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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창작실

빗물 속에서도 무사한 구두

작성자은소|작성시간26.06.05|조회수14 목록 댓글 0

빗물 속에서도 무사한 구두

                                              김순양

 

   새벽에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아침에 잠시 그쳤다. 집을 나서기 전 창밖을 살폈더니 비가 완전히 개인 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우산을 핸드백에 넣고 구두를 신을까 운동화를 신을까 잠시 생각했다. 집 근처 교회까지는 걸어서 20분, 구두를 신어야 할 듯싶었다. 성가대원으로 서는데 운동화 보다는 구두를 신는 것이 그 자리에 어울릴 것 같기 때문이다. 검정색 가죽 샌들을 신었다. 모양도 마음에 들고 발이 편해서 여러 해째 즐겨 신는 신발이다. 소낙비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집을 나섰다.

   교회 도착할 때까지는 우산을 펴지 않아도 되었다. 물기를 흠뻑 머금은 풀잎들이 싱그러워 보이는 산책로를 지나 교회 마당에 들어섰다. 넓은 주차장이 물청소를 한 듯 깨끗해 보여서 좋았다. 하지만 예배 끝나고 다음 주 찬양 연습까지 마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예배드리는 동안 쏟아진 장대비로 물바다를 이룬 주차장을 무사히 통과하기가 쉽지 않아보였다. 그렇다고 집이 바로 코앞인데 택시를 부르기도 그렇고, 발을 물에 적신 채 첨벙첨벙 지나가기도 나이 든 사람이 취할 태도는 아닐 듯싶었다.

  ‘침착하게 천천히 가보자’ 마음먹고 발걸음을 떼었다. 아스팔트 깔린 주차장 바닥도 자세히 보면 약간의 높낮이가 있어 조심조심 높은 쪽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구두 앞쪽으로 들어온 물기에 양말까지 축축해진 느낌이 들었지만 최대한 조심해서 걸었다.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거나 고여 있는 물은 피하면서 조금 걷다보니 자갈길이 나왔다. 얼마 전에 교회마당을 재정비하면서 깔아놓은 자갈길이다. 한결 나았다. 교회 마당을 벗어나 산책로를 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빗물이 흐르는 길을 조심조심 나 자신과 내기를 하면서 걸었다. ‘오래 되었지만 마음에 드는 구두, 내년에도 신을 수 있도록 물에 적시지 않게 걸어야지’

  다른 날보다 시간이 한참이나 더 걸려 집에 도착한 후 살펴본 검정색 가죽샌들은 괜찮아보였다. 얼른 벗어 마른 수건으로 닦아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었다. 한 시간 쯤 지나고 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한 구두를 보고 생각했다. 

  인생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겠다 싶다. 얼핏 보면 온 세상이 죄의 물결로 가득한 것 같고 그 속에서 사는 우리는 죄의 물결에 발을 적시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눈앞에 펼쳐진 난감한 상황을 성급하게 판단하고 포기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발은 험악한 상황에 빠져 허우적댈 것이며 신고 있던 신발은 못 쓰게 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침착하게 잘 살피면서 건너다보면 피할 길도 보이고 구두를 망가뜨리지 않고도 집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소소한 빗물길에서 건져 올린 삶의 지혜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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