’, ‘삼라만상’, ‘일체 존재’라기보다는 마음 작용으로 드러난, 내 마음 앞에 펼쳐진, 나에게 파악된 현상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온은 세상 자체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마음 작용을 기능면에서 분류한 것입니다.
* 목경찬 _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이다. 저서로 『불교입문』(공동 집필),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