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주(識住)와 사식(四食)의 관계⑥<마지막>
사식(四食)과 身[名身과 色身]의 관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방점이 찍혀서 경전에 언급됩니다. 하나는 사념처의 ‘身념처’에서 <身[=dhamma]의 ‘집과 멸’>인데요, “사식(四食)의 集이 身[名身과 色身]의 集이고, 사식(四食)의 滅이 身[名身과 色身]의 滅이다.”라는 것 하고요 ......... 다른 하나는 “身[名身과 色身]에 의지하고 있는 <識>을 보는 것이 ‘반야’.”라는 말씀입니다.
그 두 관점을 이해하셔야만 .... 소위 ‘五種子설’이라고 부르는, <씨앗경>(S22:54)에서 말씀하시는 <다섯 종류의 씨앗>은 <①識과 ②물질식, ③촉식, ④의사식, ⑤식식>이라는 다섯 종류를 ‘씨앗’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이해되시는 것인데요....... 거기에서 <①識>이라는 ‘씨앗’을 보는 것이 ‘반야’라서 ....... <주둥아리>들은 오직 사식(四食)만 가지고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코미디를 하는 것인데요.......... 쓰버럴~~~~~~ ‘아위자’가 <주둥아리>인 이유!
그래도 <주둥아리>를 놀려 보면요....... 쪽 팔리지만, 꾹! 참고서..........
<身[=dhamma]의 ‘집과 멸’>을 보면 ‘법주지’이고요, <苦[=dhamma]의 ‘집과 멸’>을 보시면 ‘열반지’이신데요....... <사식(四食)[=dhamma]의 ‘집과 멸’>을 보시는 것도 ‘법주지’이시고요 .......... <사식(四食)[=dhamma]이 苦[=dhamma]임을 보시고 그 ‘집과 멸’>을 보시면 ‘열반지’가 되십니다. .......... 하여간 <주둥아리>[=이론]으로는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이 <사식(四食)[=dhamma]이 苦[=dhamma]다.>
이것이 <사식(四食)[=dhamma]의 집[=dhamma]이다.>
이것이 <사식(四食)[=dhamma]의 멸[=dhamma]이다.>
이것이 <사식(四食)[=dhamma]의 멸도[=dhamma]다.>를 설명할 수 있어야
사식(四食)에 대한 정견을 가지고 설명한 것이 되는데......... 쓰버럴~~~~~~~ 정견이 있어야 ‘설명도 해먹는 것’이지요!!!!!!!!!!!!! ................. ‘아위자’ 36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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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아위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9.28 아위자 그래서 <연기를 보면> <苦[=dhamma]도, 四食[=dhamma]도, 愛[=dhamma]도 無明[=dhamma]도.......> 보게되는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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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위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9.28 전재성 박사의 <쌍윳따니까야 제2권 81페이지>의 <자양분의 품(Ahara-Vagga)>[SN. vol.2. p.11]을 ..................
읽어 보십시오. .......... 제가 위 경을 읽으면서 쓴 글이거든요........... <자양분의 품(Ahara-Vagga)>을 읽으시는데 도움이 되시라고! -
답댓글 작성자아위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9.28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하시는 경입니다. 평범해 보이시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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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宙宇 작성시간 15.09.28 사식(四食)의 경우에는
사식의 智集滅道를 통한
정견이 도움된다고 보네요..
사식에 대해 먼저 알아야 면장을,,,
그것도 제대로 말이죠...
이게 사실 까야에 대한
정견을 알아가는 방도입니다...
까야에 대한 생멸도를 아는 거죠..
아주 중요한 거라고 봅니다.
까야... -
작성자宙宇 작성시간 15.09.28 이러든 저러든,,
<사식(四食)[=dhamma]이 苦[=dhamma]다.>
참 환영할 표현입니다..
아위자님에게는 특히 말이죠..
그리고 저도 분량조절에 숙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